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호흡
춤:in 2017.12월호에 게재된 글
‘도시에 신체성을 덧입힌다면 도시는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
위의 질문은 한 해 동안 격달로 연재했던 ‘춤과 건축’이라는 주제를 관통한다. 마지막 편을 올리며 그간 주제의 흐름을 보면 땅과 중력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무용수의 몸으로부터 무용수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보이드(void)와 무대공간으로 확장된 신체성은 극장을 벗어나서 도시로 시선을 돌렸다.(줌아웃-에세이-구축과 호흡:몸이 만들어내는 공간) 극장 밖의 특정 스팟에서 이뤄지는 퍼포먼스나 장소특정형공연 또는 공간성과 맞닿아 있는 퍼포먼스를 피해 도시 자체의 움직임에 집중한 것은 극장 또는 예술, 공연예술이라는 특수 공간으로 분리되기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 공간자체를 움직임으로 바라보기 위함이었다. 공간과 신체가 전복되는 퍼포먼스(줌아웃-에세이-신체가 공간을 만났을 때 장소로 명명되는 몸의 움직임들)를 거쳐 수많은 규율로 운영되는 극장의 근거를 깨뜨리는 요소로는 즉흥성을 사용하였다.(줌아웃-에세이-관계의 작도를 통해 바라본 도시 그렇게 나온 극장 외부에서 공연예술이라는 구조적인 틀이 사라지고 남은 퍼포머의 몸과 공간의 규정에 대해(줌아웃-에세이-skip된 신체인가, skip된 공간인가), 글쓰기와 춤추기의 합성어로 이뤄진 안무개념과 이를 수행하는 기본 단위인 몸 즉, 장소가 되는 몸과 이름에 대하여 다뤘었다.(줌아웃-에세이-이름의 장소)
마지막 편에서는 최민아도시디자인연구자를 만나 무용과 도시가 맞닿아 있는 이야기, 본 연재를 관통하는 질문 ‘도시에 신체성을 덧입힌다면 도시는 과연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를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LH 토지주택연구원에 근무하는 최민아 박사를 만나기 위해 대전으로 향했다. 한 해 동안 무용의 관점으로 바라본 도시와 도시의 움직임에 대한 글을 써오면서 실제 도시연구자는 ‘도시의 움직임’을 어떻게 접근할지 궁금했다. 최민아 박사는 『메트로폴리스 파리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저자로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섯 공간인 집, 카페, 서점, 공원, 백화점, 영화관을 서울과 파리의 공간으로 비교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이론적인 내용보다 실제 본인이 몸으로, 감각으로 경험한 내용들이 들어가 있어 쉽게 술술 읽힌다. 두 도시의 여섯 공간을 몸으로 경험한 것을 글로 풀었다는 데에서 이 연재주제를 중심으로 대화를 해 볼 수 있겠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메일로 컨택하고 거의 하루 만에 반가운 답장을 받았다. 도시와 무용이 비슷한 이야기들을 갖고 있다는 점과 인터뷰 만남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연락을 나눈지 거의 일주일 만에 우리는 대전의 한 레스토랑에 약속을 잡았고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의 책과 함께 대전을 향해 내려갔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대전은 KTX로 약 1시간정도 걸렸다. 시간상으로는 가까운 곳이었으나 처음 가보는 대전은 그 느낌이 매우 생소했다. 역에서 렌터카가 있는 출구로 나오기까지의 풍경은 나의 경험에 의하면 신대방역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은 역에서 출구로 내려가는 계단 주변으로 노상 포장마차들과 주차장으로 인한 번잡함이었다. 이렇듯 낯선 공간에서 내 몸과 생각은 경험에 의한 공간과 매칭시키기에 바빴는데 익숙한 공간과 매칭이 될 수록 길의 방향은 더 잘 파악되었으며 몸의 긴장도 풀어졌고 렌터카를 찾자마자 우선 큰 길로 빠져나가 비오는 번화가를 두루 살펴보았다. ‘대덕연구단지, 엑스포로...’ 그래 이제 대전이다.
양은혜(이하 양): 무용과 도시가 맞닿아 있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최민아(이하 최): 도시를 계획하는 사람들은 도시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 피보나치의 수열이라든가 르꼬르뷔지에가 신체모듈을 사용해 건물과 도시를 설계하는 등 인체를 모방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예를 들면 ‘빛나는 도시’ 계획에서는 머리의 역할을 하는 정부청사를 위에 모아 놓고 아래 몸통 부분은 사람들의 거주지를 밀집해 놓아 구성하는 경우가 있었죠. 게데스(Patrick Gedess)처럼 생물학자로 출발한 학자가 도시를 계획했었던 적도 있었고 1960년대에는 메타폴리즘(metapolism)이라는 이론이 유행하기도 했어요. 즉 도시를 유기적으로 본 거죠. 도시는 당연히 신체와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경제적, 사회적인 요인으로 인해 도시가 발전하기도 자연적인 이유나 정책적인 의도로 신도시를 만들기도 해요. 그런데 이렇게 탄생한 도시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성장하다가 소멸하기도 해요. 혹은 사람이 늙어 노년을 맞이하는 것처럼 도시도 그러한 변화를 겪기도 하고요. 그런 측면에서 사람과 비슷해요. 그런데 도시를 사람이라고 볼지 생명체라고 볼지는 명확하지 않네요.
양: 저는 자연스럽게 무용이라는 렌즈를 거쳐 도시를 바라보았기에 당연히 신체성이라고 했을 때 사람의 몸으로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유기체, 생명체라고 했을 때 특히 생물학자가 도시를 계획했을 때에는 도시를 신체가 아닌 다른 생명체로 바라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저는 각 도시 간에 고유한 기능과 소통을 움직임으로 접근하며 글을 써왔는데요, 좀 더 도시 연구 자료들을 찾아보니 ‘도심네트워크’라는 키워드가 제가 생각한 도시의 움직임과 매우 유사하더라고요.
최: 프로시니엄아치는 고전적인 극장의 형태잖아요. 정면으로 항하는 일방향의 전형적인 무대만이 구현되다가 여기서 벗어나 사면에서 관객이 무대를 바라보게 되는 다양한 공간의 구성이 건축적으로 시도되는 변화의 시점이 있는데, 도시도 그 즈음에서 부터 고전적인 공간 구성에서 탈피해 다양한 아이디어의 도입이 시도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이 글에서 ‘극장을 텅 빈 공간을 중앙에 품고 있는 곳’이라고 했는데요, 그 면에서 도시와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도시 또한 사람이 빠지면 텅 빈 공간이 되어 버리는데 극장이나 도시는 사람의 활용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요. 벨기에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를 보셨나요? 그 영화에서는 신이 도시를 먼저 만들고 이것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사람을 만들게 돼요. 사람이 모여 살면서 도시가 발전했다는 일반적인 사실과는 완전히 앞뒤가 바뀌었는데 발상이 매우 참신하더라고요. 도시에 사람이 없으면 작동이 안 되는 것도 당연하지만 도시건설의 의미도 없어져요. 아무리 편리하고 좋게 공간을 만들어 놓아도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2-3년을 못가고 그 시설은 폐허가 되기 때문이죠.(줌아웃-에세이-구축과 호흡: 몸이 만들어내는 공간)
양: 저는 각각의 도시에 중심축이 있고 그 중심축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며 관계를 가질 때 어떤 운동성들을 갖게 되는지 궁금했었습니다. 선생님의 연구 분야에서는 이러한 운동성, 도시의 네트워킹을 어떻게 연구하시는지 궁금해요.(줌아웃-에세이-skip된 신체인가, skip된 공간인가)
최: 전통적으로 도시에서는 도로라는 공간이 중심축의 역할을 했어요. 그리고 그들이 연결되면서 자연스럽게 길과 도로를 따라 다양한 공간과 기능들이 연계가 되었죠. 그러나 이제는 기능 중심 시대를 벗어나면서 도로나 철도 같은 교통 인프라에서 블루 네트워크나 녹지축까지 그 축의 성격이 다양하게 변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것들은 시간 속에서 다양한 운동성들을 갖고 있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상권을 좋아해요. 2-3년간 어느 지역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다가 다른 새로운 아이템이 생기면 사람이 꽉 찼던 공간에서도 사람들이 쭉 빠져버려요. 새로움을 찾아 사람들이 계속 이동하는 거죠. 그리고 이와 같은 이동에는 축을 중심으로 한 기능들의 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파리의 레알지구에는 얼마 전까지 노숙자들이 많았어요. 옛날부터 도시 중심에 재래시장이 있어서 교통이 모여들고 인구도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었죠. 그 곳의 시장이 외곽으로 이전하자 국가에서는 1950년대 말부터 약 20여 년 간을 고심하여 야심찬 프로젝트를 계획했어요. 그런데 기능분리 원칙에 따라 공간 구성을 단순하게 계획해서 모든 기능을 땅 밑으로 넣어 사람들은 지하에서만 교통망이 교차하도록 하고 이 축을 지상의 공간으로 끌어오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지상에는 아래의 교통 축, 사람 이동의 축과는 단절된 녹지공원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러자 공원은 해가 지면 노숙자들이 몰려드는 위험한 공간이 되었지요. 이에 완공된 지 30년도 안된 그 지역을 지금은 다시 허물고 재정비하고 있어요. 도시 공간은 어디든지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것들은 축과 연결되어 구성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도시가 지속적으로 기능하고 발전하기 어려워요.
최: 도시 내부의 구성을 보면 다양한 기능들이 모여 있어요.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이 도시인데 그 내부에는 기본적인 도시계획에서 도로나 지하철 등 교통 인프라가 연계되고 그 메인 축을 따라서 각각의 요소들이 상호적으로 기능하며 자리를 잡기도 하고 밀접하게 변화를 하죠. 그렇기에 당연히 신체의 축과 도시의 축은 매우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봐요.
그러나 교통기능의 축만이 도시를 변화시키는 열쇠는 아니에요. 어느 시점까지는 물리적인 기능을 연계하는 도로, 철도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어요. 19세기 초기까지 도시는 철도축을 따라 성장하다가 20세기에 들어 자동차라는 새로운 교통수단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도시는 도로망의 축을 따라 무한하게 확장됐어요. 그리고 요즘은 물길의 축, 녹지의 축 등 새로운 축들이 시대양상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양: 물길의 축이라면 물가를 따라 촌락을 이루는 기본적인 옛날의 축 아닌가요?
최: 도시변화를 보면 파리나 우리나라나 비슷해요. 사람이 많지 않을 때는 물길이 식수원과 생활용수, 그리고 동시에 하수도로서 기능을 했는데,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면서 물길이 오염되어 질병이 발생하게 되어 위생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고 동시에 도시미관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게 돼요. 그런 문제점으로 인해 어느 순간 도시 속 물길은 청계천처럼 상당부분 덮여 버리게 돼요. 물길은 그 시점에서 사라지는 거죠. 자연발생적인 도시는 물이 있어야 살 수 있고 물길을 따라 유기적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 물길이 땅 밑으로 다 묻혀 버리는 시점이 있어요. 파리도 그래요. 2차 세계대전 이후 센느강을 고속도로로 변화시켜 버리자는 도시계획가도 있었어요. 파리는 고풍스런 경관이 아름답고 도시계획이 잘 되어 있는 도시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급진적인 도시계획의 그림들이 펼쳐졌었던 곳이에요. 그러던 개발 시기가 지나고 나니 이제는 생태의 관심이 많아지면서 다시 천들을 복개하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사라졌던 물의 축이 도시 속에 다시 나타나고 있죠. 도시개발의 역사를 보면 각각의 축은 그 성격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고, 또는 다른 축과 중첩이 되거나 복합적으로 변화되기도 하며 약화되는 축의 변화들을 살펴볼 수 있어요.
양: 도시형태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현대도시의 형태 분석을 다룬 박사논문 내용이 궁금해요.
최: 요즘 도시는 정책적인 이유들로 새로 개발되기도 하는데 그중 어떤 성격의 도시들은 한 지역의 중심성을 형성하기 위해 계획되기도 합니다. 제가 관심을 가진 대상은 자연발생적 도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계획되는 도시의 형태였어요. 기하적적으로 중심성을 가장 확실하게 가질 수 있는 형태는 원이예요. 중심으로부터 모든 부분에 대해 거리가 같아 구심력을 가장 확실하게 가질 수 있는 형태 말이죠. 그런데 지역의 중심성을 만들기 위해서 개발되는 도시들이 선형으로 계획되는 현상을 여러 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거든요. 러시아 구조주의 도시들에서 부터요. 그래서 제 논문에서는 과연 정책적으로 중심성을 형성하기 위해 계획된 도시들이 왜 선형의 형태를 갖게 되었을까 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그에 대한 답을 제시했어요. 도시계획에서는 중요도에 따라 중심지에 위계를 부여하는데 도심, 부도심, 지역중심, 지구중심과 같이 세분화 돼요. 제 논문에서는 ‘중심성을 발현하기 위해 계획된 선형도시에서 각각 중심지는 어떤 구조와 형태적 특성을 지니며, 어떤 형태의 중심성을 구축하는가’ 라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양: 제가 글에서 다뤘던 무용수 몸에 존재하는 ‘축’, 공간에 존재하는 ‘축’은 수평이 아닌 수직이었어요. 실제로 ‘축’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던 안무가(쿄고쿠 토코히코, 줌아웃-프리뷰-‘몸과 안무’) 또한 수직으로 사용했었고요. 수평의 축이라고 했을 때 상상했던 이미지와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최: 도시 중심지는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중심지라면 높은 빌딩이 밀집된 곳을 생각하기도 해요. 도시계획에서 도시중심성을 지가나 빌딩가격을 기준으로 분석하기도 하는데, 그 가격을 그래픽화 시키면 앞에서 말한 수직의 중심성이 발견되기도 해요. 도시 공간에 따른 지가를 3D매핑으로 그래픽화 시켜 놓으면 가격에 따라 높고 낮은 산을 닮은 지형성이 생기지요. 그러한 수직성도 도시의 축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양: ‘형태분석’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주세요.
최: 도시형태는 도시경관과 어느 정도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도시경관은 landscape 또는 city scape으로 도시의 시각적인 모습을 대상으로 하고, 거리에 따라 근경, 중경, 원경으로 나누어지면서 이를 이루는 각각에 대한 요소들을 분석합니다. 반면 도시형태는 모폴로지(morphology)라고 불리는데 도시의 물리적인 형태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분석하는 거예요. 우리 눈에는 도시가 주로 건축물의 형태를 통해 인식되지만 그 건물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도로망, 가로망, 필지와 같은 요소들이 이미 커다란 공간 구성의 틀을 구성하고 있어요. 필지의 테두리 안에 건물들이 들어서는데, 그 형태가 정해지는 데에는 이유들이 있죠. 시간을 놓고 보면 도시의 사회적 또는 물리적인 변화는 도시의 가로망, 필지, 건축물의 형태 등에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데 이러한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것을 도시형태 분석이라고 해요. 경관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근본적인 것들을 분석한다고 할 수 있어요. 시간의 흐름과 사람들의 이용 방식에 따라서 필지와 건축물의 형태가 변화되는 것은 도시에 매우 잘 나타나고 있어요. 필립 파느레(Philippe Panerai)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도시형태분석학 교수가 있는데 그는 도시를 “양피지(Parchemin)”이라고 불러요. 오랜 시간에 걸쳐 무언가가 쓰여지고, 그 흔적이 흐려지면서, 그위에 새로운 흔적이 다시 쓰여지는, 겹겹이 쌓이는 도시의 모습을 그렇게 불러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표현이예요.
‘시간들이 운동성을 갖는다.’
양: 시간의 관점으로 공간을 바라보면 공간은 움직임을 갖는데요, 저는 도시가 여러 켜의 시간들이 축적되어 있고 현재의 우리가 그 땅을 기반으로 발을 딛고 서 있다는 데에서부터 움직임이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최: 겹겹이 쌓인 각기 다른 시간들은 그 자리에 남아서 도시에서 특별한 모습을 나타내고 움직여요. 어느 공간은 생기를 띄고 살아나기도 하고 혹은 이용자에 의해 버려지게 되기도 하죠. 도시 내에 하나의 스팟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도시 전체가 흥하다 황폐화되는 움직임을 가질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미국의 디트로이트(Detroit)의 경우는 자동차공업이 성황하다 그 공업자체가 급격히 쇠퇴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는 상황이 됐어요. 시의 재정파탄으로 새로운 기반시설이 더 이상 공급되거나 유지되지 않자 도시 전체가 아예 황폐화되기도 했어요.
양: 도시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성, 문화성, 공간을 사유하는 것이 도시의 성격 또는 생명력을 좌우한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땅과 중력, 사람과 건축, 도시는 그 기반이 공통된다고 봐요. 그 점에서 중력을 이용하고 반(反)하는 관계에서도 비슷하다고 보고요.
최: 건축과 무용이 시대별로 어떤 활동들이 있었고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었는지 궁금해지네요. 도약하는 무용수는 중력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는 기본적인 전제와 땅에 발을 딛고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는 내용의 글귀를 보았을 때에는 건축도 한때 공중에 띄워 도시를 만들어 보겠다고 노력했던 시대가 떠올랐었어요. 19세기에는 산업혁명으로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공기오염과 오폐수가 심각했고 그로 인해 빈민 노동자들의 건강이 악화되는 상황이 되자, 그들에게 햇빛과 신선한 공기를 주는 것이 도시계획가들의 사명감 되었어요. 그래서 1950년대에 들어서는 아예 어둡고 비위생적인 땅에는 녹지만을 조성하고 도시는 신선한 공기와 햇빛이 충분한 공중에 만들자는 계획마저 그려졌었어요. 이러한 이상적인 도시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무용과 겹치는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양: 신체에 각 부위별로 크기와 역할, 할 수 있는 운동의 범위가 있듯이 그러한 신체성이 도시에 덧입혀질 수 있을까요? 즉, 도시를 신체로 바라볼 수 있을까요?
최: 우리는 흔히 도시를 물리적인 공간으로 인식을 하지만 도시는 경제, 정치, 물리적인 세 가지의 성격으로 이뤄져요. 기능적인 역할, 업무공간이나 상업 공간이 현대도시에서는 물리적 으로 중심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지만 이를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경제적인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이지요. 신체 부위별 크기와 역할을 도시에서 기능으로 볼 것인지, 용도로 볼 것인지, 또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것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기능과 역할이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저는 도시도 신체로 바라볼 수 있다고 봐요. 더 확대된다면 유기체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양: 도시의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도시가 생성될 때에는 그곳에 문화와 지역 고유의 특성이 살아 숨 쉬는 요소가 좀 더 규격화, 특성화되는 것이라고 보이는데요, 신도시의 경우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럼 도시계획 단계에서 어떤 특성 문화를 신도시에 코드처럼 심는 것인지도 궁금해지더라고요.
최: 예를 들어 세종시의 경우는 도시가 세워지기 전에 논밭이었어요. 이처럼 갑자기 정책적인 결정에서 도시가 만들어지기도 해요.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자연적으로 사람들이 정주하기에 알맞은 조건을 갖춘 곳에서 도시가 발달을 하게 되죠. 어느 시점에 그 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면 촌락이 커지고, 그것이 커다란 산업의 흐름 속에서 도시의 경제성을 충족시킨다면 도시로 발달하게 돼요. 위에서 말한 디트로이트처럼 주요 산업에 어려움이 발생하면 도시 자체가 급속히 쇠퇴하기도 하는데 도시 속에서 새로운 중심이 생기고 쇠퇴하는 데에는 사람의 취향에 의한 영향도 커요. 도시는 소비자 측면, 생산자 측면 등에서 복합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것들이 도시 공간 안에 녹아들어서 도시 형태는 계속 변하고 있죠. 도시가 물리적으로 확산하는 현상이 생기기도 하지만 도시 내부 공간에서 분화가 일어나기도 하고 형태가 변하기도 하고 필지는 지속적으로 작게 분할되다가 어느 순간 도시재개발사업 등으로 합쳐지기도 해요. 20세기 초에 철도가 들어오면서 철도역 근처지역으로 부도심이 생성되었는데 그러한 지역으로 서울에서 영등포, 청량리역 등을 볼 수 있어요. 그 시대에는 지어지는 건물들이 지금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에 땅들의 크기가 작았죠. 그런데 지금은 현대도시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을 수용하지 못하기에 이를 묶어서 재건축, 재개발 하고 있잖아요. 도시형태가 계속 그 안에서 변하고 있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양: 일부 지역이 개발되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개발되는 것과, 개발 전에 기존 지역에 형성되어 있던 문화, 역사를 연구하는 것과 어느 것이 먼저일까요(개발시에는 그러한 연구가 없이 이뤄지는 것 같지만요)? 따라서 새로운 도시의 발현은 결국 그 안에 문화와 사회성을 새로 창조해 내는 것인지 섞이는 것 같아요.
최: 개발이 먼저인지, 기존 문화가 먼저 형성되어 있는 것이 먼저인지에 대한 것은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인 것 같은데요, 어느 지역에 상당히 중요한 문화유산이 있어 이를 살려보겠다는 의지가 있거나 경제적으로 그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지역의 활성화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정책적으로 개발을 해요. 또는 그 문화자산이 좋아서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그 지역이 유명해지기도 하죠. 뭐가 먼저라고 단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양: 그렇다면 도시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정의될까요?
최: 도시는 경제적, 정치적, 물리적 공간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성이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요. 도시계획은 물리적인 공간을 계획하는 학문이에요. 도시계획은 크게 Urban Planning과 Urban Design으로 나뉘는데 저는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도시계획가들은 도시를 숫자로 풀어요. 예를 들어, 인구 30만의 도시를 만들겠다고 하면 땅이 얼마가 필요하고 이들이 살려면 집이 얼마만큼 필요하며 도로가 얼마나 필요한가를 계산하죠. 또한 그 도시의 사람들이 공장에서 일을 할 것이라면 공장 부지는 얼마나 넓은 면적이 필요하고 산업의 형태가 공장이 아닌 3차 산업이라면 얼마만큼 면적의 오피스가 필요한가, 또한 30만의 인구는 몇 가구가 되며 아이들은 몇 명 정도가 있을지 계산을 해요. 그리고 그에 따라 유치원, 초등학교 등 필요한 시설의 개수와 면적 등을 낼 수 있어요. 이렇게 예측한 도시가 숫자로 나오면 디자이너들은 그것을 가지고 공간에 뿌리는 작업을 하죠. 일예로 도로 총량이 100만㎡가 필요한데 도로비율이 23%라고 한다면 그것을 촘촘한 가로망으로 깔 것인지 10차선, 8차선의 넓은 도로로 계획할 것인지 작업을 해요. 자르는 땅의 크기도 계획하구요. 이 부분이 Urban Designer 작업하는 부분이예요.
제가 프랑스에서 공부할 때 도시계획에 관련된 책의 맨 마지막 챕터에 가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다 같이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 ‘누구도 배척하지 않고 조화로운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윤리교과서 같은 내용이 나오는 걸 보면서 이상하게 느꼈었어요. 앞에서는 전문적이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다루다가 마무리에서는 이러한 내용들로 귀결이 되니까요. 그런데 지금 보면 결국 도시라는 것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제일 중요하더라구요. 물리적으로 똑같은 공간을 내놓아도 그 안에 사람들이 달라지면 공간이 매우 달라지거든요. 경제적, 정치적, 물리적이라는 세 가지의 성격이 있어야 도시가 구성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성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같은 도시라도 중산층, 상류층이 살 때와 저소득층이 살 때 공간의 성격이 달라져요. 이용패턴이 달라지는 거죠. 같은 공간인데 누가 사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사용이 돼요.
양: 서울무용센터에서 워크숍을 진행했던 Zoe라는 안무가가 있어요. 몸으로 매핑작업을 진행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익숙하기에 이 공간의 컨디션과 방향, 패턴 등은 왜 이렇게 자리 잡혔는지, 왜 이렇게 행동하고 생각하는지 등을 알 수 없다고 이야기해요. 익숙한 공간을 몸의 감각을 통해 낯선 공간으로 인식해 이를 표현해 보는 작업을 진행했었어요. 몸으로 기억되는 것은 무엇일까, 몸에 남는 지도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었어요. 박사님은 파리와 서울의 도시를 비교하는 책을 쓰시기도 했는데 이 두 도시의 정체성은 어떻게 다르던가요? 집, 카페, 극장 등 같은 공간을 비교분석하는 글이다 보니 가깝게 다가오기도 했고 뭣보다 다름과 같음이 묘하게 교차하기도 했었습니다.
최: 그 안무가의 매핑 작업은 매우 흥미롭네요. 저는 서울과 파리를 오가면서 두 도시의 도시정체성이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보니 그 정체성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브랜드의 차이처럼 이 지역에만 있는 상품, 기호들이 옛날에는 도시를 구분지어 있었다면 지금은 어느 나라에나 같은 브랜드들이 지점별로 위치하다보니 그 구분이 힘들어지기는 해요. 하지만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공간 활용법이 매우 달라요. 예를 들어 지하철, 카페 등에서 앉는 방향이라든가 숫자를 세는 방법, 연필을 깎는 방향 등이 다 다른데 그러한 사용법들이 도시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양: 도시네트워크라는 이슈가 지속될 수 있을까요? 또는 도시학자들이 바라보는 현재 개념이나 이슈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최: 예전에는 대규모 도시가 우월적으로 경쟁력이 높았었고 그들을 중심으로 대도시지역이 발전했었어요.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입장으로 한때는 클러스터라는 개념이 부각되었어요. 도시네트워킹은 한동안 대도시에 대응하기 위한 중소도시의 전략으로 많이 검토되었었는데 지금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온 사례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중소도시 입장에서는 도시 네트워크가 중요해요. 그런데 중소도시는 활발한 네트워킹을 통해 대도시에 대응할 수 있는 중심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그들 간에도 경합이 생기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수도권이 워낙 거대하고 강력하다 보니 이에 대해 경쟁력을 갖기 힘들어요. 또한 고속 교통망도 강력하게 구축되면서 도시네트워크에 대한 논의는 예전처럼 활발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메가시티(megacity)의 개념이 뜨고 있는 것 같아요. 국가보다 그 국가의 어느 도시가 나라보다 큰 경쟁력을 갖는 것인데, 대한민국이 아닌 서울이라는 도시가 국가를 대표하거나 국가 이상의 경쟁력을 지니는 트렌드를 말한다고 볼 수 있어요.
양: 신체는 부위별로 역할과 기능, 크기, 생김새가 다르잖아요. 발은 머리로부터 멀지만 발이 할 수 있는 기능과 운동범위가 있고, 머리는 이를 통제하는 헤드의 역할을 하듯 말이에요. 신체성이 도시에 덧입혀진다고 할 때 이러한 논리로 도시를 읽을 수 있을까요?
최: 어떤 측면에서는 맞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것 같아요. 역사가 오래되고 지역특색이 있는 곳에서는 말씀하신 신체성을 적용할 수 있을 듯 싶어요. 머리부터 발까지 각 지역마다 특성이 있고 다른 기능을 하고 있어 고유한 역할과 색깔이 있는 곳이라면 말이죠. 서울, 파리 같은 역사 속에서 발전한 오래된 대도시에서는 적용이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영등포의 경우는 생산 작업위주라 신체의 손발이 될 수도 있겠고 종로의 경우는 옛부터 문화 중심이었기에 머리 또는 심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재 심장은 강남 지역으로 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종로 또는 강남을 중심으로 핵심 기능이 중앙에 모여있고 혈관을 통해 피를 뿜는 것처럼 이를 중심으로 교통기능을 담당하는 것들이 각각 기능을 묶어주는 구성이 서울과 같은 곳에서는 나타난다고 볼 수 있겠죠. 파리에서 영등포는 포부르 생땅뚜완(Faubourg Saint Antoine), 종로는 샹젤리제나 뤼 리볼리(Rue Rivoli)가 될 거예요. 그러나 분당 같은 신도시에선 도시 속의 지역별 기능과 특성이 형태에서도 느껴지는 모습은 발견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지역특성이 잘 나타나는 공간들은 도시를 방문했을 때 사람이 그러한 성격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그런데 신도시에 가면 그러한 모습을 찾기 힘들지 않았나요? 10년 정도의 짧은 시간 속에 만들어진 도시에는 사람의 창의력이나 다른 무엇의 한계로 그와 같은 신체성이 작동되지 않는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그 도시가 충분히 다양한 모습을 지니지 못하는 것일거예요. 하지만 오랜 역사를 가지고 시대의 변화속에서 천천히 변화된 도시에서는 그러한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아 들어가지요.
무용수의 움직임 사이에서 가변되는 보이드
최: 19세기 말, 20세기 초 건축가들은 공간의 가변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었어요. 이 가변성은 건축에서 무한히 탐험했던 영역들이에요.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은 절대적인 공간의 확장성을 추구했던 작품이에요. 그의 다수의 작품에서는 가변성, 확장성에 대한 탐구가 잘 나타나죠. 이러한 현상들을 보면 무용과 건축이 추구하려고 했던 것이 많이 겹치는 것 같아요. 그러나 가변성, 확장성을 지속 추구하다보면 어느 특정한 기능에 대한 완성도가 부족해지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설계나 시공의 한계가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때는 건축에서 극도의 가변성을 추구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심도있게 추구되고 있지는 않아요.
양: 저는 '안무'라는 개념을 폭넓게 사용하여 이를 움직임 또는 무용의 확장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단순히 사람의 몸을 박자와 멜로디에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안무가 아니라 안무를 이루는 요소들이 예를 들어 주체(신체 또는 사물의 작용 등등), 박자, 리듬, 움직이도록 유도하는 원인(이때의 이유는 감정일수도, 상황일수도, 기타 등등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등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 요소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하거나 대입하여 안무'를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도시도 이러한 대입으로 움직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오늘 도시에 대한 직접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제가 속해 있는 일상공간이 더 다이내믹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대전역으로 향하는 길,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서로의 글을 통해 만나 대화로 확장되었다는 점과 대화하며 나눈 내용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아이디어가 되어 향후 발전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비가 그쳐서인지 대전역으로 가는 더 어두워진 밤길을 계속 직진했었던 기억이 남는다.
연재를 올리며 감사했던 점은, 필자 스스로가 도시와 움직임의 일체를 글로 풀어볼 수 있다는 것과 글을 통해 다양한 만남과 대화가 이뤄졌던 점이었다.
한 때 극장의 폐쇄성과 외부와의 단절로 극장을 등지고 앞으로 걸어가며 도시와 일상생활에 눈을 돌리던 그때, 극장과 춤을 잊었던 게 아닌 도시를 하나의 춤이자 음악 그리고 삶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서프라이즈로 대전역에서 만난 대학동문 친구는 대전의 시그니처라며 ‘성심당’ 빵 한 곽을 사들고 나타났다. 몇 년 만에 그것도 지방에서 만난 것이다. 친구와 열차를 타기까지 일상의 이야기들 예를 들면, ‘드론, 육아, 야근, 늙었다’ 등의 대화를 나누며 앉아 있던 대전역 플랫폼이 이제 나에게는 하나의 장소로 남을 것 같다. 아주 간단한 대전 여행기는 최박사가 헤어질 때 건네준 두 개의 논문과 친구가 사준 빵 냄새와 함께 마무리 되었다. 아직도 대전 하면 습하게 추웠던 공기와 친구의 변함없는 웃음 그리고 성심당 특유의 빵 냄새가 떠오르는 듯하다.
도착한 서울은 밤10시가 되었음에도 많은 차량들과 빌딩들의 불빛으로 밀도 높게 차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도시를 1시간 거리로 이동하며 다른 템포로 숨 쉬는 도시의 숨소리를 들은 듯 하다.
올해의 연재를 함께 해온 독자들에게 감사하고, 더 성숙되고 체험하며 넓어진 지평의 글로 다시 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