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때문에 달라진 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커피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 커피가 무엇이냐고 물어봐도 딱히 할 말은 없네요. 그냥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문득 내가 마시는 '커피' 때문에 뭔가 할 말이 생겼고, 여행을 가서 멋진 풍경을 보는 것말고도 '커피' 때문에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정도. 친구들과의 이야기가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로 기억되기도 하고, 낯선 여행지의 기억이 과테말라 안티구아가 되기도 하는 그 정도였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그저 그런 일상에 가끔씩 작은 여운, 혹은 떨림을 안겨줄 그 무언가... 그게 '커피'가 아닌가 싶네요.
그렇다면 조여사에게 '커피'란 무엇일까요?
어쩌다보니 조여사네 삼남매 모두 커피를 좋아하게 돼 버렸습니다. 물론 거창한 철학이나 계획을 갖고 그렇게 된 건 아닙니다. 각자의 일을 하다가 잠깐이라도 머리 식힐 여유를 찾던 중 차례로 '커피'를 좋아하게 되었고 공부를 시작하게 돼 버렸습니다. 여기까지는 '커피' 좀 좋아하고 '커피' 좀 안다라고 자랑하는 그저 그런 흔한 이야기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런데 진짜 큰 일이 생긴 건요. 그 다음입니다. 조여사가 바리스타 공부를 시작한 거죠. 누구보다 어렵게, 헌신을 다해 자식 셋 키워낸 조여사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공부를 시작한 겁니다.
물론 여기까지도 그저 그런 이야기 중 하나 같았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진짜 깜짝 놀랄 큰 일이 생기고야 말았습니다. 조여사가 커피 좋아하는 자식들을 위해 무언가 하나 만들어주겠다고 나선 겁니다. 자식들 키우는 동안 자신을 위해서는 옷 한 벌도 사입지 못했던 조여사입니다. 그런데 통 크게도 커피 좋아하는 자식들을 위해 '카페'를 만들어주고 싶다네요. 넉넉히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에 땅을 숨겨 놓은 것도 아닌 조여사!
그런데 어느 날, 건축 설계도와 함께 모형을 하나 내놓았습니다.
작은 땅에 지을 수 있는 건물, 그 모양만이라도 알고 싶어 건축가를 찾아가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온 1차 설계도와 건물 모형! 감사하게도 건축가가 설계 의뢰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평면이나 3D설계도가 아닌, 이렇게 직접 모형을 만들어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얼마 후 두 번째 설계안과 모형이 나왔습니다.
건축 모형을 보면서도 자식들은 설마.. 했습니다. 그저 장난감 같은 모형을 보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공간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는 재미가 꽤 좋더라는 것, 그래서 그 재미에 푹 빠져버려 이게 진짜든 가짜든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 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설계안과 모형이 나왔습니다. 이때부터는 조금씩 이게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처음 설계를 의뢰한 지 1년여, 건축가로부터 네 번째 설계안과 모형이 나와버렸습니다.
네번째 설계안에서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대지가 넓지 않구요. 그리고 대지 모양이 정사각형도 아닌, 한쪽 귀퉁이가 잘라져나간 모양이라 많은 고민이 있었는데, 그것을 감추기보다 적극 활용하자는 쪽으로, 그래서 인위적이기보다는 자연스러우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쪽으로 설계가 변경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번째, 여섯번째 설계안이 나왔고, 조여사는 이 무모한 도전을 이해 못하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리스타 학원에서 제일 나이가 많았던 자신을 보며 '커피'를 배울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던 그 때를. 자식뻘 되는 수강생들을 보면서 나는 왜 커피를 배울까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자식 다 키운 엄마가 이제 와서 '커피'로 무슨 명예를 얻겠나 돈을 벌겠나 싶었다고. 그때 생각했다고 합니다. 몇 십년만에 처음으로 '나'를 위해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그리고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배웠던 저희와 달리, 조여사의 '커피'는 그렇게 특별했습니다.
조여사가 자식들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 그냥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일을 용감하게 시작했습니다.
'엄마의 카페 짓기'!
길목 좋은 곳도 아니고 이상적인 카페를 꿈꿀 만큼 넓은 땅도 아닙니다. 어떤 곳에 어떻게 카페를 지어야 좋을지 잘 알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걸 쫓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기대가 됩니다.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카페가 아닌, 조여사만의 따뜻한, 소박한 카페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