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7.04.04
- 제72회 식목일(1946.4.5)
- 아산시 영인산 산림박물관 / 이종호&스튜디오메타(2012)
식목일은 지정 취지 보다 공휴일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기념일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식목일은 공휴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혼돈을 겪은 이유는 충분하다. 식목일은 1946년 미 군정청이 4월 5일을 지정하면서 시작됐고 1949년에는 대통령령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으로 공휴일이 됐다. 하지만 1960년 공휴일에서 폐지됐다 1961년 부활됐고 1982년 기념일로 지정된 뒤 2006년 다시 폐지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식목일은 '나무심는 날'이다. 조금 더 대의적, 공식적 그리고 공무적으로 설명하면 '국민식수國民植樹에 의한 애림사상을 높이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하여 제정된 날'이라고 한다. 그럼 왜 4월 5일일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두가지 기원을 설명하고 있는데, 첫째는 '신라가 한반도에서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삼국통일을 완수한 677년 2월 25일에 해당되는 날'이라는 것, 둘째는 '조선시대 성종이 적전籍田 농사를 지낸 뒤 선농단에 제사를 지낸 1493년 3월 10일에 해당되는 날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신라의 삼국통일이 민족사에서 중요한 날이고 선종의 친경親耕이 농본주의의 상징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 두 사항이 왜 4월 5일이 식목일이어야 하는가를 설명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냥 '미 군정청이 처음 지정해서 시작된 기념일'이라는 흐릿한 기원에 자부심을 갖을 만한 대의명분을 주는 역할 정도다.
4월 5일이 식목일이 된 가장 공감되는 이유는 '나무 심기 좋은 시기'라는 것이다. 24절기 중 식목일을 전후한 시기는 청명淸明이다. 청명은 이름 그대로 '하늘이 맑아지는 날'이고 이때 봄 농사 준비를 했다고 한다. 최근 식목일 제정 때보다 평균기온이 3.9도 상승했기 때문에 식목일을 더 나무 심기 좋은 시기인 3월로 옮기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식목일이 있는 3~4월의 최근10년 산불 발생 건수가 연간 발생 건축의 49%, 면적은 78%에 달한다는 것이다. 올해도 산림청은 식목일을 앞두고 산불 위기경보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조정했다('식목일에 산불비상... 위기경보 '경계' 상향 발령', 노컷뉴스, 2017.4.4).
아산시에 있는 영인산도 2000년 식목일에 화염에 휩싸였었다. 산불은 70여ha의 임야를 태우고 42시간이 지난 7월에 진화됐었다. 이후 2003년 4월 8일에도 산불이 나 40여분간 2ha면적이 탔다. 2006년 아산시는 산불로 불탄 영인산 일대에 수목원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2007년 조성이 시작된 영인산 수목원은 2012년 5월 개원했다(수목원 면적 518,384㎡). 수목원 조성의 마지막 단계에 영인산 산림박물관이 개관했다.
영인산靈仁山은 그 이름에 '사람의 기원대로 되는 신기한 징험이 있다'는 뜻의 '영험함(靈)'이 들어가 있다. 심상치 않아 찾아보니 산꼭대기에 우물이 있었는데, 가뭄이 들면 그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靈'자를 산 이름에 쓴 것으로 보면 그 기우제의 효과가 좋았나 보다. 산림박물관은 자연휴양림에서 수목원을 통과해 30분 가량 더 걸어들어가야 있다. 설계는 이종호&스튜디오메타Studio Metaa가 맡았다(2009.3~2012.5). 능선의 올려진 산림박물관을 보면서 설계자의 여러 노력이 읽히기는 했다. 하지만 산능선을 누르고 앉은 건물의 무게는 지울 수 없었다. 박물관으로 다가가는 동안 '굳이 왜 저기에...' 라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종호 랜드스케이프 건축Landscape Architecture은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왔다. 구체적으로 박수근 미술관(2002)에서는 기존 자연구릉을 연장해 새로운 구릉을 만들어 미술관을 넣었고 충무공이순신 기념관(2011)에서는 새로운 언덕이 관람객의 동선과 넓기만 했던 광장의 형태를 재설정했다. 산림박물관을 보면서 이번에도 그가 의도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집으로 돌아와 산림박물관이 앉혀진 땅의 위성사진을 2005년으로 돌려보았다. 산림박물관이 지어지기전 현재 별관동이 앉혀진 자리에는 一자 평면의 건물 네 동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본동이 앉혀진 자리에는 올챙이처럼 흙이 드러나 있었다(위x2 2000년 버전Version 구글 위성사진). 누군가 2005년 올린 글을 읽어보니 건물은 청소년 수련원이었고 그 전에는 미군의 숙소로 쓰였다고 한다. 미군은 30년간 이곳에 주둔했었다. 산림박물관이 앉혀진 땅에는 봉우리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산림박물관은 사라진 봉우리를 대신해 만들어진 인공의 봉우리다. 비록 인공이지만 산림박물관은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치유행위였다. 이번에도 이종호의 랜드스케이프 건축은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산의 봉우리들은 단절되지 않는다. 산림박물관은 건축물이지만 봉우리이고자 했기에 주변 흐름을 단절시켜서는 안됐다. 이종호는 박물관의 조형이 '정상의 대지와 상호 교감을 통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건축가 이종호, 우의정&Studio Metaa, 우리북-). 만들어지는 땅. 주변과의 경계없는 연결. 랜드스케이프 건축이 만들어지기에 가장 좋은 상황이었다. 이종호는 서쪽을 살짝 부풀리고 동쪽을 살짝 누른 타원을 그렸다. 눕힌 달걀이다. 물론 이종호는 형태를 통한 은유를 추구하는 건축가는 아니기에 달걀을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에 앞서 그의 고민은 산림박물관의 역할에 있었다.
이종호는 '자연의 긴 호흡 속에 존재해 온 시간들과 오늘날 우리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자연의 깊은 상호 연계성을 새삼 깨닫게 하는 일이 모든 자연사 박물관의 기본적인 역할'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이곳 영인산에 있는 산림박물관은 '산림의 형성과정을 씨줄로 삼으며 현 생태계의 상황을 날줄로 삼아 각 세대에게 정확한 인식의 체계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산림박물관이 이런 역할을 하려면 무엇보다 박물관 내부로의 진입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왜냐하면 산림박물관은 박물관 방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시설이 아니라 등산 코스 중간에 자리잡은 시설이기 때문이다. 영인산을 오른 사람들은 산이 있기에 산을 오른 것이지 산림박물관이 있어서 오른 것은 아니다(물론 나는 예외다).
"45억 년 지구 역사의 끝 머리, 불과 몇 십 년 사이 변형된 이 영인산 정상에 아산 산림 자연사 박물관이 위치한다는 것은 도심이 아닌 산림의 한 가운데 산림의 심장 깊숙이 방문객들을 이끌어 들이고 체험하게 만든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일은 시설 내부의 전시를 통해 전달되는 수많은 설명에 앞서 시설 자체를 통해 인류와 자연 사이의 아주 작은 갈등부터 매만지기 시작하려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잘려나간 지형을 대체하려 하는 전시관은 앉음새이며 그것을 통해 아산 산림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시설이 우선 전달하려는 치유의 풍경이다."
-건축가 이종호, 우의정&Studio Metaa, 우리북-
산림박물관으로의 진입은 건물 북쪽에서 이루어진다. 땅이 남쪽으로 경사져 있기에 박물관 북쪽이 가장 높다. 이곳에서 박물관과 땅의 단차는 없어진다(위 사진). 반면, 주변 풍경은 건물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박물관을 둘러싼 풍경은 건물 안에서 그리고 전시관람을 끝내고 옥상으로 나왔을때 극적으로 관람객을 둘러싼다(아래사진). 그래서 옥상에서 보이는 풍경은 내부관람동선의 연장이다. 옥상은 편평하지 않다. 북쪽에는 전망대도 있어 주변 풍경을 더 다이내믹Dynamic하게 감상할 수 있다. 옥상에 만들어진 다양한 레벨Level은 영인산 주변 풍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다.
본관 동쪽에는 다리를 만들어 별관 옥상으로 갈 수 있도록 했다. 몸이 갈 수 있는 곳은 별관 옥상까지이지만 시선은 아산시청 주변 시가지까지 이어진다(위 사진). 별관 내부 계단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면 본관 남쪽에 만들어진 경사로를 따라 내려오면 된다. 그럼 앞서 박물관으로 들어올때 걸어온 등산로와 다시 만난다. 산에 오른 사람들이 산봉우리에 올라 주변 경치를 감상하듯 산림박물관 옥상은 영인산과 그 주변 풍광을 감상하는 장소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우리나라 랜드스케이프 건축들이 보이는 한계가 드러나 있다. 2층 전시실에서 옥상으로 나가는 문에 나올 수만 있도록 잠금장치를 설치했다. 문 앞에 펜스Fence를 치거나 아예 잠가 놓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 잠금장치의 설치 또한 시설 관리의 편리성 때문이다. 산림박물관과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 뉘엿뉘엿 저문 해는 더 붉어졌다. 그 붉은 노을빛에 영인산의 붉음은 더 불타올랐다. 박물관을 나와 산을 내려오는데, 나 뿐만 아니라 지니와 방글의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의 등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난 새의 시선으로 영인산과 그 주변 풍광을 내려다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먼 거리에서 산림박물관을 보면서 저 건물은 만들어진 언덕이기에 그 안에 전시실보다 옥상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저서. <닮은 도시 다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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