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2023년이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일대에 대형 광장이 조성된다고 한다. 최근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영동대로 광역복합환승센터에 관한 이야기다. 서울시가 강남구 영동대로의 지하 공간에 국내 최초 입체복합환승센터 및 대규모 지하도시를 계획함에 따라 서울 강남의 판도가 뒤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
영동대로 통합개발에 관한 논의에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지하 공간의 입체·복합화에 관한 것이다. 지하 6층, 면적 16만㎡ 규모의 5개 철도역사를 통합 환승 몰·통합 대합실로 연계해 지하철, 광역철도, 버스 간 환승 편의성을 극대화한다. 대중교통 시설의 집약으로 인해 발생하게 될 유동인구를 수용하는 다양한 문화, 상업시설 등도 지하 공간 속에 배치될 예정이다. 주변에 즐비한 고층빌딩들의 지하층과 연결돼 사실상 거대한 지하도시를 완성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조감도
△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조감도
이러한 개발계획이 처음 발표된 2015년부터 사업의 역할 모델이 돼 왔던 것은 프랑스 파리 라데팡스(La Defense) 복합개발이다. 152만㎡에 달하는 부지에 반짝이는 고층빌딩들과 상징적인 신 개선문을 건설했고 대중교통과 차량 통행을 지하화해 드넓은 광장을 확보한 라데팡스 지역의 개발 방법론은 영동대로 개발의 청사진이 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영동대로 개발과 라데팡스의 사례를 겹쳐보면 크게 두 가지의 시사점이 있다. 첫 번째는 라데팡스 개발의 과정이 주는 교훈으로, 절차적 신중함과 의미의 발견이 그것이다. 라데팡스는 1958년 라데팡스 개발공사가 출범해 6년의 행정절차, 30여 년의 점진적 개발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16세기부터 조성된 파리의 도시맥락을 신도시까지 이어가기 위한 역사적 중심축을 찾고 물리적 개발에 앞서 정신적 연계를 우선시했던 개발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30년도 그리 여유 있는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 번 건립되면 반영구적인 경관을 형성하는 건축물, 그리고 그 집합체인 도시를 개발하는 일은 축제이기에 앞서 철저한 계획이 필요한 일이다. 2015년 설계안 공모, 2020년 착공, 2027년 완공이라는 영동대로 개발을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라데팡스 개발의 이러한 과정들은 도시개발의 선진 사례라 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건축적 평가는 엇갈린다. 그 비평의 지점에 라데팡스의 두 번째 교훈이 담겨있다. 라데팡스의 지하화된 입체교통체계는 대형 지상광장을 가능케 했고 광장의 주변엔 고층 업무 빌딩들이 즐비하게 늘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지하도로의 치안은 불안했고 주변 환경은 지저분해졌다. 기대와는 달리 광장을 즐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초대형 광장에 서면 고층 빌딩들의 반사광에 눈이 부시기까지 했다.
△ 프랑스 파리 라데팡스 광장의 모습
지하 공간의 개발은 최신 건설기술의 도입을 전제하기에 국가적 성장을 상징하지만, 사람은 결국 도시와 소통하는 지상 공간을 찾게 마련이다. 머물 수 있는 공간적 장치를 비롯해 소소한 상점들이 자리한 건물들, 햇빛을 잡아두는 나무들과 기분 좋게 밟히는 잔디 등은 좋은 광장의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이런 요소들이 결여된 라데팡스 광장은 텅 빈 운동장과 다름없었고 시민들은 결국 빌딩과 지하 공간으로 파고들었다. 이는 곧 지하도시와 교통연계 효율성만이 주목받는 영동대로 개발 방향이 수정돼야 하는 이유이자, 진행 중인 설계 공모를 통해 광장에 대한 인본(人本)적 계획을 바탕으로 하는 안이 선정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지개벽’, ‘잠실야구장 30배 규모’, ‘지하도시’ 등 자극적 단어들이 난무하는 영동대로 개발은 강남권 최초의 대형 열린 공간 창출이 수반되는 만큼 다차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라데팡스 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프랑스의 언론은 ‘환상 도시, 미래도시’와 같은 단어들을 즐겨 사용했다. 하지만 결국 라데팡스가 남긴 것은 ‘환상’, ‘미래’가 아닌 ‘의미’와 ‘역사’였다. 부동산 가치에 함몰돼 지하 공간 개발과 상업시설의 도입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몇 안 되는 광장다운 광장을 얻을 기회마저 놓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