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도시 밀레투스
기원 전 6세기, 이오니아 인들이 건설한 고대 그리스의 도시 밀레투스 (Miletus)는 당시 그리스 동부의 가장 거대한 도시였으며,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도시국가였습니다. 해외무역으로 큰 부를 축적하고 흑해에 많은 식민지를 건설했으며 철학자의 시초로 불리는 밀레투스학파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 밀레투스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것은 바로 밀레투스가 인류의 첫 번째 격자형 계획도시이기 때문이죠.
고 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건축가인 히포다무스는 고대 그리스의 뛰어난 기술과 고도로 발달된 사회적 질서를 그리드 (Grid, 격자)를 통해 밀레투스를 표현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격자로 잘 계획된 도시들이 사실은 기원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죠.
그리스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로마 이야기도 안하고 지나갈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라는 말이 있죠. 프랑스 시인 라 퐁텐의 우화집에서 처음 나온 격언으로 당시 로마의 엄청난 세력과, 수도 로마로부터 광활한 영토의 끝까지 연결된 군사도로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최초로 만들어진 격자형 계획도시가 밀레투스라면 좀 더 넓은 의미로 격자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로마의 군사도로로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군사 주둔지는 두 가지 큰 도로를 기준으로 계획, 조직되었습니다. 남북방향의 도로인 카르도 (Cardo)와, 동서방향의 도로 데쿠마누스 (Decumanus)가 그것입니다. 미국의 도로 시스템 에비뉴 (Avenue), 스트리트 (Street)와 같죠. 로마의 이 두가지 도로체계는 직선으로 뻗은 도로와 그 도로에 직선으로 면하는 또 다른 도로라는 단순명확한 개념이기 때문에 영역이 확장되어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대로 확장되었습니다. 이 도로체계는 로마의 광활한 영토를 효과적으로 정리했고 로마의 영토가 확장되어가면서 현재 유럽의 영토들로 널리 퍼져갑니다.
2천년을 넘어 로마의 군사도로계획은 현재까지도 그리드라는 훌륭한 건축적 질서로 남아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세계 각지의 대도시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시카고의 야경. 제퍼슨 그리드로 계획되어 격자형태를 선명히 볼 수 있다.
미 서부를 개척한 큰 건축적 질서는 ‘제퍼슨 그리드’입니다. 미국은 서부를 개척하면서 효율적으로 토지를 개척하고 도시를 건설할 건축적 질서가 필요했습니다. 제퍼슨 그리드는 한 변이 1마일, 넓이가 1제곱마일 (640에이커)인 그리드로 땅을 분할했습니다. 제퍼슨 그리드로 인해 미국은 빠르게 서부를 개척하며 확장해나갔고 현재도 미국 서부의 대도시들은 제퍼슨 그리드형태로 도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오래전부터 인간은 건축적 질서인 그리드를 통해 도시를 구획하고 건설했습니다. 이 위대하고 단순한 질서는 오랜 시간을 이어 현재까지도 도시 조성의 기본 질서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드야 말로 가장 단순하면서 가장 합리적인 건축적 질서인 것 같습니다.
- 본 건축이야기는 '건축블로그 마당'에 게시된 기획연재 시리즈 '전진석의 건축소담'의 포스트를 현 상황에 맞추어 새롭게 편집,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 본 게시물부터 건축 블로그 마당의 전진석 / 이대균이 하나의 아이디로 통합됩니다. 각 게시물 끝에 작성자를 표기하겠습니다.
건축 블로그 마당 전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