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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의 작은 우주, 주방
건축가의 집 이야기
디자인랩 소소 건축사사무소 장서윤
2018.04.20

​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집을 집답게 만드는 것은 집의 온기가 아닐까. 주방에서 스며 나오는 따뜻한 느낌, 음식 냄새, 노란 조명 같은 것들은 우리가 따뜻한 집을 생각할 때 가장 흔히 떠올리는 장면 중 하나다. 집을 집답게 만드는 공간, 의식주 중 식과 주가 하나 되는 공간, 주방이다.

 

 

 

 

불의 공간, 집의 시작

 

인류가 불을 피우기 시작하고, 불 옆에서 먹고 자게 되면서 불을 중심으로 한 공간은 집으로 발전되었다. 최초 구석기 집터를 보면 화덕이 공간의 중앙에 위치하며, 게르 등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서구에서는 19세기 이전까지 벽난로로 난방 뿐 아니라 취사도 하였고, 불의 공간은 곧 가족의 중심 생활공간이었다. 이후 벽난로는 가스와 전기 등의 등장으로 점차 모습을 감추었으나, 2차 대전 이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르 코르뷔제 등 현대건축가들은 집의 중심이 되는 거실이나 응접실 등에 벽난로를 설치하여 다시금 불을 가족이 함께 하는 공간으로 가져왔다.


반면 온돌 난방을 하였던 조선시대에는 불이 집의 한 쪽에 치우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취사 등 집안일은 거의 여성이 도맡아 하였기 때문에 우리 전통 주택에서 부엌은 천대받았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불만큼이나 그 공간인 부엌도 중히 여겼다.


풍수에서 이야기하는 양택삼요는 집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를 뜻하며 이는 대문, 주인방, 부엌을 말한다. 또한 조선후기 실학자 홍만선은 농업 및 가정생활에 관련하여 쓴 책인 산림경제에서 부엌을 만드는 법을 상세하게 적어 두었다. 물과 불을 함께 다루는 곳인 부엌은 음양오행의 원리가 내재된 소우주로 여겨졌고, 모든 부분은 하나의 완결된 우주를 구성하는 곳곳을 상징하며, 심지어 벽돌이나 흙도 깨끗한 것을 써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길이는 79촌인데 이는 위로 북두칠성을 상징하고 아래로 구주에 응한 것이고, 너비 4척은 사시를 상징한 것이며, 높이 3척은 삼재를 상징한 것이다. 아궁이의 크기는 12촌으로 12실을 상징하며, 솥은 두 개를 안치하는데 이는 일, 월을 상징함이다...(중략) 모름지기 새 벽돌을 준비하여 깨끗이 씻어서 깨끗한 흙으로 향수를 섞을 것이며, 흙을 이기는 데는 벽에 쓰는 흙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무릇 부엌을 만들 때 쓰는 흙은 먼저 땅 표면의 흙을 5촌쯤 제거하고 곧 그 아래의 깨끗한 흙을 취하여 정화수를 섞어 이겨 쓰면 대길하다.”

 

 

이 뿐 아니라 아궁이에 불을 땔 대는 나쁜 말을 하지 않아야 하고, 부뚜막에 걸터앉거나 발을 디디는 것도 금기였다. 명절에는 불을 관리하는 조왕신에게도 상을 차려 부뚜막에 올려두었다 하니, 불을 얼마나 신성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집으로 들어온 물과 불

 

아궁이로 집 안에서 불은 피울 수 있었지만, 물은 밖에서 길어 와야 했다. 하지만 1950~6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주택, 부흥주택 등을 통해 신식 주방의 모습이 선보여지며 주방의 모습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실내에 수도가 설치된 주택은 주부들의 로망이 되었다. 연탄이 대중화되면서 집에서 아궁이는 사라졌고 주방의 구조는 바뀌었다. 하지만 난방과 취사를 모두 담당했던 연탄은 일산화탄소 중독의 위험을 항상 내재하고 있었다. 연탄가스에 의해 색이 쉽게 변하는 놋그릇은 양은그릇으로 대체하여 해결했지만, 생활공간과 주방을 어느 정도 분리시켜 두었음에도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는 매우 빈번하게 일어났다.

 

 

 

1960년대 말부터 아파트와 신흥주택이 지어지면서 주방의 형태는 더욱 급격히 변화했다. 도시가스가 공급되면서부터는 집 안에서 물과 불을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공간도 좀 더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서서 요리할 수 있는 입식 조리대와 그릇을 넣어둘 수 있는 찬장이 등장했고, 시멘트나 타일로 마감한 주방은 더욱 깨끗해졌다. 장독대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며 냉장고가 등장했고, 전기밥솥, 커피포트 등 가전제품들도 하나하나 갖추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시골에서도 아궁이를 들어내고 입식부엌을 설치하는 주택이 늘어났다. 그리고 이제 주방은 단순히 취사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집에서 가장 최첨단의 공간이고,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며, 가장 급격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는 공간이다.

 

 

 

주택에서의 주방, 라이프스타일의 반영

 

온돌문화와 유교 사상 등에 따라 주방은 숨겨진 곳, 여성들의 내밀한 공간이었지만 시대가 바뀌고 다양한 주거 형태가 나타나면서 집에서 주방의 위치는 꾸준히 변화해왔다.


아파트가 대중화된 이후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주방은 거실과 연결된 주방이다. 작은 공간에 효율적인 배치를 하다 보니 주방과 거실을 분리하는 것은 부담스러웠고, 가족들의 공동 생활공간인 주방과 거실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하나로 연결되긴 했지만, 주방-식당-거실 공간이 순서대로 연결되어 있었고, 설거지를 하는 가족의 뒷모습만이 익숙했다.


최근 들어 이 공간의 융합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주방과 거실은 구분이 거의 사라지고 하나의 복합형 생활공간이 되고 있다. 아일랜드 주방이나 자 주방이 많아지면서 싱크대를 거실로 향하게 배치하는 주방도 많아졌다. 가사 노동에 대한 남녀의 경계가 사라지고 가족 구성원들이 동등해진 것이 이 변화의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또한 작은 가족들이 많아지면서 거실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부모가 가사 일을 하면서도 지켜볼 수 있어야하기에 이러한 주방의 형태는 더욱 대중화되고 있다.


하나 된 공간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거리가 좁아지고 대화도 가능해진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이와 다른 형태의 주방도 가능하고 적합할 수 있다.


식사 공간과 거실 공간의 활용이 다른 가족이라면 식당과 주방을 함께 두고, 거실은 분리하면 된다. 집에 손님이 많이 드나든다고 했던 한 건축주는, 손님들에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싫다며 공간의 분리를 원했다. 주방과 거실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면 주방에서의 활동이 다른 이들에게 보이지 않아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다. 아파트나 작은 규모의 주택에서 주방에서의 활동은 방해받지 않으면서도 공간의 완전한 분리는 원치 않을 경우 주방과 거실 사이에 창을 낸 가벽을 두거나, 낮은 수납장 등의 가구로 공간을 분리할 수도 있다.


보다 공간에 여유가 있을 때는 주방, 식당, 거실을 모두 분리해 배치할 수도 있다. 각각의 공간에 각기 다른 성격과 분위기를 부여하고 집 안에서도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질 수 있어 그 나름의 장점이 있다.


집 안에 생선이나 고기 등의 냄새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다용도실이나 외부 공간에 별도의 주방 공간을 만들어두는 경우도 있고, 주방 외의 공간에서 커피나 차를 즐기는 경우 간이 주방을 만들어두기도 한다. 이는 모두 가족 나름의 필요에 의한 것이고, 어떤 것이 반드시 좋은 주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좋은 주방의 조건

 

최근에는 주방에 들어가는 가전제품과 기기들이 점점 다양해지면서, 최첨단의 기기들을 장착하는 것이 점점 중요하게 여겨지고, 업체도 권장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을 위한 집을 만들기에 어떤 주방이 적절한지 고민해보고 실현해보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요즘은 아파트나 빌라 등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주방이 시도되고 있고, 가구 배치를 통해 간단히 공간을 변형해볼 수도 있다. 주택을 신축하거나 고칠 경우에는 여러 주방 가구 업체들을 통해 내가 원하는 형태의 주방을 쉽게 눈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


나를 위한 요리를 만드는 가족이 있는 집,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내가 즐거운 집이 제일 좋은 집이 아닐까.

 

 

 

글. 장서윤 

출처. 월간 전원생활

디자인랩 소소 건축사사무소 장서윤

디자인랩 소소는 아주 특별한 보통의 것을 통해 자그마한 웃을 지을 수 있는 그런 공간과 일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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