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장소
춤:in 2017.10월호에 게재된 글
이름에 대하여
개체의 이름들은 형태를 갖고 있다.
바람에 부딪친 나무들이 흔들리듯이 서로를 채워가는 소리가 있다.
잦아드는 소리들은 창문과 벽과 지붕과 닫힌 문을 지나 길을 만든다.
수많은 시간의 시작은 이름에서 비롯된다.
별에도 이름이 있다. 발견한 사람의 이름이다.
태풍에도 이름이 있다. 불러야 하는 순간에 지어진 이름이다.
도로명과 건물들과 마을과 산과 강과 호수와 나라들을 채우고
멀리서, 가까이서 들려오는 여러 단위의 소리들은 모이고 흩어지며 제각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도시의 몸은 숨을 쉰다.
구별하여 부르기 위한 ‘이름’은 부르는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이름표를 상의에 꽂고 글자를 배울 때에도 자기이름을 쓰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모든 물건에 나의 이름을 적은 견출지를 붙이며 이름을 통한 권리와 책임을 배운다. 사물과 주변에 이름들 을 통해 나의 존재는 확고해진다. 나의 이름은 동일한 존재이며 타인과 사회를 향한 것이기에 이름은 보이지 않는 존재의 형태를 발휘한다.
모든 이름은 누군가에게 사용될 때 변함없는 이름이 된다.
비주얼스프롬제공
문자로 가다
문자는 소리로 완성된다. 입모양을 따라 만들어진 자음과 모음은 그에 맞는 소리를 구성한다. 고대이집트문자와 한자의 기원인 상형문자에서부터 기호와 문장에 이르기까지 문자의 흐름은 보이지 않는 소리를 담고 있다. 존재의 형태를 문서화한 기록의 이면에는 많은 장소와 시간의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다. 인간은 문자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타자화 한다. 문자의 획과 사이들이 만들어내는 여백과 거리에는 문자만의 숨이 있다. 하나의 낱말과 문장과 문단을 이어가는 문자의 리듬과 파고는 한 존재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와 깊이를 감추고 있거나 날렵한 칼과 불을 품고 있는 경우도 있다. 문자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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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장소’에는 위에서 말한 이름과 시간과 문자의 이야기들이 흐르고 있다.
특정 시간과 사람을 품는 어떤 한 컷의 공간으로 우리는 그 공간이 지속되기를 원한다. 장소는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과 공간, 시간으로 누군가는 지나칠 수 있는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장소로 기억된다. 시간이 지나도 개인의 장소성은 남는다.
급변하는 도시에서 장소는 도로에 의존한다. 길을 찾는 사람들은 그 길을 중심으로 다른 시대를 경험한다. 사라진 장소에서 개인은 자신의 기억 안에 또 하나의 장소를 리모델링한다.
오버랩되는 시간의 층위에서 장소는 이야기를 축적하고 문자는 체화되어 소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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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관찰
최근 들어 우리 주변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사업들이 생기고 있다. 도시재생사업, 서울시가 추진하는 공공미술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주최하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등의 지속이 그것이다. 이는 낯선 언어와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과 환경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동기부여를 제시한다.
이러한 추진사업의 중심에는 지역 활성화와 ‘걷기’라는 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걷고 싶은 도시가 살기 좋은 도시라는 이유에서이다. 차도가 보행 길로 바뀌어야 할 때에도 지역 상업군을 설득하기에 가장 좋은 이유는 사람들이 이곳을 차가 아닌 걸음으로 인해서 상권이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태계가 파괴되었던 옐로우스톤에 기적을 일으킨 열네 마리의 늑대로 회복된 생태 이야기를 서울에서 듣는 듯 하다. 왜 걸어야 할까. 제때 업로드 되지 않은 네비게이션은 앞에 건물이 있음에도 직진을 하라고 명령하는 서울의 단면 속에서 어떻게 걸어야 할까.
관찰과 머무름이다. 빠른 속도로 지나치던 곳을 다시 보게 되고 그곳에 머무르다보면 소비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울의 속도는 느려지고 있다고 관망한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도시, 회색빛 도시, 사람이 걸을 수 없는 도시에서 지금은 서울을 향해 다양한 관찰과 사유, 해석들이 나타나고 있다. 뉴요커(New yorker)라는 말이 부럽지 않을 만큼 서울러(Seouler)라는 말 또한 무색하지 않다.
SNS에도 ‘서울’로 태그된 이미지들을 보면 아이돌과 음식 사진 외에 화려한 서울 도심의 빌딩 사진들이 검색된다.
이러한 사업들로 인해 도심에는 여러 시간의 층위들이 대비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재개발로 역사와 풍경과 문화가 완전히 바뀌어 개발이전의 모습은 기억 속으로 사라져야만 했던 풍토가 이제는 다시 되짚어가는 걸음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정체되어 있던 곳은 다시 시계의 태엽을 감듯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반면 생태가 멈출 수밖에 없는 몇몇 곳은 인위적인 개발에 따른 심폐소생술로 버티는 곳도 있다.
도시재생 사업은 서울의 다양한 시간 층위를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낡음과 새로움, 느림과 빠름, 높음과 낮음 등의 대조되는 양상들을 접하게 하였다. 하나의 도시에서 발견되는 여러 층위의 시간들은 다양한 장소성을 만들어 느린 이동경로는 일련의 여행을 경험하도록 한다.
시간의 관점에서 본 공간은 움직인다. 대조적인 시간의 켜들은 도심에서 기억의 문지방들을 만들어낸다.
도시를 하나의 신체로 바라보았을 때 그 뼈대와 시간의 몸집과 신경계와 심박의 생태에서 각각의 신체 부위는 어떠한 소통과 관계성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그 시선과 소리와 기록들이 주는 이야기 속에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매순간 현재화하는 도시의 몸 안에서 장소는 저마다의 존재를 보존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비주얼스프롬제공
1) 비주얼스프롬제작 <이름>, www.visualsfrom.com, 리마크프레스기획제안, 세계문자연구소&2017세계문자심포지아조직위원회제작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