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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마카오 반환 17주년(1999.12.20.)
아시아에서 가장 유럽적인 도시, 마카오(Macau)
도시설계가 Archur
2016.12.19

 

마카오의 기반산업 중 관광산업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관광산업에서도 세분해 보면 카지노를 포함한 도박산업이 가장 크다. 하지만 '마카오로 오세요!'라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관광 홍보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미지는 Grand Lisboa Hotel&CasinoVenetian Macau Resort보다는 Leal Senado Square나 건물 전면만 남은 Ruins of St.Paul(위 사진)이다. 어떤 이미지가 먼저가 됐든 중요한건 카지노와 유럽인들 -구체적으로는 포르투갈인들- 이 남긴 역사유산(Historic Heritage)은 마카오 관광산업을 이끄는 두 개의 큰 축이다. 그래서 마카오를 '동양의 Las Vegas', '아시아의 작은 유럽'이라 일컫는지도 모른다. 이 두 별칭을 보고 있으면 전체면적 29.5, 인구 647,700(2016년 추산)의 이 도시 안에 아메리카, 아시아, 유럽 대륙이 모두 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시아내 민족이 살던 아시아 대륙내 마카오에 유럽의 특성이 들어오기 시작한 시기는 16C. 구체적으로 1550년대 포르투갈 상인들이 마카오에 처음 정착했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1513년에 Jorge Alvares라는 탐험가가 포르투갈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 대륙에 상륙했는데, 그곳이 마카오였다. 포르투갈 상인들은 마카오가 지닌 무역항구로서의 이점을 봤다. 결국 1557년 명나라가 포르투갈인들에게 매해 일정금액을 받는 조건으로 마카오를 무역항구로서 임대를 했다. 무역항구로서 마카오의 입지가 뛰어나긴 했던 것 같다. 17C에는 마카오를 두고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간에 전쟁이 벌이지기도 했다.

마카오에서 포르투갈의 영향력은 19C에 들어서도 계속됐다. 비록 19C에 접어들면서는 인접한 홍콩에 밀려 무역항구로서의 지위를 상실해 갔지만 이번에는 바다로 열렸다는 입지 상의 이점이 아닌 생활 속에서 도박을 즐기는 중국대륙내에 있다는 이점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1847년 포르투갈 정부는 수익창출을 위해 도박을 합법화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188712월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됐다. Jorge Alvares가 마카오에 도착한 뒤 374년 후에 일이다. 다시 1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19991220일 마카오의 통치권이 포르투갈에서 중국으로 이양됐다. 1997630일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지 26개월 지난 시기로 마카오는 중국이 되찾은 마지막 영토다. 올해(2016)는 마카오 반환 17주년이다.

마카오는 홍콩과 함께 중국의 특별행정자치구로 지정돼 있다. 그래서 역시 홍콩과 마찬가지로 '1국가 2체제' 정책이 적용되고 있다. 이 정책으로 인해 현재 마카오는 영토방위, 외교를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있으며 독립적인 법령체계, 경찰권, 경제체계, 관세, 이민 정책을 가지고 있다. 포르투갈의 486년간(1513~1999)의 영향으로 인해 마카오 역사지구 내에는 20여개가 넘는 역사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참고로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은 518년간 존속했다(1392~1910). 2005년 유네스코는 마카오 역사지구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켰다.

마카오 역사지구내에서 가장 유명한, 그래서 마카오 관광홍보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주인공은 Ruins of St.Paul이다(위 사진). 사실 Ruins of St.Paul은 이름 그대로 온전한 건축물이 아닌 '파괴된 건물의 잔해'. 구체적으로 St.Paul's CollegeCathedral of St.Paul을 포함한 복합시설의 잔해다. 한 국가의 시스템에는 '종교'도 포함된다. 더군다나 16C 유럽에서는 여전히 종교가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1576년에 당시 교황이었던 Gregory XIII(1502~1585)가 마카오에 관구를 설립했다. Gregory XIII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양력을 만든 교황이다. 1540년 파리에서 창설한 예수회는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고 다시 대서양을 건너 남아메리카로 선교영역을 넓혔다. 포르투갈 상인들이 정착한 마카오도 예수회의 활동영역이었다. 1582~1602년에 예수회는 St.Paul College를 건립했다. 당시 아시아에 가톨릭 성당이 몇 개나 있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이 College에 있던 Cathedral of St.Paul은 아시아에서 가장 컸다고 한다. St.Paul College1594년에 University로 승격됨으로서 동남아시아에 설립된 최초의 서구화된 대학이라는 감투를 쓰게 됐다.

마카오의 관구는 우리나라 천주교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1653년 로마 교황청은 프랑스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파리외방전교회를 창설했다.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가 조선 포교의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 M.Callery 신부로부터 신학을 비롯한 여러 서양학문과 언어를 배웠다. 그래서 의외로 많은 우리나라의 천주교 신자들이 마카오로 순례여행을 떠난다. '마카오''순례'는 조금 안 어울리기는 하다.

Cathedral of St.Paul1602년에 화재로 불탄 목재 성당을 대신해 세워졌다. 화재로 사라진 성당을 재건할때 늘 그렇듯 석재를 사용했다. 하지만 새로운 교회의 신랑(Nave) 양쪽 기둥은 여전히 나무였다. 성당이 지금처럼 파사드만 남게 된 이유는 1835년 태풍때 발생한 화재 때문이다. 마치 간판처럼 세워져 있는 파사드는 Cathedral of St.Paul의 건축적인 면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다.

남아 있는 성당 정면은 전체적으로 바로크 양식이다. 각 층에는 좌우5개씩 총 10개의 필라스터(Pilaster)가 있다. 좌우 5개의 필라스터 간격은 일정하지 않다. 필라스터 사이에는 1층의 경우 부조(浮彫)가 있고 2층의 경우에는 벽감(Niche)을 만든 뒤 조각상을 올려놨다. 한 쌍의 필라스터가 하나의 모듈이라고 한다면 한 층에는 4개의 모듈이 있고 그 사이에 1층의 경우에는 직사각형 문이, 2층의 경우에는 세로로 긴 아치창이 뚫려 있는 셈이다.

이보다 더 특이한건 필라스터다. 일단 필라스터의 주두양식이 각층마다 다르다(1-이오닉, 2-코린트, 3층과 4-이오닉과 코린트 주두양식 적층). 일반적으로 층마다 주두양식을 다르게 처리할때는 1층에 도릭, 2층에 이오닉, 3층에 코린트 양식을 사용한다. 대표적인 예로 로마시대 세워진 콜로세움을 들 수 있고 로마시대 건축양식을 바탕으로 발생한 고전주의에서도 이 규칙은 유지됐다. 이러한 규칙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주두의 양식에 따라 기둥의 높이가 달라지는데 '도릭 양식의 주두가 올려진 기둥 높이 < 이오닉 양식의 주두가 올려진 기둥 높이 < 코린트 양식의 주두가 올려진 기둥 높이' 순서다. 이렇게 되면 1층 기둥보다는 2층 기둥이, 그리고 2층 기둥보다는 3층 기둥의 높이가 더 높다. 이유는 지상에 서 있는 관찰자가 건물을 올려다 볼때 상층부일수록 시야의 각도가 좁아져 짧아 보이는 착시현상을 보정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마카오의 Ruins of St.Paul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3~4층에 삽입된 필라스터의 주두 양식이 이오닉과 코린트가 적층돼 있음에도 높이는 1~2층보다 더 짧다. 심지어 4층의 필라스터에서는 기둥의 기단부도 생략돼 있다.

Ruins of St.Paul의 남겨진 파사드 각 층에 새겨진 필라스터의 주두양식과 높이가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다. 다만 수평으로 분할된 성당 파사드에 기둥 높이를 상층부로 갈수록 짧게 처리하는 건 그렇게 특이한 경우는 아니라는 점이다. 가깝게는 Ruins of St.Paul에서 남쪽으로 300m 가량 떨어진 St. Dominic's Church(1587, 바로크 필리피노 양식)의 파사드 필라스터도 상층부로 갈수록 조금씩 짧아진다. 문제는 Ruins of St.Paul의 파사드는 St. Dominic's Church나 그밖에 다른 성당과는 달리 파사드를 바라보는 시점이 한참 아래에 있다는 점이다. Ruins of St.Paul 앞에는 66개의 계단이 있다. Senado Square에서 Rua de S.Paulo를 따라 오르막을 올라온 관광객들은 이 계단 아래에서 Ruins of St.Paul의 파사드와 마주한다. 파사드보다 더 아래 레벨에서 바라본 파사드는 상당히 왜곡돼 보이는데, 이 상태에서 상층부로 갈수록 짧아지는 기둥은 이런 왜곡을 더 심하게 만든다(아래사진).

필라스터에서 한가지 더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각 층의 기둥 주두와 돌림띠(Entablature) 사이에 삽입된 짧은 기둥이다. 이 짧은 기둥은 각 층 필라스터의 원기둥과 달리 각기둥으로 처리돼 있다. 아마도 돌림띠가 주두 부분에서 꺾일때 어떤 형태를 취하는냐에 따라 기둥의 단면이 결정된 것 같다. Ruins of St.Paul의 파사드는 1620~1627년 마카오로 망명한 일본 천주교인들과 지역 장인들이 이탈리아 예수회 Carlo Spinola의 지시 아래 조각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파사드 1층에 난 3개의 입구 중 가운데 입구로 들어서면(?) 이면(Rear Side)을 지지하는 구조체와 그 구조체로 오를 수 있는 계단이 있다(아래사진). 사실 현재 파사드는 마치 입간판처럼 스크린으로 남겨져 있다. 그래서 파사드에 난 입구로 들어선다고 해서 건물 내로 들어선 건 아니다. 폐허만 남은 유적 관람이 늘 그렇듯 Ruins of St.Paul에서도 관찰자의 엄청난 상상력이 필요하다.

현재 Ruins of St.Paul에서 Cathedral of St.Paul이 있던 자리에는 전벽돌이 장방형 영역을 형성하며 그리드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양쪽으로는 건물의 기초를 볼 수 있는 10개의 유리가 양쪽으로 5개씩 놓여 있다. 유리사이의 간격은 7m 가량으로 신랑(Aisle)을 지지하는 기둥이 있었던 자리는 아닌 것 같다. 건물자리 동쪽으로는 더 많은 유리면이 건물 지하의 상태를 보여준다(위 사진). Ruins of St.Paul 북쪽에는 지하에 있는 박물관과 성당의 기초인 듯 한 돌무더기에 모던하고 심플하게 설계된 재단 및 십자가를 갖춘 예배실(?)이 있다. Ruins of St.Paul 지하에 있는 예배실에서는 뭔가 처절한 느낌이 느껴진다. 지하에 있는 박물관은 마카오정부가 1990~1995년 발굴사업 이후 조성했다.

마카오에서 Ruins of St.Paul 만큼이나 유명한 곳은 Senado Square(위 사진). 개인적으로 마카오 방문 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첫 번째 공간이었다. 이유는 광장 바닥에 그려진 물결치는 패턴 때문이었다. Senado Square는 남서쪽 Avenida de Almeida Ribeiro를 아랫변(대략 50m)으로 북동쪽으로 긴 이등변삼각형 평면을 띄고 있다(아래 Google 위성사진). 하지만 Senado Square가 있는 곳이 마카오에서도 구도심 한가운데이기에 평면의 형태는 이형적이다. 삼각형의 높이에 해당되는 남서-북동 방향의 축은 Fortaleza do Monte를 향하지만 이를 의도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광장은 명확한 방향성 보다는 구도심 속으로 연결되는 Rua de S.Domingos의 열린 입구다.

그래서 Senado Square의 파도치는 바닥 패턴은 Rua de S.Domingos를 따라 사람들이 구도심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기 위한 힘의 표현처럼 느껴진다. 마치 마법사가 주술을 부리면 그 주변에 생기는 령()이나 아우라가 생기듯이 꿈틀꿈틀대는 바닥의 선은 Rua de S.Domingos로 좁아지는 형태와 함께 령이 시작되는 곳으로 사람들을 찾아가게 만든다. 더군다나 웨이브 패턴은 Senado Square의 영역을 벗어나 구도심내 보도 바닥패턴으로까지 이어지고 태양이나 마카오를 상징하는 Ruins of St.Paul의 형태를 그리기도 하면서 마카오 구도심만의 특징을 만들어낸다. 잘게 쪼갠 돌을 사용해 광장과 보도의 바닥에 문양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본토 뿐만 아니라 식민지였던 브라질 그리고 마카오에 이 방식이 적용됐다.

과거 마카오의 지역경제를 살리고 현재 그것을 이끌고 나가는 요인은 카지노를 중심으로 한 도박산업이다. 1962년 마카오 정부는 STDM(Sociedade de Turismo e Diversoes de Macau)에게 도박산업에 대한 독점권을 주었다. 그에 따라 Casino&Resort 시설을 짓기 위한 땅을 매립했고 구도심의 밀도가 어느 정도 빠져나가게 됐다. 이 시기에 마카오정부는 도박산업에만 머물지 않고 전체 관광산업으로 확장시키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마카오정부가 주목한 도시의 어트랙션(Attraction)500년이라는 시간을 드러내고 있는 역사유산들이었다. 만약 마카오정부가 이러한 요소들에 관심을 갖지 않고 카지노를 중심으로 하는 도박산업에만 집중했다면 현재 마카오는 '동양의 Las Vegas'라는 별칭을 얻었을지는 몰라도 '아시아의 작은 유럽'이라는 별칭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카지노를 중심으로 한 도박산업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트리거(Trigger)는 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Casino&Resort는 한 국가 단위가 아닌 전세계에 있는 시설이 전부 경쟁구도라고 봐야 한다. Casino&Resort에서 경쟁의 우위를 점하는 요소는 유니크(Unique) 보다는 규모와 이용객에게 주는 자극이다. 그래서 Las Vegas와 마카오에 베네치아를 테마로 한 Casino&Resort 시설은 규모를 제외하면 딱히 유니크한 부분을 찾을 수 없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찾을 필요가 없다. 자극은 '한계효용 체감법칙'에 의해 점점 더 강해져야만 한다. Casino&Resort 시설에서 규모도 마치 마천루 경쟁에서 끝없이 높아지듯 한없이 커진다. Las Vegas는 이미 세계 최대의 도박도시라는 명성을 마카오에게 넘겨줬다. 하지만 Las Vegas는 카지노를 중심에 둔 도박산업에서 마이스(MICE)산업으로 성공적인 전환을 이루었다. 마카오가 도시내 역사유산을 관광자원화 시킨건 관광산업의 주요 축을 전환하지는 못하더라도 관광자원의 다변화를 위한 시도로는 나름 의미가 있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도시적 차원의 문제다. 사실 Casino&Resort 시설은 시설을 방문한 사람들의 외부 유출을 반기지 않는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다양하고 교묘한 장치를 통해 시설 안에서 시간의 개념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Venetian Macau Resort의 쇼핑몰 천장에 그려진 가짜 하늘은 마치 영화 'The Truman Show(1998)'에서 Jim Carrey가 보는 하늘 같다. 저녁이 되어도 그 하늘은 낮이다. 방문객이 그 하늘에만 만족하고 시설 밖으로 나갈 생각을 읽어버리게 하는 것이 그려진 하늘의 목적이다. 그래서 Casino&Resort 시설이 밀집해 있는 지역에서 관광객들을 모을 만한 매력적인 외부공간은 필요 없다. 대규모 Casino&Resort 시설들이 들어설 택지를 조성하면서 그 시설들이 내부로 끌어들여야할 관광객들을 외부공간으로 불러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아직 다 조성된 것은 아니지만 대규모 Casino&Resort 시설들이 밀집된 Cotai의 외부공간은 걷는 것조차 뻘쭘한 느낌을 준다. 도시를 활기있게 해주어야 할 관광객들이 대규모 Casino&Resort 시설 내부로 들어가 버리면 Casino&Resort 시설들이 밀집된 지역 외의 영역은 황량해 진다. 마카오에서도 이런 시기가 있었다. 이 때 구시가지 및 Senado Square가 탈바꿈 됐다. 적절한 행동을 취했기 때문이다. 시기를 놓치거나 행동이 적절하지 못했다면 마카오의 구도심은 슬럼화 됐을 수도 있다. 현재 마카오 역사지구는 역사유산을 중심으로 관광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완벽하게 변모했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저서. <닮은 도시 다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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