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월간 전원생활에 연재하는 글입니다.
계절에 따라, 삶의 방식과 공간에 따라, 해가 드는 공간은 좋을 수도, 힘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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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이고 필수적인 존재
인류 문명사에 태양신은 얼마나 많았을까. 가장 절대적이고 필요한 존재이면서도 때로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무서운 존재. 해는 따스한 빛으로 우리 몸을 녹여주지만 뜨거운 빛으로 몸을 상하게도 한다. 해의 빛과 열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태양의 빛과 열을 우리 주거 환경을 위해 사용할 뿐 아니라 이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기도 한다.
해와 좋은 관계를 맺는 좋은 집은 빛을 잘 받아들이고, 열을 잘 이용하는 집이다.
공간을 밝혀주는 빛
해가 드는 공간이라 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빛이다. 햇빛은 밝다. 생각보다 정말 밝다. 아무리 조명을 많이 설치해도 햇빛만큼 공간을 밝힐 수 없고, 조명 등을 아무리 빽빽하게 켜두어도 빛을 좋아하는 식물들은 바깥에 나가서야 기지개를 편다. 그 빛을 우리도 적당히 잘 받아써야 한다.
햇빛이 많이 들어오면 좋은 공간이라 여기기 쉽지만 우리 환경을 지내기 좋게 만들어주는 건 그저 많은 빛이 아니다. 햇볕이 바로 내리쬐는 공간에서는 눈이 부셔 책도 읽을 수 없고, 설거지조차 힘들다.
우리 생활에 유용한 빛은 직사광이 아니라 간접광이다. 간접광은 반사광이라 볼 수 있는데, 빛은 거울이나 금속 같은 매끈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모든 물건에서 반사된다. 집의 마룻바닥, 밝은 색 벽지에서도 빛은 반사되므로 방 안에 작은 빛만 들어와도 방은 밝아진다. 북반구에서 남향의 집을 선호하는 것은 기온 때문만이 아니다. 하루 중 해가 가장 높이 떠 있어 직사광이 가장 덜 들어오면서, 가장 오래 머물러 빛이 오래 드는 방향이 남향이기 때문이다. 빛환경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동서향의 방은 직사광이 깊이 들어와 작업환경에 좋지 않고, 북향의 방은 일정한 밝기의 간접광이 들기 때문에 환경이 꼭 나쁘다고 보기도 어렵다.
우리 한옥은 빛을 조절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었다. 남향으로 짓고 처마를 길게 빼 집 안으로 직사광은 최소한으로 들어오게 하고, 마당에는 밝은 색 모래를 깔아 최대한 많은 빛이 반사되어 집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유리가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창과 문에 사용되었던 창호지는 방 안으로 은은한 빛을 유입해 내부의 빛환경을 더욱 좋게 했다.
빛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작업을 하거나 오래 머물게 되는 곳에 최소한의 직사광을 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향 창이 크다면, 적절히 차양을 둔다거나 처마를 두는 것이 좋다. 동서향의 빛은 눈이 많이 부시고 집 안으로 너무 깊숙하게 들어오므로, 수직 방향의 루버 등을 설치하거나 세로로 좁고 긴 창을 설치하는 것이 도움이 되고 블라인드나 커튼으로 빛을 조절하는 것이 좋다. 집 전체를 밝게 아우르면서 밝기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나지 않는 집, 적절한 직사광과 반사광으로 따뜻한 공간감을 만들어주는 집이 좋은 집이다.
열기 가득한 햇빛
햇볕은 뜨겁다. 특히 여름의 햇볕에 화상을 입어본 경험은 모두가 있을 것이다. 겨울 내내 찾아다녔던 햇볕을 여름에는 피하듯, 집 역시 겨울에 깊숙이 빛이 들고 여름에는 덜 드는 집이 살기 좋은 집이다.
생존을 위해 난방을 한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햇볕은 겨울이 오면 집의 가장 중요한 열원이다. 다행히도 겨울에는 태양의 고도가 낮아, 같은 크기와 위치의 창에서도 겨울에는 여름보다 훨씬 깊은 곳까지 빛이 들어오고 집을 데운다. 그럼에도 향의 차이가 물론 있다. 남향의 빛은 오랜 시간 빛을 받아들이지만 깊이 들지 않고, 동향의 빛은 더욱 깊이 들어오고 더 뜨겁지만 그 시간이 짧다. 서향의 빛은 비교적 길고 따스하므로 겨울에 가장 따뜻한 공간을 만든다. 겨울의 따뜻한 집을 위해서는 이런 점들을 고려한 창의 계획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만 생각하여 창을 너무 크게 만들면 여름에 불리할 뿐 아니라 유리를 통해 내부의 열이 빼앗길 수 있으므로 큰 창을 만드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
여름의 빛은 잠깐도 힘들고 뜨겁다. 당연히 집 안에 직사광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최대한 잠깐 머물도록 해야 한다. 여름 남향의 태양은 높아 남향 창으로는 빛이 많이 들어오지 않는다. 반면 동서향의 창으로는 뜨거운 빛이 많이 들어온다. 특히 서향 창은 낮이 긴 여름의 집에 좋지 않다. 지금은 냉장고에 대부분의 음식을 보관하지만, 실온에서 보관하는 음식들이 있는 주방과 다용도실을 서향에 두는 것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북향의 창으로는 직사광이 들어오지 않아 여름에는 유리하다.
채광을 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열원으로서의 햇볕을 조절하여 받아들이는 것도 집을 계획할 때 고려해야 하는 점이다.
빛으로 낡아가는 집
해의 빛과 열은 우리의 실내 거주 환경에서만 조절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집에는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고, 해의 빛과 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경사 지붕에 많이 사용하는 금속재는 열에 의해 쉽게 변형된다. 여름엔 늘어나고 겨울엔 줄어들기 때문에, 그 연결 방법과 부착 방법에 대해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대부분의 금속 지붕이 폭이 좁고 긴 판을 함께 접는 방식으로 시공되는 것은 이러한 계절에 따른 변형에도 탈락되거나 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지붕재와 골조 사이에 적절한 공기층을 만들어 금속의 열이 골조나 단열재에 바로 전달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빛에 의해 색상이 변하거나 삭을 수도 있으므로 자재 선정 시 품질도 고려해야 한다.
빛과 열에 의해 가장 많은 변형을 일으킬 수 있는 자재는 목재다. 외부에 설치되는 목재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수분인데, 빛과 열에 의해 이 수분이 마르면서 목재의 변형을 일으킨다. 목재의 방수와 변형을 방지하기 위해 바르는 오일스테인과 바니시는 햇빛에 의해 녹아내리거나 바랜다. 마당에 목재를 사용하거나 외장재로 사용할 경우 매년 오일스테인을 발라주는 등의 관리가 필요하다. 비용이 조금 올라가기는 하지만, 합성목재나 변형되지 않도록 처리가 된 가공목재를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목재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 겉에 바른 스테인과 바니시는 얇아지고 색이 바래므로, 처음과 같은 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리를 해줘야 한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건축재료는 햇빛과 볕에 의해 낡는다. 색이 바래고, 팽창하거나 수축하고, 삭아버리기도 한다. 열전도율이 높은 재료들은 주변의 다른 부위들에도 열을 전달하고, 집 안의 냉방 효율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므로 집의 재료를 선택할 때는 그 지역의 날씨, 집의 향에 따른 햇빛의 양, 내구성 등을 모두 고려하여 선택해야 한다.
밝고 따뜻한 집
인공조명과 냉난방이 많이 발달되어 예전만큼 집의 향이 중요하지 않지만, 여전히 해는 중요하다. 해를 며칠만 보지 않아도 우리 몸은 피폐해진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물에게 해의 힘이 절대적임은 식물을 키우면서 더욱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좋은 약도 과하면 독이 되듯, 모두에게 해는 절대적인 존재이면서도 적절히 잘 이용해야 하는 대상이다.
따스하지만 뜨겁지 않은 빛, 골고루 밝은 빛이 그득한 집에 사는 것은 모두에게 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