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6.02.27
- [현대건축답사] 도천 라일락집
- 건축답사_도천 라일락집_정재헌
한동안 바쁜 업무 탓, 떨어진 체력 탓, 추운 날씨 탓을 해가며 미뤘던 답사를 다녀왔다. 건축설계를 업으로 하고 있기에 도면, 현장 등과 가깝게 지낼 수 있지만, 굳이 새로운 건축물을 찾아 다니는 이유는 책상머리에서 얻을 수 없는 새로운 것을 실제로 보고 배우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그 동안 답사를 게을리했단 생각에 스스로 자책을 하며 답사지를 골랐다. 답사할 건축물을 정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수상작 리스트를 보는 것이었다. 물론 스스로 면밀하게 건축물을 찾아 조건을 보고 찾는 것이 이상적이겠으나, 수상작을 답사리스트로 두는 이유는 어떠한 상의 수상작라 함은, 또 그것이 다른 건축가들로부터 심사받아 선정된 것이라면 나보다 더 뛰어난 건축가들로부터 면밀하게 검토받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은 답사지는 작년 2015년도 서울시 건축상 대상 수상작인 '도천 라일락집' 이다.
도천 라일락집
경희대학교의 정재헌 교수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화가인 고 도상봉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을 겸하는 주택이다. 정재헌 교수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모르나 프랑스에서 유학하였고, 이상주의적인 건축가라는 정도만 알고 있다. 이상주의라는 수식어가 붙은 건축가는 굉장히 고집있게 자신의 건축적 욕망을 표현하려 애쓰는 성향을 지녔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더욱 답사가 기대되었다. 건축물은 창경궁 옆 골목길 한 어귀에 자리하고 있다.
건축물의 외관
라일락집의 외관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부분은 분절된 매스이다. 라일락집은 골목길의 끝, 세갈래의 길이 만나는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찾아가는 동안 골목길을 둘러보면 거대한 규모의 건물이 없다. 건축가는 그것을 인지하고 설계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 사진은 라일락집을 건너편에서 바라본 모습인데, 검은 전벽돌의 매스와 붉은 벽돌의 매스가 떨어져 분리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대지의 크기에 비례해 충분히 큰 덩어리로 표현할 수도 있던 것을 주변상황을 고려해 나누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추측할 수 있다. 여기에서 주변상황을 고려해 나누었다는 것이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위와 같은 대지 조건과 상황에서 건축가는 여러 방법중 분절시키는 방법을 택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건축물의 전체적인 입면을 보았을 때, 외부를 향하여 열린 부분은 아래 사진의 발코니 뿐이다. 나머지는 건축물의 내부쪽에서 마당을 향해 열린 것이나 환기나 최소한의 채광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이는 작은 창들 뿐이다. 아마도 주택이라는 용도 혹은 건축주의 요구 등의 이유로 바깥으로는 열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크게 열린 발코니의 경우는 멀리보이는 궁의 풍경을 바라보게 하려는 건축가의 장치일 듯.
건물을 끼고 바깥으로 돌았을 때에도 주택 부분으로 보이는 검은 매스의 외벽에는 큰 개구부가 없다.
위 사진은 건축물의 입구 부분에서 바라본 전경인데, 전체적인 건축물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붉은 매스와 검은 매스가 분리되어 있고, 사이에는 매스를 꺾어 만든 마당이 있다. 그리고 마당마저도 갈색의 벽돌벽으로 막았는데, 이 벽돌벽도 어느 한 쪽 매스에도 붙이지 않고 바닥에서도 띄워 놓았다.
그리고 창은 1층에서만 마당을 향해 크게 열고, 2층에서는 수직창 정도로만 두었다. 다시 한 번 말하면 이 장면이 이 건축물의 가장 설명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건축물이 덩어리로 읽히지 않게끔 하려는 표현과 개인 사생활을 보호하는 내향적인 설계. 이 두가지가 가장 큰 핵심으로 보인다.
각종 표현들
도천 라일락집에서는 크게 네가지의 재료가 쓰였다. 벽돌, 금속(징크), 나무, 돌. 벽돌은 가장 중요한 재료로 면을 이루는 요소인데, 각각의 부분에서 표현이 다르게 쓰인 것이 흥미롭다. 금속의 경우는 큰 면으로 보이게 쓰이는 경우는 없고, 재료와 재료가 만나는 부분의 경계, 지붕과 창틀의 날로만 표현되고 사용되었다. 나무와 돌 중 나무는 문과 내부마감과 가구로 쓰인 것으로 보이고, 돌은 매스의 하부와 바닥 패턴, 주로 하부에 쓰였다. 도천 라일락집에 쓰인 재료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뷰. (아래사진)
붉은색의 매스를 보았을 때, 가장 큰 특징은 붉은 벽돌을 쪼개어 표면에 붙였다는 점이다. 이는 검은 전벽돌의 건물이 지니는 매끈한 면과는 대조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표현으로 보인다. 징크 패널로 된 지붕의 경우는 벽돌 위에 얹어 하나의 선으로 보이게 표현하였다.
겉으로 보이는 면만 파쇄한 벽돌을 사용하였다.
또 하나 벽돌이 쓰인 부분인 마당의 담 역시 벽돌을 그대로 쌓지 않고 거칠게 절단하여 쌓았는데, 그 표현 역시 나머지 두 매스와 다르게 보이려는 의도일 것이다.
구멍이 있는 벽돌의 중간을 갈라 U자형의 단면을 드러냈다. 건축가의 기교라 할 수 있곘다.
금속재(징크포함)는 재료의 끝, 재료가 만나는 부분에서만 제한적으로 쓰였다. 아래 사진은 건물의 두부분이 만나는 부분에 쓰인 징크패널을 찍은 것이다.
목재로 된 현관은 어디까지가 문짝인지 구분이 안가게끔 하나의 목재면으로 보이게 처리하였다. 이 부분에서도 금속을 통해 재료를 분리하고 선으로 표현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건축물 곳곳에서 건축가가 고민하여 표현한 흔적이 보였다. 창은 벽돌벽 안으로 들여 놓았고, 상하부만 금속을 두어 틀을 만들었다.
벽돌벽과 목재벽이 만나는 부분은 어느 한쪽도 면으로 드러나지 않게끔 모서리를 따낸 듯하다. 이를 통해 목재와 벽돌이 선으로 만나게 처리하였다.
바닥의 패턴을 이루는 돌의 경우도 두툼한 평철을 두어 재료분리를 이루었다.
화단을 경계짓는 담은 철근을 ㄷ자로 꺾어 제작했는데, 현장에서 즉석으로 결정했을 법한 표현으로 다른 진지한 표현들에 비해 가볍고 재치 넘치는 표현처럼 느껴진다.
답사를 마치며
오랜만의 답사인지라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아쉽다. 또 개인 주택이다보니 실내를 둘러보지 못한 반쪽자리라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겉만 둘러보았음에도 한시간 가까이를 보낼 만큼 충분히 건축적인 표현과 장치들을 볼 수 있었다. 글의 서두에서 이야기 했듯이 이상주의적인 건축가의 성향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건축물 전체적으로 하나의 그림을 그리듯이 회화적인 느낌이 강하다. 건물의 외피부터 건물 외부의 바닥패턴 화단까지 하나하나 색을 입히고 붓터치를 달리 하듯이 표현하였다. 또한 곳곳에 건축가의 의도가 잘 구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매스를 띄우거나 분리시키고, 서로 다른 재료료를 금속을 활용해 선으로 분리시키는 등의 표현은 건축가가 의도하고 지시하지 않으면 구현되기 어려운부분들이기 많기 때문이다.
서울시 건축상의 대상작인 만큼 건축설계에서 그것을 구현한 시공수준까지도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을 가진 건축물이라 생각한다. 주변을 압도할 만큼 화려하거나 독특한 디자인과 형태가 아닌, 조화롭고 담백한 설계와 그를 뒷받침하는 시공의 질이 보여주는 힘이 아닐까..
건축설계디자이너 KirbyKIM(길쭈욱청년)
한 명의 건축가가 되기 위해 건축을 현업으로 삼고 있는 실무디자이너.
좋은 건축물을 찾아 답사하고, 전시회 등을 찾아 보고 글로 정리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ksj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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