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발로 풍경을 읽어내는 사람이고
읽어낸 풍경을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이고
그 기록들을 양분 삼아 디자인을 풀어내는 사람입니다.
- 전문분야
- 설계
- 대표자
- 천경환
- 설립
- 2011년
- 주소
-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150-5 깊은풍경건축사사무소
- 연락처
- 02-525-0429
- 이메일
- lazybirdc@naver.com
Posted on 2017.10.23
- 이응노의 집 #01. 땅과 재료의 감각
- [재미나요ㅣ우리나라]
올 초에, 충남 홍성군에 위치한 ‘이응노의 집’에 구경 갔었는데, 그 때의 기록입니다.
낮은 산으로 부드럽게 둘러싸인 논밭을 가로질러가다 보면, 문득 나오는 풍경. 살짝 기울어진 작은 깍두기 모양의 흙벽 덩어리들을 만나게 됩니다. 도로와의 높이 차이를 모난 돌을 정갈하게 쌓아서 가렸는데, 건축가의 성실함과 면밀함이 돋보이는 장면입니다.
주차장에서 기념관으로 진입하려면 다리를 건너게 되어 있는데, 코르텐 으로 싸 바른 모습이 반가웠습니다. 파주출판도시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연상되기도 하고요. (아닌 게 아니라 다리 건너편에 파주출판도시 스타일의 가로등이 보이네요.) 계획하신 건축가 (조성용 생님)가 속한 또래집단(이런 표현이 적당할지는 모르겠지만)의 성향이 엿보이는 듯도 합니다.
고암 이응로 화백의 생가 기념관…. 이응노의 집.
이름 참 잘 지었습니다.
‘집’ 앞에는 연못이 가꾸어져 있었는데, 건물과 함께 전체 풍경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들의 하나로 계획되었다고 합니다.
연못을 지나서, 건물에 다가갑니다. 왼쪽에 복원된 화백의 생가가 보이고, 오른쪽에 새롭게 지어진 기념관이 보입니다. 형태상으로는 대조적이지만, 재료의 질감이나 색깔,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진 스케일(크기)감각이 엇비슷하게, 잘 어울려 보이네요.
오른편의 생가를 옆으로 지나치면서 기념관으로 ‘올라가는’ 길. 극적으로 가파르지는 않지만, 기울어진 지형이 분명히 느껴지는데, 이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지세입니다. 이런 ‘땅의 감각’은 기념관 내부 공간 연출의 주된 디자인 모티브가 됩니다.
노출콘크리트와 빛바랜 나무 쪽 널 사이, 반질거리는 유리면이 약간의 이질감을 연출하고 있었는데, 밤에 보면 또 다른 느낌일 듯.
노출콘크리트 상자와 나무 상자가 맞물리는 상황….
폼타이 자국은 거칠게 얼버무리고, 나무 쪽 널의 문양을 표현한 노출콘크리트. 진짜 나무 쪽 널 마감을 한 또 다른 벽면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상황을 염두에 둔 디자인이었겠습니다.
쪽 널 문양이 선명하게 표현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런 ‘기분’은 유감없이 느껴집니다. 입체적으로 살짝 쪽 널의 단차가 져 있기도 하고, 빗물 따위로 ‘세월의 때’가 얼룩져서 그렇기도 하고요.
빗물을 흘려서 버리는 작은 홈통인데, 조각이 아닌 건축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확인되는, 반가운 장면입니다.
콘크리트 상자와 나무 상자가 맞물리는 틈새로 비집고 들어가는 식. 지금 보니 왼쪽의 조명등이 조금 아쉽네요. 등 본체는 마감 안쪽으로 매입되는 식이었을 텐데.
콘크리트와 나무 사이에는 아연도 앵글로 재료분리….
나무 널판 마감의 벽인데, 멀리서 보면 따스한 느낌을 주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좀 물렁한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콘크리트나 철판에서 느껴지는 견고함이나 묵직함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요.
그런 측면에서, 이 건물의 이 장면에 이 재료가 이런 식으로 쓰여야 했는지는 조금 의문입니다.
바닥은 테라죠 마감. 예전에 학교 복도에서 접했던 것인데, 요즘은 보기 힘듭니다. 타설한 뒤 반질반질 갈아내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발생한다는 이유도 있고요, 싸고 편하게 쓸 수 있는 다른 마감 재료가 많이 나오기도 했고요.
테라죠는 타일이나 마루 널판처럼 구조체에 덧씌워진 느낌이라기보다는 구조체와 한 몸이 된 듯 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그런 느낌이, 나중에 보게 될 내부 공간의 분위기로 이어집니다.
나무 널판 마감의 맞은편에는 블랙 스테인리스 강판의 마감 벽면이 서 있는데, 미술관이 건설된 취지와 함께, 내부 구성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나무 널판과는 다른 인상입니다. 좀 더 오래, 아니, 영원히 이렇게 서 있을 것만 같은 강인한 느낌을 줍니다. 그 위에, 미술관에 관한 각종 정보가 ‘이음새 없이’ 덧씌워져 있는데, 미술관의 성격과 공간 구성 또한, 블랙 스테인리스 강판과 함께 영원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듯합니다.
미술관 평면.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단순하고 명쾌한 구성입니다. 다른 건물에서도 여러 번 본 듯한, 낯익은 구성이기도 하고요.
진입 로비와 사무실, 화장실, 강당, 수장고 등으로 이루어진, ‘서비스 공간’과…
전시실로 들어서기 위해 거쳐야 하는 ‘사이 공간’ 혹은, ‘매개 공간’ 그리고,
‘전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전시 공간’ 못지않게, ‘매개 공간’이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면적으로도 아주 넓게 설정되어 있거니와, 공간의 정교함으로도 또한 그렇습니다.
건축가는 화가가 남긴 직접적인 작품 못지않게, 공간으로도,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아니, 작품이 아닌 공간을 통해 전달할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건축가 천경환
손과 발로 풍경을 읽어내는 사람이고
읽어낸 풍경을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이고
그 기록들을 양분 삼아 디자인을 풀어내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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