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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Corbusier 타계 51주기(1965.8.27)
Center Le Corbusier(Heidi Weber Museum, 1967)
도시설계가 Archur
2016.08.26

 

지금도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는 Le Corbusier다. 건축설계에만 국한되지 않고 도시계획 차원까지 본인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답을 했던 그의 소명의식을 닮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2000년 군 제대 직후 떠난 유럽여행에서 본 그의 작품들이 준 감동을 평생 안고 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는 그가 세상을 떠난지 51년 되는 해다. 그는 프랑스의 Cap Martin에서 수영을 하다 심장마비로 죽었다. 당시 몇몇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그의 유작으로 꼽히는 건물은 취리히(Zurich)에 있는 Center Le Corbusier다. 현재 이 건물에는 그의 스케치와 그림 그리고 조각, 건축 모델 등이 전시돼 있다. 

Center Le Corbusier는 'Heidi Weber Museum'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Heidi Weber는 스위스 예술 수집가이자 후원가로 Le Corbusier와의 인연은 1957년 시작됐다. Le Corbusier는 그녀의 스튜디오 인테리어 디자인을 위한 작업을 했었는데, 그때 그녀가 강한 인상을 받았다. 이듬해 Heidi Weber는 Le Corbusier를 만나기 위해 말년에 그의 작업실이 있었던 Cap Martin으로 갔다. 이곳에서 그녀는 Le Corbusier가 1927년에 디자인한 세 종류의 의자를 생산하는 협약을 맺었다. 그리고 Heidi Weber는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나중에는 공급을 늘리기 위해, Heidi Weber는 이탈리아가구업체 Cassina와 가구생산을 위한 계약을 다시 맺어야 했다.

이후 그녀는 Le Corbusier의 그림, 조각, 그래픽 작업 등을 취리히의 Gallery Mezzanin에서 정기적으로 전시하기 시작했다. 1960년 Heidi Weber는 Le Corbusier의 작품들을 상설적으로 전시하는 미술관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1961년 Le Corbusier는 Heidi Weber에게 첫 번째 설계안을 보여줬다. 첫 번째 설계안은 Le Corbusier가 평생 즐겨 사용했던 콘크리트로 된 안이었다. 하지만 1년 뒤인 1962년, Le Corbusier는 철로 만드는 새로운 안으로 변경했다. 몇 번의 설계 변경 후 1964년 공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1967년 취리히 남쪽, 리마트 강(River Limmat)이 흘러드는 취리히 호수(Lake Zurich) 동쪽에 미술관이 개관했다. 하지만 설계자인 Le Corbusier는 없었다. 그는 1965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나 개인에게 데생, 회화, 조각, 책, 집, 도시계획은 시각현상의 다양한 형태에 바쳐진 유일하고도 동일한 창조적 표현일 뿐이다. 우리는 돌, 나무, 시멘트를 사용해 집을 짓고 회관을 만든다. 이것이 건설이다. 여기에 재간이 작용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것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내게 도움을 준다. 그러면 행복해진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름답군! 건축이란 그런 것이다.'"

-Words from Le Corbusier-

100%는 아니지만 Center Le Corbusier는 Le Corbusier의 작품에서 유일하게 철이 주(Main)를 이루는 건물이다. 매스 가운데 경사로가 있는 실만 노출콘크리트로 거칠게 처리돼 있다. 그래서 Center Le Corbusier는 Le Corbusier의 작품이라기 보다는 마치 Mies Van der Rohe의 작품을 보는 듯 하다. 하지만 이전부터 그는 철이라는 재료 사용에 대한 고민을 해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와 30년 동안 작업했다는 Andre Wogenscky는 Le Corbusier가 '금속구조물 사용을 선호했다'고 밝힌다. Andre Wogenscky가 그의 조수였을때 '강화 콘크리트와 철구조물의 비교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엔지니어가 제공한 결과들은 매번 강화 콘크리트가 더 경제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우리는 그것을 건축에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금속으로 지어진 것은 산업연구 프로젝트였던 취리히의 Le Corbusier Center뿐'이라고 한다.

거푸집을 만들어 형태를 잡아내는 콘크리트와 달리 철은 부재(部材)의 크기로 형태가 결정된다. 크기는 일정 배수로 커지기도 하고 또 작아진다. 재료 자체가 일종의 모듈(Module)이 되는 셈인데, Le Corbusier는 '모듈러(Modulor)'라는 개념을 고안해내서 가능한 자신의 설계에 적용시켰다. 모듈러의 기본단위는 왼손을 들고 있는 사람의 발 바닥부터 손까지의 높이로, 구체적인 치수는 2.262m다. Le Corbusier는 이 건물에서도 이 모듈러를 적용시켰다. 건물의 주(Main) 마감재인 다양한 컬러의 에나멜(Enamel)판의 크기를 모듈러의 기본 단위인 2.262m를 한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반(1.13m x 2.26m)으로 잡았다. 이 모듈을 기본으로 n등분하여 투명유리판이나 경사로가 있는 실의 폭이 결정됐다.

Le Corbusier가 이 건물에서 모듈러의 개념을 철저하게 적용시킨 이유는 규칙적인 반복을 추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개별적인 형태를 만들어 내기 위함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최종적으로 Center Le Corbusier에서 주요 기능들이 배치된 좌우 공간은 12m x 12m 정사각형 평면이고 그 사이 2.262m 폭의 경사로 실을 더해 한 층의 크기는 12m x 26.3m가 된다. 물론 이 크기도 일종의 규준선(Regulation Line)이고 실제 각 실의 평면은 이 크기 안에서 빼지거나 더해진다. 동쪽 매스 2층 부분의 경우를 보면 북쪽으로 향하는 출입구 위쪽에 한 변이 2.26m인 육면체가 돌출돼 있다(위&아래사진). Le Corbusier의 이러한 평면의 변형은 비록 철이라는 같은 재료를 사용했음에도 Mies Van der Rohe와 대별되는 점이다. Mies에게는 평면을 나누는 규준선이 존재하지 않았다.

배형민은 '감각의 단면-승효상의 건축'에서 '평면을 중심에 둔 구성의 기율은 18c에 태동하여 19c후반 그 절정에 달했다'고 설명한다. 배형민에 따르면 '20c에 들어와 다양하게 변형된 건축구성은 200년 동안 서양건축계를 지배해왔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단적인 예로 '평면은 발생기'라는 Le Corbusier의 선언이 말해주듯이 평면은 20c의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 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고전적인 요소들이 사라지고 주관적인 인식의 대상으로 평면을 접근하였지만 Le Corbusier는 틀림없는 평면의 대가였다. 반면 평면의 기율이 쇠락하는 과정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는 Mies Van der Rohe였다. Mies의 열린 공간 속에서 평면적 질서와 무관한 벽은 자유롭게 공간 속에 넣고 뺄 수 있는 독자적인 요소가 되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시기의 Mies 작품들은 평면의 구성이 전혀 무의미해졌으며, 벽의 건축의 종말을 고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2.26m 모듈러를 하나의 유닛(Unit)으로 사용한 Center Le Corbusier는 시공상에서도 철이라는 재료가 갖는 이점을 적극 활용해 벽체, 창문, 지붕, 바닥이 스틸 프레임에 나사로 조여서 고정되는 조립식 구조로 시공됐다. 심지어 지붕은 공장에서 각 부분을 만들어 현장에서 맞췄다. 하지만 가운데 경사로 실은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한 건물에 건식구조와 습식구조가 모두 사용된 것이다. 철이라는 직선 재료를 직각으로 조립하는 방식으로 시공했음에도 Le Corbusier는 조형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Center Le Corbusier에서 형태적으로 강조하고자 한 부분은 지붕이었다. Geoffrey H. Baker는 'Le Corbusier, An analysis of form'에서 '상징적인 의미로서의 지붕은 우주적 힘의 Le Corbusier적 해석으로서, 태양의 떠오름과 짐의 24시간의 주기를 상승과 하강의 모양을 갖는 지붕 선으로 채택함으로서 그 상징적인 의미를 더욱 부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붕의 동쪽 부분은 ㅅ자로 올라가 있고 서쪽 부분은 V자로 내려가 있다. 이런 형태로 인해 'Mush Roof'라 불리기도 한다. 구조적으로 지붕은 그 아래 전시공간과 분리돼 있다. 이는 전시공간의 자유로운 내부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으로 지붕을 지지하는 4개의 기둥은 전시공간 바깥으로 빠져 있다. Center Le Corbusier는 1930년대부터 Le Corbusier가 고민해온 강철 트러스로 만들어진 우산지붕(Umbrella Roof)아래 공간의 연속 개념을 현실화한 작품이다. Center Le Corbusier 이전 이와 같은 지붕의 개념을 적용시킨 프로젝트는 1950년에 했던 'Porte Maillot의 박람회장 계획안'이었다. 이 계획에서는 한 변이 14m인 두 개의 정사각형 우산 형태의 지붕을 설계했다. 또한, 도쿄의 The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1957) 프로젝트에서는 파라솔 역할을 하는 임시전시관의 지붕에 이 개념을 적용시켰다(아래 Sketch에서 오른쪽).

Le Corbusier 작품을 시기별로 보면 작품 특성이 바뀌는 변곡점이 있다. Maison-Atelier Ozenfant(1922)의 경우 La Chaux-de-Fond에 설계했던 몇몇 개인주택과는 다른 1920년대 Le Corbusier의 화이트 큐비즘(White Cubism) 건축의 시작점이었다. 그러다 세계2차대전이 끝난 뒤인 1950년에 설계를 시작한 롱샹(Ronchamp)성당은 콘크리트의 가소성을 이용한 조형적인 건축의 시작을 알렸다. 어쩌면 Center Le Corbusier는 롱샹성당 설계 시작 10년 뒤인 1960년대 Le Corbusier의 새로운 건축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새로운 건축은 당시까지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던 철 부재를 통해 모듈러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었을 듯 하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저서. <닮은 도시 다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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