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찾는 편이다. 매번 정해진 전시실에서 건축관련 전시가 진행되는데, 그 내용이 매번 알차고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이뤄진 건축전시로는 이타미준, 김종성 등의 내가 잘 알지 못했던 건축가를 다룬 것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낯선 건축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기회로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 새롭게 진행중인 과천관의 건축전시도 이와 유사하다. 개관 30주년 기념으로 과천관의 설계 건축가인 김태수씨에 대한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사실 매번 과천관을 찾으면서 건축가는 누구인지 궁금해 하기는 했으나 찾아보지는 않았는데, 과천관 스스로 알려주고 전시까지 진행해주니 나로써는 어부지리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김태수 건축가는 예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주로 국내보다는 해외, 북미에서 활동한 재미건축가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많이 알려진 건축가라고 하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그에 대해 알아보았다.
한명의 건축가를 대상으로 했던 지난 전시들과 마찬가지로 김태수 건축가의 전시도 연대기 순으로 펼쳐졌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며 건축계에 입문한 시기를 시작으로 하여, 개인사무소를 개소하고,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국내 작업을 했던 시기를 지나 현재까지의 순으로 이어진다. 연대기 순의 네 파트가 끝이 나고 마지막에는 과천관 개관 기념 전시인 만큼 과천관에 대한 내용을 다룬 하나의 파트가 덧붙여 있다.
김태수 건축가는 국내에서 공부할 당시 루이스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루이스칸의 건축물이 있고, 그가 교수활동까지 했던 예일대학교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시절 초기의 계획안들은 주로 학생 때 연구논문과 과제로 이뤄진 것인데 대부분이 공동주택, 공동주거에 대한 것들이었다. 아마 김태수 건축가가 유학하던 당대의 건축적 이슈 혹은 미국만의 이슈가 공동주거였던 것으로 보인다. 위의 사진을 보면 요즘에도 볼 수 있는 블럭형 공동주거에 대한 계획안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이름을 알리게 된 주요작품은 위와 아래 사진으로 보이는 '벤 블록 주택'이라고 한다. 앞서 설명한 것과 마찬가지로 공동주택에 대한 계획안이다.
벤 블록 주택은 기본적으로 주거동으로 둘러친 사이를 공공보행과 마당과 같은 중정공간으로 두고, 그 곳을 향해 거주민의 줄입구를 그 공간의 공공성을 높인 것으로 보였다. 사실 전시를 관람할 당시에는 왜 이 계획안이 이슈화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위에서 묘사한 벤 블복 주택의 구성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위 평면의 구성이 독특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벤 블록 주택의 계획안이 발표된 시기를 간과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발표시기는 1970년대이다. 지금보다 약 40년 가까이 이전에 발표된 것인데, 현재와 비슷한 수준의 논리를 지니고 있었으니 당시에는 더욱 높게 평가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나, 항상 그 시대의 건축가들이 고민하는 공동주거, 주거에 대하나 고민을 김태수 건축가 역시 하였고, 또한 좋은 성과를 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태수 건축가는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국내에도 끝없이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그는 서울의 마스터플랜도 제시했는데, 인천부터 이어지는 마스터플랜은 시야가 넓고 파격적인 계획안으로 보였다.
그의 공동주거에 대한 계획안들에서는 테라스를 이용해 각 세대의 환경을 좋게 하려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고, 아래 사진에서처럼 우리 나라의 전통 마을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첫 파트에는 김태수씨의 인터뷰 영상이 있는데, 그의 사무실에서 실무를 쌓은 건축가 황두진씨가 질문자로 과천관의 설계에 대한 내용을 진행하는데, 꽤나 재밌고 흥미로우니 끝까지 보는 것을 추천한다.
두번 째 파트는 김태수 건축가가 개인사무소를 개소한 뒤의 작품들로 이뤄져 있는데, 주로 개인주택들이 많다.
아래 각 주택들의 평면과 모형사진을 나열했는데, 공통적인 특징이 기하학적인 평면에서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이야기 했던 루이스 칸의 영향 때문인지 이 시기의 작품에서는 기하학의 논리가 강하게 묻어나오고 있다.
긴 정방형의 매스를 엇갈려 놓은 주택안(위 아래)
정방형의 주택 (위)
세번 째 파트는 김태수 건축가의 공공건축물 프로젝트 주제로 한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작품 중 하나인 미들버리 초등학교 (위/아래) 우리가 흔히 보는 초등학교와는 전혀다른 구성의 건축으로, 지형의 단차까지 활용한 융통적인 계획안이다. 우리나라 학교 건축에도 하루 빨리 이와 같은 융통성이 발휘됐으면 하는 바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였다.
그의 스케치와 도면들을 보면 무언가 딱딱 들어맞는 합리성이 돋보인다. 비록 극적인 효과는 덜하지만, 명쾌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래 작품은 미 해군 잠수함의 훈련시설에 대한 것인데, 평면, 단면, 입면 모두 십자의 형태의 구조로 이뤄져 있다.
네번 째 파트는 국립현대미술관을 포함한 국내 작업들에 대한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마지막에 따로 다루기에 이 파트에선 간단한 소개정도만 하고 있고, 나머지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주로 다뤄져 있다. 대규모 프로젝트는 연수원, 대학교의 회관등의 건축물이 있는데, 대규모이지만 최대한 좋은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한 흔적이 있다. 공동 주택작품에서도 보였던 테라스를 둔다던지, 중간 중간 공간을 비워 중정을 두고 매스를 꺾어 위요하게 만드는 등의 건축적 기법은 김태수 건축가가 추구하는 건축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다섯 번째 파트는 김태수 건축가의 전성기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 시기에 황두진 건축가가 서울지사의 소장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시기상으로는 전성기라 하지만, 건축적 내용은 이전시기와 별반 다르지는 않아 보였다.
금호미술관(위) / 튀니지 미국대사관(아래)
여섯번째 파트는 현재의 김태수 건축가에 대한 내용인데, 이전과는 다른 면을 찾을 수 있어 흥미로운 파트였다. 현재 강남고속터미널 부지에 계획중인 타워는 앞선 파트에서 보아오던 정형적인 구조를 벗어난 비정형의 모습을 갖고 있다. (아래)
위 아래는 각각 스탐포드 학교, 블룸필드 유치원이라는 작품에 대한 것인데, 보는 바와 같이 비정형의 평면을 지니고 있다.
건축계의 거장인 꼬르뷔지에가 그랬던 것처럼 김태수 건축가도 긴 건축 습득의 시기를 지나 이젠 맘껏 양껏 발휘하는 시기에 다달았지 않나 생각해보게 된다. 그동안 해오던 것에 안주하지 않고 색다른 것을 도전하고 있는 본받을 만한 모습이 아닐까..
마지막 파트에서는 미리 이야기 했듯이 과천관에 대한 내용만을 다루고 있다. 평입단, 모형 등 다양한 자료가 있어 알차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방문하여 확인하시길.
국내에서보다 해외 위주로 활동한 건축가여서 낯선 면이 없지는 않으나, 건축이라는 공통 주제로 보았을 때, 여느 건축가와 같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전시였다. 이미 국내 최초의 국립현대미술관 프로젝트를 진행했음은 그의 실력을 반증하는 것이기에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찾았고, 충분히 그럴 만한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배움보다는 느끼는 것이 많았으나, 배움 느낌 모두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실제로 전시물은 업로드된 사진보다는 훨씬 많으니 직접 보면 더 좋을 듯 하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무료로 이뤄지고 있으며, 전시 기간은 6월 6일까지로 예정돼 있으니 점점 좋아지는 날씨에 나들이 겸 들러 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