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일상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공간 중 하나가 바로 ‘계단’이다. 계단은 공간을 오르내려 높이를 극복하기 위한 장치로, 가끔 다양한 의미로 비유되기도 하는데 인생 그 자체를 계단에 빗대기도 하고, 한걸음 한걸음 올라가는 성공 스토리에 등장하기도 한다. 또 사회적으로 국면 전환이나 상황 간 연결에 계단을 등장시키기도 하며, 심리적으로 어려운 일에 직면하거나 급격한 실패를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도 사용된다. 이런 비유들이 생겨난 이유는 바로 계단에 필요한 ‘노력’ 때문이다. 오르내리는 사람도, 계단을 계획하고 만들어 내는 사람도 가장 큰 노력을 요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건축적 장치로서의 계단 이전, 인류는 비탈길에서 구현할 수 없는 행위들을 위해 계단을 구상했다. 경사지에서 물을 가둘 수 없을 때 계단식 논을, 밀물과 썰물에 해안을 이용하기 힘들 때 계단식 부두를 만들었다. 때론 거대한 구조물의 구축으로 권력을 상징하고 싶을 때 계단식 피라미드를 통해 실현시키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계단이란 방법론이 가지는 기능적, 상징적 도구로서의 이점을 증명하는 일들이기도 하다.
건축공간에서의 계단 역시 단순한 오르내림의 도구만은 아니다. 날아오를 수 없는 인간은 계단을 통해 수직적으로 이동하며 공간감의 전환을 경험한다. 또 계단의 진행 방향과 꺾임, 회전을 통해 끊임없이 바뀌는 풍경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생사를 빗댄 다양한 비유들 만큼이나 실제 공간에서도 계단은 드라마틱한 도구로 사용되지만, 이러한 감성적인 접근 이면에는 이용하는 이들의 편리하고 합리적인 사용을 위한 기술적 설계가 필수다. 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도 건축설계의 핵심으로 통하는 계단의 ‘장치의 미학’은 건축가들에게 가장 무거운 책임감을 부여한다.
무심코 수없이 오르내리는 계단에는 몇 가지 ‘지식’과 ‘약속’이 있다.
첫째는 경사도다. 보통의 계단은 20도에서 50도 사이의 경사도를 가지고 있다. 20도 이하는 ‘경사로’로 분류되는데, 이 정도 경사도를 계단으로 만들면 오히려 오르기 불편하고 60도 이상의 경우 다리로만 오르기 힘들어 손, 발을 함께 써야 하기 때문에 ‘사다리’가 된다. 물론 20도와 50도에 가까워질수록 불편한 계단이 될 테다. 가장 적정한 계단의 경사도는 40도에서 45도 전후다.
둘째는 계단의 폭과 천장이다. 계단의 폭이 60㎝ 이하일 때는 한 사람이 짐을 들고 지나기도 벅차며, 120㎝ 이하라면 1인의 통행엔 무리가 없지만 2인은 힘들다. 그리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상부는 2.1m 이상의 높이가 확보돼 있어야 한다. 그 이하라면 ‘오르기’는 가능하지만 ‘내려가기’를 할 때 이마를 조심해야 한다.
셋째는 계단 각 단의 치수들이다. 우리가 발로 밟는 부분인 ‘디딤판’의 깊이는 20㎝ 이상, 디딤판과 디딤판 간의 높이차는 23㎝ 이하가 될 때 실생활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치수 역시 최소한의 사용을 보장하는 것으로 우리가 편하게 느끼는 깊이는 25㎝ 이상, 높이는 18㎝ 이하다. 이 정도 범주에서 깊이와 높이의 함이 45㎝ 이하가 되면 기본적인 편안함은 보장되는 계단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 중 어느 하나라도 세심하게 고려되지 않으면, 공간은 반영구적인 불편함을 안고 가게 된다. 건축공간 내부에서 가장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공간이 계단이라는 점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계단을 설계하는 행위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지 깨닫게 한다. 내부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마구잡이로 계획되고 설치된 계단은 드라마틱한 공간감은 커녕 수많은 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흉기가 된다.
아름다웠거나 혹은 불편했던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여러 계단들을 떠올려 보자. 단 1~2㎝의 차이로도 많은 제약들을 야기하는 계단, 반대로 편안한 걸음의 배경이 돼 어떤 방해도 주지 않는 친절한 계단, 나아가 적당한 채광과 조망이 상승·하강의 공간감과 조화돼 멋진 경험을 선사하는 선물 같은 계단.
우리는 어떤 계단을 밟고 있는가. 어쩌면 건축공간에 대한 경험의 폭을 넓히는 첫 걸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