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최근에 있었던 답사기를 올리고자 한다.
한동안 현장감리차 파주출판단지를 오가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 기간 중 출판단지 너머 어느 동네에 독특한 외관을 지닌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감리를 하는 것이었다보니 1년 가까이를 다니게 되었는데, 그 덕분에 그 건축물이 점점 모습을 갖추고 완성되는 것까지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워낙 인상깊은 외관이라 머리 속 한켠에 기억이 남아 있던 중 즐겨 보는 프로그램인 TBS 공간사람과 건축잡지인 공간지에서 최근에 바로 그 건축물을 연달아 소개하였다.
건축물명은 '카페루버월', 건축가는 정의엽, AND건축의 건축가였다. 호기심만 갖고 있던 중에 각종 매체에서 소개까지 되자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얼마 전 또 파주출판단지를 가게 되어 마음머고 카페루버월로 향하였다.
카페루버월
카페루버월은 파주시 안개초길이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흔히 볼수 있는 도시형 다세대주택이 밀집된, 계획단지 안에 위치하고 있다.
외관
이름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건축물은 루버가 가장 큰 외관적 특징을 이룬다. 여러개의 금속의 루버가 건물의 전면부를 휘장을 두르듯 휘감고 있다. 이 때문에 루버월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상부에 일부 탈락한 것은 최근에 불었던 강풍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건축주로부터 들었다. 얇은 금속판으로 이뤄진 것이기에 세밀하게 시공하지 않으면 견고함이 떨어질 수 있다.
주 출입구 부분은 석재마감으로 이뤄졋고, 점차 안으로 좁아지며 안으로 파고드는 극적인 입구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전면에서 보았을 때에는 루버의 패턴만 드러나 강조되지만 입구를 향해 시선을 틀면 입구가 더 도드라 진다.
루버가 아닌 측면과 후면부는 드라이비트 혹은 스터코로 마감돼 있다. 전적으로 길에 면한 전면부에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실내공간 (1층 카페)
방문 전 인터넷 포털 검색을 통해 건축물의 주인이 건축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다는 이야기를 미리 알고 찾아갔는데, 때마침 카페를 지키고 있던 분이 주인이어서 건축물 내부 곳곳을 둘러보고, 자세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입구를 지나 실내로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공중에 떠 있는 콘크리트 매스이다. 콘크리트 매스는 2, 3층의 주거공간을 담고 있으며, 1층의 카페공간과는 아트리움 식으로 연결돼 있는 것이다. 1층만 카페로 사용되고 있지만, 공간감으로 따지면 건축물의 대부분을 카페가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앞서 말한 떠 있는,부유하고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는 카페 천장에 매달린 장식처럼 보이게 되고, 그에 따라 카페 공간이 굉장히 높은 천장을 갖는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매스는 카페의 카운터 상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가느다란 기둥하나로 그것을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실제로는 뒤의 벽체와 측면의 벽체가 구조적으로 돕고 있겠으나, 보이는 것만 따지면 기둥이 전부인지라 건축주분도 실제로 구조적으로 안정적인지를 걱정하시기도 했다.) 그런 형상 덕분인지 카페공간 전체가 굉장히 극적인 효과를 갖게 되었다.
카페공간의 천장이 매우 높고 거대한 느낌이라 마치 우주 혹은 우주선 내부에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계획 당시에도 건축주분께서 카페공간에 대한 강조를 원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답으로 된 설계라서인지 다른 공간, 요소에 비해 카페공간이 굉장히 강하게 강조돼 있다.
카페 공간에 놓인 가구까지도 건축가가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가느다란 스테인리스스틸 각파이프를 꺾고 구부려 연결하여 제작된 가구는 크고 대담한 내부공간과 대조적인 효과를 준다.
(아래 사진)
카페에서 올려다본 천장
(아래사진)
사선으로 이뤄진 콘크리트 기둥은 건축물 전체의 구조체이자 외부의 루버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외관의 형태를 위해 다분히 디자인된 구조체임과 동시에 외부 루버의 디자인이 전체의 건축물의 형상을 결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안으로 파고든 입구의 내벽은 노출콘크리트로 처리돼 있는데, 그 곳에 노출콘크리트에 생기는 콘볼트 자국과 유사한 크기의 조명을 설치해 놓았는데, 이는 흡사 별자리와 같다. 앞서 우주공간과 같다는 생각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표현기법이다.
실내공간 (2, 3층 주택)
카페 주인이자, 건축주분의 배려로 2, 3층 주택공간도 둘러볼 수 있었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실무를 하고 있다고 말씀드리자 굉장히 반가워하며 이런저런 얘기와 더불어 2, 3층을 공개해주신 것이다. 이사가 들어오지 않아 괜찮다는 말씀에 임대가 나가지 않았다는 것으로만 이해했는데, 답사 막바지에 알고보니 그것이 아니라 본인이 살고 있지만 아직 짐은 들어오지 않은 상태라는 말씀이었다. 즉, 자신이 현재 거주하는 주택을 내어주신 것이었으니 더욱 감사한 일이었다.
주택 영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카페 한켠에 있는 문을 열고 직통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아래와 같이 나를 위해 건축주분께서 문을 열어주셨다. 문을 지나 계단에 들어서면서 카페공간에서의 느낌과 사뭇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굉장히 힘이 많이 들어가고 공들였다는 느낌이 드는 카페공간에 비해 약간 허술해진 느낌이 강했다.
계단에 챌판, 논슬립등 대부분의 디테일 등이 생략돼 시공상 카페공간에 비해 섬세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2층으로 가는 계단 참 부분에는 독특한 휴게공간도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입체적으로 매스가 공중에 떠있는 듯한 실내의 공간감을 더욱 살리는 효과를 주고 있다.
(아래)
주택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특별히 강력한 인상을 주는 요소는 많지 않았으나, 곳곳의 콘크리트가 노출된 부분이 독특한 인상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천장, 계단 등이 그러하다.
실내마감과 가구가 완벽히 조화를 이루고 있지는 않았다.
2층과 3층을 연결하는 실내 계단이 존재하는데, 그 부분 초입에 콘크리트로 만든 평상이 있다. 독특한 요소이나 역시 마감이 세련되거나 깔금하지 않고 투박하다.
2층에서 3층으로 향하는 실내계단은 철판으로 제작돼 있는데, 건축주분께서는 이 계단이 지나치게 가팔라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내가 이용해 보았을 때에는 그리 큰 문제가 있지는 않았으나, 건축주분의 연령과 아내분의 이용을 생각하면 조금의 배려가 더 필요할 듯 하다. 아마도 콘크리트의 평상을 생략했다면 계단이 길어져 완만해졌겠으나, 건축가는 그보다는 평상이라는 건축요소를 제공하고 싶었을 것이다. 계단자체가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계단규격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3층은 주방과 거실의 공간이 있는데, 기울어진 천장 덕분에 높은 천장고를 갖고 있었다. 콘크리트가 노출된 부분이지만 실내마감재와의 색을 맞추기 위해 흰색으로 도장을하였는데, 자연스럽지는 않다. 실내마감의 섬세함이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구조체와 마감재가 만나는 부분, 에어컨등 집기들이 마감재와 만나는 부분 등이 섬세하게 고려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마무리
우선 굉장히 답사에 호의적이었던 건축주 덕분에 간만에 알찬 답사를 할 수 있었다. 전에 답사했던 도천 라일락집의 경우, 외관만 훑어보는데 그친데 반해 내부 답사와 더불어 속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카페루버월은 젊은 건축가다운 젊은 감각이 강조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건축주가 원했던 카페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건축가는 루버를 통한 강력한 외관 디자인 요소를 만들었고, 실내 공간에서도 과감하게 비우는 것을 통해 공간감을 강조했다. 사실 많이 비울수록 시공비와 등기면적에 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시도와 그것을 수용한 점은 무시할 수 없는 평가요소이다.
그에 반해 공들이고 힘준 카페공간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섬세함을 보인 주택부분의 공간은 아쉬움을 남긴다. 의도적인 선택과 집중인지, 현실적인 문제로 인한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하였으나, 전체적인 균형을 가졌으면 한단계 높은 차원으로 올라섰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진하게 남는다.
전체적으로도 비정형인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발생하는 디테일의 한계도 조금은 아쉽지만, 가장 큰 것은 앞서 말한 큰 두개의 공간이 지니는 질적 차이이다. 그러나 주택공간은 사적공간인 관계로 노출될 경우가 적은 걸 고려하면 드러나는 외관부터 공적공간까지는 큰맥락을 잘 잇고 있는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건축가로써 보여줄 수 있는 역량과 패기와 더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던 건축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