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이 닳는 집을 꿈꾸는 건축가
a0100z - 성상우, 오혜정 소장
글 김형래
사진 이한울
‘a0100z’라는 사무실 이름이 굉장히 독특합니다.
어떤 뜻인가요?
a0100z는 ‘아백제’로 읽으시면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신라 땅에 백제의 건축가가 지은 황룡사지 같은 백제건축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레 ‘아름답다 백제여’라는 의미를 담아 ‘아백제’라는 이름으로 사무실을 개소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몇 년간 낭인생활을 했던지라 ‘백수로 살고 싶다’ 라는 재밌는 뜻도 중의적으로 담겨있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사람들은 a0100z라는 이름을 다양하게 부르세요. 저는 이런 다양성이 좋아요. 이름이 주는 의미로 인해 또 다른 생각의 전환이 있을 수 있거든요.
<성상우 소장과의 인터뷰>
간단한 이력 설명 부탁드립니다.
성상우 소장.
유신건축에서 근무하던 중 <빈자의 미학>이라는 승효상 선생님의 책에 감명 받아 이로재에서 잠시 일을 했어요. 그 후 대구로 내려가 대구경북지구 해비타트 리더로 활동하다 파트너인 오혜정 소장과 결혼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면서 건원건축에서 5년을 더 일했습니다. 이후 설립한 a0100z건축과 야마모토 리켄 사무소의 한국 지사장을 겸하다가 현재는 a0100z건축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오혜정 소장.
유신건축과 온고당에서 근무를 했어요. 성상우 소장과는 처음 만났던 10여 년 전부터 사무실은 달라도 함께 모여 일을 했죠. 그때부터 이미 a0100z가 사무실 이름이 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a0100z의 시작은 당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집이면서 건축사무소이자
서당이면서 마을사랑방인 곳
도심에 사무실을 여는 게 일반적인 요즘.
이곳 용인 두창리에 내려와 직접 집을 짓고 사무실을 개소한 이유가 있나요.
현대건축의 아버지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는 메가시티를 이야기하며 일터와 주거의 분리를 이야기했어요. 저 또한 이곳에 오기 전 아파트에 살았는데 출퇴근으로 소비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아예 도시의 편리한 삶은 조금 포기하되 일터와 주거공간을 일체화시키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에 닿았죠. 또한 건축가로서 자기 집을 지어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렇게 1년 가까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300년이 넘은 두창리 용수마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택지개발로 땅이 정리된 곳은 가고 싶지 않았어요. 오히려 국자 모양처럼 보이는 이 땅이 더 마음에 들었죠. 이후 손님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사랑방’도 만들었어요. 이곳이 단지 소비적인 공간이 아니라 생산, 교류, 사교를 할 수 있는 집이자 사무실이자 공방이자 공부방이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을 ‘문턱이 닳는 집’이라 부릅니다.
마을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집에 대한 주민들의 생각이 좀 바뀌게 된 것 같아요. 아파트 평면 같은 집만 보다가 이곳을 보고나서 새로운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거죠. 집 한쪽에는 폴리카보네이트로 온실 같은 공간을 만들었어요. 안과 밖이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바라보는 정도에 따라 변화하는 그라데이션이 있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동네분들과 모여 모임을 열고, 술을 마시고, 책을 읽고, 악기를 배우는 등 그동안 시골에서는 부족했던 문화시설로서의 가능성이 열린 공간이 되었죠, 이후 동네사람들이 새로운 공간을 경험하면서 ‘이러한 공간이 가능하네, 마땅하네’ 라는 인식의 변화가 시작되었어요. 서당을 운영하고, 그림을 가르치고, 피아노를 배우고, 도시만큼은 아니지만 교육과 여가를 향유 할 수 있는 공간을 국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치적으로 스스로 내어 놓는 것. 저는 이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턱이 닳는 집에 대해 좀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땅이 있으면 빽빽하게 지어요. 이게 사사로움(私)이에요. 하지만 우리 집 같은 공간은 공(公)이에요. 사사로움을 나눈다는 뜻인데, 집을 들여 앞마당을 만들거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따로 제공하거나 해서 공을 만드는 거죠. 이게 건물마다 다른데, 공(公)을 만드는 것을 지금까지는 대기업, 국가가 했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많지 않은 시골에 국가가 시설을 짓는 건 너무 낭비에요. 물론 청소와 관리도 우리가 직접해야하는 등의 불편함은 있어요. 하지만 그에 따른 즐거움도 있기에 마을공동체가 되는 거죠. 제가 ‘문턱이 닳는 집’ 이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이 ‘과정’이에요. 더불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문턱이라고 하는 건 너와 나 사이의 거리에요. 공과 사 사이에 앉아 얘기할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죠. 집의 외장도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요소이지만, 관계성을 통해, 빛을 통해, 바람을 통해 서로 다른 새로움으로 채워갔으면 하는 게 문턱이 닳는 집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나와 우리의 관계에 집중하며
서로 다른 새로움으로 채워가는 집
도시에서의 삶과 무엇이 다른가요.
도시는 쓸데없는 게 많아요. 이동시간도 많고, 눈을 현혹시키는 것도 많고, 필요 없는 자극도 많아요. 제가 원하는 건 도덕경에 나오는 ‘무(無)’ 같은 거 에요. 여기서 바뀐 건 시간이 보인다는 거예요. 제비가 날아왔다가 떠나가고,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오고, 바람이 따뜻해지면 모내기하고. 익어가는 논에 석양이 비추면 황금빛 호수 같아요. 그리고 점점 색이 진해지는 게 보이죠.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 알고 보면 변화무쌍해요. 사라지고 생겨나는 것들, 도심에선 느낄 수 없죠. 오늘을 살아간다는 걸 느껴요.
<대전 노은동 중정주택 / ⓒ에이플래폼>
유독 ‘집’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습니다.
집이 없었으니까요. 젊었을 때 서울에서 고시원 생활을 했어요. 사우나에서도 살아보고, 창고에서 자기도 했어요. 누구보다 ‘내 집’이 간절했죠. 이후 ‘집’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건축가라면 집이 가장 기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하게 됐죠. 공공시설물은 대중이라는 평균을 바탕으로 하지만, 집은 거주자와의 관계에 따라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라는 획일적 공간으로 인해 그 표정이 일반화가 되어버렸죠. 숫자로만 집을 바라보니까 집을 바꾸면 삶이 바뀐다는 걸 못 느끼는 거예요. 볕 좋은 날 마당에서 앉아있는 시간이 아무리 좋아도 그걸 수치화 할 수는 없으니까요.
첫 프로젝트는 무엇이었나요?
강촌에 지어진 환경 변호사의 공방주택이에요. 교직생활을 하던 부부 중 안주인께서 먼저 은퇴를 하시고, 생협(생활협동조합) 운동을 했어요. 남편 분은 작가였는데 교직 생활을 접고 서각에만 전념하고 싶어 했죠. 처음에는 단순히 집만 설계하려다가 그곳에 작업실도 들이고, 손님이 오면 막걸리 한 잔 걸칠 수 있는 공간도 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결국 공방주택이 탄생했어요. 외부로부터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자 모양으로 구성한 집은 작업실과 게스트룸 그리고 본채가 분리된 채 하나의 집이 됩니다.
<강촌 당림리 공방주택>
클라이언트와 ‘건축여행’을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집안과 밖에서의 다른 면이 있어요. 그것을 들여다보고 서로간의 거리를 좁히는 과정으로서 건축여행이 좋은 것 같아요. 또한 건축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도면을 이해하기 힘드니까 비슷한 건물을 두고 소통하는 거죠.
현대인에게 있어 집이란.
문턱이 닳는 집. 소비적인 공간이 아니라 친교의 공간, 생산의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요즘처럼 무한 경쟁 시대에서 고요함과 자기 평정심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도덕경에 보면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즉,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하늘은 도를,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라는 뜻이죠. 결국 사람은 자연을 본받아야한다는 거예요. 저 또한 자연을 닮으며 사는 방법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건축적으로 구현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대전 노은동 중정주택 / ⓒ에이플래폼>
<대전 노은동 중정주택 / ⓒ에이플래폼>
사무소명: a0100z 건축
대표: 성상우, 오혜정
전화: 010-8232-1357
이메일: a0100z@naver.com
홈페이지: https://goo.gl/urb8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