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22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뿐 아니라 다음 22세기를 살아갈 누군가에게도 쓸모 있는 것들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며, 건축을 기반으로 드로잉, 가구, 인테리어, 조경 등 우리의 삶과 마주한 부분들로 디자인 영역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 전문분야
- 설계
- 대표자
- 이동우
- 설립
- 2020년
- 주소
-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 168 (마곡동) 마곡747타워 1313호
- 연락처
- 02-6925-2201
- 이메일
- studio22kr@gmail.com
- 홈페이지
- http://studio22.kr
집의 내력을 보여주는 흔적들
시공전 현장 확인을 하다가 혹은 철거를 하며 곳곳에서 이 집의 오랜 내력을 알려주는 증거들이 나왔다.
먼저 흙벽. 아래 사진과 같이 나무 기둥과 기둥사이 벽체는 흙벽이다. 짚끈으로 엮은 대나무살을 좌우 기둥에 단단히 고정한 다음 찰흙을 이겨 판판하게 채운다음, 5mm정도 두께로 얇게 회칠로 마감하였다.
그런데, 처음 시공한 흰색 회벽은 시간이 흐르며 오염되었을 것이다. 벽지를 발라 흙이나 회칠이 부서지는 것을 보강하는 인테리어를 여러번 거듭했던 것으로 보인다.
위 사진은 2층 중간방 정면 벽체 철거중에 찍은 것이다.
회벽위에 페인트 도색을 하였고, 그 위에 초배지로 신문(1930년대 每日마이니치 신문)을 바른 다음 다시 도배지를 정배로 발라 붙였다.
방에 따라서는 초배지로 신문 대신 장부책 종이를 쓴 곳도 있었다. 이 집이 야마토쿠미 - 인천항을 들고 나는 화물을 운송하는 하역사무소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수십년 동안 쌓인, 보관할 필요성이 더이상 없어진 낡은 장부책이 끊임없이 생겨났을 터이다.
네댓겹 들러붙어 있는 초배지+정배지 꺼풀을 깨끗하게 떼어내보니, 원래의 회벽이 우수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곳도 있다.
이 사진은 3층 벽면으로, 짖궂은 낙서가 그려져 있다. 오른쪽에는 삿갓을 등에 매고 장삼을 걸쳐입은 승려의 뒷모습도 볼 수 있다. 보존가치는 알 수 없으나 이 집의 역사성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부분이라 벽을 허물거나 덮어버리지 않고 유리로 보존하였다.
벽면 철거가 진행될 수록 곳곳에서 낙서가 나타났다.
신문지와 낡은 장부종이가 어지럽게 붙어있는 것을 떼어낸 아래 회벽면에는 상투를 튼 주먹코의 남자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공사 전 2층 계단 앞 첫번째 방 벽면이다.
일본인 거주시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짚다다미도 남아 있었다.
유지관리가 쉽지 않아 요즘엔 일본에서도 짚다다미를 잘 쓰지않는다고 한다.
위 사진은 3층 천장면을 올려다 본 모습이다. 마찌야의 전통적인 천정 마감방식인 網代天井(あじろてんじょう,아지로덴죠)다. 갈대나 노송나무를 앏게 찢어 엮어만든 것이다. 이 또한 이 집이 얼마나 오래된 곳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에 해당한다.
아쉽게도 지붕공사시에 함께 철거되었다. 100년이 넘은 시간동안 머금은 습기와 계속된 부식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다음 사진은 뒤채 방바닥 철거장면이다.
앞에 잔뜩 쌓아놓은 돌더미는 방구들이다. 열전도성이 좋아 온돌방 구들재료로 최고로 쳤다는 점판암이었다. 굉장히 오래전에 한국식 온돌방 공사를 해서 사용해온 흔적인 것이다. 이 돌은 안뜰 디딤돌과 화분받침대로 재사용하고 있다.
이 집이 어떤 집인지를 직접 드러내주는 흔적들도 계속 발견되었다.
2층 나무 벽체에 야마토쿠미 (大和組)가 선명하게 적혀있다.
팟알에 게재된 이 집의 연표를 보면 야마토쿠미는 오사카상선의 화물을 취급하는 하역업무를 했다고 한다. 좌우측 외벽 보강 공사를 위해 2층 교육실 동쪽 내벽면을 뜯어내던 중 아래 사진과 같은 홍보물이 나왔다. 大阪商船(오사카상선)주식회사가 메이지 34년과 35년 (1901년, 1902년)에 출항하던 지점망을 안내하는 포스터다. 역시 이 집이 아무리 짧게 잡아도 111년 이상되었다는 증거물이다.
요새 건축공사를 완료하면 머릿돌(정초)을 세워 시공자와 설계자의 이름을 써놓듯, 과거 목조건물을 짓던 시절엔 대들보에 대목수의 이름을 써놓았다고 한다.
이 집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