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최근 필자의 아내는 주말마다 열리는 요가(YOGA) 클래스에 종종 참여한다. 요가보다 흥미로운 것은 해당 클래스를 위한 ‘참여의 과정’이다. 요가학원과 같은 아카데미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방식이 아닌, 강사가 매주 희망자를 모집해 규모에 맞게 적당한 공간을 물색해 클래스를 오픈한다. 이런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자면 ‘이벤트·게릴라성 자율 생활체육 클래스’ 정도로 칭할만하다. 등록했다고 매주 가야 하는 부담도 없고 개인적인 일정이 있어 바쁘면 참여하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최근 이러한 여가문화가 ‘소셜 액티비티 플랫폼’을 통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액티비티의 물색과 참여 등록은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진다. 묘하게도 이런 방식의 접근은 그 도구가 되어주는 스마트폰의 성격과 닮아 있다. 스마트폰은 하나의 플랫폼이다. 단어 의미 대로 평평한 곳, 무엇이든 올려놓고 언제든 바꿀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플랫폼에 마음대로 앱이란 단위공간을 설치하고, 제거하고, 위치를 옮기고 심지어 배경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스마트폰 이전 세대의 ‘전자책’ 단말기를 생각해 본다면 스마트폰이 얼마나 유동적으로 다양성을 수용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IT 분야에서 용도와 단말기가 1:1로 대응하는 시대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막을 내렸고 이젠 하나의 플랫폼에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을 어떻게 수용하느냐의 문제로 옮겨왔다.
실물 공간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열심히 추격 중이다. 아내의 요가 클래스는 스마트폰의 플랫폼에서 이벤트를 약속하고 현실의 플랫폼에서 실현된다. 이 이벤트가 종료되면 스마트폰의 플랫폼은 잠시 증발하고 현실의 플랫폼은 다른 이벤트를 수용할 준비를 한다. 공간과 용도의 대응이 ‘일대일’이 아닌 ‘일대다(多)’인 셈이다.
유동성을 바탕으로 한 일 대 다자구도의 플랫폼 공간개념은 여가뿐 아닌 주거와 업무공간까지도 활발히 확산되고 있다. 청년들은 혼자 사는 원룸보다는 쉐어하우스를, 일반 사무실보다 공유 사무실(Co-working Space)을 선호하고 그러한 공유가치에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공간과 사람 간 계약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들어가고 싶을 때 들어가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으면서도 소속해 있는 순간만큼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이처럼 한 가족, 한 회사를 위한 공간, 즉 하나의 목적을 위한 공간가치가 하락하고 모든 사람과 모든 사건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각광받는 이유는 ‘오픈 플랫폼’의 유연함이 현대인의 삶의 조건에 부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의 공간을 장기간 점유하기엔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가격조건은 너무나 불리하다. 게다가 빠르게 변해가는 유행,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기술과 이슈들은 한 목적에 장기적으로 복무하는 공간의 필요성을 축소해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주변의 공간들이 찾은 해법은 바로 정체된 공간의 성격을 유동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마치 우리네 오일장처럼 공간은 마당만 제공하며 하나의 ‘장(場)’을 펼치고 목적에 따라 다양한 이들이 프로그램을 사고팔기 위해 드나든다. 이때, 다양한 공급자,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공간은 카멜레온처럼 색을 바꾸는 셈이다.
건축을 통해 생산된 공간은 한번 구축되면 그 형태를 바꾸기 어렵기에, 변화의 수용에 비교적 보수적인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셜 네트워크 시대의 등장은 공간을 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고 ‘플랫폼 시대’를 이끌어 냈다. 다가올 미래, 어떤 새로운 사건들이 딱딱한 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깨뜨리고 혁신적인 틀을 제시하게 될까. 그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이에게 공간은 전혀 다른 차원의 관계와 개념으로 다가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