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플래폼, 건축의 시작

전체 개

새로운 댓글알림이 없습니다.

알림

건축지도

체르베니카멘 #04. 지하, 또 다른 공간: 재미나요 l 바깥나라

건축가 천경환
2018.01.22

좁은 틈을 통해 찌르듯 스며들어오는 빛. 창문과 빛이 없었다면 벽의 의미가 이렇게 실감나게, 그리고 간절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른쪽 벽면에 가지런히 늘어선 창문의 리듬이 즐거운 한편으로, 정면으로는 굵은 기둥 너머 또 다른 공간이 보입니다. 훤히 뚫려있어서 따지자면 한 공간이지만, 저 기둥 하나 때문에, 그리고, 다른 질감으로 물들고 있는 빛 때문에, 다른 공간으로 읽혀집니다.

‘노랗게 물든 방’에는 조금 있다가 가 보기로.

또 다른 공간, 또 다른 창고로 내려가는 길. 뒤늦게 사진을 보니, 계단이 시작되고 끝나는 부분에 아주 작게 빨간색 표시를 해 놓은 것이 눈에 띕니다. 원작(?)의 원래 느낌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면서도 할 역할은 유감없이 수행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나중에 타트라의 등산 코스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또 다른 창고가 나옵니다.

왼쪽에 방금 내려 온 길이 보입니다. 방금 위에서 보았던 공간과 비슷한데, 한쪽으로는 또 다른 공간으로 연결되고,

그리고 반대편은 막다른 골목.

창문을 통해 내리꽂히듯 쏟아지는 강렬하게 하얀 햇볕과, 물들이며 흘러넘치는 은은하게 노란 인공조명, 대략 두 가지의 빛이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바닥에 얼룩진 하얀 햇볕이 평면에 무늬를 그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마치 어떤 입체감을 연출하고 있는 듯 보여 더 흥미롭습니다.

볼록하게 튀어 오르는 것처럼 보였던 새하얀 빛의 덩어리는, 시선의 방향이 바뀜에 따라 다시 얌전하게 가라앉으면서 바닥에 납작하게 드리워진 무늬가 됩니다.

의도나 맥락에 상관없이 존재 자체만으로 감동을 주는 어떤 무엇. 온전히 물질과 공간에 속하는 세계. 귀금속을 저장하는 창고였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 드렸던 성당이었든 상관없이, 그냥 그렇게 감동적인 모습입니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볕의 방향이나 세기에 따라, 공간 또한 다른 표정으로 물들게 됩니다. 당연한 일이겠는데, 접할 때 마다 신비롭습니다.

이 때 바닥은 (늘 존재하고 있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현상을 드러내어 전달하는 매체가 됩니다.

창문의 정확한 모양을 드러내며 찍히는 빛과, 테두리에서 흘러넘치며 번지는 빛.

그리고 바닥 뿐 아니라 벽 또한 그렇습니다. 현상을 드러내어 전달하는 매체.

건축가 천경환

손과 발로 풍경을 읽어내는 사람이고
읽어낸 풍경을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이고
그 기록들을 양분 삼아 디자인을 풀어내는 사람입니다.

목록

건축이야기꾼의 다른 글

형태를 짓다 5: 벽, 문, 바닥과 함께 건축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로 ‘창문’을 들 수 있다. 창문은 벽에 뚫린 구멍으로, 벽이 수행하는 ‘공간 통...

건축가 천경환

형태를 짓다 4: ‘바닥’ 역시 행동이나 상황을 통제한다. 다만 ‘벽’이나 ‘문’만큼 직설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바닥에 송곳 따위를 촘촘...

건축가 천경환

형태를짓다3: 요즘은 가볍고 투명한 유리로 벽을 세우고 문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공간을 가르는 물리적 실체로서의 벽의 존재감을 최대한 흐릿...

건축가 천경환

형태를 짓다 2: 광화문은 ‘권력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진 문’의 좋은 예이다. 광화문은 거대한 크기와 당당한 풍채로 권위를 드러낸다...

건축가 천경환

형태를 짓다 1: 행태(行態) :하는 짓과 몸가짐. 행동하는 모양.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우리의 몸은 항상 ‘건축 안팎’에 놓여있고, 건축과 몸은 ...

건축가 천경환

감각을 짓다 6: 고성군 토성면에 위치한 '바우지움'은 2015년에 지어진 조각 전문 사립 미술관이다. 건축가 김인철의 역작으로, 영역을 규...

건축가 천경환

감각을 짓다 5: 공간의 의미‘공간’이란 말을 ‘위키백과(ko.wikipedia.org)’에서 찾아보면, 다양한 카테고리에 걸친 정의들...

건축가 천경환

감각을 짓다 4: 물(水) 미술관, 바람(風) 미술관제주도는 ‘우리나라 속 또 다른 나라’다. 햇볕도 바람도 바람 속 습기도, 그리고 땅의 생김새도, ...

건축가 천경환

감각을 짓다 3: 꿈틀거리는 건물흔히 겪는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건물이 '꿈틀'거리기도 한다. 고정된 상태로 현상을 도드라지게 드러내...

건축가 천경환

감각을 짓다 2: 최초의 건축비상계단의 그림자를 두고 싱거운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싱겁다고 표현한 이유는 짐짓 겸손해 보이기 위함이 아니다. ...

건축가 천경환

감각을 짓다 1: 감각(感覺) : 외부 또는 내부의 자극에 의하여 일어나는 느낌. 사물을 느껴서 받아들이는 힘./ 네이버 한자사전어느 날 익숙한 건물...

건축가 천경환

[동경] 써니힐즈: 오모테산도에 놀러 간 김에 조금 안으로 들어가, 쿠마켄고 선생님의 작업인 써니힐즈에 가보았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문득 얼기설...

건축가 천경환

[동경] 아사쿠사관광안내센터3: 계단으로 슬슬 내려옵니다.아래층 복도에 안내 책자를 놓는 작은 책상이 있었는데,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찾아...

건축가 천경환

[동경] 아사쿠사관광안내센터2: 1층으로 들어가면 로비가 나옵니다.바깥에서 덩어리의 나누어어짐으로 읽혔던 그대로 내부 공간이 구획되었는데, 천정이 트여있어 ...

건축가 천경환

[동경] 아사쿠사관광안내센터1: 동경 방문 본래의 목적이 따로 있었고, 그리고 요즘 들어서는 유명한 건물 보다 동네, 장소, 골목길 등을 둘러보는 것에 더 큰 흥미...

건축가 천경환

[동경] 외부계단: 동네 거리 풍경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깥에서 2층이나 3층으로 곧바로 연결되는 외부 계단이 많이 보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건축가 천경환

[동경] 쿠라마에: 아사쿠사 관광안내소를 둘러보고, 근처 ‘쿠라마에’라는 동네에 갔었습니다. ‘쿠라마에’는 우리말로 풀자면 ‘창고 앞’이 되...

건축가 천경환

[동경] 길바닥: 의뢰인에게 진행 보고드릴 겸, 마침 열리고 있던 몇 개의 건축전시회 구경도 할 겸 해서 가게 된 동경에는 볼만한 건물들이 많지만...

건축가 천경환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5: 첫인상을 심어주는 중요한 공간이긴 하지만, 그래도 건물 전체의 일부분일 뿐인데 볼거리와 고민하게 하는 장면들이 참 많기도 많...

건축가 천경환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4: 조각난 햇볕에 실려 들어온 잔물결 그림자와 더불어, 거대한 아트리움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던 것은 아트리움을 에워싸고 있는 발...

건축가 천경환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3: 앞선 포스팅 ( 아모레퍼시픽신사옥2)에서 격자 하나하나가 제각기 점멸되는 모니터의 픽셀 같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런 감상을 뒷...

건축가 천경환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2: 로비로 올라가서 처음 눈길을 끌었던 것은 탄탄하게 세워진 유리난간…유리난간으로는 이례적으로 삼중유리를 썼습니다.유리는 투...

건축가 천경환

아모레퍼시픽용산신사옥1: 며칠 전,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에 다녀왔습니다.신용산역에서 건물로 이어지는 통로입니다. 지하철과 ...

건축가 천경환

[기고] 깍지집: [기고] 깍지집보건소(보편적인건축사무소)신작, ‘깍지집’에 대한 비평이 공간지2018년6월호(SPACE607)에 실렸습니다. 모처럼 좋은 ...

건축가 천경환

건축책세권 [건축과 감각 / 서울 공간의 기억 기억의 공간 / 빨간도시]: 보통사람들도 편하게 읽을 만한 교양(?) 건축 책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책값이 전혀 아깝지 않고, 두고두고 곁에 두고 싶은 책을 ...

건축가 천경환

무지개떡 건축 / 황두진: 무지개떡 건축/황두진무지개떡 건축은 저자가 제안하는 디자인 방법론 내지는 건축 유형을 일컫는 말이다.책의 주제는‘한 가지 색...

건축가 천경환

체르베니카멘 #04. 지하, 또 다른 공간: 좁은 틈을 통해 찌르듯 스며들어오는 빛.창문과 빛이 없었다면 벽의 의미가 이렇게 실감나게,그리고 간절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

건축가 천경환

체르베니카멘 #03. 지하: 방바닥에는,방의 윤곽을 따라서 두툼한 붉은 카펫이 깔려있었습니다.동선을 권하기 위해 깔려있는 것으로,방 바깥의 방/복도로부터...

건축가 천경환

체르베니카멘 #02. 내부: 건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하얀색으로 단순하게 정돈된 일련의 돔들이 늘어선 복도.접하는 언저리에는 아주 살짝,보일 듯 말듯 얕...

건축가 천경환

체르베니카멘 #01. 외부: 체르베니 카멘(Cerveny Kamen)이라는 곳에 갔었습니다.뒤늦게 찾아보니,붉은 돌(red stone)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1580년부터2차 ...

건축가 천경환

상공회의소 #04. 마감: 정면 구경을 마치고 오른쪽 입면 방면으로 다가가는 길…지하주차장 출입구와 드랍오프를 겸하는 필로티가 보입니다.지난 포...

건축가 천경환

상공회의소 #03. 정면성: 왼쪽 입면을 본 뒤,남대문에 면해 있는 정면을 살펴보았습니다.지난 포스팅에서도 보았던 장면인데,보고 또 봐도 참 기분 좋은 조...

건축가 천경환

상공회의소 #02. 패턴: 오랜만에 건물사진 찍으니 참 즐겁더군요.화면 안에 짜임새 있는 대상이 꽉 차게 들어왔을 때의 기분은 언제나 황홀합니다.지난 포...

건축가 천경환

상공회의소 #01. 볼륨: 어제는 오랜만에 오랫동안 눈여겨보고 있었던 건물들을 찾아서 사진을 찍어왔어요.남대문 앞에 위치한“상공회의소”는 ...

건축가 천경환

이응노의 집 #04. 위계: 방금 내려온 계단. ‘매개공간’에서 느슨한 경사로의 연속으로 처리되었던 높이 차이를 단숨에 연결하는 계단이었지요.노...

건축가 천경환

이응노의 집 #03. 대비 그리고 조화: 다른 전시실...천정이 살짝 기울어져있었고,그래서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졌었어요.천정은 노출콘크리트,작품의 배경이 되는 벽면은...

건축가 천경환

이응노의 집 #02. 매개 공간: 들어온 길을 돌아보았습니다.나무널판벽과 블랙스테인리스벽,두 벽면이 유리출입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상황이 잘 보입니...

건축가 천경환

이응노의 집 #01. 땅과 재료의 감각: 올 초에,충남 홍성군에 위치한‘이응노의 집’에 구경 갔었는데,그 때의 기록입니다.낮은 산으로 부드럽게 둘러싸인 논밭...

건축가 천경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04. 패턴: 나오면 바로 건너편에 살림터로 통하는 문이 보입니다.비슷한 스케일과 방식으로 살짝 구겨진 모습이 익숙한 느낌입니다.워낙 낯선...

건축가 천경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03. 흐름: 내부 인테리어와 카운터 또한 건축가의 디자인이라고 합니다.건물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훌륭한 디자인인데,다만 오른쪽 아래에 ...

건축가 천경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02. 연결: 오간수문을 통과하면,여러 가지 시간의 켜가 하나의 풍경에 모여있는,놀라운 모습이 보입니다.동대문디자인플라자/동대문운동장조...

건축가 천경환

동대문디자인플라자 #01. 시퀀스: ‘서울시 디자인레터’에 실릴 내용을 취재하기 위해,안개님과 함께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디디피’)에 다...

건축가 천경환

[건축가 프로파일] 아키텍츠진진

[건축가 프로파일] 모어레스 건축사사무소

A + PLATFORM

Terms of Use Privacy Policy

에이플래폼 서울특별시 강남구 가로수길 41, B2F 건축코워킹센터 에이라운지 대표 : 김형래 사업자등록번호 : 370-35-00013
고객센터 : 02-2676-6534 이메일 : contact@a-platform.co.kr COPYRIGHT © 2024 A + PLATFORM. ALL RIGHTS RESERVED.

에이플래폼    서울특별시 강남구 가로수길 41, B2F 건축코워킹센터 에이라운지
대표 : 김형래    사업자등록번호 : 370-35-00013
고객센터 : 02-2676-6534    이메일 : contact@a-platform.co.kr
COPYRIGHT © 2024 A + PLATFORM. ALL RIGHTS RESERVED.

Naver blog

Brunch

Instag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