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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탄생 471주년(4월 28일)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 이종호&Studio Metaa(2011)
도시설계가 Archur
2016.04.26

 

최근 어떤 기관에서 영어철자 말하기 대회에 참가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조사했다고 한다. 1위는 Steve Jobs. 그 다음은 반기문 사무총장-Bill Gates-부모님-Albert Einstein 순이었다(영어 인재들이 존경하는 인물 1위는 '스티브 잡스', ACROFAN, 2016.2.18). 몇 년 된 기사이기는 한데 2012년 초등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은 사람은 연애인이었다. 구체적으로 1위는 김연아, 2위는 유재석. 반면, 과거 국민학생들이 꼽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이순신-세종대왕-아버지 순이었다(국민학생 초등학생 차이, 장래희망+존경하는 인물... "변해도 너무 변했어!", 한국경제, 2012.8.9). 국민학교를 나온 내 기억에도 당시 존경하는 인물에서 이순신은 상위 Ranker였다.

'이순신'이라는 이름 앞에 마치 호처럼 붙는 단어가 성웅(聖雄)이다. 실제 그의 호는 여해(汝諧)다. 사전을 찾아보면, '성웅(聖雄)''지덕이 뛰어나 많은 사람이 존경하는 영웅'으로 나온다. 그래서일까? 이순신(1554~1611)은 정조때 부터 왕명에 의해 기념되기 시작했다. 1795년 정조의 명에 따라 윤행임이 편집하여 '이충무공전서'가 간행됐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난중일기(국보76호)'는 이 전서 중의 하나로 이 외 임진일기, 계사일기 등 14권 8책으로 나뉘어 있다. 근대에 와서는 최남선과 이은상이 이순신과 관련된 연구를 했고 가장 최근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새종대로사거리(現 광화문광장/서안조경+삼우설계, 2009)에 이순신 장군 동상을 세우고(1968년 4월 27일) 그의 묘가 있는 현충사를 재정비했다. 국가적인 차원은 아니지만 지금도 이순신이라는 Contents를 활용한 사업은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05년 경상남도에서 추진했던 '이순신 Project'로 10여개의 사업이 진행 중인데, 그 중 남해군에 올(2016년) 8월 이순신순국공원(정림건축+Group한)이 개장할 예정이고 창원시에는 이순신리더쉽 국제센터가 준공될 예정이다.

이충무공전서가 간행된 1795년부터 근 220년간 이순신 Contents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토록 자주 등장한 이유는 아마도 그가 우국충정의 위대한 인간형, 효와 사랑의 보편적 실천을 행한 인간형, 그리고 우리 영토를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낸 영웅적 인간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다른 측면으로 보면 이순신만큼 평면적인 인물도 없다. 그리고 그런 인물의 평면적 Character가 지금 초중등학생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훈이 쓴 '칼의 노래'는 그래서 새로웠다. '칼의 노래'에 등장하는 이순신은 포로들의 울음에 고뇌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심지어 죽은 여진에게서 울음 같은 성욕마저 느끼는 인간이다.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었다. 임진년 개전 이래, 나는 그렇게 믿어왔다. 믿었다기 보다는, 그렇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숨막혔다. 좀더 정직하게 말해보자. 사실 나는 무인된 자의 마지막 사치로서, 나의 생애에서 이기고 지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나는 다만 무력할 수 있는 무인이기를 바랐다. 바다에서, 나의 무(武)의 위치는 적의 위치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마지막 사치는 성립될 수 없었다."

-칼의 노래, 김훈-

우리사회가 영웅으로 섬기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기념하는 공간을 만드는 일은 그래서 그 시작부터 어려웠다. 이순신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기념을 하기에는 우리가 아는 이순신은 더이상 인간계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순신의 평면적 Character를 다시 한번 반복하는 기념관을 만드는게 아마도 가장 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을 설계한 이종호&Studio Metaa는 작업에 앞서 '오랫동안 익숙해 왔던 이순신을 어떻게 생성적으로 그를 대면케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다. 그러면서 이종호는 '그를 새롭게 해석시킬 새로운 공감각을 만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에게 다가서는 과정을 새롭게 할 수 있거나 그의 면모를 좀더 미분화할 수 있을 뿐이다'라고 생각했다.

"미분화는 '무엇을'의 과제며, 다가서는 과정은 '어떻게'의 과제다. 다시 말해 관람객 각자에게 다양한 의미가 새롭게 생성되어 울림으로 전해질 수 있는 시설이기를 원한다. 이순신 기념관의 기념행위가 이순신을 익숙한 역사 속으로 가두지 않고 관람자의 상상력을 추동시키며 새로운 울림을 생성시키는 일이 되기 위해 기념관의 계획은 새삼 '무엇을 기념할 것인지', '어떻게 기념할 것인지'를 다시 한 번 되물으며 시작된다."

-Words from 이종호&Studio Metaa in Concept 200612(92)-

내가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입체적인 인물의 이순신을 만났듯이 이종호도 충무공이순신 기념관 현상공모를 앞두고 '칼의 노래' 속에 등장하는 이순신을 통해 Outline을 그렸다. 이종호가 마음 속에 그린 이순신은 '자기가 당면한 시대에 철저하게 대처하려 했던 매력적이면서도 고독한 인간'이었고 '일체의 오류를 허용하지 않으려 했던, 정말 자기 자신에게 처절했던, 실로 지독한 전문가형 인간'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의 그런 모습이 그가 전쟁을 버텨낸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었고, 그래서 후대에 이상화된 이순신의 이미지보다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이순신의 모습을 그려보려 했다'고 한다(-'나'의 존재를 관람객에게 과시하지 말라, 한겨레(구본준), 2011.5.18-).

'칼의 노래'는 소설이다. 아무리 김훈이 역사적 사실을 고려했다해도 소설은 허구다. 그럼 그 허구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역사적 사실로서의 인물과 동일시 하는 것 자체가 오류일 수 있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평면적인 인물의 성격을 정말 이순신이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재미있는 건 그 허구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역사적 사실로서의 인물로 지금까지 우리가 알아 온 이순신 보다 더 현실적이라는데 있다(김훈의 소설이 늘 그렇듯). 그 만큼 우리가 아는 이순신이 이순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오히려 이순신 기념관은 평면적 인물로서의 이순신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을 찾아내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찾아내는 Clue가 무엇이냐는 거다. 이종호에게 그 Clue는 허구의 소설 '칼의 노래'였다. 그럼 그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 아니면 그 소설 속 이순신이라는 Character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것이 Clue가 될 수 있을까? 그건 각자의 몫이다. 다만 그 Clue를 찾아가는 과정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기념관을 설계하는 자의 몫이다. 그래서 이종호는 '기념행위''기념을 둘러싼 모두에게서 일어나는 일종의 제의(Ritual)로 간주'했다.

"핵심은 무엇을 기념할 것이며, 어떻게 기념할 것인가라는 '기념행위'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상상력을 이끌어 내려는 계획의지 자체의 문제이다. 설혹 그 시설에 의해 역사적 상상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해도 과제는 남는다. 만일 그 내용이 일반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많은 시설들이 그러하듯 기념의 의미에 대한 지속적인 생성을 방해하고 소멸시킨다. 대상은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고 현재로 소환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념행위'는 기념의 대상을 역사 속에 가두지 않는 생성적 행위여야 한다. 이미 합의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그 역사에 대한 능동적 해석을 유도해 냄으로써 수용자에게 일종의 역사적 성찰이 이루어질 수 있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Words from 이종호&Studio Metaa in Concept 200612(92)-

관람객이 Clue를 찾아가는 과정을 위해 설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세 개의 켜와 소외 효과'였다. 첫 번째 켜는 '표층의 켜''나라와 대면하는, 전투에서 전투로 이어지는 표층. 익숙한 서사의 재배열, 예측된 내용의 Scale 변화 등을 통해 통속의 지루함을 넘어서는 새로운 '경험의 과정'이 마련되어야 하는 켜'다. 두 번째 켜는 '중층의 켜''백성과 대면하는, 전투와 전투 사이의 일상의 층. 새삼 강조되어야 할 켜, 전쟁 사이의 지루한 일상, 무오류를 위한 지독한 철저함들이 작은 Scale로 무수히 깔리는 켜'다. 마지막 '심층의 켜''자신과 대면하는, 갑옷을 벗어 개어 놓은 심층, 이순신의 내면과 관람자 사이에 울림이 만들어져야 하는 켜'다(-건축가 이종호, 우의정&Studio Metaa-). 이 세가지 중 '심층의 켜'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알아왔던 평면적 인물로서 이순신이 아닌 정말 인간적인 이순신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이 켜에서 만나는 이순신은 낯선 이순신이 될 수도 있고 낯설지는 않지만 다른 이순신이 될 수도 있다. 건축가는 이런 만남을 위해 '거리두기, 즉 소외효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현충사와 충무공이순신 기념관이 배치된 터(2007년 Version)
↓-현충사와 충무공이순신 기념관(2014년 Version)

충무공이순신 기념관이 앉혀진 자리는 현충사 경내로 진입하는 충무문 남서쪽이다. 경외지역인 신정문과 경내지역인 충무문 사이에 있는 이 영역은 기념관이 들어서기 전 진입광장이었다. 그리고 그 진입광장에는 대략 직경 140m되는 잔디밭만 조성돼 있었다(위 2007년 Version의 위성사진 참고). 넓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진입광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조성된 공간이다. 이종호가 봤을때 진입광장은 너무 넓었다. 그래서 '새로운 언덕'을 만들어 신정문에서 충무문으로 이르는 주 진입로를 재구성했다. 즉, 기념관이 있기 전 원형의 넓기만한 광장 서쪽에 새로운 언덕을 만들어 진입광장의 영역을 ┘자로 줄인 것이다. 사실 기념관이 세워지기 전에도 광장 서쪽에는 현충사 북쪽에 있는 방화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구릉이 있었다. 물론 위 위성사진을 보면 방화산과 구릉 사이에 현충사 관사와 취락지역이 있어 완전히 연결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진입광장에서는 구릉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이종호가 만든 새로운 언덕은 이 구릉을 진입광장 쪽으로 더 연장한 것이다.

실제 신정문으로 들어오면 방화산과 연결된 것 처럼 보이는 새로운 언덕이 보인다. 원래부터 이 땅에 있었던 것 같은 풍경이다(위 사진). 그렇게 70m 가량을 더 들어오면 동선이 언덕을 따라 동쪽으로 더 휘어지는 지점에서 직육면체 기념관이 방화산과 새로운 언덕 사이에서 나타난다(아래사진) 한겨레 구본준 기자가 '감춰진 기념관'이라 표현한 기념관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종호는 기념관 Mass를 4개의 정사각형 평면으로 정 남북방향에 맞춰 기존 구릉과 새로운 언덕 사이에 배치했다. 기념관이 들어서기 전 넓기만한 진입광장을 만들었던 전략과는 반대로 스스로 존재감을 과시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런 전략을 강조하기 위해 외벽 마감재도 50cm 두께로 다진 흙을 사용했다. 이종호는 '지금은 멀끔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금도 생기고 부스러져 떨어지기도 하는 흙벽'을 생각하며, 시간의 흔적이 흙벽을 통해 들어날 수 있기를 바랬다.

기념관으로 접근하는 경로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새로운 언덕을 남북으로 나누고 있는 통로로 신정문에서 충무문으로 연결되는 주 진입동선에서 분기돼 있다(위 사진). 주 진입동선에서 분기되는 지점에서 통로가 넓게 벌려져 있고 바닥 재료도 달라 접근하면서 봤던 모습과는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이 부분은 현상설계 안과 비교했을때 크게 달라졌는데, 설계안에서는 남쪽 벽의 선형을 한 번 꺾었고 무엇보다 지금처럼 통로의 상부가 완전 개방돼 있지도 않았다(아래 Modeling사진과 Image).

이 외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진입동선도 있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진입하는 동선도 있다. 이 중 남쪽에서 북쪽으로 진입하는 동선은 현재 Fence로 막혀 있다. 어찌됐든 새로운 언덕을 두고 남-동-북에서 진입할 수 있는 여러개의 동선은 기념관 전면의 광장에서 만난다(아래사진). 설계자가 기념관으로 접근하는 동선을 여러개 만든 이유는 기념관이 다중성을 갖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이종호는 방문객들이 ①현충사를 참배하기 전, ②참배한 뒤 아니면 ③기념관만을 따로 찾아올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기념관이 의도하는 기념비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관람객의 동선을 일방향으로 강제하는 기존의 기념관과 비교하면 새로운 시도다. 동시에 이는 기념관이 '다중적 의미의 열린 시설'이 되기 위해 설계자가 취한 방법들 중 하나 -공간적 다중성- 다. 이 외 설계자는 '형태로 상징하지 않는 추상적 다중성, 기념관 내부 곳곳에 현대의 조형물이 놓여 과거와 현재 사이에 시간을 중첩시키는 시간적 다중성'을 충무공이순신 기념관이 갖도록 했다(-건축가 이종호, 우의정&Studio Metaa-).

충무공이순신 기념관이 갖는 이 세가지 다중성은 앞서 얘기했듯이 관람자가 '후대에 이상화된 이순신의 이미지'가 아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이순신의 모습을 그려보기'위해 필요한 것이다. 공간적 다중성을 놓고 보면 현충사를 참배하기 전에 생각하는 이순신의 모습과 참배한 뒤 생각하는 이순신의 모습 그리고 기념관만 보고 생각하는 이순신의 모습이 다를 수 있다. 그 다름은 관람객 각자가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과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 추상적 다중성도 마찬가지다. 만약 기념관이 이순신의 대표적 발명품인 거북선을 닮았다면 그 거북선을 닮은 기념관을 보는 관람객이 생각하는 이순신의 범위는 상당히 좁혀진다. 충무공이순신 기념관은 기념의 방식과 기념하는 대상을 어떻게 기념하고 싶다는 바를 정해 놓지 않은 기념관이다.

불행하게도 이종호가 충무공이순신 기념관에서 의도했던 바를 현장에서 느끼기란 쉽지 않다. 설계자가 감리단계에서 배제되면서 현상설계안 변경이 있었고 이에 따라 심지어 Detail한 부분에서 일반적인 공공건물에서 보이는 둔탁함이 드러나게 됐기 때문이다(감리는 신화엔지니어링종합건축사사무소). 두 번째는 건축공간과 전시물이 따로 놀면서 '세 개의 켜와 소외 효과' 그리고 '시간적 다중성'이 사라졌다. 구본준에 따르면 현상공모때는 건축가가 건물과 전시공간을 모두 Design하기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진행과정에서 관행대로 전시공간 설계는 따로 가게 됐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이종호는 상당히 아쉬워했다고 한다(-'나'의 존재를 관람객에게 과시하지 말라, 한겨레(구본준), 2011.5.18-).  이러한 사항에 대한 의견을 이종호는 중앙일보에 게재 했다(-이종호"이순신 기념관이 불도저식 토목공사냐", 중앙일보, 2011.06.14-). 물론 문화재청도 이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놨다(-충무공이순신 기념관 관련 법령에 따라 적법하게 공사 진행, 해명자료, 2011.06.14-).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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