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철이 다가와서 그런지 일본여행을 가고 싶다며 제게 문의하는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많아 여행계획을 도와주던 중 갑자기 몇 해 전 안도 타다오의 건축물들을 답사하기 위해 떠났던 간사이 여행이 생각났습니다. 아시는 분도 있으시겠지만 오늘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안도의 작품인 명화의 정원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교토 키타야마역. 관광객들이 잘 찾지 않는 조용한 동네인 이곳에서 안도 타다오의 특이한 건축물을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키타야마역 부근은 교토 부립 식물원과 교토 부립대학, 교토 콘서트홀과 교토 도서관이 위치한 조용하고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한적한 동네입니다. 교토 카라스마선 키타야마역 3번 출구 바로 앞에 ‘교토 부립 도판 명화의 정원’ (이하 명화의 정원)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명화의 정원은 미술관에 대한 저의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린 전혀 새로운 공간이었습니다. 이전까지 미술관에서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조용한 실내를 동선을 따라 걸으며 돋보이도록 배치된 작품들을 감상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명화의 정원이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미술관 건축물이라는 것을 듣고 도착했을 때,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명화의 정원에는 우리의 상식을 깨는 두 가지 큰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전시공간이지만 실내가 아니라는 점, 두 번째는 대부분의 작품들이 진품은 없다는 것입니다.
명화의 정원은 안도의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우선 위에서 설명했듯, 전시공간이지만 실내공간은 아닙니다. 외부를 일종의 공원같이 자연스레 걸으면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형태로 되어있으며, 지붕이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건축물에 형태에 안도의 특징인 노출콘크리트의 사용과 기하학적 구성이 아낌없이 나타나있어서 그의 건축세계를 들여다보기에도 충분히 좋은 작품입니다.
입장하게 되면 관람객은 명화의 정원의 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스레 작품들을 즐기게 됩니다. 여기서 제가 이 건물에 감동한 이유는 한걸음 걸음마다 눈앞에 보이는 공간이 계속 변화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매스가 교차되기도 하고 벽이 시선을 차단하거나 특정작품으로 시선을 유도하기도 하고, 길이 자연스레 아래층으로 내려가기도하며, 관람객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도록 합니다. 콘크리트로만 이루어져 있었으면 다소 익숙해질 수도 있지만, 수공간과 함께 조성되어 있어 한 단계 더 새로움을 더해줍니다. 수공간이 고여 있기도 하고, 깊게 조성되어 있기도 하고, 폭포처럼 흐르기도 합니다.
이어서 두 번째 특징이라고 언급했던 미술작품에 대해 설명해드리자면, 우선 이 미술관에는 진품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모든 작품은 타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명화의 정원은 세계의 명화들을 도판으로 재현하여 벽과 바닥에 설치해놓은 미술관입니다. 관람객은 위에서 설명했듯 공간을 경험하면서 동시에 작품들을 관람하게 됩니다. 물속에 작품이 있기도 하고, 벽에 의해 시선이 조절되어 작품에 유도되기도 하고, 어디서 봐도 보일정도의 거대한 작품도 존재합니다. 미술관과 미술작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려버린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히 방문하게 된 건축물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인 것도 기분이 좋고 신기했는데,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들을 깰 정도의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라 더욱 더 기억에 남습니다. 쉴 틈 없이 새로운 공간들을 끊임없이 경험하고 세계적 명화들을 감상하며 산책을 한다는 것은 건축가에게 있어 정말로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이지 않을까 합니다. 꼭 이 건물 하나만을 위해 교토 키타야마를 찾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지만, 혹시나 근처에 여행을 가시거나 업무상 들리실 일이 있으시다면 한번쯤은 꼭 들려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세계적 건축가의 실험적 정신과 기존의 틀을 깨는 공간감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 명화의 정원 정보
정식명칭 : 교토 부립 도판 명화의 정원 (京都府立陶板名画の庭)
위치 : 日本,〒606-0823 Kyoto Prefecture, Kyoto,左京区下鴨半木町
전화번호 : +81 75-724-2188
홈페이지 : kyoto-toban-hp.or.jp
+ 명화의 정원의 도판
명화의 정원에 전시된 작품들은 1990년 국제 꽃과 초록 박람회를 위해 제작된 작품 4점과 명화의 정원 개관에 맞춰 제작된 작품 총 8작품입니다. 도판은 원화를 촬영한 것을 세라믹 타일에 인화한 것으로 야외에서도 부식에 강해 오랜 시간 전시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8점에는 일본 고유의 작품을 포함하여 모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고흐 등의 명작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명화의 정원 맞은편에 위치하는 B-lock
+ B-lock
명화의 정원 바로 맞은편에는 안도 타다오가 초창기에 설계한 B-lock이라는 상업시설도 위치하고 있습니다. 혹시 명화의 정원 방문할 기회가 있으시다면 맞은편 B-lock도 답사하시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 본 건축이야기는 '건축블로그 마당'에 게시된 포스트를 새로 편집한 것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