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분야
- 설계
- 대표자
- 유준상
- 설립
- 2013년
- 주소
- 서울 송파구 법원로 127 (문정동, 문정대명벨리온) 1504호
- 연락처
- 070-7545-7555
- 이메일
- atelierjun@daum.net
- 홈페이지
- http://www.a-jun.net
고증과 설계보완
이 건물의 내력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설계하는 시기에 집중적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최초 건립시점이 1930년대일거라 추측했는데, 문헌조사를 통해 그로부터 4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 1890년대임이 확인되었다. 아래 그림은 1880년대~1890년대에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영사관 앞 거리(현 관동로) 사진인데, 이미 이 사진속에 히로이케 데시로 가옥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19세기말 일본에서 한창 짓고 있던 건축양식은 마찌야(町家)다.
현대 한국어로 옮기면 '도시형 상가주택'쯤 된다.
조선 개항후 일본인조계로 들어온 초기 일본 이주민들 또한 이 마치야 양식으로 집을 지었을 것이다.
마치야는 대개 2층 구조를 가지며 1층은 점포와 접객공간으로, 2층은 점포주 가족들이 사용하는 내실로 대개 사용되었다.
도시 인구가 급증하여 건물의 이용효율을 높이려는 압박이 심해진 19세기 말 이후부터는 3층으로도 지어졌다고 한다.
1층의 평면구조는 아래 왼쪽 그림과 같다.
대로에 면한 1층 전면부에 상점(みせ,미세)이 있고 안쪽에 부엌 등 복합공간으로 사용하는 中の間(나카노마)가 있다.
그 뒤쪽에 집의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座敷(자시키)가 있으며, 현관부터 안뜰(にわ,니와)까지 이어지는 좁고 긴 통로(通り庭, 토오리니와)가 이 세 공간의 측면에 자리잡고 있다. 안뜰의 뒤쪽에 본채를 마주보는 위치에는 仕事場(시고토바)가 있어 여러가지 작업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했다.
오른쪽 평면도는 철거 전에 실측한 히로이케 데시로 가옥의 평면구조다. 본채 끝부분에 위치한 방과 부엌은 후에 바닥 난방과 벽체 보강을 하며 구획을 나눈 것으로 보인다. 안뜰 위쪽 구석에 있는 욕실도 목구조인 본 건물과는 다르게 조적조인 것으로 보아, 한참 후에 필요에 의해 지어졌을 것이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형적인 마찌야의 구조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 구한말~일제 강점기 인천 중구 거리 사진을 참조하고 자료를 검토하며, 최초 설계가 상당부분 보완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다음 그림을 보자
공사 전 이 집 2층 창가에는 그림처럼 테라스가 있었다. 있던 테라스는 살려두었고(1), 1층 외부창문은 2,3층과 똑같은 모양으로 설계하였으며(2), 건물 주 출입문은 양개 자유조방문(3) 방식이었다.
몇 달 동안 고증과 보완을 거쳐 아래 그림으로 입면이 바뀌게 되었다.
[참고] 공사전 건물 사진 ▼
19세기말에 건립된 마찌야의 전형을 따르는 건축물이므로, 최초 건립시에는 테라스가 없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테라스를 없애고 눈썹지붕을 올렸다. 도로에 면한 1층 창문에는 일본식 가옥의 전통을 따라 외부격자창 (表格子, 오모테코우시)을 달았다.
출입문의 개폐방식에 대해서는 자유조방 여닫이문이 당시에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은행이나 경찰서처럼 대규모 관공서 건물에 한해 쓰였다는 지적에 따라 2폭 미서기문으로 최종 변경하게 되었다.
마찌야구조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일본인가옥의 복원사례를 찾아 디테일한 시공계획을 세우는데 반영하기도하였다.
위 사진은 군산 소재 히로쓰가옥 외벽의 비늘판벽(下見板) 누름대((押緣) 시공모습이다.
비늘판벽은 베벨사이딩(beveled siding)을 말하는데, 요새 공장에서 나오는 기성자재에 비해 폭이 넓다.
판벽을 고정하기 위해 중간중간에 덧댄 누름대는 자세히보면 경사진 모양대로 일일이 정교하게 깎아서 붙여놓았다.
제대로 된 고증없이 모양만 비슷하게 만들어 놓으면 참 어설퍼 보인다는 것을, 인근 동국사 앞길 벽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래 사진을 위 사진과 비교해보면 위에서 언급한 두가지 중요한 특징이 차이가 난다.
사이딩재의 폭은 좁고, 누름대는 안쪽면을 모양대로 깎지 않고 그냥 대서 붙였다.
이와 같이 흥미롭지만 복잡하고 많은 시간이 소요된 고증단계를 거쳐 이제 비로소 시공에 돌입할 수 있었다.
[Good HAUS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