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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개관12주년(2005.10.28)
국립중앙박물관 / 정림건축
도시설계가 Archur
2017.10.28

'國立中央博物館'

이름에서 오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그래서 였을까? 19951020일 국제현상설계로 당선된 정림건축의 설계안도 무겁기는 마찬가지다. 박승홍(당시 정림건축 사장)이 얘기한대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초기개념은 ', 성벽'이었다. 내가 무겁다고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이름이든 개념이든 무게감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쉽게 생기지 않았다.

 

솔직히 건축물의 설계와 공간이 내 흥미를 끌었다면 그 무거움에도 기꺼이 갔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 '성벽'을 모티브로 설계한 문화 및 전시시설은 흔하다. 과천국립현대미술관(김태수, 1982), 경기도 박물관(장세양&공간건축, 1995), 한국등잔박물관(김홍식&금성건축, 1997), 서대문자연사박물관(정림건축, 2003), 수원화성박물관(정림건축, 2009) 등등... 내가 보기에 국립중앙박물관은 그 중 하나였다. 그래서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민현준&mp_Art건축+시아플랜, 2013)처럼 오며가며 들르는 동네에 쓱 들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하철4호선 이촌역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하철역에서 10여분을 걸어, 그것도 거울못을 '~' 돌아 박물관까지 가고 싶은 마음은 안든다. 정말 그곳은 무거운 마음과 이미지를 헤치우고 작정하고 가야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흥미를 끄는, 박물관이라는 영어표현 처럼 나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Muse가 살고 있는 전시품-um이라도 있다면 한번쯤 작정은 했을 듯 하다. 그러나 으뜸홀을 통과해 쭉 뻗은 '역사의 길'을 볼 때 마다 '도대체 난 여기서 뭘 봐야하지?'라는 막막함, 마치 대한민국 역사를 통으로 정리한 25,000쪽짜리 역사책 첫 장을 펴야하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199311월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이 사용하고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용산가족공원 내에 새로운 건물을 짓겠다는 결정부터 올해 박물관 개관 12년이 되는 시점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싼 평가는 계속 엇갈리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이런 논쟁의 대상은 처음부터 시작된다. 국립중앙박물관도 그 태동부터 순탄치 않았던 시설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최초 시작은 19089월 창경궁 안에 설립된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館(위 사진)이다. 하지만 순종황제의 위무를 위한 최초 목적과 달리 1909111일에 일반에 공개됐다. 추진 세력도 일본인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에서는 쓰지 않는 '박물관博物館'이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왕가에서 사용했던 여러 물건들을 단순히 늘어놓는데 그쳤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박물관 학자들은 '박물관'이라는 용어 사용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1915년 조선총독부는 이왕가박물관을 흡수하여 '총독부박물관'을 개관했다. 해방후 정부는 총독부박물관을 접수하여 경복궁 내에 최초의 국립박물관을 조선총독부박물관 건물에 설치했다. 이 건물은 후에 '경복궁 전통공예관'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현재는 사라졌다. 한국전쟁 후 1953년에 국립박물관 남산민족박물관으로 이전했지만 이듬해 해당 건물을 연합참모본부청사로 사용하면서 덕수궁 석조전(J.R.Harding, 1910, 위 사진)으로 이전해 19556월에 개관했다.

 

19728월에는 경복궁 내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했는데, 이 건물 역시 말 많고 탈 많은 국립민속박물관(강봉진&국보건설단)이다. 19868, 이번에는 조선총독부청사로 이전해서 개관했다(위 사진). 이 건물도 논쟁의 한가운데 있었고 결국 19958월 철거됐다. 현재 건물로 오기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이 사용했던 건물은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이었다(199612월 개관 이전). 지나온 시간을 가만히 놓고 보면 국립중앙박물관은 그 자체 보다는 그 내용물을 담아내는 건물이 항상 논쟁의 대상이었다.

 

199412월 국제현상설계 공고와 함께 발표된 심사위원은 빌헬름 퀵커(독일), 이광노(서울대 명예교수), 정양모(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 유희준(한양대 교수), 가에 아울렌티(이탈리아), 랜단 보스벡(미국) 그리고 앙리 시리아니(프랑스)였다. 19951020일 국제현상설계 당선안으로 정림건축이 제출한 안(위 모델링 사진)을 선정하고 그해 12월에 기본설계 계약을 체결했다. 이 후 18개월 동안 실시설계까지 완료했다. 반면 공사기간은 만 96개월(1997.10.31~2005.10.28)이었다. 공사기간에 비해 설계기간이 짧았던 이유는? 김영삼 대통령의 재임기간이 1998년에 끝났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국제설계경기 결과와 관련해 두고두고 나오는 얘기는 2등안에 대한 아쉬움이다(위 이미지). 당시 2등은 크리스티앙 포잠박Christian de Portzambarc과 선진엔지니어링의 공동작이 선정됐는데, '구릉으로 조성된 공원 내에 검게 구워진 흙마감의 4개의 육중한 기단 위에 위엄있게 떠 있는 순백색의 볼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인간과 조상의 대지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거친 마감의 4변형 기단), 사상과 보편성의 발전을 통한 창조와 개발을 위한, 인간의 기원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노력(순백색으로 떠있는 볼륨의 현대적 표현) 등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Plus 1995.12). 말인지 시인지 잘 모르겠다.

 

당선작과 2등안에 대한 솔직한 평가는 전진삼이 했다. 그는 '1등안이 한국인이 정서를 스펙터클한 공간감으로 표현하며 지리하게 긴 약 450m자형 배치를 통해 돌의 쓰임을 유난히 좋아하는 한국관료사회의 권위적 단면을 부각시키고 있는가 하면... 1등안이 '내부의 명쾌한 기능처리가 강점'이었다는 심사위원들의 평을 받고는 있지만 '국가의 중요한 공공건물로 분명히 인식되도록 설계한 점'을 주목하였다고 하는 데서 어쩌면 1등안은 한국의 특수한 상황 아래서 2등안에서보다 정치적 디자인의 수완이 돋보였다는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고 평했다(-'신국립중앙박물관 국제설계경기 리뷰', SPACE 1995.12-).

 

그럼 이에 대해 설계자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박승홍은 '권위주의적 표현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전혀 생각하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한 적은 없다. 이 건물이 가진 스케일로 권위적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물론 기능적으로 내부 동선이 하나의 공간으로 읽혀야 하기 때문에 거대주의를 예견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디자인으로 해결하거나 상당 부분 지하에 묻어 비교적 작은 규모로 감출 수도 있다. 그러나 공공건물의 규모를 감춘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공공건물로 인식되는 특성은 일부러 감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조건과 환경으로부터, 그리고 개념으로부터 타당하게 도출된 접근이라면 굳이 그것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고 자신의 의견을 설명했다(-박승홍(정림건축 사장)인터뷰, '다시 한국성을 말하다', SPACE 2005.11(456)-).

 

당시 현상설계 제안자들이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은 이 땅이 앞으로 크게 변화될 땅이라는데 있었다(대지면적 295,551). 8군 이전을 전제로 부지 주변은 용산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이었다(2019~2027). 여기에 더해 해당 부지는 '북한산북악산창덕궁종묘세운상가남산용산공원국립현충원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남북녹지축 선상에 놓여 있었다. 현상 제안안들에서 보이는 남북을 관통하는 동선은 이 흐름을 반영한 결과였다. 문제는 그 흐름이 자신이 제안한 건물을 관통해 나갈 것이거나 아니면 관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실 용산공원 조성을 위한 기본적인 수순인 용산기지 이전 합의는 현상설계가 있고 나서 8년이 지난 2003515일에 있었다(용산공원 홈페이지). , 현상설계 당시에 용산공원이 조성될 것이라는 짐작만 있었을 뿐 어떻게 조성될 것인가를 떠나 국립중앙박물관 주변 부지가 용산공원과 남북녹지축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물론 입지상으로는 용산미군기지와 서빙고로가 접하는 구간내에서 박물관 부지가 중앙이고 워낙 우리나라가 편측보다는 중앙을 좋아하니 남북녹지축이 국립중앙박물관 부지를 관통할 것이라 예측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면을 감안하면 용산미군기지 남쪽의 동부이촌동 어디에 녹지축을 만들어 한강에 닿게 할것인가를 고려해야 했다. 쉽게 얘기하면 국립중앙박물관의 위치는 엄청 중요한 곳에 잡아 놓고 그 중요한 부지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당선작에서 남북녹지축은 박승홍이 '지엽적인 부분도 있지만 광역에서 고려한 부분이 크다'고 개념을 설명한 열린마당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아무리 광역에서 고려한 부분이 크다 하더라도 지엽적인 상황에서 '설계할 당시만 해도 그렇게 높은 아파트들이 아니었고, 재건축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어떻게 변할지 잘 감지되지 않았던 상태였다'는 설명은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 재건축하는 아파트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이 건축가가 할 소리인지. 어찌됐든 어떻게 변한다 하더라도 박승홍의 말처럼 국립중앙박물관 설계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가 설명하는 것처럼 '어느 면에서는 무시해야 할 것이 있지만 주변 환경이 너무 삭막한 것은 사실'이었고 '한국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 있을까'라고 하며, '아무리 경치 좋은 곳이라도 이미 개성 없는 아파트가 비집고 들어서 있는 곳이 한국이다'라고 쿨(Cool~~)내나게 넘길 수도 있었다(-박승홍(정림건축 사장)인터뷰, '다시 한국성을 말하다', SPACE 2005.11(456)-). 하지만 그럼에도 광역적으로 고려하여 열린마당을 만들고자 했다면 그곳에서 보이는 풍경 만큼은 선택적이어야 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남쪽을 내려다 봤을 때 보이는 풍경은 이촌코오롱아파트 106동 후면이다(위 사진). 평범해도 너무 평범한 모습이다. 이와 유사한 풍경은 우리집 거실에서도 보인다. '뭐 그런 풍경이 우리네 도시의 일상적인 풍경이지'라며 일상성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 96개월간 건물을 짓지는 않는다. 그 풍경은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이름과 건축물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비해 너무 익명적이다.

열린마당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풍경을 '절대 뒤돌아 보지마!'로 해석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남쪽 방향은 이촌역에서 거울못을 지나 박물관으로 들어오는 과정Sequence에서 보면 역방향이기 때문이다. 방향에서 보면 남산이 보인다. ,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무거움을 무릅쓰고 맘 먹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아파트의 일상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열린마당에서는 절대 뒤돌아봐서는 안 된다(무슨 소돔과 고모라 같군).

관람자에게 일상의 풍경이 허용되는 시점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25,000쪽짜리 역사책을 기어이 읽고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 보이는 아파트 후면의 풍경은 왠지 모르게 허탈하다. 그 유구한 역사를 지난 당신들의 일상이 아파트 후면이라는 평범함이라니. 뭐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럴 거라면 국립중앙박물관이 그렇게 무게 잡을 필요는 없었다.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은 현재를 사는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역사다. 그건 시험 점수 잘 받기 위해 달달 외우고, 시험 끝난 후 절대 펼쳐보지 않는 국사책과 같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들은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흔적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의 역사를 보여준다. 한 나라의 역사를 보여주기에 어느 나라가 됐든 국립중앙박물관은 어떤 국립박물관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현재 우리에게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현재 우리에게 '역사'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질문으로 치환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치환이 가능하다면 이 질문에 대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여전히 '직선사관直線史觀만을 강요하고 있구나'라는 아쉬움을 들게 한다.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는 더이상 무거움의 대상이 아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책 속에서 역사는 재해석되고 있다. 더이상 국사책도 그리고 역사책도 -비록 그 분량이 25,000쪽이라 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외어야 하는 글이 아니라 필요할 때 내게 도움이 될 부분을 발췌해서 읽을 수 있는 참고서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역사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건축을 생각지 못했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직선사관을 담아내는 볼륨Volume을 늘 그랬듯 만들어 냈을 뿐이다. 이촌역에서 내려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걸어오면서 시작된 국사수업 1강은 한 번도 중간 강의을 건너뛰거나 뒤로 가지 않고 종강까지 가야한다. 그렇게 박물관 피로Museum fatigue가 극에 달했을때 우리가 접하는 장면은 아파트 뒷면이다. 이 장면은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질문 자체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하게 한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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