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20.03.25
- 상가주택의 임대 가치를 높이는 방법
- 상가주택은 주거의 질로 승부해야 한다.
경험의 밀도가 높은 공간에서
다양한 기억의 축적이 만들어 내는 +공간은
심리적인 공간의 확장을 경험케 한다.
몇 년 전, 근 삼십 년 만에 내가 살던 집을 찾아봤다. 예상은 했지만 즐비한 다가구주택이 동네를 꽉 채우고 있었고, 내가 살던 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 충격이었던 게, 내가 살던 집이 기억만큼 넓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핏 봐도 채 육십 평이 되지 않는 작은 땅이었다. 세 개의 방에 나름 거실과 부엌, 욕조가 있는 화장실을 갖춘 내부 구성에 삼면을 둘러 각각 쓰임새가 있던 마당을 가졌던 집의 기억으로 치자면 적어도 80평 이상의 땅이었을 거라 생각했던 터였다. 풍성했던 집의 기억에 비해 형편없이 작은 땅이었다. 40평이 넘는 광장동 아파트보다 더 큰집으로 기억했던 집이 실제 내부는 20평 남짓이었고, 대지까지 포함해도 분양평수 정도밖에 되지 않았더란 사실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주택은 측정되지 않는, 정량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심리적 + 면적이 존재하며, +면적이 커질수록 더 빛나고 충만한 집이라는 생각을 막연하게라도 시작하게 된 것이. 단순히 내가 어려서, 어릴 적 경험하게 되는 공간 스케일이 다르기 때문에 더 커 보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얘기하는 +면적은 좀 다른 측면이다. 내부 공간보다는 주로 외부 공간에서 +면적의 체험을 하게 되는 가능성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는데, 일테면 하나의 외부 공간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이벤트, 다양한 시간과 계절의 체험이 다르게 기억되고 쌓여 그 공간에 대한 충만한 기억을 넘어 공간이 확장된 듯한 경험까지도 가능케 한다는 얘기다.
현재의 상가주택으로 돌아와 다시금 한번 생각해 본다. 상가주택의 현실적 존재가치는 임대다. 상가와 주택의 임대 없이는 6~7억이 되는 건축비를 감당하며 건축할 이유가 없다. 상가의 존재 이유는 앞전에서 얘기한 바 차치하고 주거 임대는 좀 고민해봐야 할 정말 중요한 문제이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내 개인적 경험이 그냥 특수한 상황이고 감상적인 차원으로 끝날 것이냐의 얘기다. 다들 일정 부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고 거주하는 집의 실제적 가치(기억의 저장소, 다양한 생활이 담기며 감지하는 심리적 확장 영역 등)가 임대 가치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 말이다.
상가주택은 주거의 질로 승부해야 한다.
상가주택에 대한 일이 많아지고 매번 건축주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런 공간이 실제적 삶을 영위하는 측면에서나 임대 가치의 상승과 지속성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따라서 좀 더 쉬운 비유적 설명과 정량적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동탄 2신도시 건축주를 만나게 됐다. 원하시는 주택의 모습을 정리한 글을 전해 주셨는데, 그 글의 표지에 '종지하우스'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가칭이 적혀 있었다.
왜 '종지하우스'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아내와 본인의 이름 글자를 따고 소박한 집을 바란다는 의미에서 붙였다는 답을 들었다. '종지'라... 처음엔 단순히 좋은 어감의 이름이다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곱씹어 생각해보니 우리가 주택에서 담으려 했던 +공간이 종지 같은 공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미쳤고, 종지를 비유해 우리가 목적하는 바를 설명하면 일반 건축주 분들도 이해하기 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동탄 2신도시 상가주택 그래픽 이미지
'종지'란 어떤 그릇인가?
밥상에서 흔히 보는 보잘것없고 작은 그릇이다. 놋쇠이거나 사기, 혹은 플라스틱의 작은 그릇. 그 '종지'에는 간장이 담기기도 하고, 맛깔나게 조합된 양념장이 담기기도 하며, 젓갈 같은 입맛을 돋우는 반찬이 담기기도 한다. 원재료가 삭아 고유의 맛을 내는 장이 담긴 종지에 고기나 김을 찍어 먹으면, 그 맛을 배가시키고 심지어 색다른 맛을 내기도 한다.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는 않지만 밥상에서 꼭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우리가 주택에서 담아내려 했던 공간의 의미가 이런 종지와 닮아 있다. 침실, 거실, 주방이라는 공간이 차려진 반찬이라면, 테라스, 발코니, 중정 같은 요소들이 종지인 셈이다. 6첩 반상, 12첩 반상으로 아무리 화려하게 차려진 밥상도 정작 종지에 담긴 장이 없으면 만족스럽지 않은 식사가 되기 십상이듯이 방의 개수를 아무리 늘리고 면적을 키우더라도 종지 같은 공간이 마련되지 않았다면, 집에서 사는 진정한 행복감은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그것을 나만 먹는 게 아니라 판다고 생각해 보라. 맛으로 승부하는 맛집처럼, 집도 주거의 질로 승부해야 한다. 아파트 같은 양질의 프랜차이즈와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상가주택이 추구하는 이데아는 아파트가 아니다. 따라서 더 아파트와 같은 거주 환경, 평면 구성을 쫓는 바보 같은 짓으로 내 집의 가치, 내 땅의 잠재력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파트는 비록 태생이 얼마 되지 않은 존재지만 그것 나름대로 더 나은 삶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상가주택 또한 더 짧은 태생에 혼돈의 상황이지만 그것 나름의 생존 전략, 더 나은 거주환경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다.
당신 귀에 달콤한 유혹의 말을 흘리는 뱀의 혓바닥에 속지 않기를 바란다. 건축, 집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건축주와 함께 고민할 건축가들은 얼마든지 있다. 동네 부동산, 건설업자가 아닌 가까이에 있는 생각 바른 건축가들을 찾아 집에 대한 고민은 나누길 바란다.
투닷건축사사무소 조병규, 모승민
우리는 배타적이고 종속적인 건축을 지양합니다.
생활과 문화로서의 건축을 함께 만들고, 시간과 함께 곰 삯아 좋은 결을 만드는 그런 건축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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