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집(素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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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천 카페거리 인근에 위치한 대지. 대지면적 146㎥에 제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필로티 포함 5개 층에 2세대씩 배치하여 주인세대 포함 총 9세대가 있는 다세대주택을 계획하면 적절한 규모였다. 그러나 건축주는 스킵 플로어를 활용해 공용면적을 줄이고 2, 3층에 각 4세대씩 총 13세대를 배치할 것을 요구했다. 

시대적 화두에 응답하다.

문제는 스킵 플로어를 도입하면 건물 중심에는 계단실과 승강설비가 위치할 수밖에 없는데 인접대지 일조 사선을 받는 주거지역에서는 금기에 가까운 평면 형식이었다. 일조사선을 피하기 위해 건물 내부를 관통하는 계단실을 외부로 처리하려다 보니 세대 문을 나서면 바로 외기에 접하게 되고, 각 세대 면적이 유별나게 작아지는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2~3층 구성에 중점을 둔 평면이라 승강 설비가 평면의 중심을 가로질러 5층 주인세대의 구성이 적절치 않으며, 스킵 플로어에 계단실까지 복잡해 골조의 난이도가 높아 공사비가 상승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결국 건축주는 사업성과 거주성을 비교하게 되었고, 장고 끝에 사업성을 선택하였다.

△ 모형 사진

따라서 우리는 286.81㎡의 볼륨 안에 주거 12세대와 1층의 근생까지, 총 13개 유닛을 배치했다. 적절한 보안과 단열이 담보된다면 계단실을 따라 작고 예쁜 공간들을 나열할 기회가 될 수 있기에 공동주택의 공용공간이 외부인 것은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고, 풀옵션 빌트인을 전제로 세대의 단위 평면을 치밀하게 계획하여 작은 세대 면적을 극복했다. 공사비의 상승은 추가되는 3세대의 임대료로 보상될 것이다. 양재천을 접한 지역 특성까지 고려하면 초기 투자비용을 회수하는 것은 생각보다 빠를 것으로 보인다. 주인세대가 조각나는 문제는 도리어 5층을 적극적으로 두 세대로 분리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비슷한 유닛이 계단실을 따라 놓여 있고 가족 구성원이 향후 필요에 따라 각 세대를 방처럼 점유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계획하였다.

건축주는 시대의 화두 중 사업성을 택했고, 우리는 13개 유닛의 거주성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노력했다. 설계안에 대한 시공자의 정성 어린 화답까지 더해져 '소슬집'이 완성되었다.

스킵 플로어가 선사하는 풍경

매스의 윤곽과 창문 배치를 통해 스킵 플로어 구조를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였고 이를 외부로 드러내었다. 백색의 껍질로 감싸진 상층부와 골조가 드러난 저층부가 만나는 경계의 움직임은 건물의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데, 이 역시 스킵 플로어라는 건물 구성을 따라 움직인 결과물이다. 

경사벽을 포함한 외벽 대부분이 백색 스타코로 마감되었기 때문에 오염에 대한 대책이 중요했다. 그 결과 흔히 사용하지 않는 디테일까지 동원해 시공을 마쳤고, 미세먼지와 장마가 연달아 이어진 공사기간 덕에 마감의 실제 성능에 대한 충분한 점검이 가능할 수 있었다. 

△ 주차장

12개의 주거 세대와 1층의 근린생활시설까지 총 13개 유닛이 사용하는 만큼 1층은 필로티 구조로 총 6대의 주차공간을 확보하였다.

△ 건물 출입구

공동주택인 만큼 보안도 중요하니 세대 현관문과는 별도로 건물 출입구에도 잠금장치를 달았다. 또한 담장 없이 1층의 구조물들을 활용하여 자연스럽게 보안이 이뤄지고 있으며, 와이어와 투시형 대문으로 마무리해 1층에 필요한 개방과 보안의 균형을 찾았다.

△ 1층 근린생활시설 (사무실)

△ 1층 근린생활시설 (사무실)

계단과 복도의 바닥은 베이지색의 콩자갈 수지 포장이다. 계단실이 외부이다 보니 미끄럽지 않은 조경 포장재로 선택했다. 무채색의 매스 사이로 노란 계단이 넘나드는 모습을 통해 동선의 흐름이 읽힌다. 우리는 계단실을 단순히 통로가 아닌 바람과 빛이 스며드는 작은 거실이자 마당으로 만들고자 했다. 

임대 세대

면적이 작은 개별 세대 안에서 여러 가지 생활상을 담을 수 있도록 화장실과 다용도실, 빌트인 가구와 콘센트 등의 배치를 세밀하게 다듬었고 세대마다 조금씩 다른 위치에 창문을 배치하여 개별성도 확보했다. 

△ 201호 모습

△ 201호 모습

△ 301호 모습

△ 301호 모습

△ 4층 계단실 모습

△ 4층 테라스

△ 4층 테라스 모습

△ 폴딩도어를 설치하여 테라스로 공간을 확장할 수 있는 402호 주방

△ 402호 주방 및 테라스

402호는 스킵 플로어 구조를 세대 내부에서도 실현시킨 공간이다.

△ 402호 침실

△ 마주보고 있는 401호와 402호의 현관

△ 4층에서 5층으로 연결되는 외부 계단

백색의 껍질 중간을 비집고 나온 4층과 5층 계단은 저층부와 같은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되었다.

5층 주인 세대

5층 주인세대는 계단실로 인해 나눠지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두 세대로 분리하여 대응했다. 우리가 상상한 주거방식은 주어진 볼륨을 최대한 조각낸 후 가족 구성원들이 그 조각난 세대 여기저기에 흩어져 사는 것이었다. 비슷한 유닛이 계단실을 따라 놓여 있고 구성원은 그때의 필요에 따라 임의적으로 각 세대를 방처럼 점유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가족 구성원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가족의 형태가 대를 이어 동일하게 유지되는 시대는 지났고 사는 동안 한 건물을 점유하는 정도나 방식이 수시로 변하는 추세니 이런 구성은 나름대로 시대에 걸맞다. 이는 주인세대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며, 한 임차인이 여러 세대를 임대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의 가족 구성원은 자기 취향에 따라 각 세대로 흩어질 것이다. 사무실 임대하듯 주거를 임대하는 셈이다. 이때 가장 큰 변화는 거실의 상실이다. 이 집에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거실이 없다. 건축주는 502호를 거실로 사용할 계획이지만 집안의 중심에서 모든 방을 통제하는 전통적인 전제군주로는 작동하지않는다.

△ 501호 현관 

△ 501호 주방

△ 501호 다락

△ 501호 다락

△ 501호 다락

 주인세대가 사용하는 501호는 다락과 연결되어 세대 중 가장 큰 공간감을 가지고 있다.

△ 주인 세대가 거실 공간으로 사용하는 502호

502호와 202호, 203호는 모서리를 가로지르는 창을 뚫어 다른 세대보다 조금 더 시원한 개구부를 가지게 되었다.

보통 크기의 창을 가진 나머지 세대는 대신 더 큰 수납공간과 벽면을 가진다. 창문과 수납, 개방성과 아늑함 사이에서 임차인은 취향 따라 세대를 고를 수 있을 것이다.

△ 402호 테라스

△ 건물 출입구

하나의 건물이 옳게 지어지기 위해서는 관련된 전문가들이 각자의 일을 옳게 처리하면 된다. '소슬집'의 경우 미정이었던 상세는 도면을 깊게 이해한 시공자가 적절히 채워 완성한 건축가로서 더없이 안심되고 든든한 과정이었다.

살기 좋은 건물을 만들려는 우리의 의도와 건축주의 사업 계획이 결합하여 엉뚱하고도 전위적인 건물이 나왔다. 사업성을 최대한 추구한 결과, 요즘 시대에 어울리는 개성 있는 거주방식을 만들어낸 '소슬집'이 이제 건축주의 손에서 그 매력이 활짝 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