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사태와 건축가가 지켜야 할 법규
얼마 전 폭스바겐 그룹의 디젤 엔진 배출가스 테스트 조작이 큰 이슈가 되었다. 청정한 디젤엔진을 표방했으나 테스트시에만 실제보다 적게 배출되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여 유해가스를 줄이도록 조작했다. 폭스바겐 그룹의 비윤리적인 행동은 전세계 수많은 자동차를 리콜하고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징수하며 기업의 이미지에 커다란 타격을 주는 것을 넘어서, 독일의 국가이미지와 국가적 차원의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윤리적인 차원은 넘어서 대기를 오염시키는 등의 범죄행위일 수 있다.
[폭스바겐 차량들]
이러한 뉴스를 살펴보며 건축가가 지켜야 할 법규와 지켜야 할 윤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건축물을 설계하는 과정에는 건축법을 비롯한 다양한 법규를 체크하고 반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건축주들은 건축가에게 주변의 건축물들이 대부분 불법행위를 하고 있으니 자신의 건물도 법규를 어기더라도 수익성이 좋은 건축물을 만들어주기를 원한다. 언젠가 건축물의 허가권자가 ‘돈 벌려면 당연히 불법행위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을 정도로 이러한 불법행위는 사회 곳곳에 만연해있다.
설계 의뢰를 받으면 먼저 대지를 살펴본다. 그러면서 주변 건축물들을 함께 살펴보게 되는데 너무나 많은 불법건축물이 있어서 매번 놀라곤 한다. 최근 한 유명 소속사 대표가 사옥 일부를 불법 증축하여 불구속 기소되었다는 기사를 보기도 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상대적으로 그 정도는 양호한 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나라의 건축현실은 심각해 보인다. 심지어 카페, 레스토랑을 주차공간까지 불법으로 확장하여 사용하는 건축물이 건축잡지에 버젓이 실리는 경우도 있다. 자동차의 배출가스를 확인하려면 전문적인 장비가 필요하겠지만, 건축물의 불법행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전문지식이 필요하지는 않다. 그저 우편함이나 계량기 숫자, 혹은 보일러 연도만 살펴봐도 확인이 가능하다. 많은 지역에서 건축물대장의 세대수보다 실제로 2배의 세대수를 가진 건축물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일명 ‘쪼개기‘라는 표현으로 통용된다), 이러한 건축물은 확보해야 할 주차 공간 및 오수처리시설 등을 갖추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지역에 주차문제 등 다양한 문제점을 야기한다.
[한 다세대건축물 외벽에 매립된 우편함, 건축물대장상의 세대수에 비해 2배수가 설치되어 있다.]
과연 이러한 건축물이 만들어지기까지 건축가의 관여가 없었겠는가를 묻는다면, 건축가의 관여가 없을 경우에 이러한 결과가 만들어지기 어렵다고 대답할 것이다. 적법하게 완공하고 추가로 공사를 하여 세대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를 염두하고 시공하고 감리자와 사용승인 검사자가 도면대로 시공하지 않는 것을 묵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대다수의 건축가가 이러한 불법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며, 몇몇 비윤리적인 건축가들이 이러한 세대수 늘리기(쪼개기)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불법행위를 하지 않도록 건축주를 설득하고 더 나아가 적법하게 지어진 건축물을 설계하여 건축과 도시를 아름답게 해야 할 건축가들의 윤리의식이 부족하여 우리의 건축현실이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욕망의 산물로서의 건축
봉화군에 위치한 송석헌이라는 문화재로 지정된 한옥을 답사할 때 붓글씨를 쓰시며 가옥을 관리하시는 어르신께 인상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집주인의 관직이 높을수록 집을 높게 (마루면에서부터 도리까지의 높이) 지을 수 있도록 정했는데, 집을 지을 당시에 추후에 더 높은 관직을 역임할 것을 기대하고 사랑채의 지붕을 높게 계획했고 마루를 높여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관직이 오를 때 지붕을 높이려면 집을 다시 짓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데, 이처럼 미리 높은 지붕을 만들고 마루만 해체하여 낮추면 큰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논리이다. 당시의 건축법에 대해 궁궐이나 왕족이 아니면 두리기둥(단면이 둥근형태인 기둥)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나, 지방의 사대부들이 종종 두리기둥을 사용하기도 했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송석헌의 경우는 건축법의 취지인 근검절약을 위해 적절한 규모를 가지라는 것에는 반할 수 있지만, 법규 자체는 지키면서도 미래에 대한 염원을 담아낼 수 있는 재치를 가진 건축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봉화 송석헌 – 사랑채의 마루가 추후 개축을 전제로 높이 만들어져 있다.]
[헤이리 예술마을의 건축물]
패션도 단순히 추위를 막고 몸을 보호하는 의복을 넘어서 자신을 멋지게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며, 좋은 자동차를 타고 싶은 것도 단순한 이동수단을 넘어서 자신이 그만큼의 재력을 가졌음을 표현하는 수단일 수 있다. 그보다 훨씬 크고 복잡한 건축에서도 이러한 욕망이 읽혀지는 경우가 많다.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는 법규는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건축설계지침을 정해서 통일성 있고 아름다운 마을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벽에 페인트를 칠하지 않고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재료를 사용하기로 되어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외장재로서의 페인트 도장을 넘어서 벽면에 자사의 캐릭터들을 그림으로 그려넣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건축설계지침을 가진 파주 출판도시는 이에 비해 비교적 건축설계지침을 잘 준수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여전히 여러 건축물에서 지침의 한도 내에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크게 만들고자 하거나, 좋은 전망을 갖게 하거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이 건축에 투영된 것이라 생각된다.
때로는 건축주가 아닌 건축가의 욕망이 더욱 큰 경우도 있다. 건축가가 자신의 표현방법으로 건축을 계획하며 건축주가 예상하지 못한 수준의 계획을 하는 경우도 있다. 건축에 표현된 욕망은 법규를 준수하며 독립적인 개체가 아닌 주변과 도시를 고려하는 수준에서 표현되어야 하며, 그러지 않는 경우는 자신만을 위해 주변을 해치는 나쁜 건축이 될 수도 있다.
가설계 하지 맙시다
얼마 전 프로젝트를 의뢰하는 전화가 무척 많던 기간이 있었다. 하지만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좋은 건축물을 설계하고자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 가설계 도면만 보내달라는 경우였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본적이 없는 사람이 주소만 불러주는 상황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느껴져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글로 정리해서 여러 SNS에 올렸고 많은 건축가들의 관심을 받고 공감을 이뤘다. 얼마나 많은 건축가들이 수주를 위해 가설계 도면을 작성해주고 있으면 이처럼 시식코너의 음식을 먹어보고 맛이 있으면 구입하고, 그렇지 않으면 구입하지 않는 정도의 가벼움으로 자연스럽게 가설계 도면을 요청하는 것일까 하는 건축가라는 직업 전반에 대한 측은함을 가지기도 했다. 다수의 건축가들이 작은 움직임이라도 변화를 추구하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가설계라는 관행을 개선하고자 정리한 내용]
먼저 가설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제안하고 싶다. 건축주가 이 단어를 사용할 경우 그것이 건축가가 책임질 필요가 없는 ‘공짜설계, 가짜설계’라는 뜻으로 인식된다고 설명해주고 ‘규모검토’ 등의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덧붙일 필요가 있다. 또한 법규 및 규모검토를 진행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을 인식시키고 소액이나마 계약을 체결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건축가도 책임감을 가지고 검토를 진행할 것이며, 추후에 정식 계약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또한 건축주 입장에서 가설계 도면을 무료로 받은 후 설계계약을 체결했다면, 자신의 건물을 설계하는데 집중하여 시간을 쏟아야 할 건축가가 다른 가설계 도면을 작성하기 위해 시간을 쓸 것이라는 것 또한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건축가가 더 신뢰를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에 비해 사무실로 찾아오시는 절차를 당연히 거치고 먼저 계획안 작성에 소요되는 비용이 있는지를 여쭤봐 주시는 분들도 있다. 대부분 자기철학을 가지고, 건축을 진행해봤거나, 디자인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다. 말투 하나에도 존중이 묻어있고, 마음을 움직여 더 좋은 공간을 설계하기 위해 노력하게 한다. 가설계 행위를 수주를 위한 투자라고 좋게만 포장할 것이 아니라, 자신과 모든 건축가들의 시간을 소모하게 만드는 행위라고 인식해야 할 것이다.
윤리-책임-권리
건축은 창조적인 가치를 지닌 문화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이 사회 전반에 자리잡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오히려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고 대형 건설회사가 개발사업을 벌이며, 이에 편승해 토지를 소유한 국민들이 건물을 지어 분양하거나 매도하는 등 부동산 사업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만연하다. 한편으로는 일본에서 건축사를 다양한 등급으로 구분하듯이, 집장사하듯 찍어내는 건축가와 디자인과 문화적 가치를 끊임없이 지향하는 건축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솔깃하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건축가들이 가진 생각들은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건축이 디자인과 문화적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이 옳다는 데에는 모든 건축가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불법행위들을 근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 건축가만 노력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고, 건축주의 윤리, 더 나아가서 사회적인 제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불법행위를 해야 돈을 번다는 인식이 철저히 지워지고 윤리적인 사람이 더 대우받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까짓 이행 강제금을 납부하더라도 불법 건축물을 만들어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건축가는 선봉에 서야 한다. 적극적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건축주를 설득하며 우리의 도시가 좋은 건축물로 채워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 건축은 오랜 시간을 지속한다. 자신의 이름을 달고있는 건축물이 불법으로 얼룩져 있다면 그 모습을 부끄러워해야하고 더 나아가 준공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리할 필요를 가진다. 건축가로서의 윤리를 적절히 갖추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 보다 많은 책임감을 가지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윤리를 바탕으로 디자인과 문화를 추구하는 건축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건축가로서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민간공사에서 젊은 건축가들은 정부 혹은 협회에서 정한 수준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되는데, 그렇더라도 이러한 기준을 근거로 제시하고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어필해야 한다. 건축가들에게 주어지는 책임과 해야 할 업무는 사회적 인식보다 훨씬 크고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윤리적으로 탄탄히 하고,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 건축가로서 지속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올바른 인식이 자리잡고 건축으로 인해 우리 삶이 더욱 아름다워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