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집의 많은 부분이 은유적으로, 시적으로 사용되지만 그 중에 창 만한 게 있을까 싶다.
창은 밖을 바라보고, 안을 내보이고, 바람과 사람을 통하게 하는, 이 곳과 저 곳을 잇지만 문보다는 조금 덜 직접적인 어떤 것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창 이야기
사전적으로 창은 공기나 빛, 소리가 들어오거나 들어오지 못하도록 벽에 만든 구조물을 말한다. 서양에서는 문과 창은 항상 분리되어 지칭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창문이라는 단어가 조금 더 익숙하다. 창은 곧 문이기도 했고, 그것을 통해 사람도 빛도 바람도 함께 드나드는 것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창이 없는 공간은 답답하고 숨이 막힌다. 자동차에도, 컨테이너나 창고에도 창을 만드는 것은 그만큼 창이 우리 환경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창을 만드는 것에 기술이 필요했다. 일정한 크기 이상의 구멍을 만들고 무너지지 않도록 하려면 기술이 필요했고, 창을 열고 닫는 기법을 고안하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가벼운 창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창들을 도로 막아 없앤 역사도 있다. 난로 개수로 세금을 매기던 영국에서 징수원들이 세금을 매기는 것이 어려워지자, 창문 개수로 세금을 매기게 된 것이다. 세금이 아깝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을 터, 창문이 많고 넓은 집에 사는 이들이 창문을 막아 개수를 조정했고, 그 흔적은 지금도 유럽에 가면 가끔 볼 수 있다. (당시 창의 개수를 줄이고 큰 창을 만들기는 기술적으로 쉽지 않았고, 이후 큰 창이 많아지자 창의 크기로 세금을 징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빛의 통로, 창
창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역시 채광이다. 흔히 남향의 빛이 가장 좋은 빛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남향의 빛은 사계절이 있는 북반구의 환경에 여러 모로 적합하지만, 채광에 있어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채광을 계획하는 데 있어 주의할 것은 직사광보다는 반사광이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남향의 빛은 살기에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만, 눈부심이 심해 남향 빛 아래에서는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좋은 채광을 위해서는 반사광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 우리 한옥에서는 그를 위해 창호지창을 만들어 조도를 조절하고, 마당에는 밝은 색의 모래를 깔아 대청 안쪽까지 빛이 스며들도록 했다. 처마를 길게 빼 여름 높은 조도의 직사광은 막아주고, 겨울 낮은 조도의 빛만 깊숙하게 받아들였다.
현대건축에서도 빛을 조절하기 위한 건축적 장치들이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루버나 차양이 대표적인데, 차양은 우리네 처마와 같은 역할을 하므로 겨울철 빛이나 조도가 낮은 빛은 조절할 수 없지만, 가장 눈부시고 피하고 싶은 여름철 남향의 빛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으므로 꽤 유용하다. 루버의 경우 조도가 높은 남향의 빛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수평루버, 조도가 낮은 동서향의 빛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수직루버를 설치하여 직사광의 눈부심을 조절한다. 루버는 창에 바로 설치할 수 있으므로 빛의 조절에 효과적이고, 프라이버시도 보호할 수 있으며, 디자인 요소로도 활용된다. 그러나 한 편 조망을 방해할 염려가 있으므로 적절히 계획해야 한다.
바람의 통로, 창
채광만큼이나 중요한 창의 역할은 또한 환기다. 아무리 빛이 잘 들고 잘 꾸며놓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바람이 통하지 않는 공간은 죽은 공간이다. 잘 지은 집이라 할지라도 환기 없이는 공간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 단열이 잘 되어 있어도 결로는 안과 밖의 온도차로 인해 생길 수 있고, 이러한 집 안의 습기를 잡아주는 것 역시 환기다.
바람길을 제대로 만드는 창의 계획은 적절한 채광을 위한 창의 계획만큼이나 중요하다. 또한 가능한 한 모든 공간에는 환기를 위한 창을 두는 것이 좋다.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의 화장실에는 창을 두기 어려워 강제 환기 장치를 사용하지만, 그보다도 창이 더 나은 선택이다. 환기장치가 냄새를 빼주기는 하지만, 화장실 내부의 공기를 바꿔주고 습기를 잡아주기에는 창만큼 충분치가 않다. 환기가 잘 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은 채광이 잘 되고 단열이 잘 되는 집만큼이나 좋은 집의 중요한 조건이다.
외부와 소통의 창구, 창
창의 기능은 애초에 채광과 환기였다. 내부 공간의 환경개선을 위해 설치한 장치일 뿐이었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하며 조망이 집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도시화가 진행된 초기에는 도시의 밀도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지만, 그러다보니 점차 좋은 조망을 갖기는 어려웠고, 하나의 당연한 권리로서 조망권이라는 단어도 보편화되었다.
원하는 조망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높은 곳, 바닷가 등 풍광이 좋은 곳에 집을 짓고,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창을 욕망하기 시작했다. 중세까지 서양의 많은 건축은 수직적이었고, 그 구조적 해결을 위해 기둥을 촘촘하게 세웠다. 그 때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을 벗어난 폭의 창을 만들기 어려워 세로로 긴 창을 주로 두었다. 그러나 구조방식이 발전하고 변화하면서 외벽이 건축물의 구조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에 따라 조망에 대한 욕구는 곧 건축에 반영되었다. 가로로 긴 창이 가능해졌고, 이제 우리는 유리로 둘러 쌓인 커튼월 건물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는 빛과 환기 등 기본 환경에 대한 욕구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조망에 대한 욕망, 내가 무언가를 본다는 것에 대한 열망의 반영이다.
좋은 조망을 위해 좋은 방향으로 창을 내는 것은 당연했지만, 조망이 흡족치 않은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보다 훌륭한 조망을 위해 서양 건축과 일본 건축에서는 정원이 발달했고, 그들은 엄격하게 디자인된 정원을 바라보며 즐거움을 느꼈다. 그러나 우리 한옥에서는 ‘차경’이 중요한 개념으로 쓰였다. 이는 집에서 보이는 산과 들, 강, 나무 한 그루에 중요한 의미를 담고, 그 경치를 집 안으로 빌려온다는 개념이다.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풍경을 잘라 프레임에 담듯, 적절한 위치에 창으로 프레임을 만들고 그림을 걸 듯 풍경을 집에서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선조들은 철마다 바뀌는 그림을 집에 걸어두고 즐겼다.
집의 표정을 만들고, 공간을 숨쉬게 하는 창
창의 형태는 다양하게 변해왔고, 창을 만드는 기법과 기술도 다양하게 변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창의 역할은 중요하다. 집에 빛을 불어넣고, 바람을 통하게 하고, 안과 밖을 소통하게 한다. 집을 짓거나 꾸밀 때에는 창이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계획해야 한다. 적당한 빛이 들게 하고, 바람이 잘 통하게 하고, 밖을 잘 받아들이는 창은 좋은 집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