또 하나의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축 프로젝트입니다.

​하가리는 애월읍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제주에선 드물게 연못이 있고 고내봉이 보입니다.

​대지 위치 부터 보실까요?

대지 위치는 빨간색 면으로 표시된 부분이구요. 중산간 도로 위쪽에 위치하고 있는 하가리 마을 한 쪽 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난 겨울에 촬영했던 대지 사진입니다. 대지 남쪽 길 건너로 연화못이라는 연못이 있습니다. 제주는 물이 고이기 어려운 지형이라 연못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곳엔 아주 아름다운 못이 있습니다.

멀리 바다도 보이구요.

그리고 대지 북서쪽으로 고내봉도 보입니다.

연화못의 전경입니다.

대지의 컨디션은 반듯한 모양은 아니었고 북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였습니다. 건축주는 초등학생 두 아이와 학원을 운영하는 부부였고 자녀들에게 조금이라도 자연에서의 생활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제주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마련하고 싶다 하였습니다.

건축주의 처음 이야기는 직접 이렇게 가족들의 기록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책과 인문학 모임에 관한 공간, 그리고 또 다른 모습의 외부 공간들 여러 이야기가 오고 갔습니다.

먼저 대지를 프로그램 별로 조닝을 함으로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이 끝까지 지속될 이유는 없었지만 가장 합리적인 생각에서 정리를 합니다. 당연히 주차는 도로와 인접한 곳으로 그리고 도로에서 가까운 곳은 퍼블릭한 공간으로, 집의 중심은 책에 관한 공간으로 묶어 내었습니다.

이 집의 가장 큰 개념은 서가가 집의 중심이 되는 것이었고, 그 중심공간에서 파생되는 프로그램이 세미나도 될 수 있고, 가족의 독서 공간이 될 수 있고, 동네 아이들의 도서관이 될 수도 있으며, 때로는 아이들의 놀이터 이자 악기 연주 공간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의 형태는 땅 전체의 구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이 유기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고.

그러한 공간들이 내외부 공간으로 뚜렷이 구분되기 보다 모호한 공간으로서 때로는 통합된 프로그램으로 작동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불가피하게 가벽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가벽으로 인해 대지는 규칙을 가지며 구획되는 공간 공간마다 다른 성질의 프로그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각각의 내부 공간에서 바라보고 느끼는 마당이 다양해졌다는 말이지요.

초기 컨셉 단계에서의 평면들은 그러한 공간 활용의 예만 보여줬을 뿐 아직 1층에 들어갈 확실한 프로그램과 2층이 감당해야 할 확실한 프로그램조차 구분되지 못 했습니다.

건축주와의 컨셉 회의는 계속되었습니다. 제주에서의 주택의 의미를 자꾸 되새겨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연에 대한 동경, 하지만 도시에서의 편안함, 단열, 조망 등등의 요구사항들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정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한 요구사항들을 바탕으로 컨셉에서 발전된 평면을 넘어 좀 더 구체적인 평면의 모습으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서가가 중심이 되는 집.

때로는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집.

외부 공간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집.

건축주의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집, 그러나 외부인들과 어울리기 쉬운 집.

이러한 점들이 기본적으로 정리가 되고, 본격적인 설계에 돌입합니다.

긁적긁적 어느새 입면 스터디를 합니다. 밤에 서가에서 나오는 불빛이 외부에서 볼 땐 책을 비췄으면 좋겠다. (건축가 혼자 생각 -_-;;) 도로에서 보이는 집의 모습이 정갈하고 소박하여 제주 돌담과 어우러졌으면 좋겠다. (이것도 건축가 혼자 생각 -_-;;) 서가에서 바로 나갈 수 있는 옥상정원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거기서 바다도 바라볼 수 있고 앞쪽 연못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외벽이 부담스럽지 않아야 할 텐데.... 재료는 두 가지 정도로 요란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뭐 이런저런 생각으로 입면 스케치를 해보고, 초기에 생각했던 여러 가지 건축적 개념들과 연결 지어 봅니다.

슥삭슥삭 밤새 옐로우 페이퍼에 스케일자와 펜을 굴리며 평면을 완성해 갑니다. 처음 가벽을 이용한 전체 대지의 이용을 그대로 평면에 반영합니다. 외부공간이 정말 다양하게 나올 듯한 평면입니다.

2층 평면입니다.

서가에서 바로 나갈 수 있는 옥상정원이 계획되고 2층은 가족만의 프라이빗 한 공간으로 계획됩니다. 이것은 건축주의 요구 사항이기도 했는데 프라이빗 한 공간과 퍼브릭 한 공간을 좀 구분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2층은 지극히 프라이빗 한 가족만의 공간으로 계획을 하게 되었지요.

그리하여 이러한 집의 형태가 나오게 됩니다.

입면 스케치에서의 모습과 흡사하지요?

주차 구획과 가벽으로 인한 외부에서의 시선 차단

곳곳의 가벽과 외부공간의 구분이 뚜렷해 보입니다.

북쪽 뒤뜰. 물론 창문의 위치나 크기는 픽스된 것이 아니고 임의로 뚫어 놓은 것입니다.

앞쪽 가벽을 쳤다 안쳤다 해보기도 합니다.

2층이 붕 떠 있는 느낌이 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컨셉춸한 쓰리디(3D)이기 때문에 감안하고 봐주세요.

이렇게 쓰리디까지 작업하여 건축주에게 송부~ 그리고 며칠 후 메일로 답장이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소장님이 보내주신 자료 가족과 함께 잘 봤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서 가족과 많은 생각을 나눌 수가 있었네요.

수정 보안 될 사항들을 몇 가지 적어 놓습니다.

 

1. 차에서 내려 현관으로 들어올 때 되도록 비를 피하고 싶습니다. 

 

2. 현관에서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뻥 뚫린 서재의 공간을 바로 맞이하면서 시원한 느낌을 받았으면 하는 아내의 바람이 있습니다. 

 

3. 서재와 키친이 분리하지 말고 연결되면 어떤지요. 서재와 키친의 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면 크기가 줄지 않을까요.  별도의 복도를 주지 말고 외부의 분리된 벽채(서재와 키친 사이의 벽채)도 없는 게 어떤지요.

 

4. 아빠의 작업실을 별채로 두지 말고 부엌과 연결된 북쪽 방향으로 게스트룸을 바꾸고, 현재 게스트룸을 아빠의 작업실로 서재와 같이 있도록 조정되었으면 합니다. 혹은 2층 안방 옆 목재 데크 쪽으로 안방과 연결되어도 좋구요. 작업실은 그렇게 크지 않아도 좋아요. 또한 태인이가 2층 데크에서 천재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할 계획입니다. 

 

5. 보내주신 2층의 모습이 붕 떠있는 모습이라 안정감을 못 느끼고 어두운 재질을 사용하는 것은 피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되도록 집이 밝고 따뜻한 느낌(꼭 집어서 지중해아님 그리스풍이라고)을 원하네요. (아내의 바램) 

 

6. 2층의 부부침실에 딸린 화장실 욕조를 아이의 방 사이에 놓아 함께 이용하므로 2층 화장실을 1개로 줄이는 것은 어떤지요. (세탁기도 넣을 공간이 확보)  화장실과 연결된 욕실은 별도의 공간이 될 수 있게 다락방형식으로 올라가서 먼 바다 혹은 경치를 느끼며 휴식을 취하는 것은 어떤가요.

 

7. 아이의 다락방 지붕에 창을 내서 하늘과 별을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아이의 바램)

 

8. 2층 서재 부분 긴 창에서 연화지를 보며 차 한잔하며 시 한 편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좋아요. 

 

9 각 방의 수납공간 그리고 집 중간중간 수납공간이 필요하구요. 외부의 수납공간(작은 창고-다용도실 옆에도 좋아요)도 필요하네요.

 

* 이방(공부 공간)을 제외한 각방(부부침실, 게스트룸, 작업실)은 되도록 작게 구성 했으면 해요.(서재 키친의 넒은 공간이 별도로 있으니까요. 방안에 이것저것 채우지 않고 깔끔한 삶을 누리고 싶거든요) 그리고 서재 혹은 키친 사이에 아이의 피아노를 놓고 싶습니다.

 

요구 사항이 너무 많아 졌네요. 저희 가족의 바람 다 들어주실 거죠..? 소장님 작품만을 매일매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장님

메일을 받고 또 며칠을 고민합니다. 공간적으로 풀리지 않는 것도 자꾸자꾸 그려보고 다른 생각도 해보고 고민을 하지요. 그리고 또 그리고 옐로 페이퍼가 쌓여 갑니다.

어떤 분들은 설계비가 왜 이렇게 비싸냐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좋은 결과물을 위해 여러 날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고충도 좀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이렇게 하여 또 하나의 평면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2층 평면

안녕하십니까. 고소장입니다~ ^^ 

세부적인 공간의 짜임새를 좀 생각 하느라 늦어졌습니다. 그냥 공간 배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납장이나 실질적으로 공사 시에 적용되는 치수 등을 생각해서 도면을 그려보았습니다. 욕실 공간 역시 생각이 많아 졌고 전체적인 면적 또한 많이 줄어들긴 했으나 55평 정도가 최소입니다. 지난번 의견 주신 것에 대한 제 의견입니다. ^^

 

1. 주차와 비 - 주차를 하고 현관으로 들어가는 진입동선이 그리 길지 않으나 주차장 쪽으로 개구부를 두어 동선을 줄였습니다. 원하시면 빗물을 피하실수 있게 처마를 계획해도 좋을 듯합니다.  

 

2. 현관 - 처음 들어갔을 때 전이공간을 거쳐 서가로 들어가는 건 어떨까 합니다. 의견 주신대로 서가 공간이 바로 보여 툭 터진 느낌도 좋지만 외부에서 들어오면서 신발을 벗고 올라서면 전면창으로 보이는 자연, 빛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돌아 들어가자마자 정면으로 서가 앞마당과 마을의 풍경이 보일 것이고 상부가 오픈된 넓은 서가의 공간이 펼쳐질 것입니다. 오히려 바로 서가의 넓은 공간을 느끼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의 전이 공간이 필요 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이고 진입 역시 도로 쪽에서 보이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3. 키친, 서가 -  수정안은 서가와 키친을 붙이고 불필요한 복도 동선을 줄였습니다. 하지만 키친에서 발생되는 음식냄새는 고려해봐야 할 사항일지도 모릅니다. 문은 효율적인 공간 사용을 위해 미닫이가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1층에서 빨래를 하지 않으실 것을 고려하여 다용도실을 없앴습니다. 물론 면적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기도 합니다.

 

4. 별채 조정 - 게스트룸과 작업실의 위치를 바꾸어 보았습니다.

 

5. 형태와 재료 - 일단 떠 있는 형상의 매스들은 평면을 변경하면서 보완하였습니다. 그리고 검은색 벽돌은 어두워 보일 수 있으나 잘 쓰면 매우 고급스러운 재료라 썼던 것이었고, 무엇보다 제주와 어울리는 색이 아닐까 했습니다. 요청하신대로 밝은 느낌의 집을 설계 하기위해 벽돌의 색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아직 재료는 픽스된 상태가 아니니 참고 해서 봐주시고, 사모님께서 말씀하셨던 지중해나 그리스풍의 주택 느낌도 좋지만 제주풍의 주택은 어떨까 하는 마음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유럽의 현대적인 느낌을 가져 가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토리니나 다른 지중해풍의 주택은 지금 우리 땅에 어울릴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조심스럽습니다. 건축 심의도 걱정스럽구요. ^^ 앞으로 재료의 부분은 평면 조율이 끝난 후 다시 맞추어 나가면 될듯합니다.

 

6. 2층 욕실과 욕조 - 2층의 욕실을 하나로 통합시켰고 세면대는 복도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게 하여 출근시간이나 등교시간에 이용이 용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세탁기 공간은 드럼세탁기일 경우 2층 복도의 수납공간에 설치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 입니다. 하지만 드럼세탁기가 아닐 경우는 공간을 따로 수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다락 형식으로 올라가서 욕조를 설치하는 방안은 아이디어는 정말 좋으나 비용이 일단 증가 하고 계단이 생겨야 함으로 공간효율 측면에서 불리한 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혹시라도 생각해보시고 그래도 이건 해야겠다고 생각 되시면 평면 수정을 통해서 공간을 만들어 내 봐야 할듯 합니다.

 

7. 천창 - 천창은 아이들의 방에 설치하였습니다.

 

8. 수납공간 -  수납공간은 2층 복도 아랫부분에 설치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 방의 수납공간은 다락방에서 화장실 쪽 상부 공간을 이용하여 수납장을 넓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주방의 수납공간은 공간이 충분히 넓어 한쪽 벽에 설치하면 될듯하고 게스트룸의 수납공간은 들어가자마자 벽면에 설치하였습니다. 가장 문제 되는 것은 외부창고가 문제인데 다용도실이 없어짐으로 해서 외부창고의 위치를 어디에 둘지 고민 중에 있습니다. 보일러실이 아직 선정 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엌 옆쪽 계단 밑이 보일러실과 함께 창고가 공간으로 유력할 듯합니다.

 

그리고 면적의 조정 때문에 복도나 다른 공간이 줄어들면서 피아노를 놓을 공간을 마련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다시 고려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평면을 보시고 또 의견 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현재 총 바닥면적은 55평정도입니다. 이상 이렇게 진행 되었고 자료 보시고 의견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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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고영성 소장 드림

이런 식으로 메일로 건축주와 의견을 계속해서 주고받았고, 조금씩 평면의 윤곽이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평면만은 아니겠지요? 이렇게 장거리 건축계획 협의는 계속 되었습니다.

하가리 주택의 시작 단계는 이러 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글에 계속해서 하가리 주택 설계 과정을 풀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