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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건축기행_동경 [1-4편]
[2일차]_전범기업의 저택과 우리는 가지지 못한 어떤것
건축사사무소 이인집단 이영재
2018.05.31

일본건축기행_동경


[ 2 일차 ] _ 전범기업의 저택과 우리는 가지지 못한 어떤 것

 

20177월 더운 여름, 한국에서는 한편의 영화가 개봉을 하였다. 군함도. 일제 강점기 하시마탄광(端島炭鑛)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전범기업 '미쓰비시(三菱, MITSUBISHI)'1890년에 해저탄광 개발을 목적으로 사들여 강제 징용한 수많은 조선인이 목숨을 잃은 가슴아픈 장소다.

 

<군함도 영화 포스터>

<지옥섬이라 불리던 하시마섬>

 

 

일본은 하시마 탄광을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아파트가 들어선 일본 근대화를 뒷받침할 탄광'이라며 2015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고, 201575일 하시마섬이 포함된 메이지(明治) 산업혁명유산이 결국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하시마섬 등재 전까지 우리나라는 강제징용 시설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선 안 된다며 반대 운동을 펼쳤다. 이후 한국과 일본은 일본 근대산업시설에서 의사에 반한 강제노동이 있었음(‘forced to work’)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에 명시키로 하고, 이들 시설의 유산 등재에 합의했다. 하지만 등재 이후 바로 일본은 ‘forced to work’라고 말한 것은 강제노동의 의미는 아니라며 입장을 바꿔 논란을 일으켰다.

하시마탄광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미쓰비시는 이와사키 야타로(岩崎 弥太郎,いわさき やたろう)에 의해 1873년 창립한 일본의 극우 기업이다. 정경유착으로 독점적 이익을 누린 것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2차 서계대전 당시 군수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이와사키 야타로의 삶을 들여다보면 하급관직과 변변찮은 장사치를 오가는 던 자였으며,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라는 인물과 접점을 이루는 시기도 있었다. (*사카모토 료마는 다음에 다뤄볼 인물이다.) 목재상과 해운업으로 부를 축적한 이후 증기선 2척을 인수해 미쓰비시 상회를 설립하고 미쓰비시 그룹의 창립자 된다.

그런 자의 집안의 저택과 정원이 우에노 공원(上野公園) 남서측에 위치하고 있다. .이와사키저택정원(旧岩崎邸庭園)이 그것이다. 이 곳은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1년 개원하여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현재의 저택과 정원은 과거 이와사키 저택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1878년 이와사키 야타로가 번주였던 마키노스케시게(牧野弼成)로 부터 주택지를 구입하였고, 현존하는 서양관은 이와시키 히사야(岩崎久弥)에 의해 영국 출신의 건축가 조시아 콘도르(Josiah Conder)의 설계로 1896년 준공을 하게 된다. 히사야는 야타로의 아들이며 미쓰비시 그룹의 3대 총수다.

 

<양옥(서양관)의 전면​>

<근현대건축자료관에서 바라본 서양관과 일본관(和館)>

 


 <양옥(서양관)의 후면, 우측 별채는 당구실이다. | 사진 : 석정민>

 




<서양관(양옥)은 공적 접객을 하던 영빈관이었다 | 사진:석정민>


서양관과 나란히 일본관(和館) 이라는 명칭으로 일본식 전통 건축물이 배열 되어 있다. 메이지 시대 저택은 이처럼 서양관과 일본관을 별도로 만들고 서양관은 공적인 접객 공간인 영빈관으로 그리고 일본관은 일상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또한 1896년 완공되었으니 120년 가량 밖에 안되는 근대의 일본 전통 건축물이다.

일본 전통 가옥을 봤을때 여러 면에서 디테일이 깔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눈이 가는 부분은 겉으로 들어나는 한옥으로 봤을땐 툇마루 같은 부분이다. 끝 마구리 부분에 목재로 가로막아 놓지 않고 한장이 고스란히 사용되어 정갈하다. 한옥보다 기술적인 문제에 있어 낫다기 보다는 한국과는 다른 목재의 성질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일본관(和館)의 외부 모습>

 


<복도에서 정원쪽으로 열려있다 | 사진 : 석정민>

 


<정원 그리고 툇마루, 툇마루의 디테일이 정갈하다.>


그리고 당구실(撞球室) 별채가 있다. 양옥을 설계한 조시아 콘도르가 설계한 것으로 외관은 교창구조(校倉造)의 스위스 산장풍이고, 목조고딕양식이라 기록되어 있다.

교창구조와 목조고딕양식이라는 것은 좀 생소하다.

그래서 인터넷의 힘을 빌어 '교창'을 보니 동북아시아권에 나타났던 그 형식이 서주하여 유럽권역으로 전해졌고 기독교 건축에서 독특하게 발전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교창은 통목이든 각목이든 적층하여 쌓은 형태를 말하는데 가옥 뿐만아니라 능()의 목곽에서도 나타난다. 아마도 통목에서 사각의 각목 그리고 삼각형 단면의 각목으로 발전하였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은데, 신라의 고분에서 나타나는 곽실은 시베리아에서 유래된게 아니라 독특한 묘제(墓制)라 밝히고 있는 글이 있는것으로 봐선 전파의 경로가 엇갈리고 있다.

그렇다면 예상컨데 문화적 전파 보다는 목재를 묘나 주거에 활용한 지역의 자생적 형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재료의 하이브리드를 이루기 전 목재로만 적층하였다면, 그리고 집을 짓는다는 문화적 시점까지 도달하였다면 적층이 무슨 대수였을까.


당구실 내부를 보기 위해서는 별도의 예약이 필요하다. 하지만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전범집안의 위락이 나에게 어떤 위안이 되겠는가. 그냥 교창구조라고 하니 외형만 훌터보자. 대마도 걸고 한판이라면 모를까.

 

 

교창(校倉)

3각형 단면의 나무를 옆으로 쌓고 짜서 벽을 만들고 지붕을 한 창고를 말한다. 옛날에는 갑창(甲倉)이라고 불렀고 제1급 창고를 뜻하며 때로는 우창(又倉)이라 한 적도 있다. 또 통나무를 쓴 환목창, 널판을 사용한 판창, 각목을 사용한 것도 같은 교창계통 구조에 속한다.

교창계 주거와 창고는 우리나라 동부 · 북부 · 중국 동북구지역 북부에서 시베리아 대륙 대산림지대, 중앙아시아를 거쳐 히말라야 산맥을 동주하고 또 한편으로는 서주하여 카스피해, 흑해 주변에 퍼져 유럽의 스위스 독일 등까지 미쳤다. 또 러시아 북부에서 스웨덴, 노르웨이 북부에 이르러서는 특이한 기독교 교회 건축에까지 발전하였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 산립지역에도 있고 아마도 시베리아에서 일찍이 유행한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에서는 전한시대의 정건루(井乾樓)가 교창조이고 전한 이전 묘실의 목곽(木槨)도 교창의 구조와 연관한다.

(미술대사전(용어편), 한국사전연구사)

 



<당구실(撞球室/사진:석정민) 별채와 교창구조>

 


<스탬프도 찍으려 했다 내려놓았다. 그냥 스탬프를 그리고 말았다.>


.이와사키저택정원(旧岩崎邸庭園)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어떤 것을 보기 위해서 이곳을 찾았다가 그냥 옆에 있기 때문에 들렀던 것이다. 여행기간 중 국립근현대건축자료관(国立近現代建築資料館)에서 전시가 있었다.

 


<일본 건축 드로잉>

 

 

건축에 있어서의 드로잉이란 일반적으로는 도면을 말합니다. 그 가운데는 스터디를 위한 스케치부터 설계도, 시공도,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아름답게 채색하고 음영을 장식한 렌더링 등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때에 따라 건축가들은 이러한 설계-시공 프로세스에서 상대적으로 자립한 세계를 종이 위에 추구했습니다. 일본에서는 특히 오사카 엑스포 이후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에 걸쳐, 건축 드로잉의 표현이 큰 비약을 보여 왔습니다. 전후 사회 극복을 모색하는 시대에 건축가들은 실무상의 요구를 넘어 많은 에너지를 드로잉에 쏟아붇게 됩니다. 화면은 커지고 기법이 다양화해졌으며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서 감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건축가들은 왜 그런 작품들을 그렸을까. 그들이 종이 위에 추구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나의 건물이 준공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완성되었다고는 할 수 없는 건축가의 비전이 거기에 드러나 있습니다. 1990년에 CAD가 보급되면서 설계 도서를 손으로 그리는 일도 없어졌으며, 도로잉을 통한 표현은 쇠퇴해 갑니다. 당시 건축가들이 그린 도로잉은 시대 속에서 어떤 의의를 지니고 있었는지, 지금 그것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있는지, 그것을 생각해 보자고 본 전시가 태어놨습니다.

 

위의 글은 전시장 입구에 한글로 친절하게 적혀있었다.

나 또한 도면을 손으로 그리던 세대는 아니다. 이미 학창시절부터 CAD를 접했었고, 포토샵이라는 신기원도 경험하고 실무를 접했다. 하지만 지금이 학창시절보다 더 많은 드로잉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 작업 자체를 조금은 소중하게 여겨왔고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아이디어 단계에서의 드로잉은 여전히 존재한다. 손이 귀찮아 지면 드로잉은 존재하지 않고 그 속에 담겨야 할 새로운 생각이나 아니면 여러 아이디어 들은 세상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드로잉은 건축가들에게 있어 중요하다.

 



<국립근현대건축자료관(国立近現代建築資料館)의 외부>


전시는 웬만큼 알만한 유명한 일본 현대 건축가이다. 와타나베유지, 하라히로시, 스즈키료지, 이소자키, 안도, 리켄, 다카마스신 등 학창시절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건축가들이다. 작은 엽서나 메모지에 그려진 드로잉부터 100호 정도 되어 보이는 큰 작업도 있었다. 소개글에서도 언급된 것 처럼 에너지가 느껴졌고, 건축가다운 발상과 독특한 기법의 작업들은 작품으로 보였다.

건축가는 화가는 아니다. 그래서 화가의 작업을 대하듯 전시를 봐라봐선 안된다. 하지만 도면은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3차원으로 만들어질 건축물을 2차원이라는 제약된 공간에 약속된 기호로 표현해야 한다. 그것을 일반 사람들에게 오감의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미지화 하라는 것은 폭행이다. 건축의 현장에 필요한 도면이 건축가나 엔지니어들을 위한 소통,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면 드로잉은 건축가와 일반인들간의 도구다. 그렇기 때문에 잘 다뤄져야 하는 이유다.

 


 <전시장 내부 | 전시장 가운데 사각의 박스 4면에 건축가들의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국립신미술관은 개관 10주년 행사로 안도다다오의 전시가 한창이고, 이 곳 국립근현대건축자료관은 건축 아카이브 답게 건축가들이 모두 모여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이다.

우리는 아직 근현대건축아카이브관도 없으며, 건축가를 제외하고는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건축이 문화라는 인식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우리 건축가들에게 있는 것도 확실하다. 그리고 해결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라 건축가들이 해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출처 Ι 건축가 이영재_일본건축 답사기 [1-4편]

작성자 Ι ​othersA

건축사사무소 이인집단 이영재

건축을 위한 새로운 안목.
집을 설계하고 책을 읽고 또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이너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