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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공포, 그리고 통제
이준호 건축가의 공간(空間) 이야기 ⑦
건축가 이준호
2016.12.23

공간은 공기(Air)

 

많은 건축가들이 집이라는 공간을 이야기할 때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다라고 말한다. 집이라는 공간엔 그 속에서 사는 사람의 삶이 그대로 담겨지기에 새로이 건축할 때는 그 집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삶을 공부해야한다. 공간을 만드는 건축이라는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야기일 것이다.

 

, 어떤 이들은 이런 생각이 자칫 건축 혹은 공간 만능 오류에 빠지기 쉽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건축이 중요하긴 하지만, 건축이 삶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인간이라는 존재는 수동적이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둘 다 맞는 얘기다. 아파트에서만 살던 사람이 단독주택이라는 입체적 공간에서 살면서 생각과 시야가 넓어지거나 달라지기도 하지만, 삶의 방식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삶이 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지가 강력하게 들어가야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공간에 살면서 생기는 생각과 시야의 변화는 본인의 의지가 없어도 가능하다. 오늘은 이 작은(?) 변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공포의 공간

 

공간에서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공포영화는 공포를 주는 대상이 존재하는데, 그것과 맞닥뜨리기 직전까지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떠올려보자. 주인공은 대체로 어떤 공간과 상황에 있는가?

 

주인공 혹은 주인공 무리는 어둠 속에 고립돼있다. 자신()을 위협하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곳을 떠나야하는데, 가야할 곳은 칠흑 같은 어둠이다. 마치 무언가 있을 것만 같은. 결국은 그 어둠을 향해 나가지 못하고 지나온 길이나 옆 건물 속 공간을 찾아 숨는다. 그리고 그 공간이 악몽 같은 공포를 준다.

 

이런 식이 공포영화의 전개라면, 인간은 고립과 어둠에서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고(고립),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어둠)이 공포인 셈이다. 인간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고 싶다면, 이런 공식에 따른 공간을 구현하면 된다.

 

남영동 대공분실

 

그 대표적 공간이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대공분실은 경찰에 속한 대공 수사기관이었다. 1976년에 건축가 김수근이 건축했다. 이곳은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대상으로 고문 등, 불법 수사가 진행된 곳이다. 고 김근태 전 민주당 고문이 겪은 일을 영화로 만든 남영동 대공분실 1985, 2012’에도 그 실상이 잘 나와 있다.

 

일반적 사무를 위한 건물이지만, 5층은 유독 특이하게 만들었다. 밖에서 보기에도 다른 층과 확연히 구분되는 좁고 긴 창으로 돼있고, 그 마저도 열리지 않는다. 대공분실에 끌려온 사람들이 취조를 위해 포박을 당하거나 힘에 눌려 5층으로 올라가면, 길고 어두운 복도의 양쪽에 어긋나게 배열된 철문이 있는 독방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한다. 혹여 도중에 문이 열리더라도 바로 앞방의 문과 어긋나 있기 때문에 고문을 당하는 소리와 비명소리만 복도에 공명으로 울릴 뿐, 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서로 고문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내자는 눈빛의 교환까지도 막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고문실까지 가는 좁고 어두운 복도는 마치 저승사자에 이끌려 삼도천을 건너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공포에 질려 들어선 고문실은 지금의 원룸 정도의 크기였다. 철망이 채워진 전구와 형광등, 바닥에 단단히 고정된 철제가구들, 타일로 만들어진 욕조와 콘센트의 위치, 밖에서 보기에도 유독 특이하게 작았던 좁고 긴 직사각형의 창 등의 구성은 복도를 걸으며 느끼던 미지의 공포를 실체가 있는 공포로 바꿔놓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건축가에 의해 인간의 심리까지 고려된 세심하고 치밀한 공포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권력은 권위를 타고

 

독재라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수인 독재집단이 절대다수인 시민들에게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한다. 그리고 그런 지배력은 실제 권력을 가진 시민 개인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없다고 혹은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이미 독재집단에 권력을 위임했다고 여기는 순간 실체가 된다.

 

그렇게 실체가 된 지배력은 권력을 개인에게 다시 빼앗기지 않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 시도에는 교육과 미디어를 통한 세뇌도 포함되지만, 공간을 통한 사람들 행동을 제약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래서 독재 권력의 옆에는 건축가가 밀착돼있다. 히틀러의 옆에는 알베르트 슈페어라는 건축가가 있었고, 나폴레옹 3세는 오스만을 통해 파리 개조 사업을 실현했다. 이런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이상을 구현하는 것과 동시에 권력자의 위세를 나타내기 위해 구현했던 거대 건축이나 위압감만을 주기 위해 지은 건축물들은 그래서 권력기관에 집중돼있다.

 

하지만, 이런 건축물들은 그곳을 방문하는 경우에만 그 위력을 발휘한다. 국회의사당과 법원 등의 출입 동선과 실내로 들어가서 처음 맞이하는 로비의 처리는 그곳에 있을 때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들이 의도한 권위는 그럴 것이다정도의 막연함을 넘기 어렵다.

 

공간 통제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공간에서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혹은 시민 권력을 점유하기 위해 행했던 공간 통제의 수단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직접적인 공간 통제는 1945년 미군정이 시작해 1982년 폐지될 때까지 실시한 야간통행금지였다. 통금시간이 몇 번 변했지만, 대부분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였던 야간통행금지는 얼핏 보기에 시간의 통제로 비쳐질 수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공간 통제다. 그것도 보통사람들의 일상의 공간인 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가장 공적인 공간인 길을 하루의 6분의 1씩이나 아무도 다닐 수 없게 만든 것은 일반시민을 공적 공간을 영유하는 주체가 아니라 규율과 통제 아래에 놓인 수동적 존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삶의 질이 높아지면서 생겨나는 크고 작은 광장과 공원들의 소유와 사용할 권리가 아직도 시민들에게 온전히 넘어오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면, 간접적인 통제로 보이는 이라는 공간의 통제는 굉장히 효율적인 수단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위의 예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때의 상황이고, 지금은 그 시절보다는 훨씬 민주적으로 바뀌었고, 시민들의 의식수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기에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식의 통제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정말 좋겠지만, 공간을 통한 지배력 또는 통제의 강화에 우리는 여전히 무감각하다.

 

지금 이 순간, 공포의 공간은 바로 우측통행

 

전 세계의 3분의 2가 우측통행을 하므로 우리도 보편적인 질서를 받아들이자는 취지로 2009년부터 우측통행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긍정적 이유를 들며 우측통행의 당위를 이야기했지만, 이전까지 질서인 좌측통행이 큰 혼란을 주지는 않았다. 정부에서 우측통행을 하자는 당위성을 설명하자, 갑작스레 엄청난 캠페인과 각종 공익광고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사람들의 습관이 잘 바뀌지 않자, 급기야는 지하철 계단에 사람들의 우측통행을 강요하는 안내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부분 노인이었고(노인일자리 사업 같은 것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한다), 반강제적으로 우측통행을 지도(?)했다. 조금 지나니 지하철 환승통로에는 신호등 같은 것들이 생겨 우측방향 O, 좌측방향 X’ 표시를 보여줬다. 계단 폭이 조금 넓은 곳에는 가운데 혹은 한쪽으로 치우진 곳에 아예 난간을 설치해 한 번 진입한 방향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지금은 안내원들이 사라졌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스스로 우측통행을 지키고 있다. 왼쪽 길이 텅 비어 있고, 오른쪽 길이 아무리 북적거려도 왼쪽 길을 이용하는 사람은 반항심 넘치는 사람뿐이다. 사람들이 대부분 오른쪽으로 가니, 왼쪽으로 가는 것이 오히려 더 수월하다.

 

노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덤으로 받고 있지만, 간혹 호통을 치는 사람도 있으니,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온전히 향유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당연시하고 살아가는 것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과 다를 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전보다 훨씬 성숙한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고, 그만큼 성숙한 민주적 시민의식을 가진 시절이라고 하는 지금, 가장 공포스러운 공간은 바로 우측통행이 아닐까, 한다.

 

 

[출 처]

시사인천 _ 공간과 공포, 그리고 통제

건축가 이준호

우리가 일상적으로 부딫히는 공간에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일상의 공간이 풍부해지고, 따뜻해져야 비로소 도시가 풍부하게 변합니다.
건축그룹[tam]은 따뜻하고 풍요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한 끊임없는 탐구와 치열함을 즐기는 젊은 건축가 집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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