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22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뿐 아니라 다음 22세기를 살아갈 누군가에게도 쓸모 있는 것들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며, 건축을 기반으로 드로잉, 가구, 인테리어, 조경 등 우리의 삶과 마주한 부분들로 디자인 영역을 넓혀가고자 합니다.
- 전문분야
- 설계
- 대표자
- 이동우
- 설립
- 2020년
- 주소
-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 168 (마곡동) 마곡747타워 1313호
- 연락처
- 02-6925-2201
- 이메일
- studio22kr@gmail.com
- 홈페이지
- http://studio22.kr
양평 운정헌(雲庭軒)
집이라는 우주가 탄생하는 과정
오래되지 않은, 그리고 몇 번의 경험으로 집의 시공까지 책임을 지겠다 했지만, 결국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번민과 해탈과 고뇌와 행복이 두루두루 공존할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래되지 않은 몇 번의 경험이라 치자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덥석 문 것인데, 이 중독성의 매력을 다시금 곱씹고 싶은 욕망과 그 욕망 속에서 겪었던 고통들을 쉽게 잊어버리는 습성탓에 또 다시 자갈길을 선택하였다.
첫 단추부터 난항이었다.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는 대지인 탓에 지하수 개발을 해야 했는데 비가 퍼붓는 장마의 어느 날 지하수관정공사는 진행되었지만 물은 채 2톤이 나오질 않는다 했다. 결국 다른 업체가 달라붙어 관정을 파긴 했지만, 물은 좋지 않은 성분이 든 탓에 시험에 통과를 못하고 급기야 5톤이 나올거라는 예상을 깨고 채 1톤도 나오질 않게 되었다. 물 문제는 집을 짓는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미장을 발라야하는데 물이 없다. 방통을 쳐야하는데 물이 없다...물차를 빌리고 아직 사지 않아도 되는 물탱크를 사서 물을 길러서 써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리고 냉난방 열원을 기름보일러에서 지열로 선회하면서 기존의 보일러실은 창고로 변하고 부엌벽쪽에 새로운 문과 지열보일러실이 들어서야했다. 미처 생각지 못한 매스가 달라붙어 어정쩡한 포즈를 취하게 되었다. 내 탓이 아님에도 내 탓 같고, 내가 괜히 집에 미안해 한다.
어찌하였던 건축전공 건축주를 이끌고 건축설계를 하는 건 편함과 불편이 공존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내가 선배라 한들 건축가 위에 건축주 있으니 말을 해도 조심스럽고, 작은 작업에도 신경이 쓰인다. 십 수 년 전엔 스케일로 때리면서(?) 가르쳤던 녀석인데 건축주로 늠름하게 자라주셔서 고맙고(엉?) 전에 몇 번의 집을 지으면 있었던 고충들을 털어놨을 때도 관리자의 중요성을 잘 안다며 그저 선배님 믿고 간다는 말을 해주며 이끌어주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ㅠㅜ
집의 이름은 양평운정헌(雲庭軒)이다. 지역+집이름을 사용하는 건축가의 버릇을 미리 알고 이름까지 지어오셨다. 운정(雲庭)은 건축주 아버님의 호이다. ‘구름정원’이라 하면 딱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없지만, 할아버지가 손주 손녀를 위해 마당 넓은 집을 지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전해지는 집이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무튼 집은 8월 15일부터 기초를 시작으로 착공하였다.
대지의 테두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집의 위치가 조금씩 조정되었고, 평지라 믿었던 대지는 주택과 창고의 레벨이 최소 50센치 가량 차이가 남에 따라 남쪽의 땅에서 흙을 파 주택부분의 땅을 돋우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예상에 없던 토목공사로 집의 높이를 잡는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초 작업 시 레벨을 확인하니 창고 쪽이 20센치 가량 더 높아 결국 데크도 그 높이를 따라야 했다. 결과적으로는 집의 높이를 더 높였어야 했는데, 그 부분이 아쉽게도 실현되지 못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일들은 매번 현장을 찾을 때마다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을 융통성 있게 풀어 내는 게 나의 임무였고, 그것을 최종 컨펌 받는 과정에서 건축주는 아주 큰 역할을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디자인에 대한 의지, 집에 대한 큰 그림을 놓치지 않으려하는 건축가다운 건축주였음은 확실하다. 잘 가르친 보람이 있다.-_-
3주정도의 시간이 지나 목구조가 완성이 되었고 집의 높이, 부피, 창의 크기 등등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 건축주의 부모님께서 현장을 찾아주셨다. 박공지붕을 따른 2층 천정을 누구보다 좋아해주신 어머님 덕에 그날은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서 몇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벽돌마감과 지붕의 간섭으로 인한 공정이 늘어나게 되었고, 간간이 내리는 비 덕분에 벽돌공사가 지연되어 지붕공사부분은 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애초 산정한 벽돌공사의 재료비는 정확히 맞췄는데 인건비는 한없이 늘어나 현장소장님의 죽는 소리를 현장방문 때마다 들어야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나의 탓이요 라고 하기엔 액수가 너무 크다. 목구조에서도 벽량을 제대로 산정하지 않은 탓에 구조목이 다른 집에 비해 1.3배는 더 들어갔다며 우는 소리를 하셨는데, 이번에 벽돌, 다음은 타일, 그 다음은 내부 가구 등등.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금액의 차이가 보인다. 결국 나의 감리비도 이집의 천정마감 재공사와 타일공사에 일부 투입되었다. 물론 내가 댈 수 있는 공사비 내에서 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현장에서 터지는 수 만 가지 문제들을 풀어내는데 전념을 다 해 주신 현장소장님께 정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렇게 몇 개월의 작업은 11월 중순 준공으로 마무리 되었고, 건축주의 추가공사 요청으로 지열보일러실과 주차장 그리고 조경, 담장 등의 공사를 끝으로 1월 13일에 건축주 부모님께서 울산에서 먼 길 떠나 이사를 오셨다.
사실 이렇게 수 십 줄의 글로 이 집이 지어진 과정을 다 열거하기란 무리가 있다.
건축주와 나눈 카톡 메신저를 스크롤 하다가 도무지 그 처음이 나오질 않아 포기도 했다. 수많은 결정과 고민 속에서 집의 하나하나가 만들어지고, 생각이 물질과 형태로 실현되는 모습 속에서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 작은 우주를 만드는 과정은 온갖 감정들이 모순되게 뒤섞여 종국에는 매듭이 풀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다시는 아는 사람 집짓지 않겠다 맹세를 했지만, 이 맹세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나도 모르겠다. 고통을 쉽게 잊는 이 망할 습성 덕분에 또 누군가의 집을 지으며 괴로워하고 기뻐하고 욕하고 슬퍼하고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누군가의 우주가 되는 집이라면, 내가 만든 누군가를 위한 우주라면, 내가 남기는 하나의 우주라면, 아마도 다시 또 백치미를 발휘하여 뚝딱뚝딱 또 누군가의 우주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그래 이게 내 직업이니까 별 수 없는 노릇이다.
△ 배치도 / 1층 평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