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이데일리에 기재된 글입니다.
카페와 맛집이 즐비해 톡톡히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서울 ‘경리단길’에 대해서는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경리단길의 이름을 딴 망원동 ‘망리단길’ 역시 방송 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주 오르내리는 만큼 생소하지 않은 장소다. 경주 황남동의 ‘황리단길’, 전주 다가동 인근 ‘객리단길’, 울산 동구 남진길의 ‘꽃리단길’은 어떠한가.
비슷비슷한 이름에 동네 모양마저 닮은 이들 핫플레이스는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똑같이 끌어안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 고유의 장소성을 표현하는 명소가 되지 못한 아쉬움은 접어두고, 오랜 시간 지역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던 공간들이 비슷한 과정을 거쳐 비슷한 감성의 상업공간으로 변질되는 현상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국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가지는 특징은 이처럼 주거지역 내 상업적 침투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가 형성된 주거지역에 예술가 혹은 청년 창업가들이 모여들며 옛것과 새것의 공존이 발생해 주목을 받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동네는 순식간에 인지도와 임대료의 동반 상승을 경험한다. 결국 이름값을 높인 장본인인 기존 임차인들이 내몰리고 그 자리를 대형 상업자본이 채워가며 일반적인 상업지역으로 귀결되는 패턴이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 계획상 ‘일반주거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주거지역이란 사전적 의미 그대로 ‘일반적 거주의 영위’에 필요한 주택과 최소한의 점포들을 허용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공간이다. 일반주거지역에 모여든 소상공인들이 동네의 인지도를 높이고 역설적으로 쫓겨난 뒤 흔한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그것을 다루는 언론의 초점이나 지자체 등 정부의 정책에서 결여된 것은 바로 ‘주거지역’이라는 본질의 파괴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점이다.
일례로 2015년 발표된 서울시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의 골자는 △건물주-임차인 상생협약 △소상공인 앵커시설 대여 △장기안심상가 △소상공인 상가매입 지원 등으로 ‘기존 임차인 보호’에 초점이 맞춰졌다. 또 2017년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우려 지역(성수동 서울숲길)에 대한 대기업 프랜차이즈 입점 제한을 조례화 한 서울 성동구의 대책 역시 ‘골목상권 보호’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외지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의 성격 유지를 위해 ‘소상공인 보호’에 집중한 정책들로, 주거지로서의 도시적 요건 상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동네의 주인이었던 주민들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젠트리피케이션 논의의 변두리에 놓여 있었다.
주거지역 저층부가 카페와 맛집들로 가득 찬 동네가 살기 좋은 동네일까. 오히려 주민들은 액자 하나 걸어 둘 못 한 줌 사러, 바짓단 수선 한 벌을 맡기러 카페와 맛집 숲을 지나 대형마트를 애써 찾아가야 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따른 돌봄의 대상은 소상공인만이 아니다. 지역주민들의 삶의 터전으로서 본질적 기능을 되살리기 위한 지자체와 정부의 지속적 모니터링이 필요한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주거지다운 커뮤니티, 생활 밀착형 시설들의 복원에 관한 관심, 나아가 지역성의 변화에 대한 입체적인 추적이 필요하다. 우리가 ‘뜨는 동네’의 상권에 골몰해 있을 때 이면에서는 우리네 주민들의 삶이 내몰리고 있다. 도시공간의 황폐화는 ‘사람 사는 곳’에 대한 경시 풍조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