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발로 풍경을 읽어내는 사람이고
읽어낸 풍경을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이고
그 기록들을 양분 삼아 디자인을 풀어내는 사람입니다.
- 전문분야
- 설계
- 대표자
- 천경환
- 설립
- 2011년
- 주소
-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150-5 깊은풍경건축사사무소
- 연락처
- 02-525-0429
- 이메일
- lazybirdc@naver.com
세종시 단독주택
#2. 건축 허가
지난 4월 말, 건축 허가 과정에서 지구단위계획 지침 해석 관련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세종시는 지구단위계획 지침을 엄격히 적용하기로 유명합니다. 세종시청 건축과와 별개로, 지구단위계획 관련 내용을 담당하는 ‘행복청’이라는 별개의 기관이 있을 정도입니다. 정돈되고 일관된 도시 풍경을 연출하기 위함이겠지요. 여러 지침 내용들 중 지붕 모양 관련된 ‘권장사항’이 있는데, 그 권장사항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완’ 지시가 떨어졌었고, 설계자로서 그 지시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반박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제2편 용지별 시행 지침 / 제1장 획지형 단독주택 용지 / 제5조 지붕 및 옥탑
3. 경사의 방향은 가로에 대해 직교 방향으로 할 것을 권장한다. 또한, 인접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어 시각적(경사 방향, 각도), 실용적 조화(우수처리 시설 등)를 이루도록 한다.
제5조 지붕 및 옥탑 내용 중
1항 경사지붕 조성 의무화, 수평 투영 면적 비율, 물매 규정
4항 평지붕 외곽 경사지붕 설치 금지 규정
6항 승강기탑 등 높이 규정 등이 의무사항임에 비해 유독 3항은 권장사항이며, 같은 조항 안에 시각적 조화, 실용적 조화라는 단서가 붙어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권장사항이라는 것은, 특별한 사유에 의해서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권장사항을 형식적으로 지켰을 때, 시각적 조화, 실용적 조화에 오히려 어긋날 수 있으므로 이 때 예외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여지를 ‘권장한다’라는 형식으로 남긴 것은 아닐까요?
우선 건축주의 요구에 따라 평면과 배치를 계획했습니다. 직사각 덩어리의 단변이 도로에 접하는 모양으로, 도로에 직교 방향으로 길게 배치되는 계획입니다.
도로에 직교 방향으로 물매를 잡으면, 집이 지나치게 거대해져 공사비가 증가하고, 주변에 위압적인 이미지로, 시각적 조화를 해치게 됩니다. 빗물이 양쪽 단변으로, 일부분에 몰리게 되어, 우수처리 시설 등의 실용적 조화 또한 해치게 됩니다.
위압적 이미지(시각적 조화를 해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가운데를 접으면, 가운데에 골짜기가 생겨서 빗물과 눈이 고이게 됩니다 (우수처리 등 실용적 조화를 해치게 됨). 특히 상업시설이 아닌 단독주택의 경우, 건축주의 관리 부담이 큰 문제가 됩니다.
가운데를 평지붕으로 두면, '4항 평지붕 외곽에 경사지붕 설치 금지'라는 의무사항에 위반됩니다.
가운데에 다른 방향의 경사지붕을 둘 경우 우수처리 등 실용적 조화는 무난히 해결되지만, '4항 평지붕 외곽에 경사지붕 설치 금지'라는 의무사항에 사실상 위반됩니다. 풍경 연출 입장에서 사실상 평지붕 외곽에 경사지붕을 설치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건축 허가 신청 내용입니다, 경사의 방향이 가로에 대한 정확하게 직교 방향은 아니지만, 사방으로 빗물을 흘려보낼 수 있어 실용적 조화(우수처리시설 등)가 탁월합니다.
일부 지붕면은 정남향을 향하게 되어, 태양에너지 설비에서도 실용적 조화(우수처리 시설 등)가 탁월합니다.
2항 태양에너지 설비 관련 내용인
- 설비의 구조물은 가급적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 효율적 활용을 위하여 물매...
- 가급적 지붕과 일체화된 구조,,,에 최대한으로 충실한 계획이 됩니다.
건축 허가신청 계획안은 지붕경사의 방향이 가로에 대해 정확하게 직교는 아니지만, 한 방향으로 기울어진 지붕면이 가로를 향해 드러난다는 점에서 권장사항의 취지에 부합하며(시각적 조화), 뾰족하게 드러나는 요소 없이 고른 실루엣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6항의 취지에 부합)
또한 지붕면에 빗물이 고이는 일 없이 장단변 사방으로 빗물을 흘려보내는 구조이기에, 우수처리에 효율적이며(실용적 조화), 일부 지붕면이 정확하게 정남향이 되어 태양에너지 설비 배치가 최적화된다는(실용적 조화) 장점이 있습니다.
문제의 조항이 왜 의무가 아닌 권장사항으로 되어 있는지 짐작하고, 계획된 평면 계획에 권장사항을 의무적으로 적용한다면 불합리합니다. 그러므로 허가신청 내용이 권장사항과는 조금 거리가 있으나, 오히려 여러 면에서 지구단위계획 지침의 취지를 잘 살리고 있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보고서도 만들고 모형도 만들어서 협의를 해보았으나, 이의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구단위계획 권장사항에 맞춘 지붕 디자인의 대안을 새롭게 만들어, 그 내용으로 건축 허가를 받아서 시공 중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지구단위계획 지침은 정돈되고 일관된 도시 풍경을 연출하기 위해 설정된 약속입니다. 결과적으로 개별 건축가의 디자인 자유를 제약하기 마련입니다. 지구단위계획지침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건축가로서 마땅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형식적으로 지키기보다는 지침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구단위계획 지침 적용 방침이 까다로워진 데에는, 지구단위계획 지침의 취지를 무시하고 지침의 적용을 편법적으로 회피해온 건축가들의 책임도 어느 정도는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지침의 적용을 경직되게 주장하는 담당자들의 입장 또한 이해하지만 아무래도 아쉬움은 남습니다. 당시의 허가 신청안이 지구단위계획 지침의 취지에 더 충실한 안이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