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평일 낮 시간을 얻게 되어 생각나는 전시를 관람하게 되었다. 얼마전 강렬한 전시 포스터로 기억하고 있던 전시인데, 제목은 '도시는 선이다-불도저시장 김현옥'으로 제목에도 써있듯이 김현옥 전 서울시장을 주제로 한 전시이다. 일반인들에게는 김현옥 시장의 존재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나, 건축을 전공하고 실무를 하는 나에게는 대학시절 강의 시간에 종종 듣곤 했던 인물이다.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불도저라는 별명이 붙은 것처럼 매우 급진적이고 큰 범위의 서울의 개발을 진행했던 시장이다. 대규모의 고속도로, 간선도로, 아파트 등의 개발을 하여 서울을 급격히 변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런 이유로 서울역사박물관에 전시가 이뤄졌으리라 본다. 시장 말기에는 와우아파트 붕괴라는 사건을 겪으며 불명예스럽게 사퇴를 하게 되지만, 그가 남긴 발자취는 지금의 서울이 있기까지 꽤나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도시는 선이다
전시는 무료로 진행되고 있다.
전시의 큰 틀은 김현옥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부임하면서 해내가는 일들의 연대기 순으로 이뤄졌다.
'서울은 만원이다'
김현옥 시장이 취임할 당시의 서울은 이런저런 요소들로 가득 차 있던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시장으로 부임한 그는 전체적으로 도시를 정비하고 개발할 마음을 가졌다. 전시 내용 뿐만 아니라 전시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자료들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아래 사진의 서울 지도에는 과거의 서울의 형태와 구조가 남아 있는데 지금과는 꽤나 많은 부분이 달라 낯설면서도 신기하였다.
본격적으로 시정을 시작하면서 그는 불도저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가 '도시의 생명은 선이다'라는 것인데, 여기서 선이 상징하는 것은 도로이다. 그가 시장으로 재임하면서 건설하고 만든 도로가 현재의 서울의 주요도로이다.(강변북로 등)
도로와 더불어 그는 도시규모의 건축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데, 건축학도들은 익히 알고 있는 세운상가도 이 시기에 세워졌다. 그는 도시입체화라는 키워드처럼 도시를 수평적임과 동시에 수직적으로도 활용하려 했다. 아마 당시의 건축적인 이슈도 그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주력했던 것 중 하나는 여의도 개발이었는데, 당시의 여의도 개발계획안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건축가 김수근의 계획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미래적인 계획이었고, 아마 그와 같은 계획은 김현옥 시장의 생각과도 잘 맞았을 것이다.
인상깊었던 부분 중 하나인 북악스카이웨이와 터널에 대한 이야기. 그 건설 이유가 방공이었다고 한다. 북한 간첩으로 인해 청와대가 위협받자 북한산 능선으로 도로를 만들었다고 하니, 지금 시대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들이다. 역사적 배경과 도시의 개발이 연관이 있다는 점은 사뭇 새로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훗날 바라보면 이와 같은 이유로 진행된 요소들이 곳곳에 남아 있을 듯....
마지막으로 그가 시장으로서 주력했던 사업은 시민아파트의 건설이다. 그는 당시 판자촌 등 낮은 질의 주거들이 즐비하던 서울을 시민아파트라는 개념을 도입해 빠르게 개선하고자 하였다. 그의 성격과는 잘 맞는 결정이기는 하나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면밀하고 세밀한 조사보다는 신속한 결정과 결과물 생산을 우선한 그의 결정으로 서울의 풍경의 많은 것들이 변하고 심하게 말하면 망가졌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시정생활은 와우아파트라는 시민아파트의 붕괴와 함께 막을 내린다. (위 사진은 와우아파트의 붕괴당시 사진)
결국 김현옥 시장은 아래와 같은 사과문을 남기며 시정을 마무리하였다. 사과문에서는 꽤나 깊은 진정성이 느껴져, 이상을 잃은 한 사람의 안타까움도 묻어나는 듯.
시장직에서 물러난 김현옥은 부산의 중고등학교의 교장으로 남은 일생을 보냈고, 전시자료를 보면 꽤나 열심이었던 교장으로 기억된 것으로 보인다.
전시 끝에는 몇몇 전문가의 김현옥 시장에 대한 평으로 마무리된다. 대부분의 평이 지나치게 급진적인 개발이 아쉽다는 평..
평소 즐겨보던 건축전시에 비해 그 무게가 훨씬 가벼워 부담없이 관람할 수 있었다. 또 가벼운 덕분인지 관람 중간중간 이런 저런 생각을 더할 수 있기도 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가끔 건축학도 혹은 건축실무자를 위한 전시들이 이뤄지곤 한다. 예전 동일본 대지진관련 전시를 인상깊게 보았었는데, 이번 전시도 그만큼의 강한 인상은 아니지만 나름의 의의가 있는 전시라 흥미로웠다. 전시는 앞선 포스터 사진에도 포함된 것과 같이 8월 21일까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