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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야기 841 | 좋아요 3

Posted on 2016.06.09

건축주의 인식이 달라져야 좋은 건축이 만들어진다.
설계도면집 한 권 속에 수천시간의 생각과, 여러 날의 밤샘과, 건축가의 청춘이 담겨있다.

건축설계는 서비스업?

 

최근 설계를 진행할 것처럼 의뢰 들어온 일들이 많아서 초기 단계의 프로젝트가 많다. 일단 어느 곳에 위치한 대지에 어떤 공간을 만들지 건축주의 의견을 듣고, 어느 정도의 규모로 건축이 가능한지, 어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할지, 세부적으로 어떠한 것들이 계획되어야 할지를 논의한다. 대지를 답사하고, 건축주를 만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문가로서 해드릴 수 있는 조언을 해드린다.

 

계획하려는 건축물의 규모와 윤곽이 잡히면 설계용역비에 대해 논의한다. 일부 건축주는 요구하는 금액에 계약하기도, 일부 건축주는 금액을 절충하여 계약하기도 한다. 설계업무가 복잡하고 공사비 책정이 까다로운 경우는 설계 계약 이전에  아주 소액으로 검토용역 계약을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설계용역비, 검토용역비를 언급할 때, 더러는 설계를 진행하지 않겠다며 죄송하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무조건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건축가는 감기가 걸려서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감기가 다 나으면 진료비를 낼게요 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고, 건축주는 마트에 가도 시식코너가 있고, 옷을 사도 한번 입어보고 사는데’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건축주 분들께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가설계를 열심히 해준 사무실에서는, 건축주와 계약해서 설계를 열심히 진행해야 할 시간에도, 여러 개의 다른 가설계를 열심히 해주고 있을 것이라고.

 

건축설계는 엄밀히 서비스업에 속한다. 하지만 공짜로 가설계를 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검토 업무나 초기 단계의 설계에 약간의 대가를 지불하는 건축주라면, 정식 설계 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설계 이전의 검토를 위해서도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한 것을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이러한 경향이 건축계 전반에 통용되길 기대해본다. (우리 사무실은 계약 이전의 검토사항을 명쾌하게 표현하되, 업무를 최소화하고자 노력한다.)

 

 

 

도면 좀 잘 뽑아주세요?

 

건축주가 종종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3층에는 방 2개를 크게 뽑아주시고, 이쪽에 이 공간도 크게 뽑아주세요.’ 통용되는 표현일 수 있다. 하지만 듣기에 상당히 어색함이 느껴진다. 많은 건축주들을 만나다 보니 일주일에 이 표현을 수차례씩 듣기도 하는데, 자꾸만 설계는 가래떡 뽑는 것이나, 뽑기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진다. ‘잘 설계해주세요’. ‘좋은 공간을 만들어주세요’  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건축물 하나가 완성되기 위해서 적게는 수십 장, 많게는 수백, 수천 장의 도면이 필요하다. 건축주와 협의를 하고, 인허가를 받고, 공사용 도면을 그리고, 현장 여건에 따라 변경되기도 한다. 건축주의 요청에 의해 도면 납품 후, 혹은 공사 중에도 도면이 변경되기도 한다. 이러한 도면 한 장 한 장이 만들어지기 위해 수많은 생각과 스케치와 검증이 필요하다. 물론 빨리 완성되는 도면도 있지만, 수백 번의 수정이 가해지는 경우도 있다.

 

설계도면을 화가의 작품에 견주어 이야기하기에는 유일함이라는 특성이 누락되어 있기 때문에 적절하지 못할 수 있지만, 설계도면집 한 권 속에 수천시간의 생각과, 여러 날의 밤샘과, 몇 건축가의 청춘이 담겨있으리라 생각해준다면, 그 도면을 받아들 때의 마음이 조금은 달라지리라고 생각한다.


 

 

면적은 크게, 기간은 짧게, 공사비는 싸게?

 

안도 타다오라는 유명한 일본 건축가가 아주 단순해 보이는 작은 주택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설계한 것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고, 학창시절 조금 의아하게 느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실무를 진행하다 보니, 넉넉한 설계기간꼼꼼한 도면을 만들게 해주고, 이 도면은 공사비가 크게 변동되지 않고, 공사에 필요한 자재와 인력을 제때에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되고, 설계기간이 여유 있다면 건축주 입장에서도 도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건축주는 최대 면적을 만들어달라, 그러면서도 총공사비는 싸게 하자, 도면도 안 그려져 있고 인허가 기간도 필요한데, 공사는 당장 다음 달부터 시작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넓게'와 '싸게'는 동시에 성립되기 어려운 내용이고, 빨리 만들어진 건물이 좋은 건물이 되는 데에는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그 지역에 있는 다른 집들과 비슷한 건물을 원한다면 '싸고 빨리가'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건축주 본인에 맞는 집, 우리 가족이 살기에 딱 맞는 집은 그보다는 더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건축주 입장에서는 무조건 저렴한 설계비가 눈앞에 이득일 수 있다. 하지만 설계비를 적절하게 책정하면 그만큼 완성도 있고 자세한 (상세도, 전개도 등) 도면이 많아지며 시공과정에서 설계비 차이의 몇 배를 절감할 수도 있다.


 

 

건축가, 건축사, 설계사, 건축기사, 현장소장, 소장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정기용 선생의 전시공간 중에 강연 동영상을 상영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정기용선생이 내린 정의에 나 역시 동의하고 있는데, 설계사는 도면 그리는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 건축사는 사회에서 만들어낸 자격제도, 건축가는 자신의 철학과 논리를 가지고 건축을 계획하는 직업을 뜻하는 단어로, 건축을 설계하는 분들을 건축가라고 불러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건축기사는 공사현장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자격요건이자 직급을 이야기하는 것, 소장은 사무소를 이끌어가는 사람이면서 그 정도의 일을 진행하는 사람을 부르는 직급)

 

해외에서는 건축가의 위상이 상당히 높다. architect라고 하면 눈빛이 달라질 정도인데, 국내에서는 건축가가 결혼정보업체의 여성이 남성을 선호하는 순위 중 하위에서 2번째 정도이며, 12개 전문직 중에 가장 수입이 적은 것으로 통계자료가 나오기도 하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나를 10여 년 전부터 알고 계시는 분도 이러한 호칭 및 자격요건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혼동하여 부르곤 하시는데, 많은 분들이 이에 대해 잘 알아주시고 적절한 호칭이 사용되면 좋겠다. 한편으로는 건축가’  라는 호칭에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 젊은 건축가들 중에 이 호칭으로 불리는 데 대해 스스로 조심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는데, 스스로도 자부심을 갖고 사회의 통념에도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해본다.

 

<사진은 직접 설계하고, 시공 했던 건물의 내부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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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를 좋아하는 건축가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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