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6.08.22
- 병아리 건축가 독립 생존기 #02
- 정글을 대하는 병아리의 자세
제 2화 : 정글을 대하는 병아리의 자세
입질은 시작되었지만 한편으로 고민이 많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안정적인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굶주린 하이에나들이 득실거리는 정글로 나갈 것인가....
이쯤 되면 걱정들이 시작됩니다. 잘 할 수 있을까? 아 아직 아는 것도 많이 없는 것 같은데.... 인허가는 어쩌지? 설계비는 시공은? 심지어 내가 소장이 되는겨? 남들이 웃겠는데;;; 이런 어이없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죠.
그러나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인생 뭐 있겠어?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야지. 항상 그렇듯 질러보는 것이죠...
우물이에요. 가짜 같지만 춘천에 닭갈비 먹으러 갔다가 마당에 있던 진짜 우물입니다. 참 뜬금없다.
여기까지만 보면 언뜻 아무 준비 없이 생각 없이 독립을 했던 게 아닌가 하시는 분들도 분명 계실 테지만... 여담을 조금 풀어 보자면 꼭 그랬던 건 아닙니다.
회사 관계자들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도 퇴근 후에 개인적인 작업 (콤페나 아이디어 작업)들은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이미 개인 스튜디오 이름까지도 정해서 운영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가끔 게릴라성 팀을 꾸려 작업을 하기도 했었구요.
부산 남천항 요트 시설 관련했던 계획이었는데 이런 작업들도 하고 했더랬죠... 이것도 게릴라성;; 내 안에 꿈틀거리는 악마의 본성(?) 아니 내 작업에 대한 열망 (?) 정도로 포장을... ^^; 어쨌든 고러한 것들에 본격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던 거죠.
일단 후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해보자"라는 것이 저의 답이었고, 어느 정도 실무에 익숙한 후배가 서포터 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는 또 한번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스튜디오 이름은 원래 써오던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합니다.
사업을 하려면 제일 먼저 명함을 만들어야죠~ 명함을 재빨리 만듭니다.
일단 모든 것을 비밀로 붙인 채.... 사실 비밀로 한 것은 사무실을 오픈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던 건 결코 아니고 명함을 만들고 소장이라는 직함을 쓴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과연 소장이라는 직책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 무게는 훈련하면 다 감당 됩니다. 현장에서 구르면 해결돼요. ^^ 그렇다고 제가 완벽히 소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구요 ^^;; 아직도 버벅거리지만 많이 나아졌다는...
친구들이나 선배들에게 명함을 내밀기도 민망했던 것이 사실이구요. 아직까지 그런 부분이 좀 있는 건 사실입니다. ^^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트레싱지를 말았다 폈다 할 무렵,
이것이 트레싱지입니다. 옐로우 페이퍼라고도 하는데 옛날 기름종이 같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건축인들은 주로 이런 종이에 스케치를 하고 평면도 그리고 생각도 정리하고 한답니다. 저는 갓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건축가로서 몇 가지 나름의 규칙들을 세우게 됩니다. 정글을 대하는 병아리의 자세라고 할까요?
첫 번째는 건축을 하자였죠.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건축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일을 하자였습니다. 그 정의는 누가 정하고 사전에 나와있는 게 아니라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축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였죠. 누구나가 건축의 정의는 나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건축이라는 것은 만질 수 있는 건축이었어요. 만질 수 있는 건축이라는 건 여러 가지 뜻이 있습니다. 내가 건물의 공간을 정의하고 건물의 덩어리를 다듬고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을 함께 생각하고, 주변과 어울리고 하는 많은 건축가들이 하고 있는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그 기본적인 것조차도 하지 않는 건축인들이 많으니 저는 과감히 좀 건방지게 그런 건 건축이 아니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저는 종종 이런 것을 건축가의 양심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사회적 책임 정도가 되겠죠^^ 하지만 저는 그런 영향력 있는 건축가가 아니기에 그냥 저 나름대로의 양심 정도로 하겠습니다.
적어도 기본은 지키자는 그런 거였죠. 그러려면 모형도 만들어 보고 그림도 그려보고 해야 합니다. 그게 적어도 그 프로젝트에 임하는 예의다 생각했죠.
두 번째, 현장이 중요하다.
이건 제가 아는 것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엔 현장이 가장 좋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에 가면 뭔가 모를 짜릿함이 있습니다. 내가 설계한 도면이 실제로 올라가고 있고 3D랑 뭔가 모르게 비슷해져갈 때 그때 오는 쾌감?
변태 같나요? 변탠가?
이건 강화 현장 치장벽돌 옷 입힐 당시 사진입니다. 뭔가 모를 짜릿함이 있었죠.
세 번째는 공부하자였습니다.
남들과 다른 길을 택했을 때는 그만큼 책임이 따르는 게 사실입니다. 그 책임을 다하려면 아는 것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기본적인 것들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설계하는 사람들이 흔히 현장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뭐든 알아야 큰소리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많이 알면 큰소리는 둘째 치고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건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고 좋은 건축가들의 결과물에서 많이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인부들과 또 현장소장님과 소통하기도 더 쉽구요. 설계 따로 시공 따로가 아닌 거의 일체화되는 느낌으로~ 이러한 나름의 지침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트레싱지를 펼치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건축주는 30대 중반의 젊은 사업가, 그렇게 병아리 건축가의 첫 프로젝트 남양주 주택의 계획이 출발선상에 섰습니다.
건축가 고영성, 이성범
Formative architects는 감성의 형태를 공간이라는 도구로 구축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간, 감성의 공유, 그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참건축의 의미 입니다.
Koh young sung Architecture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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