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불이 있는 공간이 사랑스러운 계절이다.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난로에 불을 피우고, 냄비에 과일과 각종 향신료를 넣은 와인을 채워 올려두었다. 와인과 계피 향이 공간을 그득 채우고, 난로 주변은 포근하다. 온풍기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따스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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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종족, 인류
인류가 불을 사용한 것은 대략 142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불을 통해 인류는 동물과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 불이라는 강력한 에너지를 취하면서 인류는 온기와 조명을 얻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열대 지역을 떠날 수 있게 되어 거주 영역이 확장되었고, 밤에도 활동할 수 있으니 활동 시간도 확대되었다. 또한 불을 조리에 사용하면서 조금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게 되었고, 불을 이용해 다양한 도구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게 되었다. 모든 인류 문명의 시작은 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에는 번개나 다른 이유로 자연 발화된 불을 발견해 옮겨와 지켜내는 것이 불을 사용하는 방법의 전부였다. 불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에 인류는 동굴로 들어가 최초의 거주 공간을 마련했다.
이후 점차 자연 상태를 극복하고 거주를 위한 환경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불을 지키고 조절하며, 추위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낸 역사는 주택의 역사가 되었다.
불을 만들어 들여오다
불을 안전하게 만들고 다루는 일은 쉽지 않았다. 불을 얻어 지키는 것에서 직접 만들기까지 40만 년 가까이 걸렸다. 불을 직접 만들게 되면서 불로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많아졌고, 인류는 문명이라는 것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집 안으로 불을 들이는 일은 그리 간단치가 않아서, 여전히 가축과 함께 잠을 자거나 서로의 온기로 밤을 보내야 했다.
초기에는 화로를 만들어 주거 공간 안으로 불을 들여왔다. 일본의 다다미 주택은 그 원형을 보여준다.
화로를 통해 실내에서 조리와 난방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화로에 피울 수 있는 불은 너무 작았고 난방을 하기에는 부족했으며, 거주 환경에도 그리 유리하지 않았다.
난방과 조리를 위한 불을 주거 공간 안에서 이용하기 위해 벽난로와 아궁이, 굴뚝 등이 개발되었다. 난방과 함께 조리가 가능한 것이 벽난로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획기적인 장치였으나, 초기에는 실내로 들어오는 연기가 너무 심각해 독일에서는 훈제요리가 발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연기를 빼내는 다양한 기술이 발전되었고, 가스나 전기 등 새로운 원료가 등장하기 전까지 서구 사회 전반으로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온돌 방식의 아궁이가 난방과 조리를 책임졌다. 주된 주거 공간과 분리된 부엌에서 조리를 위해 불을 사용하고, 난방은 이 온기에 의해 데워진 바닥의 돌을 통해 해결했다. 이 방식은 더 이상 아궁이를 사용하지 않는 현대에도 바닥 난방 방식으로 우리에게 익숙하게 사용되고 있다.
조명을 위한 불은 램프와 등잔을 통해 집으로 들어왔다. 초기에는 움푹한 돌멩이나 조개에 기름을 담아 불을 붙이는 방식이었으나 이후 도기나 금속 등으로 발전했다. 등잔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밤을 밝히는 용도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등잔의 불은 밝지 않았고, 오래가지 않았으며, 원료가 많이 들었다. 무엇보다 초기 등잔에서 나오는 연기는 밤의 실내 활동을 어렵게 했다.
양초도 기록상으로는 매우 오래되었으나, 초기의 양초는 냄새가 좋지 않았고 불도 밝지 않았다. 이후 밀랍과 경랍(향유고래의 머리 부분에 있는 기름을 냉각시킨 뒤 압착하여 만든 것)을 사용하게 되면서, 밝고 지속적인 불꽃을 낼 수 있게 되자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현재와 같은 파라핀 왁스가 개발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들어서다.
불이 사라지다
이제 우리에게 불을 만들어내기란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작은 라이터 하나로도 누구나 불을 만들 수 있다. 조절이 가능해진 불은 언제든 켜고 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불은 위험하고 특히 난방을 위한 불은 효율이 높지 않다. 우리는 더 이상 집에서 불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난방은 가스와 전기로 만들어내는 온기로 거의 대체되었다. 여전히 우리는 전통적인 바닥 난방이 되는 집에 살고 있지만, 그 온기는 불에서 온 것이 아니다. 가스나 전기로 데워진 물이 전해주는 온기다. 농어촌, 산촌 지역에서는 화목보일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자체로는 효율이 높지 않아 기름보일러나 가스보일러와 연동하여 사용한다. 게다가 화목보일러는 나무를 태우는 방식이므로 연기와 냄새가 많이 나고, 목재를 쌓아둘 공간도 필요하기 때문에 도심에서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또한 연기 때문에 주택의 외장재 등이 상하기 쉽고, 안전과 편리의 문제로 집 외부에 위치하므로 약간의 불편함이 있다.
조리에는 여전히 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가스를 이용해 불을 피우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전기 인덕션을 사용하는 주택이 많아졌다.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안전이다.
조명으로 사용하는 불은 전기로 대체된 지 오래되었다. 유럽에서는 불에서 전등으로 넘어가기 전, 1800년대에 가스등이 널리 사용되었다. 가스등은 저렴했고, 등잔보다 안전했으며, 안정적으로 밝았다. 가스등의 보급은 상류층 독서 인구를 증가시켰고, 한편 가혹하게도 공장 근로자들의 근무 시간을 연장시키기도 했다. 19세기 유럽의 문화 부흥과 산업혁명은 가스등의 보급과 관련이 있다. 이후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고, 전기가 보급되면서 전등의 사용이 일반화되었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가로등 점등식 장면이 나왔는데, 이전까지 기름등을 사용하던 조선인들에게 전등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고종이 세운 한성 전기회사가 자금 부족으로 미국인들에게 넘어가면서 이들은 가로등을 통해 전등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당시 궁중에서만 쓰던 전등을 민간에게 보급하려 했다. 이는 성공적이었고, 전기를 사용한 조명은 모두에게 익숙해졌다.
백열등과 형광등을 지나와 최근에는 효율과 밝기를 더욱 개선한 LED 조명도 일반화되었다. 아직 조금 비싸지만 안정성과 내구성이 좋고, 이제 다양한 색상과 밝기의 조명들도 개발되었으므로 조명을 바꿀 때는 LED 조명을 고려할만하다.
불에 대한 감각
불은 주택과 인류 문명의 시작이었지만, 이제 주택에서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화재는 여전히 우리가 언제든 경험할 수 있는 매우 큰 재난이기 때문에 진화를 위한 소화기, 감지기, 스프링클러 등은 건물의 규모와 용도에 따라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불은 효율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난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양초도 램프도 사라지지 않았다. 캠핑장에서는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앉는다. 가족들이 모이면 식탁 위에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먹는다. 프러포즈 할 때도 기도를 할 때도 초에 불을 붙인다. 르코르뷔지에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등의 현대 건축가들이 되살린, 벽난로가 있는 주택은 난방의 기능과 관련 없이 많은 이들의 로망이다.
불을 만들고, 사용하고, 조절하고, 대체한 이 모든 과정은 주택과 건축의 역사였다. 그리고 여전히, 불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감정은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