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ure는 모습, 형상, 그림, 값, 수치, 도표 등으로 번역합니다. 동사로는 이해하다, 계획하다, 설명하다, 예상하다 라는 뜻으로 쓰이고, figurative라고 하면 비유적인, 구상적인 이라는 형용사가 됩니다. 문학에서 figure는 언어의 무늬를 그린다는 뜻에서 문채(文彩)라고 하고, 심리학에서 figure-ground라고 하면 전경-배경이라는 지각의 원리를 설명하는 용어입니다.
이렇듯 figure라는 말은 설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클라이언트와 소통하고 프로젝트 구성원과 협의하며 사회의 필요를 반영하려면, 건축이 구체적인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얼마큼 주위와 관계하고 땅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지, 무엇으로 공간을 채우고 운영하는지, 어떻게 형태를 만들고 짓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과 그림, 수치와 도표를 통해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피그건축사사무소(fig.architects)는 설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의 건축을 합니다.
- 전문분야
- 설계
- 대표자
- 이주한
- 설립
- 2015년
- 주소
- 서울 중구 필동2가 123-4 3층
- 연락처
- 02-6405-1983
- 이메일
- fig@figarchitects.com
단단단단 기숙사
1. 대지이야기
'단단단단 기숙사'가 들어설 동네는 인천의 대표적인 저층/고밀의 주거지역인 가좌동입니다. 인천지역에서도 비교적 개발이 더디었던 탓에 70년대에 형성된 좁은 골목길과 1~2층의 낮은 주택들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동네를 처음 방문하게 되면 마치 몇 해 전에 크게 유행한 TV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덕선이가 대문을 열고 나올 법한 느낌도 듭니다.
△ '응답하라' 시리즈의 배경 같은 동네, 가좌동
△ 대지 현황
'단단단단 기숙사' 부지는 이런 동네 안에서도 독특한 여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땅의 모양은 단독주택이 있던 2개의 필지를 합쳐서 동서방향으로 긴 직사각형 형태입니다. 동측과 서측 양옆으로는 2층짜리 오래된 건물이 있고, 남측과 북측의 긴 변으로는 폭 3미터 내외의 좁은 골목길이 있습니다.
이 골목길들이 재미있는 것이 남과 북이 전혀 다르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북측의 도로는 막다른 도로인데, 도로라기보다는 그 길에 면해있는 6개 집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차장이나 마당처럼 보입니다. 남측의 도로는 주변의 도로나 골목길들과 연결되는 통과도로로서 우리 땅으로 들어오기 위한 메인 도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폭이 3.5미터밖에 되지 않아서 사람과 자동차가 같이 다니기에는 비좁고 위험한 길입니다.
△ 북측 막다른 도로, 주차된 차들 너머의 공간은 둘러싼 집들의 공용 마당과 같이 보입니다.
△ 남측 통과도로, 주변의 도로나 골목길과 연결되긴 하지만 폭이 좁아 위험해 보입니다.
이 땅의 지적도를 확인해보면 또 다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남측의 통과도로는 지적상으로는 도로가 아닌 대지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70년대 이후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비록 공공도로는 아니지만 주변과 연결이 잘 되는 이곳으로 점차 많은 사람들이 다니게 되고, 그러다 결국은 실제 도로와 같이 사용되어 온 것 같습니다.
△ 북측 막다른 도로는 지적상 도로(143-17도) 이지만, 남측 통과도로는 지적상 도로가 아니고 143-22, 143-81, 143-153 등 개별필지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건축법에서는 건물이 들어서기 위한 대지는 반드시 일정한 폭 이상의 도로에 접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건물로 가기 위해서는 자동차와 사람의 접근이 모두 원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도로가 좁을 때에는 신축할 땅의 일부를 도로로 내어 놓고 그 위로는 건물을 짓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우리 대지로 돌아와서 보면, 기숙사의 남측과 북측 골목길은 모두 현행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폭이 되지 않기 때문에 대지의 일부를 도로로 만들어서 도로 폭을 넓혀야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북측의 막다른 도로는 지적도상 도로이기 때문에 우리 대지의 일부를 도로로 만들어서 확장해 주고, 나머지 대지에 건축물을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남측의 통과도로는 지적상으로는 도로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대지의 일부를 도로로 만들 필요가 없고, 만들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지적상으로는 주변에 도로가 없기 때문에 우리 대지의 일부를 도로로 만들어봤자 관청에서 인정해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멀쩡한 우리 대지를 법에서 요구하는 것도 아닌데, 단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위해서 도로로 선뜻 내어놓겠다는 건축주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 부지 현황도
이번에는 새로 생길 건물이 어느 정도의 규모가 될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2층 정도의 낮은 건물들로 이루어진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지려면 건물의 규모는 작은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 집은 직원들을 위한 기숙사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필요한 방의 개수와 규모가 있습니다. 이것을 감안하면 5층 규모의 건물이 되어야 하는데, 이는 기존의 단층짜리 단독주택보다 5배나 큰 덩어리가 새로 생긴다는 말이 됩니다. 거기에 기존에는 두 필지로 나누어져 단독주택 두 채가 있던 곳이 지금은 하나로 합쳐진 5층짜리 건물이 된다면 그 상대적인 크기는 훨씬 더 어마어마해집니다. 낮은 건물들로 이뤄진 좁은 골목길에서 그 큰 건물이 주게 될 위압감은 뭐 따로 말할 것도 없고요.
사용 방식이 다른 두 개의 좁은 골목길과 주변에 비해 훨씬 큰 규모로 들어서야 하는 건물.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에서부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