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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깍지집
건축비평
건축가 천경환
2018.05.30

 

 

[기고] 깍지집

 

 

보건소(보편적인건축사무소) 신작, ‘깍지집에 대한 비평이 공간지20186월호(SPACE607)에 실렸습니다. 모처럼 좋은 건물을 관찰하고 생각을 정리하게 된, 나아가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좋은 기회였습니다. 지면에는 생략된 내용이 있어서, 편집부에 의해 수정되기 전의 원고를 올립니다.

 

………………

 

 

보건소편적인 축 사무를 줄인 말이다.

 

줄여서 만든 이름이 건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엉뚱한 단어가 되니, 한 번 들으면 좀처럼 잊기 힘들 정도로 각인이 된다. 왜 이름을 이렇게 붙였는지, ‘보편의 뜻은 무엇인지. 가벼운 웃음과 함께 반사적으로 질문이 연달아 튀어나오고, 흘러가듯 이어지는 대화에는 가속이 붙는다.

 

 

보건소건축사무소’. 의미는 완전히 다른데 대략의 맥락은 통한다. 보건소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의료서비스를 적은 부담으로 널리 보급하는 곳이다. 그런 맥락을 염두에 두고, 건축설계서비스가 필요한 이들에게 쉽고 편하게 다가가고 싶다는 바램을 담아 붙인 이름이라 한다. 정말로 보건소 같은 건축사무소라면 속칭 구청 앞 허가방을 연상할 수도 있겠는데, 지향하는 바가 정확히 그 지점에서 머물고 말 것이었다면, 역설적으로 이렇게 눈에 띄는 키치 스타일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전상규 소장은 매스스터디즈에서 오랫동안 실무를 닦았기에, 그에게는 매스스터디즈의 유전자가 담겨있을 것이다. 매스스터디즈의 전위적인 스타일과 보편이라는 얌전한 단어가 겹치는 지점에서, ‘보건소의 색깔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재기 넘치는 디자인실험을 추구하되, 받아들이기에 그리 불편하지 않고 만들기에 그리 까다롭지는 않은 어느 일정 범주 안에 들어오게끔, 그래서 보편이라는 굴레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게 하고자 한다는 포지셔닝. 더 나아가, ‘보편성에서 찾아낸 문제의식을 디자인의 실마리로 삼되, 결과적으로는 보편의 영역을 보다 넓게 만들고 싶다는 야심. ‘보건소라는 재치 있고 함축적인 이름과 전상규소장의 실무 이력, 그리고 그의 차분하고 소박한 표정과 말투에서 대략 이 정도의 지향점을 짐작해 본다.

 


지난 몇 년간 보건소는 그런 짐작에 들어맞는 작업들을 보여주었다.

역삼동 일대에 지어진 몇몇 근린생활시설들이 아주 좋은 예다.


강남대로의 엄청난 유동인구를 의식하여 눈에 띄게 도전적인 조형을 자랑하는데, 그러면서도 시각적 표현이나 재료와 구법에서의 실험은 사업성(이익이 남는다.)’범용성(다양한 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다.)’이라는 기준을 크게 해치지 않은 작업들이었다. 한두개의 해프닝에 그치지 않고 네다섯번의 연작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보건소의 작업이 건축주로부터 강남번화가의 소규모 상업건물이라는 맥락에서 충분히 보편적이라 인정받았음을 알려준다.

 

일산 근처 택지개발지역에 자리잡은 점포주택 강녕재는 건물 덩어리의 벽돌 외피가 둥글게 휘어지면서 주차장 필로티 상부로 스윽 스며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사실 벽이 천정이나 바닥으로 휘어지듯 이어지는 수법은 현대건축에서 오래된 클리셰이고, 아직은 새롭지만 더 이상 참신하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수법이 동네 점포주택의 흔한 필로티 주차장에서 불쑥 등장하는 모습이 나로서는 신선해 보였다. 뻔한 정답을 뒤늦게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은평뉴타운의 깍지집은 벽돌을 전면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강녕재로부터 이어지는 또 다른 연작의 흐름 위에 있다.

 

요즘 몇 년 동안 듀라스택의 콘크리트 블록, 큐블록S시리즈는 일명 와이드벽돌로 불리면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가로 방향으로 기다란 비례감과 더불어, 같은 질감의 다양한 색깔을 갖추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단순하고 매끄럽게 연출된 덩어리 안에 세 가구가 마치 퍼즐처럼 입체적으로 얽혀 있는데, 세 가구는 각각 다른 색깔의 블록으로 마감되어 있다.

 

그래서 가구와 가구가 접하는 부분에서는 자연스럽게 다른 색깔의 블록들이 맞물리게 된다. (이렇게 맞물리는 모습에서 깍지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보통 비례의 벽돌이었다면 다소 신경질적으로 얄팍하게 맞물렸을 텐데, 와이드벽돌 특유의 길쭉한 비례 때문에 다소 느슨하고 여유 있게, 이어지듯 맞물리는 연출이 된다. 콘크리트라는 공통된 질감 안에서 조금씩 변주되는 색깔 차이이기에 조잡한 느낌도 크지 않다.

 


 

 

옥상 발코니에는 와이드벽돌을 얼기설기 쌓아서 투과율이 높은 벽을 만들었다.

 

긴 벽돌을 사용해서 투과벽을 이중으로 쌓다 보니, 높은 투과율에 비해 의외로 시선은 (신기할 정도로)많이 차단된다. 세대별로 다른 색깔의 벽돌을 사용하기에 세대를 구분하는 투과벽 역시 두세가지 색깔의 벽돌들이 빈 허당을 매개로 입체로 얽히게 되는데, 아주 간단한 발상과 명쾌한 규칙으로 생성된 디자인이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은, 제법 풍성한 효과를 빚어낸다. 앞서 언급한 깍지와 더불어, 그토록 널리 쓰였으면서도 이제껏 활성화되지 않았던 와이드벽돌의 잠재력이 비로소 제대로 드러나는 듯한 장면이다. 앞서 강녕재에서처럼 뻔한 정답을 뒤늦게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든다.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료 건축가의 입장에서 반가움과 낭패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한편, 출입문 위에 붙은 날렵한 철판 캐노피 위에 굳이 무거운 벽돌을 얹은 것은, 루이스 칸의 저 유명한 아치가 되고 싶어하는 벽돌 이야기에 비추어 보면 선뜻 동의하기 힘든 장면이다.

 

와이드벽돌은 자신이 캔틸레버 철판 위에 위태롭게 올라타게 될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상규 소장은 건물 전체를 벽돌로 감싸려는 의도의 결과라고 설명하는데, 설명을 듣고 찬찬히 살펴보니, 작은 장면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건물 전체의 디자인 일관성과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고, 거리에 접한 건물의 표정을 한결 상냥하게 꾸며주고 있다. 철판위에 놓인 벽돌 마구리는 의외로 눈에 잘 띄는데, 물론 그 집 고유의 색깔을 띤 벽돌이다. 뭔가 간질간질하고 귀여운 제스처인데, 앞으로 본격적으로 펼쳐질 이 거리의 풍경을 좀 더 밝고 훈훈하게 연출하는 데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된다. 사실, 본래의 디자인은 요양원을 등지는 부분의 건물 외벽이 그대로 휘어져 올라가 지붕으로 연결되는 내용이었는데, 시공사의 역량 부족과 그로 인한 불신 때문에 건축주 추가부담으로 지금의 모습 (칼라강판 지붕)이 되었다고 한다. 원안처럼 지붕까지 벽돌로 마감되었더라면, 철판 캐노피 위에 얹혀진 벽돌과 함께 한층 더 일관되고 완성도 높은 디자인이 구현되었을 것이다.

 

 

이제껏 거론한 몇몇 장면들을 통해, 보건소가 추구하는 디자인 방법론을 짐작해본다.

 

큰 획으로 굵직하게 설정한 단순한 디자인 개념을 경쾌하게 밀어붙이는 즐거움. 작은 부분까지 일관되고 끈질기게 연출하려는 노력. 재료의 고유한 특징과 잠재력을 끈질기게 찾아내는 동시에 고정관념과 편견에 얽매이지 않는, 집요하지만 경직되지는 않은 태도.

 

물론 아쉬움도 있다. 건물을 이루는 일부 요소들은 건물 본체에 긴밀하게 결합되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추가된 해프닝처럼 보인다. 그리고 길에 면해 드러나는 건물의 얼굴은 실내에서 요구되는 창문의 크기와 배치가 다듬어지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서 자동적으로 생성되다시피 빚어진 디자인이라, 지금의 이 모습으로는 갈고 닦여 빚어진 예쁜 얼굴이라 보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인상의 원인은, 앞서 짐작한 획 굵고 대범하게, 그리고 경쾌하게 진행되는 보건소의 디자인 태도에 닿아 있고, 그래서 이런 식의 몇 가지 장면을 통해서 디자인의 완성도를 논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임의로 설정한 디자인 주제를 일관되게 끌고가는 데에 집착하는 한편으로, 특정 시점이나 장면에서의 고정된 아름다움을 정교하게 다듬는 데에는 그만큼의 관심은 없기 때문이다. 이 것은 매스스터디즈, 더 나아가 오엠에이의 작업에서 가끔 엉뚱한 허점 같은 것을 발견하고 당황스러워지는 것과 같은 맥락의 일이라 생각한다. 쉽고 명쾌한 개념을 직설적으로, 경쾌하게 전개하는 그 만큼, 기왕이면 세부적으로 예쁘게 다듬어지기도 하면 더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램인데,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습관이나 가치관의 차이일 수도 있는 문제이기에, 결코 강요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보편적인 건축 사무소는 동료 건축가가 쉽게 활용할 수 있고 건물을 둘러싼 모든 이들이 즐겁게 누릴 수 있는 보편성의 윤곽을 꾸준히 야금야금 넓혀가고 있다.

 

나를 비롯한 동료 건축가들은 보편적인 건축사사무소의 소박한 작업들을 양분삼아, 또 다른, 더 넓은 보편을 만들어낼 것이다. 디자인 열심히 하는 소규모 건축사무소가 생존에 그치지 않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방법들 중 하나가 이 것이다.

 

 원문 : http://jaeminahyo.com/?p=22005

건축가 천경환

손과 발로 풍경을 읽어내는 사람이고
읽어낸 풍경을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이고
그 기록들을 양분 삼아 디자인을 풀어내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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