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슈는 난징 공대를 졸업한 후 10여년간 목수들과 어울리며 전통건축을 체득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학사 학위를 가진 상태지만, 그는 스스로가 중국 전통 건축을 하나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며, 이는 직접 체득해야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역성, 전통성, 재료의 중요성을 중시하는 그의 건축철학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자리잡았고 그 건축철학이 그를 몸으로 직접 건축을 공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왕슈는 늘 건축의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소위말하는 중국 건축계의 엘리트 주류인 해외파가 아닌 '국내파'의 대표적 건축가였습니다.
그의 건축철학은 2000년에 있었던 일화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상하이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은 왕슈에게 학교측에서 건축학 교수직을 제의합니다. 하지만 왕슈는 그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그의 사상에 따르면 상하이는 뉴욕과 로스앤젤러스와 라스베가스를 섞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상을 바탕으로 왕슈는 상하이를 중국이 아니라고 정의하며 내가 아는 중국이 아니므로 나는 이 곳에서 건축을 할 수없다고 했습니다.
젊은나이에 확고한 건축세계와 전통을 중시하는 고집으로 확실한 자리를 잡은 그는 공공건축물 프로젝트에 다수 참여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항저우 미술학원의 교수이자 중국미술학원의 건축예술학원장으로 재직중입니다.
왕슈는 1997년 문을 연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며, 확고한 자신의 건축세계를 펼쳐가는 중입니다. 그의 설계사무소의 이름은 아마추어 건축 스튜디오입니다. 왕슈는 인문학과 전통 수묵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평소에도 건축가가 아닌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합니다. 아마추어라는 그의 사무실의 이름도 스스로를 건축의 전문가가 아닌 인문학을 더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리는 유쾌하면서도 겸손한 자세때문입니다. 재미있는 또하나의 이야깃거리는 아마추어 설계 사무소의 설립자가 왕슈와 그의 아내라는 점입니다. 왕슈와 아내는 난징 공대 시절 캠퍼스커플로 그 인연을 쭉 쌓아오다가 함께 아마추어 설계 사무소에서 부부건축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2012년 왕슈가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의 에피소드입니다. 왕슈가 중국최초이자 프리츠커상 역대 최연소 수상자로 뽑히자, 중국 건축가협회는 당황해서 긴급회의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앞서 서술한대로 주류건축가가 아닌 건축계의 비주류였던 왕슈가 유명한 중국 현대건축가들을 제치고 선정되자 당황한 것이죠. 결국 중국건축가협회는 그에게 축전조차 보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왕슈는 기가 죽기는 커녕 자신만의 건축관을 유지했고, 오히려 더욱 더 열심히 전통성과 지역성을 살릴 것을 역설했습니다. 그의 건축들에는 중국 전통 대나무로 만든 거푸집을 이용해서 대나무 문양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으며, 기와나 벽돌에 폐건축물에서 수거한 재료를 재사용하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중국의 자랑스러운 수천년 역사를 건축물에 표현하는 것이죠.
왕슈를 로컬 히어로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굉장히 멋진 표현인 것 같습니다.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과거를 잃어버리고 있는 현대 중국 사회에서 그는 정말 로컬히어로입니다. 고성장, 급속성장에 빠져 모두들 고층빌딩위주의 상하이로 대표되는 현대건축만을 중시하고 있는 중국 사회에서 왕슈는 잃어버린 중국의 수천년의 역사를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리츠커재단은 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프리츠커상에 왕슈가 당선되었을 당시 건축계에서는 상당히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고 합니다. 당시의 왕슈가 던진 화두는 현대사회에서 잃어버린 전통성과 지역성의 회복이었죠. 그의 프리츠커상 수상이 남긴 의미입니다.
한국 건축계는 일본이 아닌 중국의 프리츠커상 수상에 큰 충격을 받았나봅니다. 왕슈의 건축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껴봅니다만, 우리도 우리의 전통과 지역적 특징을 살려 모두가 다 하는 현대건축이 아닌 우리나라에 맞는 우리만의 현대건축을 찾아야하지 않을까요?
건축 블로그 마당 전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