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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을 대신해 얻은 휴무일 덕분에 3일부터 연휴를 갖게 되었다. 모처럼 얻은 연휴인 만큼 그동안 다니지 못했던 답사를 해보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떠나는 일정은 잡지 못하였다. 지방으로의 답사 대신 서울 근교를 중심으로 답사지를 정하기로 하고 그동안 나름 정리해 두었던 답사 예정지들 중 선택하려던 중 주로 답사를 같이 다니던 지인을 통해 더욱 흥미로운 답사지를 알게 되어 바로 그곳으로 변경, 선정하였다.
그곳은 '시안추모공원'으로 승효상 선생님이 계신 이로재 건축사사무소에서 최근에 마무리한 작품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로그램(용도)는 납골당이다. 기존의 답사를 염두 했던 다른 곳을 제치고 이곳을 선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납골당이라는 프로그램 때문이다.
흔히 학생공모전이나 졸업전시 등에서 납골당을 용도로 삼아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처럼 이 용도는 건축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소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용도가 실제로 건축적으로 해석돼 구현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국내와 해외를 비교할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아마도 아직 일반인들의 인식에는 납골당이라는 것이 현실적인 장례역할 이상의 인문학적인 의미가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용도로서의 선정 이유와 더불어 이로재, 승효상이라는 건축가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공원도 설계한 경력이 있을 만큼 이와 같은 공간에 대한 해석력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남다르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답사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였다.
시안추모공원 '천의 바람'
시안추모공원은 경기도 광주에 자리하고 있다. 공원 전체는 산 하나를 차지할 만큼 규모가 큰데, 이로재에서 계획한 부분은 그 중 '천의 바람'이라는 명칭의 3개의 묘역과 가족봉안묘 두 곳이다. 듣기로는 향후 더 진행될 부분과 건축물이 있다고 하는데, 현재는 이 두 곳만 완성돼 있는 상태이다.
위 사진 속 표지판을 보면 대강의 구성을 알 수 있는데,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경사진 대지를 계단식으로 정리하고 이로재 특유의 사선의 경사로로 서로를 연결한 구성이다. 경사지를 적극 이용하여 구성한 지형 건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나, 경사를 살리기보다는 각각의 높이 차이를 이용하여 잘 재단한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입구부터 계단이 시작되는데, 제주 추사관 에서도 보았던 '경사로가 포함된 계단'이 이곳에도 자리하고 있다. 계단 너머로 보이는 붉은색의 내후성 강판 벽이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이로재가 설계한 공간임을 보여주고 있다.
(내후성 강판은 이로재의 상징적인 재료이기에...)
처음으로 마주하는 공간은 '물의 정원'이라 이름 지어진 공간으로 본격적인 공간에 들어서기 전의 전이공간으로써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위 사진은 물의 정원을 정면에서 바라본 장면으로 자작나무와 내후성 강판의 높은 벽이 서로 공존하면서 정적인 느낌을 준다.
브리지를 통해 물을 건너는 형식인데, 방문한 날에는 점검과 관리상의 이유인지 물이 비워져 있어 완전한 공간을 느낄 수는 없었으나, 둘러싸고 있는 높은 벽만으로도 이 공간이 지닌 성격을 느낄 수 있었다.
물의 정원을 나오면 본격적인 묘역이 펼쳐진다. 기본적으로 단순한 패턴이 반복되는 공간이기에 사진을 나열하고자 하는데 그전에 개괄적인 설명을 하자면, 높아지는 경사를 따라 횡적으로 단들이 놓여 이어져 있다. 또 그 단 위에는 노출 콘크리트로 된 매스들이 함께 놓이며 봉안함의 역할을 하고, 그 매스들 사이를 단차를 이어주는 경사로와 조경들이 채우고 있다. 그리고 공간의 측부에는 내후성 강판으로 된 담과 함께 직통계단이 자리하고 있어 외부와 공간을 구분 짓고 있다.
글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아래 이어지는 사진을 보고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기본적인 봉안함의 구성은 위 사진과 같다. 단면을 보았을 때, 흡사 파도와 같은 형태를 지닌 콘크리트 구조체 안에 격자형으로 짜낸 함을 매립하였다.
파도 형태가 아닌 박스형의 봉안함도 있어, 매스가 변하기도 하고 배치를 달리하며 공간의 변화를 주기도 한다.
봉안함의 배치들 사이에는 콘크리트 타워가 있기도 한데, 이곳은 특별히 용도가 주어진 공간은 아니지만, 추모 혹은 기도를 위한 실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의 노출 콘크리트는 흔히 볼 수 있는 매끈한 면의 노출 콘크리트가 아닌 미송쪽 널 노출 콘크리트라 하여 소나무 결이 노출되는 형식이다. 이와 같은 경우 앞서 이야기한 매끈한 면의 콘크리트와 달리 거친 면을 갖게 되면서 굉장히 브루탈한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 느낌이 이 공간과 묘하게 어울렸다.
아마도 건축물보다는 조형물에 가깝다는 점과 지형에 어우러져 자연물처럼 보이는 점에서 그 어울림이 느껴지지 않나 생각해본다.
공간 곳곳에는 나무를 식재한 휴식공간이 있고, 지붕 부위와 바닥의 대부분은 잔디로 패턴을 입혀 자칫 회색 일변의 죽은 공간이 될 뻔한 것을 생동감 있는 공간이 되게끔 하였다.
내후성 강판의 담이 이어지는 직통계단 부분에도 곳곳에 수공간을 조성해 단조로움을 피했다. 이곳 역시 물이 채워져 있지는 않았으나, 실제로 물이 차있을 것을 상상하면 꽤나 큰 효과를 가졌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직통계단 끝에는 내후성 강판으로 된 계단탑이 자리하고 있는데, 흡사 유메부타이 의 그것과도 닮은 이것은 영역 끝자락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역할을 한다.
내후성 강판이라는 재료와 우뚝 솟은 매스 감 덕에 그야말로 시선 강탈.
계단을 오르면 최상부에서 모역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계속 이야기해 왔던 공간의 구성이 한눈에 보이는 장면.
우리가 흔히 생각했던 공동묘지, 납골당의 이미지가 전혀 아니다.
천의 바람 묘역을 나와 한참을 오르다 보면 시안추모공원 전체에서 제일 높은 묘역에 가족봉안묘가 있다. 이곳 역시 이로재에서 계획한 부분인데, 천의 바람에 앞서 시범적으로 진행한 부분이라고 한다. 바닥의 큰 돌판 아래 가족들의 봉안함이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위 지면은 잔디와 보도로 마무리해 가족들만을 위한 묘역으로 구성한 것이다.
특유의 내후성 강판 담을 통해 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은 아니기에 디테일한 부분을 체크할 것이 많지는 않았으나, 몇몇 재료와 관련된 디테일을 확인해보았다.
내후성 강판이라는 재료를 사용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재료 특성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녹물에 대한 대처이다. 이곳의 내후성 강판 담을 확인했을 때 역시 하부에는 모두 물길(오픈 트렌치)을 두어 그에 대비하고 있었다.
수공간 테두리의 돌을 45도로 처리하면 그 부분을 물이 오버플로 하면서 테두리의 존재가 보이지 않게 된다. 즉, 마치 물만 떠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내후성 강판의 경우도 일반 금속판과 다를 바 없기에 서로 연결하거나 붙이기 위해서는 나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곳에서는 각 조인트 부분의 나사를 시공 후 제거한 듯하다. 매끈한 면으로 보이기 위해 수고로움을 감수한...
넓은 폭을 지닌 콘크리트의 벽의 경우 상부에 물길(오픈 트렌치)을 만들곤 하는데, 주로 일본 건축에서 볼 수 있는 디테일이다. 벽 중심에 물길을 만들어 외벽면으로 물이 흘러 오염되는 것을 막는 방법이다. 사실 일본 건축 특유의 장인정신과 같은 시공이 되지 않으면 깔끔하기가 힘든 디테일이기도 하다.
위 사진은 시안추모공원 내 다른 묘역의 모습이다. 천의 바람이 완성되기 바로 직전까지도 이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공원묘지, 납골당의 모습은 이러하다.
이번 답사는 개인적으로 건축이 지닌 가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듣기에 본 프로젝트가 실제로 구현되는 데에는 사업성 검토, 투자비용에 대한 책정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일반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것에 비해 건축을 가미하여 만드는 것에는 분명한 비용적 차이가 발생하기에 건축주로 하여금 고민이 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혀 건축의 개입 없이 필요와 요구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위와 같은 일반적인 모습과 같은 것을 만드는 데에도 건축적인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여 만든 곳의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다. 그만큼 건축이 지니는 가치가 충분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 이와 같은 생각이 일반에도 적용되는지는 의문이다. 분명 그것의 가치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이가 있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을 하는 이라면 질적으로 좋은 공간을 만듦으로써 그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하고,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좋은 건축을 보아 스스로의 사명에 대해서도 곱씹어 보는 기회가 되었다.
해당 건축이야기 관련 ‘건축가’
해당 건축이야기 관련 ‘자재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