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7.04.12
- 제3회 도시농업의 날(2015.4.11)
- 논밭예술학교 / 오우근&함은주&지음아키씬(2010)
주변 어르신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베란다나 작은 마당에 화분을 놓고 농작물을 키우는 일이다. 소일거리이니 좋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키운 먹거리를 확보할 수도 있으니 여러모로 이득이다. 2011년 11월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어르신들의 이런 소일거리는 '도시농업'이라는 산업명을 갖게 됐다. 법의 제정 목적(제1조)은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사항을 마련함으로써 자연친화적인 도시환경을 조성하고, 도시민의 농업에 대한 이해를 높여 도시와 농촌이 함께 발전하는 데 이바지 하는 것'이다. 법이 정의(제2조)하는 도시농업은 '도시지역에 있는 토지, 건축물 또는 다양한 생활공간을 활용하여 농작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는 행위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서 도시지역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도시지역과 관리지역이다.
황기원은 《도시락 맛보기; 도시와 삶에 대한 100가지 메뉴, 다빈치》에서 '도시의 농토는 용도 폐기되어야 할 땅, 없어져도 좋은 땅, 도시로 바뀌어도 좋은 땅이 아니다. 생태도시, 환경적으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중요한 자원으로 부각되고 있다. 물이 넘실대는 논은 매우 넓고 얇은 다목적 댐으로, 거머리 우글대는 미나리꽝은 저절로 움직이는 수질 정화장이다. 도시의 농업은 희귀해져 가지만 다시 살아나야 할 귀중한 산업이다'고 설명한다. 그럼 왜 4월 11일일까? 매해 11월 11일에 '농업인의 날'이다(참고 글은 2016년 11월 11일에 올린 ‘농업인의 날; 농협중앙회 중앙본부&농업박물관+협동관/희림건축). '11'이라는 숫자는 '농업인의 날'의 상징과 같다. 그럼 4월은? 앞서 식목일 글에서 언급했듯이 24절기 중 4월에는 청명淸明과 곡우穀雨가 있다. 모두 한해 농사의 시작을 알린다. 정리하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4월과 농업을 상징하는 11일의 만남이다.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에는 '논밭예술학교'라는 시설이 있다. 시설의 운영은 '(주)쌈지농부'가 맡고 있는데 이 회사의 대표는 한때 '(주)쌈지'를 이끌었던 천호균이다. 천호균은 2010년 부도로 '(주)쌈지'사업을 접고 '(주)쌈지농부'라는 브랜드Brand로 농부사업을 벌여나가기 시작했다. 평소 '농사가 예술이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던 천호균은 이를 바탕으로 '문화예술 콘텐츠를 기획하고 디자인 컨설팅, 상품제조 유통, 생태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주)쌈지농부'를 차렸다. 이 회사를 통해 전개하는 사업은 사회적 목적을 위해 농업을 활용하는 '사회적 농업Social Farming'을 기업화 시킨 버전Version이다. 사회적 농업은 '교회, 사회통합, 교육을 위한 농업자원의 활용을 포함하며, 농산물을 생산하는 동시에 직업을 창출하고,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자본을 만들어내는 등 몇 가지 목적에 기여한다《'질병 대신 건강으로 가는 의료서비스 개혁', 월터 보르츠, 소비의 대전환: 2010 지구환경보고서, 환경재단도요새》.'
(주)쌈지농부의 사업이 전개되는 대표적인 장소인 논밭예술학교 블로그를 보면 이곳은 '(주)쌈지농부가 기획하고 현대 미술 작가7명(최정화, 박기원, 강운, 이미경, 이진경, 천대광, 천재용)이 의기투합하여 디자인 설계 작업에 참여하여 예술, 자연, 생태, 평화를 모티브로 완성'한 공간으로 소개돼 있다(2008.10~2010.08). 구체적으로 논밭예술학교에는 '자연의 소중함을 전하는 생태교육, 우리 땅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문성희의 자연요리교실, 아이들이 다양한 맛을 체험하고 예절교육을 배울 수 있는 식교육 교실, 발효비법을 전수하는 막걸리교실, 환경 친화적인 리사이클 교실'이 있고 그 외 전시실과 숙박시설도 있다(연면적 786㎡).
논밭예술학교는 헤이리마을 게이트Gate4로 들어와 동쪽으로 230여 미터를 들어오면 있다. 대지는 은행마을과 벚나무골, 느티마을 가운데 있는 언덕의 북사면으로 면적은 1,157㎡다. 설계자는 대지를 보고 '완만한 경사의 전면도로를 향해 급경사로 내려오는 대지 위에 느릿한 긴장감을 펼쳐 놓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지음아키씬 홈페이지-). 건물이 지어지기 전 구글 위성사진을 비교해 보면 건물은 언덕을 파먹고 들어섰다. 하지만 건물을 둘러보면 그런 모습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위 두 구글위성사진).
논밭예술학교에서 가장 큰 면적으로 만들어진 전시공간은 전면도로에서 바로 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공간을 지하에 배치해서 저층부의 인공대지Podium를 마련한 셈이다(B1~2F). 전시공간에서 바로 위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이 건물의 개념을 직접적으로 느끼고자 한다면 동쪽에 배치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는게 좋다. 경사로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전시실 위에 제각각으로 방향이 틀어진 각기둥이 특이하다(위 사진). 이 장면은 마치 그리스 돌산 위에 세워진 수도원을 연상시킨다.
경사로를 올라서면 언덕 위로 오르는 계단이 나오다. 계단은 폭이 좁아지면서 전벽돌로 만들어진 매스의 입구로 수렴된다. 물론 그 입구에 오르면 계단이 한 층 더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선 위치에서는 계단이 꺾여져 있어서 이 장면을 확인할 수 없다(위 사진). 계단은 끝난듯 보이면서도 이어지고 구불구불 꺾여 올라가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이어진다. 계단이 연결하는 각각의 실室들은 자잘자잘하고 불규칙적이다. 설계자는 '인근 건물과 전면도로의 스케일Scale이 어울리도록 적당한 크기로 다듬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지상1층과 2층의 구성은 마치 산 위에 입지한 이태리의 중세도시들을 떠오르게 한다. Siena나 San Gimignano를 대표적인 예로 들수 있는데, 이와 같은 도시들은 에트루리아인Etruscan들이 입지를 결정했다. 에트루리아인들의 도시도 그리스인들처럼 도시국가였지만 개방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의 예술에서 가장 대표적인 부분은 분묘예술이었다. 그만큼 그들은 정주성이 강했다. 에트루리아인들의 강한 정주성은 땅에 대한 뛰어난 해석을 통해 알 수 있다. 논밭예술학교에서 에트루리아인들이 만든 도시가 떠올랐다는 건 그만큼 이 건물이 대지와 깊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향이 제각각으로 틀어진 각기둥 위층으로 올라가면 코르텐Corten으로 만들어진 난간이 세워진 통로가 나온다. 이 통로는 전면도로와 단차를 두고 나란히 전개되면서 건축적 산책로가 된다(위 사진). 하지만 건축공간의 일부라는 느낌 보다는 건물 옥상에 조성된 텃밭이나 구불구불한 선형을 따라 원래부터 언덕에 있던 길처럼 느껴진다(아래사진). 이 통로에서 바라본 논밭예술학교는 원래부터 있던 산의 일부다. 실제 이 건물을 만들면서 '경사가 심한 지형적 특성을 살려 자연훼손을 최소화 하는 방법으로 건물을 지었기에, 자연스럽게 미로 같은 동선과 자투리 공간들이 생겨나게 됐다'고 한다. '공사 중 뽑힌 나무들을 버리는 대신 옮겨 심고 산이 있던 시절의 정겨운 흙길을 그대로 보존하고, 전화된 빗물과 퇴비로 작물을 키우는 옥상텃밭을 조성하는 등 논밭예술학교 곳곳에는 자연을 배려하고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논밭예술학교 블로그)'.
논밭예술학교는 일종의 랜드스케이프 건축Landscape Architecture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일반적인 랜드스케이프 건축보다는 거칠고 투박하다. 건물을 덮고 있는 조경도 잘 정리돼 있지 않은 밭과 흙이다. 일반적으로 랜드스케이프 건축은 주변의 이질적인 영역을 연결시키는 '흐름'을 강조한다. 그래서 건물의 매스는 유선형으로 매끈한 형태를 띄게 된다. 그렇다 보니 건물의 경사로나 통로가 명확하게 보인다. 하지만 논밭예술학교 건물은 그렇지 않다. 랜드스케이프 건축의 새로운 유형이라 할 만 하다. 그런데 그 모습은 이미 우리곁에 있었던 것 같은 낯익음이다.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인근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낯익음과 투박함.
설계자는 건물 전체를 느릿느릿하게 관통하는 계단과 통로를 통해 디자인 설계에 참여한 일곱 작가들의 모습이 드러나는 공간을 이어주고 자연과 농경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랬다(-지음아키씬 홈페이지-). 논밭예술학교에서 느끼는 낯익음과 투박함을 통해 자연과 농경의 풍경을 감상한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그 전략의 대상인 이용자의 성격을 보면 논밭예술학교의 농업은 철저히 타자화된 대상이다. 20C의 미학자 Theodor Adorno는 자신의 저서 《미적이론, 이론과실천》에서 '전원은 도시인의 향수적 이미지'이며, 그래서 '전원의 아름다움은 도시인에 의해 고안된 것'이라고 봤다. 그는 '시골의 뜻인 'Countryside'의 Country는 Contrast(반대)에서 유래한 말'이기 때문에 '전원 풍경은 보는 사람의 반대편에 있는 토지, 즉 도시민들이 자신들과 마주하고 있는 농업적 환경을 미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때 그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Adorno의 주장을 따른다면 우리가 '도시민'이기 때문에 논밭예술학교의 '자연과 농경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쉽게 얘기하면 논밭예술학교에서의 농업은 일상에서 벗어난 비일상적인 체험이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이 굳이 이곳까지 가서 농업을 체험할 일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설계자가 원하는 대로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흥미롭고 게으른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위해서는 농업이 비일상의 영역에 있어야 한다. 논밭예술학교 곳곳에서 느껴지는 공간의 낯익음과 투박함은 사실 그렇지 않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지음아키씬은 논밭예술학교를 설계하기 전 '딸기가 좋아2(이하 딸기2)'에서 천호균과 함께 작업을 했었다(2005.05~2006.05, 위 사진). 이 시기 천호균은 '(주)쌈지'를 운영하고 있었고 북쪽으로 마주하고 있는 딸기스페이스(James Slade+최문규&Ga.A건축+조민석&Mass Studies, 2004)에는 놀이, 쇼핑, 관람, 식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담겨 있었다. 딸기2 남쪽에는 허태훈&루하건축이 설계한 '지렁이다'라는 이름의 건물이 있다(아래사진). 설계 당시에는 '키네모 미술관'으로 진행됐다(2008.5~2008.11). 그래서 건물 곳곳에서는 전시시설의 흔적이 남아 있다(연면적 2,135㎡). 생태가게, 유기농 매장으로 불리는 '지렁이다'는 (주)쌈지농부가 운영했었다. 법흥리 1652-18과 -19 양필지(대지면적 1,388㎡)에 세워진 지렁이다는 동측 도로를 따라 길게 배치돼 있고 서쪽에는 텃밭이 조성돼 있다. 텃밭은 주변의 선형 배치되는 패치-바 타입Patch-Bar Type의 건물군이 이루는 마당이다. 딸기2는 천호균이 영위하는 사업 영역이 바뀌면서 농업을 영위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딸기스페이스와 딸기2에서 자연은 농사를 하는 공간이다. 그렇다보니 (주)쌈지농부가 영위하는 농업이 도시농업이냐 아니냐를 떠나 딸기스페이스와 딸기2 그리고 지렁이다 서쪽에 계획된 자연은 우리네 농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변했다. 너무나 생활적인 농촌의 모습을 보면서 고된 노동이 먼저 떠오르는 건 그곳에 비일상의 경험을 느낄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도시설계가 Archur
Archur가 해석하는 도시, 건축.
저서. <닮은 도시 다른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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