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7.03.08
- 김중업의 95번째 생일(1922.3.9)
- 서강대학교 본관 / 김중업(1958)
지난달 20일, 김수근의 86번째 생일에 그가 32세에 설계한 자유센터에 대해 언급했다. 이번 달(3월) 9일은 김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건축을 이끈 또 한 명의 건축가이자 라이벌로 자주 언급되는 김중업의 생일이다(2017년 기준 95번째 생일). 김중업은 김수근 만큼 화려하게 건축계에 등장하지 않았다. 그는 1939년 평양중학교를 졸업한 뒤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에 진학하면서 건축을 배우기 시작했다. 졸업후 마쓰다松田·히라다平田건축사무소에서 3년간 건축실무를 익혔고 1944년 조선주택영단 기수로 일했다. 1947년 3월, 그의 나이 25세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조교수가 되어 건축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자신의 이름을 건 작업이 없었다.
1952년 10월부터 3년 6개월간 르꼬르뷔제Le Corbusier에게서 사사받은 뒤 1956년 3월 그의 나이 34세에 '김중업 건축연구소'를 차렸다. 현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展에서 르꼬르뷔제 사무실에서 찍은 김중업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이름을 건 사무실을 차린 뒤 맡은 작업이 '명보극장(1956)'과 '서강대학교 본관(1958)'이다. 현재 김중업박물관으로 쓰이는 안양의 舊유유산업공장(1959)도 그의 초기 작업에 속한다. 김중업은 김수근과 달리 정부시책을 비판하다 1971년 11월 출국하여 프랑스에 머물러야 했다. 이때 르코르뷔제 재단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그가 한국에 돌아온 시기는 1979년이었다.
1958년 서강대학교 본관 설계 당시 김중업은 캠퍼스 마스터플랜도 함께 의뢰받았다고 한다. 서울 전역에 흩어져 있던 서울대학교의 각 캠퍼스를 관악캠퍼스로 통합운영하여 종합화하자는 계획이 1960년대 말에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중업이 1958년에 수립한 서강대학교 캠퍼스 마스터플랜은 진보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가 르꼬르뷔제 사무실에서 여러 건물로 이루어지는 종합적인 배치안을 경험했기 때문에 계획수립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캠퍼스 마스터플랜은 실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서강대학교 본관은 정문에서 올려다 봤을때 한가운데 배치돼 있다. 언덕 위에 남북으로 긴 매스로 앉혀진 서강대학교 본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건 입면과 옥탑부분의 처리가 대비되는 두개의 다른 건축언어다. 르꼬르뷔제의 영향이 짙게 배어나오던 초기 작업답게 입면은 엄격한 면분할과 비례로 구성돼 있다. 실제 김중업은 본 건물의 구상단계에서 서로 다른 기능과 조형을 지닌 두 개의 매스를 하나의 건물로 통합하려는 조형개념을 설정했다고 한다.
이런 조형개념을 살리기 위해 김중업은 수직과 수평 요소를 서로 엇갈리게 사용했다. 정인하는 《김중업 건축론;시적울림의 세계》에서 '폭이 좁고 높이가 높은 매스로 되어 있어서 수직성을 갖고 있는 부분에는 그 벽면에 수평적인 발코니Balcony를 강하게 돌출시켜서 '수평적 수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도록 하였고, 길이가 길고 낮아서 수평성을 가진 매스에는 수직 기둥을 벽에서 돌출시켜서 '수직적 수평'이라는 느낌을 갖도록 하였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김중업은 '두 가지 매스를 균형있게 통합시킬 수 있다'고 봤다. '수평적 수직'은 남쪽 브리이지솔레일Brises Soleils이 설치된 매스를, '수직적 수평'은 북쪽 지붕선을 두고 한 얘기다.
그런데 내가 볼때는 수평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남쪽 매스에 부착했다는 수평적인 발코니는 건물의 전면이 아닌 측면에 설치되어 있어 브리이지솔레일의 수직적인 프레임 보다 약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남쪽 매스에서는 발코니의 수평성 보다는 서쪽 입면에 설치된 브리이지솔레일의 수직적인 강렬함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수평적인 발코니는 건물의 남쪽 입면의 최상층에 돌출된 부분과 남동쪽 코너에 쓸어낸 매스와 대비되면서 조형적인 강렬함을 불러일으킨다(위 사진).
또한, 정면(서쪽)에서 봤을때 남쪽 입면에 매달린 수평적인 발코니는 대조적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다르게 디자인된 북쪽과 남쪽 매스의 입면간 충돌을 완충해서 연결시켜주는 계단실의 수평 발코니와 대칭을 이루어서 읽힌다. 북쪽 매스에 수직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벽에 돌출시킨 수직기둥도 그 돌출정도가 약해서 면분할에 의해 설계된 반복적인 창틀에 묻혀 쉽게 지각되지 않는다. 그보다 북쪽 매스에서는 비대칭으로 쳐진 캐노피Canopy의 조형성과 북쪽 매스의 상부에만 설치된 지붕선이 더 강렬하게 인지 된다(아래사진). 정인하는 '건물이 놓인 대지가 보통 대지보다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그래서 지붕이 없을 경우 시선을 붙들어 맬 수 없어서 무언가 허전하다'고 생각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얕은 지붕을 씌웠다고 봤다. 김중업의 작품에서 지붕이 중요한 의장적 요소로 등장한 것은 서강대학교 본관에서 부터다.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이 건물을 방문했던 타이밍이 좋았다. 11월의 태양이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던 오후 4시쯤 건물의 입면에는 강한 명암이 드리워졌고 브리이지솔레일은 그 명암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부에서는 르꼬르뷔제의 모듈러Modulor를 김중업이 해석하여 적용한 것 같은 계단실의 창틀이 계단실 벽체에 차가운 추상회화 같은 그림자로 그리고 있었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저서. <닮은 도시 다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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