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7.03.02
- 현대판 토템폴, 숭례문 (1/2)
- Modern Totem Pole, Sungnyemun
[건축비평]
현대판 토템폴, 숭례문 (1/2)
Modern Totem Pole, Sungnyemun
촌극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의‘6번째 날’은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다. 영화 내내 나오는 악당들은 모두 복제인간이며, 그들은 죽어도 곧바로 다시 태어나 주인공을 괴롭힌다. 심지어 그들은 자기 동료가 죽어도 깔깔 웃으며 농담을 던진다. 동료가 아무리 잔인하게 죽어도 대체할 복제품이 있기에 그 죽음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에겐 동료가 죽어도 슬퍼할 이유가 없다. 다시 살리면 될뿐더러, 지금 죽은 동료가 내가 알던 그 동료가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니 말이다.
우리는 존중이 사라진 사회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쉽게 만들어지고 쉽게 버려진다. 영화처럼 극적으로 나타나지만 않을 뿐, 우리의 사회 전반에서 존중은 이미 실종되었다. 그것은 비단 인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물질과 비물질에 걸쳐 모두에게 벌어지고 있다. 자연물과 인공물의 구분 없이 나타난 이 현상의 한가운데에서 우리 세대는 무엇이든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리는 광경을 여과 없이 보고 듣고 배운다.
숭례문이 불타던 시간, 그 시간 동안만 우리는 숭례문을 존중했다. 유난히 붉었던 그 시간만큼은 전 국민이 숭례문을 위해 슬퍼했다. 모두의 가슴에는 똑같이 숭례문이 존재했다. 그것이 버텨온 600여 년의 역사와 언제나 함께했던 풍경이 존중받기 시작했다. 단, 그것은 숭례문이 불타는 시간뿐이었다. 화재 전 우리가 무관심으로 숭례문을 홀대했다면, 화재 후에는 오만으로서 숭례문을 홀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방화범 채씨는 숭례문이 국가를 대신하기 때문에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 방화범만이 숭례문을 존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마음의 화마가 존중을 뛰어넘는 순간, 숭례문은 불길에 휩싸였다. 2층 누각이 무너지고, 5시간 만에 화재가 진압되고, 이틀 뒤인 2월 12일 문화재청에서 숭례문의 국보 1호 지위유지를 천명할 때까지만 숭례문은 국민에게 존중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복원과 함께 숭례문은 사라졌다. 복원된 숭례문은 화재 전의 600년간 시민과 역사를 함께하고, 모두에게 항상 열려있던 숭례문이 아니다. 화재 진압 내내 쏟아부은 수분만큼 우리의 눈물을 빨아들인 그 숭례문은 더더욱 아니다. 복원된 숭례문은 그저 디자인 서울의 장식품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역사, 인간, 문화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우리 사회가 빚어낸 하나의 유치한 촌극이다.
껍데기 역사
역사의 특성이자 역사가 소중한 이유 중 하나는‘역사의 회복 불가능성’이다. 역사의 기록이 위대하든 부끄럽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다. 시간의 축에서 뒤로 밀려난 것은 기록과 기억으로만 남을 뿐 다시 돌이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문화재는 역사기록의 증거물이자 역사의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상징물이다. 그 상징은 지독히도 강한 것이어서 문화재가 사라져도 상징만은 남아서 한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흐르다가 서서히 사라진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문화재를 똑같이 복사할 수 있다 할지언정, 그것이 지닌 상징까지 똑같이 복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복사된 물체는 탄생의 순간부터 의미가 감소한다. ‘6번째 날’에서 집에서 기르던 개가 죽자, 부모는 딸 몰래 죽은 강아지를 복제하려 한다. 만약, 형태를 복제한 것에 역사와 의미까지 복제된다면, 딸에게 그 사실을 숨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는 그 사실을 숨기고 강아지를 복제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과연 강아지를 존중했던 걸까?
역사의 회복 불가능성을 건축으로 표현한 예시가 있다.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한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웩스너 시각예술센터(1982-89)가 그것이다. 센터가 세워지기 전, 1959년까지 그 자리에는 오래된 병기고가 있었다. 건축가는 그것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대신에 분해되고 왜곡된 모습으로 재해석하여 역사는 재현할 수 없음을 표현했다. 해체적인 해석을 통해 재현 된 병기고의 흔적은 새로운 건물들과 섞이면서 현재에서 항상 역사를 회상할 수 있는 건축적 장치가 되었다. 건축가는 역사를 그대로 살려내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역사를 존중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복원된 숭례문은 그 형태뿐만 아니라‘국보 1호’라는 지위도 복사되었다. 불타고 채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문화재청에서는 숭례문은 여전히 국보 1호로 남을 것이며 또한 이른 시일 내에 원래의 모습 또한 되찾을 것이라 천명했다. 이에 대해 논란이 불거지자 문화재청에서 내놓은 변명은 매우 궁색했다. 기존의 숭례문에서 50%가 남아있기에 여전히 문화재로써 의미가 있다고했다.
이해하기 힘든 답변이다. 그 50%가 어디에서 온 기준인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설령 대부분의 몸체가 남아있더라도 숭례문의 누각이 무너진 것은 반가사유상의 머리가 사라진 격인데, 그것이 여전히‘국보 1호’의 자격을 가진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특히나‘1호’라는 숫자의 가치는 국가를 대표하고 상징할 수 있어야 마땅한데, 복원된 숭례문이 그 역할에 합당해 보이는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지정되었던 이유 또한 일제가 문화재 약탈을 쉽게 하려고 문화재에 번호를 붙이던 과정에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복원된 숭례문이‘국보 1호’의 자리를 자치하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타당한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숭례문의 형태적 복원과 지위의 복원 둘 중 어느 것에서도 역사에 대한 타당성과 존중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저 역사라는 타이틀과 문화재의 껍데기에 메여있는 허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2/2에서 계속)
건축가 Sung Jin kim
글쓰는 아니 글도 쓰고 싶은 건축가.
한동안 건축기자로도 활동하며 다양한 장르의 글을 썼으나 지금은 건축을 업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도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건축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이전글 | 건축 대동여지도 |
---|---|
다음글 | 현대판 토템폴, 숭례문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