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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발로 풍경을 읽어내는 사람이고
읽어낸 풍경을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이고
그 기록들을 양분 삼아 디자인을 풀어내는 사람입니다.
전문분야
설계
대표자
천경환
설립
2011년
주소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150-5 깊은풍경건축사사무소
연락처
02-525-0429
이메일
lazybirdc@naver.com
홈페이지
http://thescap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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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 42 | 좋아요 19

Posted on 2019.12.03

형태를 짓다 4
바닥

‘바닥’ 역시 행동이나 상황을 통제한다. 다만 ‘벽’이나 ‘문’만큼 직설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바닥에 송곳 따위를 촘촘하게 박아 놓는다면 벽 못지않은 공간 이동 통제장치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벽을 세우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방식과 정도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바닥 또한 유용한 공간 통제 수단이고, 그래서 문화적으로나 심리적인 측면에서 끼치는 영향은 ‘벽’과 ‘문’에 뒤지지 않는다. 언제나 몸의 일부가 닿아 있고 늘 몸 가까이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가지수가 바닥을 쳤다.’ 라거나 ‘이 바닥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다.’는 식으로, 비 공간적인 움직임이나 추상적인 사회 활동의 영역을 물리적인 공간의 영역인 ‘바닥’에 곧잘 빗대곤 한다. 


바닥을 이용한 통제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약속이나 규칙과 맞물려 작동할 때가 많다. 어렸을 때 추억을 돌아보면, 바닥에 선을 긋는 것으로 시작하는 놀이가 많았다. 바닥에 선을 긋고 규칙을 확인하고 놀이를 시작하면, 그 선은 넘어가서는 안될 마법의 장벽이 되었다. 기억 못 하겠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처음으로 규칙을 이해하고 친구들과 놀이를 함께 하기 시작한 바로 그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규칙과 약속에 따라서 몸의 움직임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배우는 순간이었고,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아기’에서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고 사회적 약속에 따라 행동하는 ‘인간’으로 도약하는 순간이었다. 축구나 야구 같은 복잡한 스포츠 경기의 규칙에 대한 이해부터 ‘대지경계선’이나 ‘개발 한계선’ 같은 정치경제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에 이르기까지, 어른이 되어가면서 비슷한 패턴의 깨달음은 이어졌다. 


길바닥에 새겨진 교통 기호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기호의 물리적 속성이 아닌, 기호에 담긴 약속의 내용으로 운전자의 행동을 통제한다. 자동차 도로 한가운데 그려진 노란색 선은 ‘넘어갈 수 없기 때문에’ 넘어가지 않는 선이 아니라, ‘넘어가서는 안되기 때문에’ 넘어갈 수 없는 선이다. 집채만 한 쇳덩어리들이 빽빽하게 무리를 이루어 날쌘 짐승처럼 정신없이 달려간다. 길바닥에 달라붙은 페인트 덩어리에 불과한 몇몇 기호에 의해 그 압도적인 흐름이 정교하게 조율되어 끔찍한 사고를 막고 있다는 사실은, 따지고 보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여러 층위에서의 문명 발전과 사회적 합의가 쌓이고 겹쳐서 성취해낸 풍경이기에.




일본의 경우 아스팔트가 되었든 보도블록이 되었든 깔끔한 바탕 위에 그려진 교통 기호들이 야무지고 정갈한 모습이다. 야무지고 정갈해 보이는 만큼 약속에 대한 긴장감도 높아진다. 그리고 우리와 비교하면 기호의 양이 많고 종류가 다양하다. 그만큼 통제가 다양한 측면에서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만큼 효율이 높고 안정감이 느껴지지만, 그래서 갑갑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서울의 길바닥은 동경의 길바닥에 비해서는 조금 느슨한 편인데, 그래도 요즈음 들어서 많이 깔끔해지고 있다. 강남역 일대가 대표적이다. 강남역은 대표적인 유흥가이기도 하지만, 시외로 연결되는 교통망의 허브이기도 하다. 그래서 제한된 영역의 보행로 위에 여러 개의 시외버스 정류장이 겹치게 되는데, 이게 문제가 된다. 시외버스는 시내버스에 비해 배차간격이 길어서 기다리는 승객 숫자도 많은 편이다. 버스에 늦게 오르는 사람은 자리에 앉지 못하거나 탑승이 아예 거절될 수도 있으니, 줄 선 순서에도 민감해진다. 그래서 노선번호에 따라 제각각 줄을 서게 해야 하는데, 일본처럼 그 많은 대기 선들을 일일이 다 그리다 보면 보도 전체가 페인트로 뒤덮일 지경이다. 보행의 흐름에도 방해가 될 것이다.




까다로운 조건은 지혜로운 해답을 이끌어낸다. 노선을 나타내는 번호판들이 경계석을 따라 가지런히 붙어있는데, 적당한 간격을 두고 인도 안으로 들어와서 한 번 더 붙어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시작과 끝, 두 개의 점이 사이를 두고 놓여있는 것이다. 인도 쪽 끝점만으로 노선이 확인되니 줄 선 사람들을 헤치고 차도 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표지판을 확인하지 않아도, 맞는 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더 나아가, 시작과 끝 두 점 만을 표현하는 것으로 대기선의 존재가 또렷하게 전달된다는 데에 묘미가 있다. 표현 요소를 최소로 줄여서 길바닥을 필요 이상으로 어지럽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통제에 따라야 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잔소리를 시시콜콜히 듣는 것보다는 필요한 만큼의 정보만 간결하게 확인하는 것이 마음 편할 것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진화된 모습이 보인다. 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길어지면 길을 걸어가는 데에 방해가 된다. 버스를 기다리는 줄의 방향과 길을 걸어가는 방향은 서로 수직이라,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 줄을 헤치고 지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부대낌에 짜증 나고, 줄 선 사람들은 잠시 벌려준 간격 사이로 누군가가 새치기라도 하지 않을까, 간격 너머 줄을 놓치지는 않을지 불안해진다. 어느 날 문득 살펴보니, 길바닥에 괄호와 점선을 그린 것만으로 복잡한 문제가 명쾌하게 정리되었다. 설명하거나 강제하는 사람도 없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안내판도 없는데, 사람들은 스스로 괄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점선을 비워 놓는다. 비워진 점선 위에 사람이 없는 ‘틈’이 생기고, 그 틈을 통해서 사람들이 지나간다. 틈이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편하고, 틈으로 벌어져도 점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줄 선 사람 입장에서도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바닥에 그려진 작은 점선이 우연히 모인 타인들 사이에서 공감이 되고 의지할 거리가 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교통 기호와 비슷한데, ‘교육과 처벌’이 아니라 ‘직관과 이해’를 바탕으로 작동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어긴다고 딱지를 떼거나 벌금을 무는 것도 아니고, 큰 사고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결국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암묵적인 공감과 합의로 지켜지는 규칙이다. 높은 시민의식 없이는 작동하기 어려운, 그래서 자랑스러운 규칙이다. 




물과 빛 


평범한 일상 속에서나 영화 속에서, 바닥을 배경으로 연출되는 다양한 상황이나 설정을 곧잘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바닥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섬세한 감성의 여운이나 바닥에 잠재되어 있는 상황 연출의 가능성, 행태 통제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비 온 뒤 맑게 갠 어느 날, 한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탔던 때의 일이다. 지루한 장마 뒤 찾아온 모처럼의 화창한 날이라 그랬는지, 달리는 자전거들이 유독 가뿐해 보였다. 신나게 달리던 중, 자전거들의 흐름이 저 멀리 어느 지점에서 잠시 뭉쳤다가 그 지점을 지나면서 서서히 다시 풀리는 모습이 보였다. 다가가니 꽤 넓은,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건널 만큼은 얕은 물웅덩이로 길이 끊겨 있었다. 마른날에는 모르고 지나쳤을 지형의 미묘한 굴곡이 고인 빗물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깊지는 않았지만 달려왔던 그대로의 속도로 가로지른다면 물이 크게 튈 것이기에, 자전거들은 스스로 속도를 줄이고 있었던 것이다. 느린 호흡으로 조심스럽게 페달을 돌리며 물웅덩이를 건너기 시작했다. 


‘근육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빠른 회전’으로부터, ‘균형을 잃지 않고 버틸 만큼의 최소한의 느린 회전’으로. 일 이분 사이에 벌어진 극적인 전환은 멀리 앞을 바라보았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발밑으로, 물살을 조심스럽게 가르는 바퀴로 향했다.


아슬아슬하게 비틀거리며 물살을 가르는 바퀴. 바퀴와 물살이 부딪쳐 첨벙거리는 소리. 그리고 속도를 줄이니 비로소 느껴지기 시작한, 기어와 체인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미세한 진동, 숨소리. 그리고, 나와 닮은 리듬과 호흡으로, 맞은편으로부터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또 다른 자전거. 저마다 끌고 온 각자의 물살과 소리가 마주치며 겹쳐지는 짧은 사이 느리게 흘러갔던 시간은, 서로의 배려가 교차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자전거 타기는 고독한 일이다. 거짓 없이 순수한 나의 몸과 단순하지만 정교한 기계장치, 온전히 그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둘이서 함께 짧은 리듬을 반복해서 긴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으로 다가오는 풍경을 펼치고 남겨지는 풍경은 다시 차곡차곡 접는 일이다. 본질적으로 고독한 일이기에 다른 자전거와 교감을 나눌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다. 그리고 자취를 남기지 않는 흐름이기에 가끔 일어나는 마주침의 여운도 좀처럼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 우연히 겪은 ‘물웅덩이 에피소드’는 이례적이었기에 특별한 경험이었다. 순식간에 완전히 다른 리듬으로 전환되고 흘러가는 시간의 결이 달라지면서, 다른 차원의 감각이 열리고 다른 패턴의 교감이 싹트는 경험이었다. 이 모든 경험이 작은 물웅덩이 하나 때문에 생긴 것이다. 소박한 변화로 이토록 풍요로운 경험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바닥에 물이 고이면서 경계가 생기고 영역이 구분되는 것은 사실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높아지면 강변도로는 물에 잠겨 출입이 통제된다. 밀물이 들어오면서 갯벌이 잠겨 썰물 때 다니던 길이 없어지기도 하고, 육지의 일부였던 봉우리가 분리되어 섬이 되기도 한다. 성 주위에 깊은 도랑을 파 놓았다가, 적들의 침략이 예상되면 물을 채워 방어벽으로 삼기도 한다. 주로 자연적으로 벌어지는 현상들이 많고, 인위적으로 연출하는 사례는 드문 것 같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해프닝, 그 이상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시선은 아무래도 부족했던 것 같다.


빛 또한 물 못지않은 ‘공간 연출’ 수단이 될 수 있다. 빛으로 영역을 표현하면 빛과 그림자의 경계는 공간의 경계가 된다. 연극에서 자주 쓰이는 무대 연출 기법이다. 분명 벽 없이 매끄럽게 펼쳐진 하나의 커다란 바닥인데, 사방을 어둡게 하고 핀포인트 조명을 비추어 둥근 빛의 영역을 만드는 것으로 한정된 공간의 느낌이 표현된다. 핀포인트 조명을 여러 개 비추면, 그만큼의 독립된 별개의 시공간이 만들어진다. 아무리 큰 소리로 떠들어도 바로 옆 다른 빛 아래에 서있는 배우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능청스럽다. 상식에 벗어난 우스운 설정이지만 관객 입장에서 위화감 없이 쉽게 몰입하게 되는 것은, 빛과 그림자의 대비로 제시되는 공간 연출이 그만큼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쉽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 강변 모래밭에 모닥불을 피우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람들은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는다. 물론 밤바람이 차갑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모닥불의 불빛이 어둠 속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밭에 적당히 한정된 영역을 만들어 내는데, 그렇게 연출되는 영역의 느낌에서 아늑함과 소속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모닥불로 인해 세상은 빛나는 중심과 어두운 주변, 이렇게 크게 둘로 나뉘게 된다. 그때만큼은 모닥불의 빛이 온 세상을 다시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전설이다’( I am legend, 2007)라는 좀비 영화에서는, 빛이 강력한 ‘공간 통제 장치’로 작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간이 흐르고 해가 아래로 기울면서 그림자는 점점 넓어진다. 그림자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는 좀비 입장에서는 활동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고, 주인공 입장에서는 위협이 되어 극적 긴장이 높아지는 것이다. 보통 빛과 그림자는 심리적 공간 연출의 수단일 뿐 육체적으로는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 평범한 공간 구성 요소일 때가 많다. 삶의 조건이 다른 어느 누군가에게는 벽 못지않게 강력한 제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상상이다.


물과 빛은 워낙 가볍고 유연한 속성을 갖고 있기에, 순식간에 생겨나거나 감쪽같이 없어질 수 있다. 불현듯 존재를 드러내어 ‘공간-형태’를 통제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감쪽같이 주변에 스며들어 통제의 가능성을 감출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간-형태’ 설정의 정도를 연속적으로, 섬세하게 조정할 수 있다. 이것이 ‘벽’이나 ‘문’ 같은 ‘물리적 실체로서 고정된’ 다른 익숙한 요소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다. 물과 빛을 다루는 기술은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빅’(BIG, 1988)이라는 영화에서는 그 유명한 ‘바닥 피아노’ 장면이 나온다. 백화점 바닥에 커다란 건반이 새겨져 있는데, 발로 밟으면 해당 건반에 불이 켜지면서 음이 연주되고, 연주에 심취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춤을 추게 된다. 바닥이라는 공간 구성 요소와 점유자 사이의 상호 작용 가능성을 대중적으로 보여준 최초의 사례인 것 같다. 영화가 나온 지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다양한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한층 매끄럽고 세련되게 발전한 사례를 설치예술이나 각종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커다란 운동장 바닥이 잠깐 사이에 호수처럼 바뀌는 공간 연출이 있었다. 일회적인 연출이라 무리를 감수했겠지만, 그렇게 큰 공간 변화를 그렇게 짧은 틈에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좋은 영감의 소재가 되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에서는 바닥에 투영된 조명 효과와 무용수의 움직임이 맞물려, 무용수의 움직임이 바닥에 물리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연출하는 사례도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력(磁力)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기름이 있다고 한다. 그릇 아래에 자석을 대고 움직이면, 담겨 있던 기름이 자석의 움직임에 따라 흘러 다니는 것이다. 무중력 상태에서 기름 탱크 구석구석에 고인 연료를 한곳으로 모아서 쓸 수 있도록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개발한 것이다. 공간 연출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바닥의 굴곡을 따라 유체(유체)가 흐르거나 고이면서 공간 통제의 양상이 변화하는 것 이상의, 한결 풍요로운 연출 수단이 될 수도 있겠다.


바닥은 물과 빛이 넘실대는 배경이다. 바닥을 바탕으로 물과 빛으로 연출되는 ‘공간-형태’ 설정은 기존의 건축 문법에서 벗어나는 양상으로 작동한다. 물과 빛이라는 존재 자체는 익숙하지만 구체적인 작동 방식은 새삼 낯설고 신기할 때가 많다. ‘오랫동안 고정된 상태로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라는 건축의 고정관념에 도전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바닥에 고인 물과 빛에는, 건축이 소비되는 패턴을 넓혀주고 건축과 사람이 맺는 관계를 한층 풍요롭게 만들어 줄 만한 잠재력이 깃들어 있다.

건축가 천경환

손과 발로 풍경을 읽어내는 사람이고
읽어낸 풍경을 꾸준히 기록하는 사람이고
그 기록들을 양분 삼아 디자인을 풀어내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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