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作이지만 아르키움의 작업이 가지는 일관성 덕분에 진부한 느낌은커녕 여전히 신선하다.
사선으로 기울이려는 대지의 힘을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주변의 건물들에서 볼 수 있듯이 도로를 면하고 있기 때문에 상부 층에서만 일부 사선이 적용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따르며 각 층의 면적을 채워나가기 보다, 건축가는 각 층의 면적이 작아도 층수를 높이며 조형성도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이러한 대지와 주변에서 가지는 힘이 건축의 조형에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은 동일한 설계 시점의 Reflex나, 10년 후 작품인 질모서리, SAMS, Urban Breeze, JATURIUM 등에서 발전되어 표현되는 것으로 보인다.
아래 사진 한장 한장마다 설명해야 할 내용이 상당한데, 이렇게 만들기 위한 건축가의 세심한 노력이 큰 귀감이 된다. 바로 아래 사진도, 개구부 없는 콘크리트 매스와, 앞뒤로 완전히 열린 매스, 그리고 계단과 복도가 감싸고돌아 올라간 벽체가 너무도 명쾌하게 느껴진다.
송판문양 노출콘크리트 벽체가 더욱 단단하고 무게감 있게 만드는 것은 바로 금속으로 된 외부계단과 난간이다. 건물과 지면이 만나는 부분, 도로와 대지가 만나는 부분, 그리고 주차구획은 금속재질로 되어 있는데, 유사한 색상의 재료가 만나지만 경계를 뚜렷이 해주고 있다. 또한 각 구획에 콩자갈 몰탈을 채워 시공과정에서 계획된대로 정확한 레벨을 맞추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이며, 우수를 배출하는 트렌치 역할도 겸할 것이라 생각된다.
남쪽으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지하층의 선큰 부분이 더욱 아늑하게 느껴진다. 물론 채광은 충분히 이루어진다. 기울어진 면의 블라인드는 양쪽에 레일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남쪽은 없어도 상관없겠지만, 북쪽에 레일이 없다면 블라인드가 허공에 매달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개구부도 이렇게 기울인 것은 디자인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꼭 백색 페인트로만 주차구획을 표현할 필요는 없다. 이처럼 기능과 재료와 디자인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게 또 있을까.
기울어진 우편함은 건축가가 얼마만큼 애착을 가지고 이 건물을 대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우편함이 어디에 설치될지 생각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위치만 지정해주는 경우, 어떤 제품을 설치할지 지정해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처럼 건물에 어울리는 제품을 직접 디자인해준다면 건축주에겐 큰 감동일 것이다.
데크 바닥에는 각종 설비를 위한 점검이 가능하도록 부분적으로 데크를 들어낼 수 있게 시공한 것을 볼 수 있다.
콘크리트가 타설될 때부터 조명이 설치될 곳이 만들어져 선형 조명을 넣었다. 매우 꼼꼼하게 현장을 관리 감독해야만 이러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준공된 지 10여년이 지난 건물이 이정도 깔끔하게 유지되려면 건축주도 건축을 매우 잘 이해하고 관리해주는 분일 것 같았다. 이러한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건물 입구 옆에는 건축주와 건축가, 시공자의 이름이 금속판에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