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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_Magazine다시읽기] 조백수호통상조약(朝白修好通商條約)체결 116주년(1901.3.23.)
舊벨기에영사관(남서울 생활미술관) / 小屋(고다마)(1905)
도시설계가 Archur
2017.09.26

사당역 사거리에 갈 때마다 벨기에영사관 건물이 참 생뚱맞아 보였다. 1900년대 초반에 지어졌을 법한 건물이 있을 만한 자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건물이 외교 관계 기능(영사관)이라면 이곳에 있을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당시 건물은 마치 쇠락한 가문의 마지막 저택 같았다.

 

1901323, 조선은 벨기에와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벨기에와 통상조약을 체결한 이유는 당시 벨기에가 중립국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고종이 국제사회에서 대한제국의 정체성으로 생각한 모델이 바로 벨기에와 같은 중립국이었다.

 

조백수호통상조약 체결 직후 벨기에영사관은 현 캐나다대사관 자리에 있었고 이후 190210월 벨기에 총영사였던 레온 뱅카르Leon Vincart(위 사진)가 회현동278번지 일대 땅을 매입했다. 현재 우리은행 본점 자리다(아래사진).

 

19039월 착공된 영사관 건물은 1905년 준공됐다. 설계자는 고다마小屋, 시공자는 호쿠리쿠北陸 토목회사 그리고 공사 감독관은 니시지마西島였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뒤 을사늑약 체결에 따라 고종이 꿈꾸었던 대한제국의 중립국화는 물거품이 됐다. 당연히 대한제국 내에서 벨기에의 역할도 크게 줄었다. 1919년 벨기에영사관은 충무로118로 이전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 직후까지 건물은 요코하마 생명보험회사 지점과 사택, 기생조합 중 하나였던 본권번, 일본 해군성 무관부관저, 해군군악대 소속 건물, 공군본부 청사로 쓰였다. 한국전쟁 동안 큰 피해를 입지도 않았다.

 

1970년에 상업은행(우리은행)이 이 건물을 불하받아 소유권을 취득했다. 원래 자리에서 현재 자리로 옮긴 시기는 1980년대로 건물이 있던 대지가 도심재개발구역 -현재는 '도시환경정비사업구역'으로 부른다- 에 편입된 이후다. 19771122일 사적 제254호로 지정된 건물은 198111월부터 19828월까지 관악구로 이전·복원됐다(위 위성사진은 이전 복원 당시 사당역 일대).

 

이전된 자리에서도 벨기에영사관은 문화재였기 때문에 앙각 등을 통해 주변 건물의 형태와 스카이라인에 영향을 미쳤다. 이전복원 후 본 건물의 활용방안은 깊게 고려되지 않아 우리은행 사료관 정도로 쓰였다.

 

벨기에영사관이 1980년대 초반 서울 도심을 빠져나와 당시에는 한적했던 부지로 이전되면서 얻은 영광(?)도 있다. 그것은 100% 원형은 아니라 하더라도 현재까지 남아 있는 준공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유이한 대사관 건물이라는 지위다.

 

19C 우리나라에 지어진 대부분의 외교 관계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벨기에영사관도 르네상스 양식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다른 외교건물과 달리 발코니가 건물 전면이 아닌 동쪽과 북서쪽에 작게 설치돼 있다. 아무래도 건물이 지어졌던 대지가 외교가였던 정동이 아닌 회현동이었다는 점과 건물 전면(북측) 컨텍스트를 반영했기 때문인 듯하다.

 

벨기에영사관을 남서울 생활미술관으로 사용하기 전 리노베이션 작업을 했다(한인건축 설계). 역사적 건축물을 문화 및 전시시설로 사용하는 건 뻔한 활용방안이지만 그 뻔한 과정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건 내부공간이 전시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하얗게 된다는 것이다. 벨기에영사관도 예외 없이 하얗게 됐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기 위해서는 건물 자체가 전시물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건물이 갖는 의미가 각별하고 그 안에 놓여져 있는 전시물들이 그 건물의 역사를 드러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벨기에영사관은 2017년 기준 112년이 됐지만 '벨기에영사관'으로 사용된 기간은 14년 밖에 안 됐다.

 

벨기에영사관을 볼 때마다 오히려 지금 자리에서 느끼는 생뚱맞음의 탈맥락이 이 건물이 주는 매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예술이 추구했던 '낯설게 하기' '고립'이라는 방식과 유사하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벨기에영사관은 원래 자리가 아닌 엉뚱한(?) 자리에 있으니 '고립'이라는 방식을 지금보다 더 강하게 만드는 건 어떨까?

 

건물 출입구 안쪽 방에 마련된 카페에서 밖을 바라보면 왠지 건물이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 장면이 영구적이지 않고 계속 바뀔 것 같다. 마치 창문이라는 틀 안의 장면이 영화처럼 바뀌던지 아니면 건물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던지 할 것 같은 묘한 분리감. 그런데 그 묘한 분리감이 이 공간의 매력이란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이런 분리감이 창이라는 틀을 통해 바깥을 보는 이 카페 공간이 아닌 발코니나 아니면 더 나아가 미술관 전면의 정원에서도 느껴질까라는 궁금해졌다. 잠시지만 정원에 서서 빠르게 사당고가교로 진입하는 차량을 볼 때 그런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벨기에영사관에 대한 전체 글은 A_Magazine 1호에 실려 있습니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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