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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1.14)
남영동 대공분실 / 김수근(1976)
도시설계가 Archur
2018.01.13

영화 <1987>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배경은 '치안본부 대공보안분실(이하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극중 인물들은 '남영동'이라 불렀다. 건물 외부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검은색 벽돌이, 건물 내부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세로로 긴 창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상징했다. 검은색 벽돌과 세로로 긴 창 모두 이 건물의 설계자 김수근이 자주 사용했던 건축어휘다. 특히 1970년대 김수근 작업에서는 반복적,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건축어휘다.

1970년대 김수근의 건축은 '조적組積'으로 대표된다. 1959년 남산국회의사당 현상응모로 혜성처럼 등장한 이후 1960년대 김수근 건축은 해외 유명 건축가들의 설계언어 차용이 주였다. 미술사학자 최순우를 만나면서 김수근은 '한국성', '전통성'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고 비로소 자신만의 건축언어를 형성해 나갔다. 1970년대가 바로 이 시점이었다. 남영동 대공분실도 김수근의 1970년대 건축언어와 맥을 같이 한다.

1970년대 뿐만 아니라 김수근 전 생애에서 대표작은 1971년에 준공된 '공간사옥'이다(위 사진). 여러 매체에서 '한국 현대건축사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았다. 공간사옥은 한국인 체형에 맞는 휴먼스케일Human Scale, 좁고 넓음, 높고 낮음, 막힘과 열림 등의 다양한 공간 연출, 재료 그 자체가 주는 질감, 폐쇄적 외관과 달리 막힘 없이 연결되는가변적 내부 공간, 경사지를 살린 스킵 플로어Skip Floor, 크고 작은 방의 중첩 등을 통한 공간의 친밀감, 다양한 풍경 전개 등으로 설명된다.

그런데 마치 퍼즐Puzzle을 맞추듯 공간사옥을 설명하는 문장을 조금만 수정하면 남영동 대공분실이 설명되고 묘사된다. 그래서 조한은 공간 사옥과 남영동 대공분실을 '지킬과 하이드Jekyll and Hyde'로 비유하면서 "공간 사옥의 문화적 선구자로서 건축가 김수근의 모습이 본모습인지, 아니면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군사정권의 하수인으로서 건축가 김수근이 진정한 모습인지 모르겠다"고 썼다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조한, 돌베개.

김수근이 '휴먼 스케일', '재료 그 자체가 주는 질감'을 통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주고자 했던 건 '친밀감'이었다. '친밀감親密感'. 사전적 정의로 "지내는 사이가 매우 친하고 가까운 느낌"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럴 수 없는 '사이'여서 '매우 친하고 가까운 느낌'을 느낄 수 없다면?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온 사람들과 끌고 온 사람들은 처음부터 친밀할 수 없는 사이였다. 친밀했다면 '' 필요도, 죽도록 고문을 가할 수도 없었을 테다. 1987박종철이 사망한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실에서 '휴먼 스케일'은 사적 영역이 침범된 거리이고 '재료의 질감'은 차가움이다.

'좁고 넓음, 높고 낮음, 막힘과 열림'의 다양한 공간은 남영동 대공분실에도 있다. 우선 입면에서 보이는 넓은 창과 좁은 창, 넓은 주출입구과 좁은 뒷문, 낮은 뒷문을 통과한 뒤 만나는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시커멓게 높은 나선형 계단실, 자로 매스Mass가 만나는 지점의 낮음과 높음, 평평한 아치Arch 안쪽에 막혀 있는 듯한 휴게공간과 뒤쪽으로 열린 동선, 막혀 있는 듯한 5층 복도와 어딘가 다른 층으로 열린 문, 어긋나게 배치된 각 취조실의 문 배치로 막힌 듯 보이지만 열린 평면 설계 등이다.

1960년대 후반 김수근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윤승중에 의하면 1970년대 공간건축을 지배했던 원칙은 '공간 나눔', '공간 분할'이었다. '공간의 나눔'이 가장 기능적으로 적용된 건축물이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특히, '행정 업무''취조'를 위한 동선 및 공간은 철저히 나뉘어야 했다. 이는 발주처의 요구사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건물 내외부가 연결되는 동선도 철저히 통제돼야 했다는 점. 동선이 통제되기 위해서는 그 수가 최소여야 한다. 김수근의 해결방안은 주출입구에서 바로 나누는 것이었다.

행정 동선은 일반적인 공공건물 처럼 정문을 통한다. 정문은 따뜻한 남쪽을 향해 있다. 권위적인 시대였으니 두 정문이 만나는 곳에는 커다란 원형 화단이 조성돼 있다. 정문 앞에 내려줘야 하시는 분들을 태운 차량이 돌아나가야 했으니 화단이 목적이 아니라 원형이 목적이었다. 반면, 취조 동선은 주출입구 통과 후 바로 우회전해서 건물 뒤로 간다. 지금은 없지만 1980년 위성사진을 보면 후문 앞에도 주차면이 있었다(위 위성사진에서 굽은 자 형태의 연석). 지금과 달리 후면 앞에도 버젓한 공간이 있었다. 피조사자를 태우고 내리는 일 그리고 그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저항의 진압은 건물 뒤에 있는 주차공간에서 일어났다.

동선의 분리와는 별도로 공간의 분리는 언뜻 봤을 때 이해할 수 없다. 취조실이 지하가 아닌 지상 5층에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건물에서 외부와 가장 분리된 곳은 지하다. 지상으로 연결되는 곳만 차단하면 빼도 박도 못하는 곳이어서 지하공간은 무언가를 은폐하기에 최적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지은 사람들도 취조실을 지하에 두고 싶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건물의 공사 발주가 1976년 당시 김치열 내무부장관이 했고 같은해 102일 준공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하공사를 할 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은폐해야 할 시설이 지하에 있을 수 없다면 택할 수 있는 차선은 지상에서 가장 먼 곳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준공 당시 5층이었다. 현재와 같이 7층으로 증축된 시기는 198312월 이었다.

시설명에 들어가는 '대공對共'의 사전적 의미는 "공산주의나 공산주의자를 상대함"이다. 상대하는 방법은 박종철과 김근태 의원 고문으로 보여줬다. 그럼 그 시대에 정의됐던 '공산주의()'는 무엇이고 누구였을까? 영화 <1987>에서 고문당하던 한병용(유해진)에게 박처장(김윤석)이 했던 자신의 가족사는 우리에게 좌우 이념이 한국전쟁을 통해 어떻게 굳어졌는지를 보여준다. 박처장의 가족은 아버지가 아들처럼 돌봐줬던 -박처장의 주장임- 집안일을 하던 사람에게 몰살을 당했다. 공산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된 그 사람이 몰살시킨 이유는 박처장이 대지주大地主였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전 한국 사회는 신분제, 지주제, 씨족 간 갈등, 마을 간 갈등 등 대단히 많은 갈등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갈등 요소를 잘 대처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한국전쟁 때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반복적인 학살이 자행됐다. 그 학살의 반복 속에서 좌우의 이념은 나와 다른 생각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다른 생각은 절충이 아닌 충돌로 처리됐다. 문제는 지금도 박처장의 논리가 통용된다는 사실이다. 박처장이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조반장(박휘순)에게 협박조로 한 말은 "선택하라우, 월북자 될래? 애국자 될래?"였다.

취조실이 지상 5층에 배치된 다음 설계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외부에서 잘 알아보지 못하도록 은폐시키는 일이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지상에 있지만 지하처럼 창이 없는 먹방을 만드는 건데, 이는 외부에서 봤을 때 오히려 더 눈에 띄게 한다. 다른 층에도 창이 없다면 덜할 테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니 설계자는 다른 형태의 창을 냈다. 김수근이 선택한 창의 형태는 세로로 긴 창이었다. 마침 조적에서 세로로 긴 창은 구조적인 이유 때문에 가로로 긴 창이나 큰 창 보다 어색함이 없다.

창의 폭은 30cm가 채되지 않으니 피조사자의 투신은 불가능하다. 투신 방지는 취조실이 5층에 배치됐기 필요했다. 5층에서 유일하게 다른 형태의 창은 복도가 끝나는 건물 측면에 있다. 만약을 대비해 이 창에는 철조망이 설치돼 있다. 설계자는 5층에만 세로로 긴 창이 있으면 이 또한 어색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층 중간중간에 그리고 낮은 층 매스에도 세로로 긴 창을 적용시켰다. 심지어 증축된 6~7층에도 세로로 긴 창이 섞였다. 기왕 창을 설치했으니 창에 기능도 부여했다. 창의 일반적인 기능은 환기, 채광, 조망이다. 취조실에서 필요한 창의 기능은 환기다. 고문의 냄새를 빼내야 했기 때문이다. 세로로 긴 창은 조금 열린다.

피조사자를 5층으로 데리고 가는 일도 설계자가 풀어야 할 과제였다. 일단 행정 동선과는 분리되어야 하니 설계자는 별도의 계단이나 엘레베이터를 설치했다. 엘레베이터는 1층에서 5층으로 바로 간다. 주목할 점은 계단의 형태로 김수근은 나선형 계단을 택했다. 일반적으로 나선형 계단은 평면적인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오르내리기 위험하다. 더군다나 남영동 대공분실의 나선형 계단은 혼자 오르내리기에도 좁다. 만약 피의자가 반항을 한다거나 자력으로 계단을 오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선형 계단을 이용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계단을 설치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효율적이다. 그럼에도 굳이 나선형 계단을 설치한 이유는 뭘까?

피조사자들의 시공간감 상실 및 공포감 유발, 고문 공간과 행위의 은폐, 엄폐, 공포를 조성하는 심리적 장치 등이 목적이었다. 여기에 더해 내가 나선형 계단을 오르내리며 느꼈던 선뜩함은 이 장치가 1970년대 김수근이 '한국성', '전통성'에 대해 탐구하면서 나왔다는데 있다. 시퀀스Sequence는 한국 전통건축을 설명할 때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서양 건축에 비해 전통 건축에서의 시퀀스는 다른 부분이 있다. 대표적으로 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공간이 처음부터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공간은 각각 다른 새로운 장면의 공간들과 다음 장면을 암시하는 요소들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건축에서 시퀀스는 단속적斷續的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피조사자가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공간은 -자의든 타의든- 5층 조사실이다. 이곳에 '클라이맥스Climax가 있다. 피조사자가 1층 후문에 들어섰을 때 자신이 최종적으로 가야 할 5층은 드러나지 않는다. 나선형 계단을 돌고 돌아 5층 복도에 도착해야 비로소 드러난다. 한국적 건축에서의 시퀀스 특성이 반영된 나선형 계단은 1층과 5층을 동선적으로는 연결하지만 감각적으로는 단절시킨다. 피조사자의 시퀀스에서 단속적인 역할을 하는 장치가 바로 나선형 계단이다.

여기에 더해 나선형 계단은 수평적으로 전개되는 시퀀스를 수직적으로 전환시킨 장치다. 한국 건축은 목구조였기 때문에 높은 건물이 없었다. 결국 공간도 수평으로 확장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시퀀스도 수평적으로만 전개됐다. 하지만 현대 건축은 수직적이다. 김수근은 이 괴리를 스킵 플로어Skip Floor(공간사옥, 1971), 경사로Ramp(춘천 강원어린이회관, 1980) 그리고 나선형 계단을 통해 좁혀보고자 했다.

내가 남영동 대공분실을 김수근이 설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는 김상수의 칼럼Column -김수근이 과연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가?, 프레시안, 2011.11.14- 이다. 김상수는 작가이자 연극연출가로 건축계와는 거리가 멀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이런 칼럼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상수는 "건축인 김수근이야말로 철저하게 반민주주의 반인권의 독재정권에 협력하면서 독재자의 사고를 건축에 구현하여 그의 건축적 성과물을 이룬 건축인"이고 남영동 대공분실은 이러한 김수근의 정체성을 드러낸 건축이라 했다. 사실 김수근의 공과功過는 비단 남영동 대공분실에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이 현재 우리나라 건축계의 원로 자리에 있는 지금 남영동 대공분실을 통한 과오를 인정하기란 어렵다. 이는 종묘 앞에 떡하니 들어선 세운상가, 남산 경관을 망쳤다는 자유센터(1964)와는 다른 차원이다. 김수근 건축의 정수Quintessence라 할 수 있는 1970년대 건축, 이로써 한국성과 전통성을 현대적으로 가장 잘 해석했다는 평가를 남영동 대공분실로 인해 모두 상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8110jtbc 뉴스에 ''6월 항쟁 도화선' 보안분실전국 43곳 그대로 운영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 속에 눈에 띄는 건물이 있었다. '경동산업'으로 불렸던 '보안수사2' 건물이다. 주소는 동대문구 장안3439-1. 위성사진을 통해 건물의 평면을 보면 마치 경찰 마크를 건축화 시킨 듯하다(x2 위성사진). 건물 북쪽을 지나는 장한로12길의 로드뷰를 보면 원통형 매스가 겹쳐져 있다. 왠만한 건축가는 시도할 수 없는 조형성이다. 마감재도 남영동 대공분실과 같은 검은색 벽돌. 증축된 듯 돌출된 상부 매스는 남영동 대공분실의 창과 유사하다(위 로드뷰 사진). 김수근은 전통의 문제를 현대 건축에 어떻게 접목시킬지 진지하게 고민한 건축가로 평가 받는다. 그 진지한 고민 중에 남영동 대공분실과 또 우리가 모르는 공간이 있다면 어떤 고민이었을지 알고 싶어진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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