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관련 서적을 읽다 보면 법칙처럼 등장하는 건축가들이 있다. 로스 킹Ross King은 "건축가의 사회적 지위와 건축가에 대한 지적 평가가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한 계기가 된 건축가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eleschi(1377~1446)를 꼽았다. 그래서 브루넬레스키는 르네상스 시대 건축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물론 이 시기를 대표하는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와 미켈란젤로Michelangelo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시대 건축을 얘기할 때는 로마를 배경으로 활동한 조반니 베르니니Giovanni Bernini(1598~1680)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Francesco Borromini(1599~1667)가 등장한다. 그럼 그 사이 시기에는?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다. 그는 1508년 11월 30일에 태어나 1580년 8월 19일에 세상을 떴다.

팔라디오는 그리스·로마 건축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르네상스 끝자락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르네상스 천재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답습하지도 않았다. 그가 설계한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베네치아 공화국 통치 범위 내에 있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서유럽 전체로 퍼졌다. 특히, 그가 쓴 《건축사서The Four Books of Architecture》가 큰 역할을 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팔라디오가 공사는 실제적인 현실 조건에 맞추어 했지만 책에 실린 도면은 이상화시켜 보편성을 갖도록 했다는 것이다. 《안드레아 팔라디오(르네상스)》를 쓴 와타나베 마유미는 "팔라디오의 건축이 큰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건축사서》에 실린 도판이 응용하기 쉬운 형태로 추상화되고 보편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팔라디오가 이렇게 한 이유는 "Beauty will derive from a graceful shape and the relationship of the whole to the parts, and of the parts among themselves and to the whole, because buildings must appear to be like complete and well-defined bodies, of which one member matches another and all the members are necessary for what is required"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The Perfect House: A Journey with the Renaissance Master Andrea Palladio, Witold Rybczynski, ScribnerBookCompany》.

팔라디오 건축이 베네치아 공화국을 넘어 서유럽으로 전파되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은 영국건축가 이니고 존스Inigo Jones(1573~1652)다. 이니고 존스를 통해 영국으로 건너간 팔라디안 건축Palladian architecture은 이후 미국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미국의 3번째 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팔라디오 양식을 많이 좋아했는데, 미 국회의사당 건물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미의회는 2010년 12월 6일 의회결의안을 통해 팔라디오를 '미국 건축의 아버지Father of American Archiecture'로 명했다.

그의 이름과 얽힌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그의 본명은 'Andrea di Pietro'였다. 이후 그가 활동한 지역명을 붙여 'Andrea Padovano'나 'Andrea Vicentino'로 불렸다. 그러다 트리시노Trissino가 'Andrea Palladio'라는 이름을 제안했고 이후 그는 서사시에서 이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Palladio'를 의미하는 라틴어 'Palladius'는 '현명함', '지식', '연구'와 관련된 단어로 그리스신 'Pallas Athena'에서 유래했다. 'Palla Athena'는 그리스 수도 아테네Athens와 관계 있는 아테나 여신의 다른 이름으로 이 신은 '지혜의 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결국 Andrea Palladio라는 이름에는 지혜의 신, 아테네가 담겨 있다.

팔라디오의 작품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도시는 이탈리아의 비첸차Vicenza다. 그래서 비첸차는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도시'라 불린다. 팔라디오는 비첸차에 인접한 파도바Padova에서 태어났다. 그의 첫 번째 도제 생활도 파도바에 있는 바르톨로메오 카바차Bartolomeo Cavazza라는 석공 밑에서였다. 하지만 팔라디오는 도제생활을 하기로 한 6년 계약을 파기하고 18개월 만에 비첸차로 왔다. 그의 나이 16세 때 일이다. 비첸차에서 팔라디오는 그의 대부이자 조각가 비첸초 데 그란디Vicenzo de Grandi의 도움으로 석공 길드에 가입했고 페데무로 스튜디오Pedemuro Studio의 어시스턴트Assistant가 됐다. 그렇게 비첸차에서의 경력이 시작됐다. 현재 비첸차와 그 주변에는 그의 작품 30여채 정도와 그의 제자인 빈첸초 스카모치Vincenzo Scamozzi(1548~1616) 그리고 팔라디오의 영향을 크게 받은 오토네 칼데라리Ottone Calderari(1730~1803)의 작품들이 남아 있다.

비첸차에 있는 팔라디오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빌라 라 로툰다Villa La Rotonda(1569)다. 도심에서 남남동쪽으로 대략 2km가량 떨어져 있는 빌라 라 로툰다는 4면이 모두 동일한 모습으로 설계됐고 무엇보다 당시에는 종교건축에만 쓰였던 돔Dome이 빌라Villa에 처음으로 적용됐다. 건물의 4면이 모두 동일한 모습으로 설계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건물이 교외에 살짝 솟아 있는 언덕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즉, 주변 맥락을 전혀 신경쓸 필요 없이 하나의 오브제Objet로 남겨질 수 있는 땅이었다. 동시에 건물의 내부 어디에서도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팔라디오는 《건축사서》에서 "이 빌라를 유명하게 만든 또 하나의 이유는 입지조건이 훌륭하다"는 점을 언급하며, "아름다운 조망을 여러방향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사방에 로지아Loggia를 만들었다"고 썼다.

빌라 라 로툰다가 주변 여건을 크게 고려할 필요가 없는 대지에 지어졌다면 바실리카 팔라디아나Basilica Palladiana(1546)는 비첸차의 중심인 시뇨리아 광장Signoria Piazza에 면해 있다.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이 건물의 선과 빛의 효과 그리고 음영에 매료됐으며, 이 건물이 주는 인상을 묘사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썼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에서 팔라디오가 설계한 부분은 건물의 외관으로 건물 자체는 한 세기 전에 이미 지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팔라디오가 이 건축물의 설계를 통해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전에 토마소 포멘톤Tommaso Formenton 설계의 조악한 면들이 그의 설계를 통해 극복됐기 때문이다. 포멘톤은 연속된 아치로 입면을 설계 했는데, 이 경우 아치의 폭이 일정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생긴다. 왜냐하면 기존 건물은 같은 치수의 배수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팔라디오는 아치 양쪽에 세로로 긴 개구부를 두어서 해결했다. '베네치안 윈도우Venezian Window'라 불리는 이 개구부의 폭을 조절해서 아치의 폭을 일정하게 유치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바실리카 팔라디아나 맞은편에는 로지아 델 카피타니아코Loggia del Capitaniato도 비록 미완성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팔라디오의 작품이다. 이 건물은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의 총독공관이었다고 한다.

비첸차에 있는 팔라디오의 또 다른 작업 중 테아트로 올림피코Teatro Olimpico(1580)는 투시도법을 왜곡해서 깊이감 있는 무대장치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2,000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극장은 중세 이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극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건물에서 가장 유명한 무대장치는 사실 팔라디오가 아닌 그의 제자 스카모치가 무대 뒤 부지를 매입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스카모치는 옛 그리스의 도시국가 중 하나였던 테베Thebes를 재현하고자 했다.

테아트로 올림피코 남쪽에 있는 팔라초 키에리카티Palazzo Chiericati도 팔라디오의 작품이다. 지금은 비첸차 시립미술관이다. 베네치아Venezia에 있는 도지 펠리스Doge Palace에서 영감을 얻어 설계했다는 이 건물은 특이한 디자인과 입면 때문에 팔라디오의 작업 중에서도 가장 성숙한 작업으로 꼽힌다. 특히, 마테오티 광장Piazza Matteotti에 면한 건물 정면에 설치된 로지아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건물을 측면에서 보면 로지아 부분이 건물의 다른 부분과 조금 다르게 나중에 덧붙여진 것 같다(위 사진 오른쪽).

일반적으로 건물 전면에 로지아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건물 안쪽 길이가 깊어야 한다. 그래야 로지아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로지아는 건물 내부와의 관계 보다는 외부와의 관계를 위해 만드는 공간이다. 하지만 팔라초 키에리카티가 지어진 대지는 안쪽 길이가 짧다. 오히려 광장에 면한 길이가 더 긴, 즉 세장비가 작은 형태다. 이런 상황에서 팔라디오는 건물 전면에 있는 마테오티 광장의 일부에 로지아를 설치했다. 실제 팔라디오는 건축주에게 신청서를 제출하여 도시 전체의 편의와 장식을 위해 로지아를 설치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광장을 할애 받아야 한다는 신청서를 시 당국에 내도록 했다. 결국 허가를 얻어 건물은 광장 쪽으로 5m 나갈 수 있었다.

'팔라디오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비첸차에는 그의 이름이 붙은 가로, Corso Andrea Palladio가 있다. 이 길과 그 주변 가로를 따라 그가 설계한 까사 코골로Casa Cogollo(위 사진), 팔라초 바바란 다 포르토Palazzo Barbaran da Porto, 팔라초 포르토 베르간즈Palazzo Porto Breganze, 팔라초 티엔느 보닌 론가레Palazzo Thiene Bonin Longare, 팔라초 티엔느Palazzo Thiene, 팔라초 발마라나 브라가 로사Palazzo Valmarana Braga Rosa(아래사진) 등이 있다.

앞서 인용한 《안드레아 팔라디오(르네상스)》를 쓴 와타나베 마유미는 비첸차의 가로경관과 팔라디오를 포함하여 그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축물 디자인은 도시의 귀족계급의 노력과 의지였다고 썼다. "당시 트리시노로 대표되는 비첸차 지배계급 사이에서는 지식계급으로서 결속하여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고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공통인식이 형성돼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베네치아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도시를 아름답게 정비하는 것을 당면 목표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