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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돌아보다. (기억으로 그린 “나의 집”)
1집 - 1980~1985 신도안 과수원집
건축가 서경화
2016.06.28

나만의 연재를 시작하며

주택을 설계하면서 문득 내가 살아온 을 생각해 보았다.

손가락으로 대략 세어보아도 40대 중반까지 15곳을 거쳐 왔다.

단독주택, 다세대주택, 아파트, 원룸, 시골집, 도시 집 등등

그러고 보니 꽤 다양한 유형에 살아본 전력?이 있는 셈이다. ㅋㅋ


집은 무엇일까?

집은 어떠해야 하나?

 

매번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 고민하면서 정작 내가 살아온 나의 집의 존재는 잊고 있었다.

마치 책꽂이에 오래전에 꽂아놓은 다 읽은 동화책처럼...

이제 동화 속 추억으로 남은 나의 집을 꺼내 보려 한다.

한낱 개인의 집에 대한 기록 일지라도 건축가인 나에겐 꽤나 의미 있는 작업이 되리라 믿는다.

! 기억 속으로~~go~

 

<1980~1985 신도안 과수원 집>

7살에서 초등학교 5학년 무렵까지 살았던 시골집이다.

그전에 서울에서 살던 집과 경상도 군북에서 살았던 집의 기억은 없어서 건너뛰기로. ㅋㅋ

다만, 내가 신도안(지금은 계룡대 자리 : 충청남도 논산군 두마면)에 도착한 첫날,

7살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한 장면만은 또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짐 트럭에 앉아서 동네 아이들을 보고 건넨 첫마디

 

보레이~~”

 

뭘 보라는 건지. ㅋㅋ

그냥 인사일 뿐인데..  신기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 속에서 새로운 환경을 마주한 어린아이의 첫말이었다.

 

내 기억의 첫 집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시골집이다.

아빠 나이 40. 엄마 나이 37.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린....

농사라곤 해본 적도 없는 법대생과 정치외교학과 출신 부모님이 사신 첫 시골집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시골생활(농사 도전기)인 셈이었다.

 

부모님과 언니2, , 남동생 1. 6명이 부대끼며 산 집은 15평 남짓하다.

새로 지은 것은 아니고 전에 큰아버님이 사셨던 곳이란다.

담장도 없고 과수원 주변으로 아카시아 울타리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

 

1. 6명의 살림집

2. 변소, 배창고

3. 노란 국화꽃이 피던 수돗가

4. 메리 집(개집)과 검은 수석

5. 돼지막

6. 물 길어오던 곳

7. 과수원(배나무)

8. 과수원(사과나무)

9. TV 보러 간 집

10. 뒤꼍 밤나무와 대나무

11. 몰래 따먹던 딸기밭

 

 

1. 6명의 살림집

3, 마루1, 부엌1


 

< 부엌 >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부엌이다. 당시만 해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난방을 하던 터라 방마다 아궁이가 보인다. 부엌은 반입식?이라 해야 하나? 반쯤은 서있고 반쯤은 앉아서 일을 했다. 불을 때서 밥을 해야 했고 수도 시설이 없어서 큰 대야(“다라이라고 불렀음) 같은 데에 물을 부어서 설거지를 했다. 이런 불편함으로 나중엔 연탄보일러가 들어왔고 곤로라고 부르던 장치에 불을 붙여서 음식을 만들었다. 부뚜막과 마루로 이어진 곳의 미닫이문을 밀면 무거운 밥상을 마루로 바로 나를 수 있었다. 바닥은 흙바닥이어서 항상 신발을 신고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 마루 >

옛날식 집이라 현관이 따로 없고 마루 아래에 신발을 벗어 놓고 올라갔다. 기억으론 노오란 장판지가 깔려있었던 것 같다. 집의 중심에 위치하는데 지금의 거실 개념과는 살짝 거리가 있다. 어찌 보면 각 공간을 이어주는 동선의 결집지 같은 곳이었다. 또한 가내수공업을 하던 때라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마루가 온 가족의 작업장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과수원을 하면 배 열매가 어릴 때 봉지를 씌워주어야 하는데 이 마루에서 누구는 신문지를 접어서 배 봉지를 만들고 누구는 쑤어놓은 풀을 봉지에 바르고 누구는 봉지에 해충을 방지하려 귀이개같이 생긴 것으로 유황 가루를 넣었다. 이렇게 다 만들어진 배 봉지는 볕이 좋은 마당에 흩뿌리듯 펼쳐서 말려야 했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마루의 증축이 필요했으리라. 가내수공업. ㅋㅋ

 

< 안방 >

일단 지금 봐도 방이 크다. 대략 4.5x3미터 정도이니. 그래서였는지 이름은 안방인데 부모님은 마루 옆방에서 주무시고 안방은 큰언니를 제외한 우리들(3명의 얼라들)의 차지였다. 밥도 여기서 먹었고 tv나 전화기를 사도 안방으로 들였다. 캔디를 봤던 세대. 집안에서 우리 얼라들의 놀이터는 단연 안방이었다. 아궁이 근처의 아랫목은 너무 따셔서 약간 탄듯했고 벽면에는 당시 살림집에서 흔하게 수납장으로 쓰던 벽장도 있었다. 에피소드 하나. 북쪽으로 난 창호지 문을 타고 어느 날 스물 스물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뱀! 오메 깜놀...시골이기에 가능한 풍경이다. ㅋㅋ

 

그리고 겨울이 되면 바뀌는 생활패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안방에 6식구가 다 모여서 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요강의 등장이었다. 아궁이에 불 지피는 것도 아끼고 붙어있으니 따시고. 추운데 변소는 방에서 해결하고. 가만히 누워있으면 천장 속에서 쥐들이 노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는 그렇게 모두 같이 살았다. ^^

 

< 큰언니방, 마루옆방 >

큰언니라고 해도 당시 나이 11~16살인데 두 살 터울인 우리에겐 엄청난 대장이었다. 그래서인지 방도 따로 있었다. ㅋㅋ 어린 나이여도 꽃이 좋았던지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 다알리아 구근을 얻어 큰언니방 앞에 화단을 만들었다. 그때의 뿌듯함이 불현 듯 되살아난다.

마루 옆방은 실제로 부모님이 주무실 때 쓰던 방이다. 안방은 우리들 방~~

 

 

2. 변소, 배창고

그야말로 재래식(푸세식) 변소이다. 양발 사이로 구멍 한 개만 덩그러니 있는. 서울 사는 친척들이 오면 무서워했던 바로 그 변!!

지금 기후와는 달라서인지 저온 저장 장치를 해야 배 보관이 가능하지만 그 당시엔 배도 단단하고 일반 창고에서 어느 정도 보관이 가능했다. 배를 따고 창고에 쌓을 때 몸무게가 덜 나가는 내가 쌓인 배무더기 위로 올라가 아빠에게 건네받아서는 창고 위로 차곡차곡 쌓고 내려왔다. 농번기 때 나의 임무~~^^

 

3. 노란 국화꽃이 피던 수돗가

수돗가 옆엔 항상 노란 국화꽃이 피어있었다. 말이 수돗가이지 꼭지를 돌리면 물이 확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위에 사는 어느 집 바위 틈새로 나오는 물줄기에 수도 파이프를 연결만 해놓은 상태였다. 그래서 항상 틀어져 있는 수도처럼 물이 끊이지 않고 나왔다. 다행히 바위틈 물이 마를 날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 수도관 연결로 아빼의 물지게는 끝이 났다.

에피소드. 위로 두 언니는 다투는 일이 많았다. 항상 아빠에게 혼나면 이 수돗가 옆에서 손을 들고 벌을 섰다고. 역시 벌받은 사람만 기억하는~~

 

4. 메리 집(개집)과 검은 수석

마루 앞마당에 검은색의 메리 집이 있었다. 그 뒤쪽으로는 대청댐에서 건졌다는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검은 수석이 있었는데 나중에 원주인이 정원 조경용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5. 돼지막

꿀꿀이 집인데. 초창기에 잠깐 있었고 없어졌다. 난 촌녀이지만 가축은 싫어. 냄새나요~ ㅜㅜ

 

6. 물 길어오던 곳

당시에 수도시설이 없었다. 그래서 우물집이라고 불리는 곳에 가서 아빠가 물지게를 메고 길어 오셔야 했다. 말이 우물집이지 우물을 판 게 아니라 바위틈으로 콸콸 나오는 물을 받아오는 곳이었다. ! 얼마나 고생이셨을까! 아부지 존경합니다. 물 양동이에 찰랑찰랑 가득 메우고 오지만 걸을 때마다 조금씩 흔들리는 움직임으로 집에 도착해선 항상 한 뼘만큼 줄어있었다.

 

7. 과수원(배나무)

우리의 주 수입원 배. 나무가 크면서 휘어져 마치 터널 속에 있는 것 같다. 겨울이면 더 예쁘다.

배꽃이 피면 동화 속 정원이 된다~~

 

8. 과수원(사과나무)

난 배보다 사과를 더 좋아했다. 우리 집의 후식은 항상 과일로 넘쳐났다.

겨울이 되면 사과밭 내려가는 경사길에서 비료포대를 타는 재미가 쏠쏠했다. 자연 눈썰매장.

 

9. TV 보러 간 집

TV가 없었던 때 우리는 항상 윗집으로 TV 보러 원정 다녔다.

TV와 전화기를 산 날은 우리 집의 잔칫날이었다. 오메 좋은 거~~^^

 

10. 뒤꼍 밤나무와 대나무

집 뒤꼍엔 밤나무와 대나무가 있었다. 밤알이 마치 참기름을 발라놓은 듯 반질반질하고 맛있었는데 요즘은 아무리 찾아도 이런 게 없네. ㅜㅜ 대나무도 몇 그루가 있어서 어린 죽순을 꺽어 반찬으로 먹었던 기억이 난다.

 

11. 몰래 따먹던 딸기밭

약 뿌렸으니 한동안 딸기 먹으면 안 된다.”라는 부모님의 신신당부에도 비만 한번 올라치면 그치자마자 몰래 따먹었던 딸기 맛이 정말 죽였다. ^^


 

마치 터널 속에 있는 듯~

엄마랑 귀요미 남동생~


 

뒤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신도안 집 사진

사과 나무 밭 아래로 겨울이 되면 비료포대를 탔다.

귀요미 남동생이랑 친척~ㅋㅋ  

 

[플라잉 건축사사무소] “집을 돌아보다. (기억으로 그린 나의 집”) 1- 1980~1985 신도안 과수원집

http://blog.naver.com/doanarch/220623699406

건축가 서경화

유쾌한 반전을 좋아하고 우연이 만드는 인연에 즐거워하며
복잡함보다는 단순함(SIMPLICITY)이 주는 명쾌함에 끌리고
여유라는 이름의 다른 하나인 유머(HUMOR)를 공간에 담고자 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